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1
김용 지음, 박영창 옮김 / 중원문화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인간이 무리짓고 살게 된 순간부터 비극의 씨앗은 잉태되었다. 힘이 센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을 지배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계급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계급 말이다. 어떻게든 지배자 계급에만 서면 부귀영화를 누리며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되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배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그뒤로 인류의 역사라는 것이 지배자가 되기 위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었으니, 사실 정치라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다. 위정자는 사리사욕과 일신의 안녕을 위해 가진 것없는 피지배자들을 조금이라도 더 짜내기 위해 고도의 수법을 개발해냈고, 계급의 차이는 더욱 벌어져 오늘날까지 왔으니 그저 할 말을 잃을 뿐이다.

 

 

중국의 역사는 신화에 가까운 삼황오제 시대를 빼고, 하나라부터 잡아봐도 대략 4,000년이 넘는다. 수천명의 황제와 영웅들이, 중국의 끝을 알 수 없는 광대무비한 땅덩어리와 거기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인적 물적 자원들을 다투다 명멸해갔다. 오늘날 우리는 알고 있다. 하늘의 아들이라는 중국의 패자가 되기 위해 수많은 음모와 협잡이 난무했고, 바다를 이룰만큼 많은 피가 흘러내린 것을. 그래서 고래로 중국의 뜻있는 문사들은 천하의 정상에 서기 위해 갖은 술책을 부리며 피를 부르는 정치꾼들을 나무라는 글들을 자주 지었으니, 다행히 우리 시대에도 손꼽히는 중국 문단의 별이 있어 그 구색을 맞추고 있다. 중국에서 태어나, 홍콩으로 이주해 일간신문 '명보'의 사장으로 재직하며 수많은 걸작 무협소설을 집필한 김용이 바로 그 걸출한 인물 중의 인물이다. 

 

<소오강호>의 세계는 수많은 무협소설들이 반복해 써 먹었던 익숙한 구조를 차용하고 있다. 정파와 사파의 이분법적 대립구조 말이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된 시기가 1969년이니 아마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양대 이데올로기로 세계가 반으로 쪼개져 으르렁대던 당대 상황을 반영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정파는 무림의 태산북두인 소림사와 무당파, 그리고 오악검파가 있는데 숭산파, 화산파, 형산파, 항산파, 태산파의 5대 검파의 합당 체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정파는 숙적인 사파를 멸망시키기보다는 오악검파 내부의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당파싸움으로 머리가 더 복잡하다. 특히 두각을 나타나고 있는 인물은 오악검파의 수장, 숭산파의 패권주의자 좌냉선이지만, 협잡의 일인자인 화산파의 '군자검' 악불군도 조용히 그 세력을 기르고 있다. 숭산파 좌냉선은 차제에 아예 오악검파를 합당하고, 소림, 무당의 무릎을 꿇리고 최종적으로 사파를 멸해 천하의 정상에 서려하는 야심을 감추지 않는다.

 

