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저편, 길을 나서다 -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여행이야기
안홍기 지음 / 부표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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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배낭여행에서 경유지 프랑크푸르트에 착륙하려고 비행기가 감속할 때였다. 창밖으로 내려다 본 풍경은 정말이지 액자 속 그림을 보는 듯했다. 마치 인형의 집처럼 벽돌색 지붕이 일정한 간격으로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159페이지의 사진이 잠시 동안 옛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산토리니 이아 마을의 사진 또한 그리스를 여행하던 때의 두근거림과 환희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불투명한 파스텔 톤의 표지가 마음에 든다.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여행하는 이들의 사진 같기도 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사진과 여행을 한 묶음으로 생각하기는 하지만 영화와 여행을 연결 지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영화는 여행과 같다.
아주 짧은 시간에 아주 짧은 여행을 실컷 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분이 된다. 
책을 덮고서야 동감(同感)했다. 저자의 여행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영화를 본 듯했고, 영화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영화와 여행, 사진, 글쓰기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 것이며 그 모습 또한 얼마나 멋진가.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저자의 추억까지도 부러웠다. 

스물아홉 편 중에서 내가 본 영화는 거의 없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책으로 두 번 읽어서 그런지 내용이 머릿속에 영상으로 남는 듯한 착각이 든다. 제목만 들어본 영화까지 합해도 열 편 정도다. 여행이야기와 적절하게 섞어준 덕에 책에 소개된 영화를 비디오로 쌓아놓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내게는 꿈 같이 황홀하고 즐거우면서도 몸살 같이 힘들고 피곤한 경험이다. 두 시간 동안 영화를 보면서 그만큼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고 느끼는 저자의 모습이 밝게 비춘다.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 냄새나는 여행 사진을 보며 세계 곳곳에 있을 그림 같은 장소와 환하게 웃으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 마음 따뜻한 사람들 생각에 내 마음 역시 훈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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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a Photographer 나는 사진쟁이다 - 신미식 포토에세이
신미식 지음 / 푸른솔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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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쟁이 신미식,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16년 동안 여행과 사진에 미쳐 살았다니 가히 프로 여행 사진가라 할 만하다. 여러 곳을 둘러본 건 아니지만 손에 꼽을 정도의 짧은 여행을 하면서 여행과 사진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알았다. 예전의 여행 사진을 들춰보면 즐거웠고 힘들었던 소중한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앞으로도 여행을 할 때는 사진기가 필수품일 것이며 사진 기술은 배워본 적도 없는 내가 멋진 풍경과 평범한 일상을 쉼 없이 찍어댈 것이다. 

직업으로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부러워하며 동경했던 일을 하게 되었을 때의 기분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되길 바라는 그의 마음은 얼마나 따뜻하며, 스스로 찾아낸 삶의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그의 손은 얼마나 섬세할까. 두꺼운 책의 큼지막한 사진들을 심장이 멈춘 듯 숨도 쉬지 않고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연과 사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그의 사진은 소박하면서도 거대하고, 평범하면서도 아름답다. 일상에서 빛이 나고 단순함에서 특별함이 묻어난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에서 소금을 떼어내 맛보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싶다. 페루의 마라스 마을에 있는 살리나스 염전을 확인하는 순간에는 미미한 소름이 돋았다. 자연과 문명(文明)의 합작이 아닐까. 어느 나라든 아이들의 눈은 맑기만 하다. 순수한 마음과 때묻지 않은 웃음은 여행에서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줄 게 분명하다. 우리와 피부색이 같고 얼굴 생김새가 닮은 사람들을 보면서 친근함에 눈을 떼지 못했다. 꽃과 나무와 구름과 산, 호수와 사막과 하늘과 생명체가 있는 사진을 바라보면서 살아있음이 행복하고 한번쯤 도전해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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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까지 해야 할 스무 가지 1
질 스몰린스키 지음, 이다혜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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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에 학교 들어가 친구들은 스물여섯이지만, 언젠가부터 한살이라도 어리게 말하는 걸 으레 의식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스물다섯도 거의 끝나간다. 지금의 나를 생각하며 급한 마음에 책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제목만 보고 한때 쌓아놓고 읽었던 자기계발서를 생각했다. 몇 세까지 꼭 해야 한다는 제목의 이야기는 읽고 나면 특별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짓수가 많기만 한데 또다시 찾게 되는 것이 왠지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스물다섯까지 해야 할 스무 가지』는 소설이었다. 그것도 아주 재미나고 술술 잘도 읽히는 소설 말이다.

서점에서 책장(冊張)을 넘겼을 때 당황하고 말았다. 가장 처음에 나오는 문장이 '다음에 할 일. 낯선 사람에게 키스하기.'였다. 바로 덮어버렸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이야기가 나올 듯한 예감에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겁고 시원한 그래서 유쾌한 내용을 기대했다. 예전에 많이 읽었던 추리소설은 탐독하는 동안 꼭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책에 빠져들어서인지 아니면 전개되는 과정이 빈틈없어서인지 그 상황의 영상이 그려졌다. 하지만 추리소설이 아닌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본 듯한 착각이 든 건 처음이다. 영화가 제작될 예정이라니 책을 읽을 때의 느낌과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보고 싶다.  

