오늘 문득, 버즘나무를 보노라니 마음이
과거의 기억 속으로 사정없이 빨려든다.

거무티티한 구만이 얼굴 군데군데
뽀얗게 퍼져나던,
구슬치기 하던 콧구멍 밑으로 들락이던,
콧물을 옷소매로 훔치며 헤벌쭉 웃던 볼 위로
구름처럼 환하게 피어나던 버즘 꽃.

구만이 지금쯤 이 하늘아래 어딘가 살고 있겠지.

침 바르면 사라졌다 수줍은 듯
다소곳이 드러나던 버즘.
구만이 보다 버즘을 사랑했나 보다.

버즘,
아~ 버즘 꽃.

- 고선지님, '버즘 꽃 당신'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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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 적 시골은 그야말로 산촌이었다.
그때는 더운 물이 귀해서(?) 제대로 씻지 못해 얼굴가득 버즘이 피곤했다.
그 버즘 꽃을 하얗게 피우던 그때의 동무들이 그립다.
그 때의 그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세상은 추할 것도, 아플 것도 없을 것 같다.

지난 주 토요일 청주에서 그 버즘꽃 가득히 웃던 친구들을 만났다.
겨울이면 누런 코를 훌쩍이면서 흐르는 코를 왼소매로 쓰윽 닦고
그 흔적이 쌓여 왼소매에서는 항상 번들거림의 광채가 나곤 했었다.

밥을 먹고 난 후 입을 닦지 않아 벌건 짠짓물로 멋진 그림을 그리고 다녀도
마냥 즐겁기만 했던 친구들이었다.
이제는 불혹을 넘긴 아저씨, 아줌마가 되었지만 서로가 나누는 이야기만큼은
유년시절의 티를 조금도 벗어나질 않았다.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나온 남자친구들!
애들 다 키워놓고 자유롭게 인생을 즐기고 있는 멋쟁이 미시 여자친구들!
냇가에서 발가벗고 멱감으며 재잘되던 친구들이었기에 남녀의 구분이 필요치 않았다.

대부분 청주에 거주를 하고 있지만 서울, 부산, 광주 등에서 모여든 친구들과의 시간은
새벽녁까지 끝날 줄을 몰랐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찜질방에서 여흥의 피로를 풀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일요일 오후가 되어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나누었다.
누런 코를 흘쩍거리고 기계충을 달고 다니던 녀석들,
입주변 김칫물 자욱과 하얀 버즘꽃을 피고 다니면서도 해맑게 헤벌쭉 웃던 녀석들이
또다시 그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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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7-12-25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즘까지는 아니었지만 겨울이면 밖에서 노느라 얼굴이 빨갛게 누룽지처럼 되었다지요~~
마냥 놀 생각만 가득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전호인 2007-12-26 13:32   좋아요 0 | URL
정말 그때는 왜 그렇게 추웠었는지......
고추같이 추운 겨울에도 하루종일 밖에서 놀았던 추억들이 새롭습니다.

바람돌이 2007-12-25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해보면 전 항상 옷소매가 반딱반딱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지금 비염에 시달리지.... ㅠ.ㅠ
어쨋든 그런 어린 시절 친구들을 만나는건 참 즐겁죠?

전호인 2007-12-26 13:33   좋아요 0 | URL
글쵸. ㅎㅎ
그렇게 비위생적이었어도 잔병치레들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에 비하면 천지차이죠.

무스탕 2007-12-2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추억을 이야기할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건 정말 축복이죠..
그리운 시간을 되돌릴수 있으셔서 좋으셨겠습니다 ^^

전호인 2007-12-26 13:34   좋아요 0 | URL
지금은 다들 징그럽게 변했습니다.
까까머리와 단발머리 코흘리개 녀석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2007-12-26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6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7-12-26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버즘꽃이 뭔가 한참 생각했는데
이런 꽃이군요.
그땐 우리들 다 그렇게 살았나 봐요?

전호인 2007-12-26 13:35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럭저럭 살았었지요.
특히나 시골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추억의 연속이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2007-12-26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호인 2007-12-26 15:54   좋아요 0 | URL
네, 그곳이 고향이랍니다. 와우~ 자주 가보진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청주엘 가면 고향의 품에 안긴 듯 편안해 집니다.
괜시리 더욱 반가워지는 이 느낌......... ㅋㅋㅋ

씩씩하니 2007-12-31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국민학교 동창회에 갔었는데..남자애들을 더 좋아하고 더 많이 놀았던것 같은데..여자애들 얼굴이 더 또렷히 기억나서..얼마나 속으로..신기했든지.흐...
님은 청주에만 오셔도 늘 고향을 느끼시나봐요..그쵸?? 전 님이 청주에 오셨다는 말만 들어도..가슴이 뿌듯하구..ㅋㅋㅋ
오늘은. 한해의 마지막 날,,,청주에는 눈이 펑펑 내립니다..
님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다가오는 한 해..행복하고 건강하세요..
무엇보다 가족 모두 화목과 건강을 제일 많이 제가 기도드릴께요...
님...새해 복 마이마이 받으셔요~~~~~~~

전호인 2008-01-22 08:57   좋아요 0 | URL
님이 청주에 있어서 저는 행복하답니다.
이렇게 고향얘기를 하면 즐겁게 받아주시는 고향친구가 있으니 말이에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 아시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