한편 사파라 할 수 있는 '일월교'는 상태가 더 심각하다. 전임교주 임아행을 쿠데타로 몰아낸 신임교주 동방불패는 전임교주 임아행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탄압하고, 임아행은 감옥에 갇혀 권토중래를 노린다. 여기나 저기나 추한 정치싸움 일색이다. 정통이라 자처하는 오악검파 안에서도, 종교의 형태를 띈 일월교 안에서도. 이 혼란의 와중에 술 좋아하고 어렸을 때부터 같이 커온 사매 악영산을 좋아하는 화산파의 수제자 영호충이 등장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호충은 재기넘치고 인간적인 성품의 호방한 사나이지만 사실 그리 뛰어난 존재는 아니다. 천하 대세에 영향을 미칠 만한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연히 화산파의 전대 고수 풍청양에게 '독고구검'을 배우며 그의 인생은 달라지고 만다. 절대적인 위력을 가진 독구구검으로 인해 그가 가세하는 쪽이 천하 패권을 움켜쥘 수 있게 된 것이다. 갑작스레 천하 대세의 키 플레이어가 되 버린 영호충은 그를 둘러싼 온갖 음모와 협잡, 회유와 유혹에 당황하게 되며, 이윽고 그는 그 모든 것들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영호충과 그가 사랑하는 두 여인, 악영산과 임영영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치적 인물이다. 앞서 언급한 좌냉선은 야심을 드러내니 오히려 순진한 인물. 군자검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이미지 정치에 능한 악불군은 뒤로 온갖 모사를 꾸미니 '위군자검'이라 할 수 있다. 일월교 전교주 임아행은 영호충에게 자신의 딸 임영영을 줘서 사위로 삼고 싶어 하는데, 영호충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영호충의 일신의 능력을 높이 치기 때문이다. 항산파의 방장 정한사태는 자신이 죽어가면서 여자로 이뤄진 항산파의 수장 자리를 영호충에게 넘긴다. 문파의 정통성(여자만 가입한다는)을 훼손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비웃어도 영호충만 끌어들이면 된다는 식이다. 음률에 능한 형산파의 막대 장문인은 그래도 괜찮은 인물이지만 정치판(?)을 아예 떠나지는 못한다.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능력이 부족해 예술로 도피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처럼 <소오강호>는 한 편의 완벽한 정치 풍자소설이다. 정치의 소용돌이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을 소묘하듯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제목 <소오강호 笑傲江湖>는 '강호를 비웃다'라는 뜻이다. 여기서의 강호라 함은 영웅호걸들이 노니며 천하를 다투는 곳이라 할 수 있으니, 바로 정치판을 비웃는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소오강호>는 악곡의 이름이기도 하다. 형산파의 유정풍과 일월교의 곡양이라는 적대 세력의 두 고수가 음악으로 교감해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이 합심해서 만든 곡이 바로 이 '소오강호'곡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둘 다 죽음을 맞게 되겠지만 죽음도 그들의 우정과 음악혼을 막을 수는 없다. 두 사람에게 이 '소오강호'곡을 배우는 사람이 영호충이다. 정치보다는 우정과 예술을 택한 두 사람이 부르는 이 소오강호 곡이야말로 작품 전체를 꿰뚫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정파와 사파의 우렁찬 구령소리에 가려져 들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역시 우리의 가슴 속에 은은히 파고드는 아름다운 곡조라 아니 할 수 없다.

 

정치판에 뛰어드는 순간, 협잡질부터 배우고 야심으로 눈앞이 흐려진다. 정치의 노예가 된 좌냉선이나 악불군, 임아행, 동방불패 등의 인물에 비하면 우리의 주인공 영호충은 참으로 인간적인 인물이다. 사랑하는 영산 사매의 마음이 점차 멀어져 사제인 임평지에게로 향할 때, 영호충이 느끼는 그 절망감이란. 늘 함께 하며, 자신만을 보고 웃어주던 사매가 임평지가 가르쳐주는 노래를 부를 때, 영호충은 한바탕 취해버리고 만다. 나중에 임평지와 악영산이 결혼하자 지엄한 항산파 방장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젖어버리도록 울어버리는 영호충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소냐. 정치의 노예로 꼭두각시가 되버린 인간군상들 속에서 영호충의 인간다움은 그만큼 특별해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 한 가지. 사매가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를 잊지 못하는 영호충과 그런 영호충을 일심으로 사랑하는 임영영. 사매에 대한 집착으로 괴로워하던 영호충은 사매가 위기에 빠져 있는 걸 알고 임영영과 함께 도와주려 간다. 그러나 예전처럼 세상이 끝난거마냥 서둘지는 않고, 마차 안에서 임영영과 담소를 나누며 유람하듯 사매에게로 간다. 임영영이 말한다. 늘 사매만을 생각하던 영호충의 마음이 이제 나에게로 돌아섰음을 확인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그순간 영호충은 자신을 그토록 사로잡던 사매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순간의 벅찬 해방감이란! 집착, 특히 사랑에 대한 집착은 인간의 마음을 미혹시킨다. 이미 아닌 것을, 끝났음을 알면서도 한자락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여. 그러나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그곳이 바로 해탈이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되는데, 미련과 아쉬움에 그걸 못하니 그것이 바로 인간의 가장 큰 병이리라. 정치판도 비슷하다. 집착하기는 오래지만, 벗어나기는 순간이다. 한순간의 깨달음으로 번뇌에서 벗어난 영호충의 깨달음을 정치가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이 작품을 쓴 김용 선생은 '신필'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데, 내 생각엔 그것도 부족하다. 인간이 글로 쓸 수 있는 최상의 작품들을 두루 집필해낸 그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자, 하늘에서 잠시 다니러온 文의 별이다. 홍콩의 일간지 '명보'의 사장이자 주필이라는 언론인의 역할도, 수많은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로서의 역할도 성공적으로 해낸 이 80대의 노작가는 여전히 생존해 있고, 현재 영국에서 필생의 꿈인 중국 역사를 집대성하는 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그의 무협소설은 총 15편으로 문장의 유려함과 사상의 깊이, 몰아일체의 재미로 인해 이미 현대의 고전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역시 <소오강호>. 부디 인간을 옥죄는 정치판의 온갖 굴레 속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이 남아있는 자유로운 곳으로 날아가려 하는 영호충의 날개짓을 확인하기 바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6-06-17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전 영화보고 책살려니 없어서 ㅠ.ㅠ 근데 무협지는 한번 손에 잡으면 중독성이 넘 강하고 길어서 엄두도 못내고 그러네요^^;;;