마리사와 처음 이야기한 날 그녀가 죽었다. 죽은 곳에 함께 있었다는 죄책감으로 그녀의 가방에서 발견한 리스트에 적힌 항목을 하나씩 수행하기 시작한다. 서른넷의 주인공 준 파커가 스무 가지 중 열여덟 가지를 수행하는 동안의 이야기다. 항목을 살펴보면 내가 지금 바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세 가지 정도, 약간의 용기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아홉 가지 정도이다. 이런 황당무계한 리스트를 내가 수행해야 한다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긴장된다. 마리사의 스물다섯 살 생일 전까지 완벽하게 해낸 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책을 덮음과 동시에 나만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과연 어떤 항목을 넣을 수 있을까. '죽기 전까지 해야 할'이라는 수식어보다 마리사와 같이 구체적인 기한을 정하는 것이 수행할 확률이 더 높을 것 같다. 언젠가 내 리스트를 정리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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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진 - 황제내경과 서양의학이 만났다
팽청화 지음, 이상룡.김종석 옮김 / 청홍(지상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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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두께와 인체 면부 반영도가 디자인 된 표지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살면서 병원에 간 적이 거의 없지만 몇 번 갔던 것도 대부분 감기나 예방접종 때문이었다. 고1때 국어 보충수업 시간에 오른쪽 아랫배가 살살 아팠다. 쿡쿡 찌르는 게 나아지질 않고 맹장이 위치한 자리라 슬슬 겁이 났다. 옆에 있던 친구는 맹장염 수술 경험까지 이야기하니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조퇴하고 동네 병원에 갔다. 누운 자세에서 의사 선생님께서 배를 누르시는데 아무렇지도 않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도대체 왜 아팠던 것일까. 학교 다닐 적에는 아무 이유 없이 배가 아팠던 적이 많다. 병원에서 자세히 검진해본 적도 없거니와 병원 가는 것 자체가 겁이 난다. 고3 올라가기 전에는 장염이었는지 보약지어 먹을 겸해서 한약방에 갔었다. 한의사 선생님께서 진맥을 짚고 약을 지어 주셨다. 진맥만으로 진단한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생활하면서 신체에 변화가 생기거나 병의 징후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 책 한 권으로 조기진단은 물론이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팁 또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말 그대로 가정의학 백과사전이다. 머리카락부터 발바닥까지 목차만 해도 여덟 장이다. 두꺼운 책을 처음부터 읽어나간다면 금새 지루해질 것이다. 목차를 보고 필요한 부분부터 골라 보는 쪽이 좋겠다. 

얼굴의 형태에 따른 사람의 특징은 재미있었고, 얼굴형과 걸리기 쉬운 질환의 소개는 걱정스러웠다. 특수한 얼굴의 종류가 엄청나다는 사실에 놀랐다. 눈이나 귀, 코, 입술, 혀뿐만 아니라 손톱과 피부 등 몸의 어느 한 부분도 빠지지 않았고, 심지어 체내의 분비물까지 나와 있어서 병을 진단하는 데 무척 유용한 책이 틀림없다. 제목이 병상(病狀)을 진단한다는 뜻의 망진(望診)이긴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증상에 따른 치료법이 간략하게라도 소개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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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 무한한 창조의 샘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5
프란체스코 갈루치 지음, 김소라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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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자발적으로 처음 미술관을 찾아간 것은 2006년 여름이었다. 한젬마의 '화가의 집을 찾아서'를 읽고 휴가 동안에 미술관 투어를 하면 어떨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세 지역의 여러 미술관을 둘러보자는 계획은 무너지고 할머니 댁에서 가까운 임립미술관 한 곳을 택했다. 무더운 날씨에 관람객 한 명도 없는 그 넓은 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역시 미술관은 한산(閑散)할 때 여유롭게 둘러보는 것이 제격인데, 같은 해 9월 3일 서울시립미술관은 피카소전 마지막 날인데다 주말이라서 무척이나 붐볐다. 

어릴 적에 엄마의 스크랩북을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 오린 어느 화가들의 그림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으셨다. 아마 피카소란 화가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도 엄마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학창시절에 미술을 좋아했고 지금은 작품 감상하기를 좋아하는 게 엄마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난 피카소나 샤갈보다는 클림트나 렘브란트의 그림을 좋아한다. 작품의 주제를 난해하게 표현하거나 상상력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희한한 기법을 사용한 것보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그려낸 인물화나 풍경화가 더 마음에 든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피카소의 그림을 감상하기보다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를 엿듣고 싶어서였다. 화가의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신비로움 혹은 두근거림을 일대기를 통해 직접 맞닥뜨리고 싶었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훌륭한 작품을 남긴 화가는 과연 어떤 일을 겪으며 살았는지 그의 삶은 특별했는지 궁금했다. 피카소의 일생을 시대별로 나누어 들려주고 있다.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달리 삶의 이야기와 곁들여진 작품을 함께 읽는 것의 특별함이 좋았다. 

학교 교사이며 미술관 관리자인 아버지의 지도를 받으며 피카소는 재능을 드러낸다. 당시 전망 좋은 분야였던 종교화로 성공을 거두고, 근대적인 분리파 경향에 관심을 가졌다. 책에 나오는 작품을 하나씩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진지함이 보이기도 하고 간혹 심각해 보이기도 한다. 초현실주의의 몽환적인 이미지가 나타나고 해독하기 어려운 작품도 많다.  

피카소전에서 보았던 노년의 모습 사진과 책 겉표지의 젊었을 적 사진을 새삼스레 비교해본다. 머리숱의 차이만 날 뿐 이목구비는 변함없다. 강렬한 빨강의 표지가 왠일인지 튀지 않고 위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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