jedai2000 2006-06-18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도 소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정식 발매가 되며 꼭 사놓으려고요. 솔직히 영화와는 비교도 안 되는 명작입니다. 어느 정도 중독되셔도 시간 낭비 절대 아닌 작품이니 꼭 읽어보세요..^^
 
고양이는 알고 있다 - 제3회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니키 에츠코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고양이는 알고 있다>의 여성 작가 니키 에츠코는 개인적으로 불행이 많았던 사람 같습니다. 작가 연보를 읽어보니 4살 때, 척추 카리에스라는 병으로 보행 불능 판정을 받았답니다. 그뒤로 현대적인 치료를 받은 30세가 되서야 겨우 휠체어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약간 회복됐다고 하네요. 29세에 쓴 이 작품은 그러니까 침대에 누워서 쓴 것입니다.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를 침대에 누워 책만 읽으며 지낸 불행한 처지를 보상받고 싶어서일까요. 작가 니키 에츠코는 자신의 작품에서 활달하고 귀여운 소녀 탐정역을 창조해냅니다. 그 탐정의 이름에 자신의 필명인 니키 에츠코라는 이름을 붙여준 건 그저 우연만은 아닐거라 생각되네요.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니키 에츠코의 오빠, 니키 유타로의 등장에도 개인적으로 추측을 해봅니다. 역시 작가 연보에서 보면 작가의 첫째 오빠는 태평양 전쟁에서 전사했다고 하네요. 그뒤로 '전사한 오빠가 있는 누이' 모임 등에서 회장직을 맡았다는데서 보듯이, 오빠의 죽음에도 꽤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 속에서 사이좋은 니키 유타로, 에츠코 남매가 좌충우돌하며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대강의 모습은 어쩌면 작가가 실제로 정말 하고 싶었던 일들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괜히 쓸쓸해지네요.

 

괜시리 우울한 이야기를 서두에 늘어놓았지만, 이 작품은 참으로 밝고 따뜻합니다. 그리고 귀엽습니다. 작품은 하숙집에서 쫓겨난 니키 남매가, 음대에 다니는 동생 에츠코가 피아노를 가르쳐준다는 조건으로 하코자키 병원에 기거하게 되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사온 바로 다음날인 일요일, 병원의 환자 한 명과 하숙집의 할머니가 동시에 실종되며 심지어 기르던 고양이 한 마리까지 사라지는 기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식물학을 전공하며 두뇌 회전이 빠른 오빠 니키 유타로의 추리로 할머니는 병원 부지 내에 있는 방공호에서 발견됩니다만 이미 교살되어 있습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동생 니키 에츠코와 퍼즐을 푸는 일에 애착을 갖는 오빠 니키 유타로 남매의 조사가 지금부터 펼쳐집니다.  

 

<고양이는 알고 있다>는 1957년에 최초로 출판된 작품입니다. 일본 추리소설의 선구자, 에도가와 람포가 자신의 사재를 털어 추리소설 진흥을 위해 만든 '에도가와 람포상'의 제3회 수상작이기도 하지요. 당시 에도가와 람포상은 1회는 평론가, 2회는 추리소설을 많이 내는 출판사에 공로상 격으로 주었는데, 에도가와 람포의 요청으로 신인 작가에게 주는 상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고양이는 알고 있다>는 그 신인상의 최초 수상작인 셈입니다. (현재도 에도가와 람포상은 그 전통이 이어져, 니키 에츠코의 후배격인 여성 미스터리 작가들에게도 많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다카무라 카오루, 기리노 나츠오 등이 그 수상자이죠.)

 

50년대에 쓰여진 작품입니다. 그때는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 존 딕슨 카 등의 고전 미스터리 소설 3대 거장이 모두 생존해 왕성하게 걸작들을 발표할 시기였습니다.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과 인물이 등장한다는 약점이 있지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퍼즐과 트릭을 매력적인 탐정이 논리적으로 해결해내는 퍼즐 미스터리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던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서도 '긴다이치 코스케' 탐정이 등장하는 퍼즐 미스터리로 요코미조 세이시가 역시 많은 인기를 끌었었구요.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니키 에츠코 역시 퍼즐풍의 본격 미스터리를 쓰고 있습니다.

 

살인 사건이 등장함에도 웬지 밝은 분위기, 퍼즐의 구성과 해결에 집중하는 모습 등이 영락없는 애거서 크리스티입니다. 니키 에츠코의 별명이 '일본의 크리스티'인 것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네요. 실제로 <고양이는 알고 있다>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무수한 걸작들과 비교해도 과히 떨어지는 수준이 아닙니다. (물론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의 최일선의 작품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습니다)

 

요즘 퍼즐풍의 본격 미스터리는 그 세력이 많이 줄어, 일본의 신본격 무브먼트를 제외하고는 거의 쓰는 나라가 없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폭우나 폭풍우로 고립된 집에 각각 다른 배경을 가진 일군의 사람들이 모여 한 명씩 죽어나가고, 그것을 명탐정이 해결해낸다는 식의 이야기는 요즘 취향으로는 어쩔 수 없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추리작가들 스스로도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구요. 그러니 이런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참으로 혹독한 시절이 온 거죠. 절대 풀릴 수 없는 불가능 범죄를 마술처럼 척척 풀어내는 명탐정의 그 알싸한 활약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예전 황금기의 본격 미스터리를 보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는데 <고양이는 알고 있다>는 추리소설 애독자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줄 만한 그런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일체의 잔가지 없이, 2건의 살인사건과 1건의 살인미수를 해결해내는 두 남매 탐정의 활약에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밝혀지는 트릭은 깔끔합니다. 기계적 트릭도 있고, 의표를 찌르는 심리적 트릭도 있구요. 여러모로 50년대 고전 본격 미스터리의 맛을 잘 간직하고 있는 그런 작품입니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물의 개성이 아깝다는 거네요. 한마디로, 작고 통통한 몸으로 이곳저곳을 누비는 활달한 에츠코 양과 친절하고 세심하지만 두뇌 명석한 유타로 군이 이야기 내내 사건에만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남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어떤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지 알지 못합니다. 작가가 그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작가는 첫 작품이라 그런지 모든 신경과 관심을 사건, 조사, 추리, 해결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야기는 조금 심심해지네요. 애거서 크리스티가 추리 외에도 로맨스 등의 부수적인 읽을거리를 꾸준히 준비해 독자를 사로잡는 것과는 조금 비교됩니다. 두 남매가 등장하는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이 점이 조금 개선되었나, 어떻게 더 발전했나 살펴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oni 2006-06-10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어 보여요. 읽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듭니다.

jedai2000 2006-06-1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로 적었듯이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주 재미있어 하실 그런 작품입니다...^^

2006-06-12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dai2000 2006-06-1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익후. 제가 훨씬 감사하죠..^^
 
흑색 수배 1 - 법의관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0
퍼트리샤 콘웰 지음, 김백리 옮김 / 노블하우스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공군: 나 왔다. 어라, 이 자식 보게나. 친구가 왔는데 계속 엎어져 자고 있네.
강군: 음..왔냐. 냉장고에서 암 거나 꺼내 먹어라. 난 졸려서 계속 자야겠다.
공군: 암 거나 마나 날계란 밖에 없는데.
강군: 깨 먹어. 그리고 조용히 있어라. 나 자야 된다.
공군: 이 자샤. 넌 취직도 안하냐. 젊은 놈이 이렇게 잠만 자고 있네.
강군: 시절이 하수상해서...
공군: ...계속 자라.

강군: 아직도 안 갔냐. 내가 몇 시간 잔 거야?
공군: 친구가 왔는데 꼬박 다섯 시간을 자다니 대단하다.
강군: 미안하다. 요즘 잠을 못 자서. 나 잘 동안 뭐 했냐?
공군: 책 읽었다. <흑색수배> 반쯤 읽었어.
강군: 오~ 그거 읽었냐.
공군: 볼 만 하더라.


강군: 그거 시리즈라 처음부터 봐야 재미 있을텐데.
공군: 그렇군.
강군: 퍼트리샤 콘웰이라는 미국 작가의 인기 시리즈란다. 법의학을 소재로 한 범죄 스릴러지.
공군: 또 시작이구나. 넌 무슨 책 얘기만 하면 신들린 놈 같아. 테이프에 녹음해 놓은 거 쭉 돌리는 거 같어.
강군: 외로워서 그러지. 그나저나 <흑색수배>는 퍼트리샤 콘웰의 법의관 스카페타 시리즈 10번째 작품이다.
공군: 10권이나. 대단하네.
강군: 미국에선 14권까지 나왔어.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꽤 팔린다는 이야기지. 안 팔리면 그만큼 나왔겠냐.

공군: 왜 그렇게 인기가 좋은거야?
강군: 우선 소재가 독특하잖아. 지금이야 워낙 CSI: 과학수사대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지만 1990년에 시리즈 1권이 나왔을 때만 해도 법의학이라는 소재는 거의 다루는 작가가 없었거든. 더구나 작가가 실제 어느 정도 법의학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기도 하고. 솔직히 사람이 죽었는데 사인을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 뼈를 솥에 넣어 끓인 다음 살을 발라내서, 그 뼈에 난 상처를 조사하는 내용을 어디서 또 보겠냐.
공군: 역시 사람은 새로운 걸 해야 성공해. 기존에 없던 거 말야.
강군: 그렇지. 그러니까 너도 허구헌날 맥주타령만 하지 말고 새로운 걸 해봐라. 아무튼 법의학이라는 소재 말고도 작가가 문장력이 좋다. 특히 주인공 케이 스카페타 박사와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마리노 경감, 냉철한 프로파일러이지만 사랑에는 열정적인 벤턴 웨슬리, 천재지만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스카페타의 조카 루시 같이 매력있는 인물이 다수 나오고, 또 그네들의 관계가 매 시리즈마다 달라지는 등 인물의 관계에 집중한 게 여성 독자들한테도 먹힌 것 같아.
공군: 아무래도 작가가 여자라서 섬세한 모양이구나.
강군: 섬세한데 좀 지나치게 섬세해서 가끔 답답할 때도 있지만. 어쨌든  작가는 즐겨 죽음을 그리면서도 죽은 사람에 대한 존엄성을 잊지 않고, 죽은 이의 슬픔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케이 스카페타라는 캐릭터를 잘 그려낸 것 같아. 주인공의 인본주의적인 사상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더라구.  


공군: 시리즈 중에 뭐가 제일 재미있냐?
강군: <사형수의 지문> <시체농장> <카인의 아들> <카인의 딸>이 비교적 상품이고, <법의관> <소설가의 죽음> <죽음의 닥터>는 그저 중 정도, <하트잭> <악마의 경전>은 하에 불과한 것 같다.
공군: 너는 네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항상 그렇게 단정하는 게 문제야. 혼자만 잘났지.
강군: 오늘 무지 까칠하구나.
공군: 그럼 <흑색수배>는 어떤데.
강군: 개인적으로 아주 썩 좋지는 않았어. 10편 이상 나오면, 아무리 시리즈라도 피곤한 거라. 확실히 매너리즘의 위기가 있지. 그래도 전편에서는 중요한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벤턴 웨슬리까지 장렬하게 죽여버리면서 위기를 탈출하는데, 확실히 이번 작품에서는 힘이 좀 떨어진 것 같더라.
공군: 그렇군.


강군: 이번 편에서는 사랑하는 애인이자 친구, 보호자인 벤턴 웨슬리를 잃은 스카페타 일행이 어떻게 상처를 극복해나가는가가 포인트라고 할 수 있지. 감동적인 대목도 분명 있지만 전체적으로 어디서 본 내용이 많다는 게 좀 그렇더라고. 스카페타는 또 해킹을 당하고, 권력자로부터 또 부당한 간섭 및 압박을 받고, 새로운 연쇄살인밤은 여전히 설치고, 엄청 자주 나오는 부검 장면도 여전하고. 뭐 이 시리즈의 특징이 그런 거지만 확실히 10번을 보니 개인적으로는 좀 질리는 부분이 있었어. 또 사건 해결되는 과정도 좀 느닷없고. 특별히 스카페타가 머리를 굴리는 장면도 없이 그냥 범인이 찾아오더라. 단순하게 말해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재미가 거의 없었어. 그런데 이건 지금 말할 부분은 아닐 수도 있어. 이 다음 편에서 내용이 이어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끝나거든.
공군: 전편의 충격 효과가 정말 컸구나.
강군: 그렇지. 전편 <카인의 딸>은 방화와 연쇄살인범 캐리 그레센이라는 이중의 위험을 소름끼치게 그리면서도, 벤턴 웨슬리를 잃은 상실감을 정말 눈물나게 잘 조화시켰거든. 그런데 충격 효과도 한 번이지. 그렇다고 이번 편에서 마리노를 죽일 수는 없잖아. 퍼트리샤 콘웰은 이 장기화된 시리즈에서 확실히 위기에 봉착한 것 같아. 막바지에 몰렸을 때 절묘한 한 수로 위기를 타개해나가기 바랄 수 밖에 없는거지. 확실히 스카페타 시리즈는 연쇄살인범 템플 골트와 캐리 그레센 콤비가 나와야지 재미가 확 사는 것 같은데 둘 다 죽었으니 어쩔 수 있나.

공군: 다른 불만점은 없냐?
강군: 번역이 좀 안 좋았던 것 같다. 전문용어도 제대로 파악을 못 한 것 같아 그렇고, 인물들의 관계, 예컨대 범인과 의문의 피해자의 관계 같은 곳에서도 불분명하게 번역해 놓아 굉장히 헷갈리더라구.
공군: 그건 좀 그렇네.
강군: 시리즈 앞 부분을 번역했던 번역자가 실력이 더 나은 것 같다.


공군: 아무튼 이 시리즈 10편이면 여름 나겠네.
강군: 그럴수도. 아무래도 시리즈는 쭉 이어서 보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법이니까. 스카페타 시리즈가 꾸준하게 나와서 벌써 10권이나 이어졌다는 거는 나름 평가받을 일이지. 척박한 우리나라 추리소설 시장에서 10권이면 대단하지.
공군: 잘 알겠다. 나중에 한 번에 왕창 빌려 가련다.
강군: 그래. 이야기 끝났으니까 맥주나 하러 갈까?
공군: 웬 일이야? 맨날 빼더니.
강군: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맥주 한 잔으로 시름을 달래보련다.
공군: 오케이~ 어서 가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6-06-09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서도 뒤로 갈 수록 인기가 떨어진다고 하더군요.

Apple 2006-06-09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실, 한작품만 봤는데도 그다지 매력이 없었다는....-_-;

비연 2006-06-0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좀 쉬었다가 내는 것도 괜챦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전 벌써 중간작품부터 안 읽고 있다는...ㅠㅠ)

jedai2000 2006-06-1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판매는 변함없이 좋은데, 평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 같아요. 뭐 아마존 서평 같은 거에 너무 구애받을 필요는 없지만 신작은 두 개 내지 한 개 반 이렇더라구요. -_-;;

애플님...취향에 안 맞으셨나 봅니다. 적어도 시리즈 4~6권은 꽤 훌륭합니다. 쭉 이어서 보다보면 마리노나 스카페타가 좋아지기도 하구요. ^^

비연님...그렇죠. 그런데 내면 팔리는 작가니 쉴 수가 없겠죠. 잘 될 때 빠짝 벌어야 하잖아요. ^^ 취향에 안 맞으시면 안 읽으심 되지 눈물까지 흘리실 것 까지야..^^
 
솔로몬의 반지 - 그는 짐승, 새, 물고기와 이야기했다
콘라트 로렌츠 지음, 김천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어렸을 때, 동생과 강아지를 기르게 해달라며 단식투쟁까지 벌인 적이 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결사반대하시던 어머니는 마침내 허락을 해주셨고, 우리는 큰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올 수 있었다. 조건은 강아지의 뒷치닥꺼리는 전부 우리가 해야한다는 것. 처음엔 무지 좋기만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슬슬 배설물 청소와 놀아달라고 애걸하는 강아지에 질리기 시작했다. 우리 남매는 강아지의 뒷치닥꺼리 건으로 매일 싸우다시피 했고,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강아지는 강제 송환되었다. 그때 나는 하나의 생명체를 돌보는 데는 큰 희생과 큰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대학교 1학년을 다닐 때,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내 동생이 또 사고를 쳤다. 옛날의 아픈 기억은 벌써 잊었는지 친구로부터 강아지 한 마리를 새로 얻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 강아지가 어찌나 귀여웠는지 그 아이(이름은 '궁상이'였다)와 노느라 수업에 지각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궁상이와 동거한 지 한달쯤 지난 5월의 어느 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날듯이 집에 돌아가보니 강아지는 죽어있었다. 병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사인(?)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찌나 슬펐던지 그뒤로 다시는 애완 동물을 기를 생각이 없다.

 

누구나 살면서 애완동물과 엮인 추억 한가지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비록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친구의 애완동물을 최소한 몇 시간이라도 떠맡은 기억 하나 없을까. 칭얼대고 컹컹 짖으며 놀아달라고 애걸하는 애완동물들이 참을 수 없이 귀찮게 느껴져 그들의 애원을 애써 무시하다가도, 무심코 그들의 눈을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그리고 친구와 함께 놀고 싶어하는 그들의 간절한 눈빛에 마음이 약해지지 않는 사람은 뇌구조가 고장난 냉혈한일 것이다. 결국 나의 안락한 시간을 포기하고 동물과 놀아주게 된다. 그때 동물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면 아아 이런 것이 바로 사랑이로구나, 기쁨이로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콘라드 로렌츠의 <솔로몬의 반지>는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운 공존을 그리고 있다. 콘라드 로렌츠는 독일의 비교행동학자로 1973년에 동학문으로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수상했다. 과문한 탓에 비교행동학이 뭔지는 잘 모르나, 대충 설명해 보면 진화를 거쳐온 동물의 행동을 분석해, 역시 진화를 거듭한 인간의 행동 양태를 비교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독일에서 콘라드 로렌츠는 수필가로도 명성을 날렸다. <솔로몬의 반지>는 그의 대표작인데, 어렵고 딱딱한 학술서가 절대 아니다. 그가 동물을 관찰하며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들과 동물에 대한 따스한 사랑이 유쾌하고 세심한 필치로 그려진 뛰어난 수필이다.

 

콘라드 로렌츠의 동거인(?)은 수 마리의 개와 수십 마리의 새, 수족관에 든 수백 마리의 물고기 등이다. 만약 동물학자로서만 이 많은 동물들을 키우라고 한다면 그가 누구든 실패하고 말 것이다. 콘라드 로렌츠는 우수한 동물학자로서 뿐이 아니라 애완동물 애호가로서 어마어마한 정성을 들여 사랑으로 그들을 돌봐줬던 것이다. 이를테면 새끼 새가 길을 잃고 돌아오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굴뚝 위로 올라가 피에로 분장을 하고 새의 주의를 끌어 마침내 무사귀환시킨다는 식이다. 사람들은 멀쩡한 학자가 왜 굴뚝에서 생쇼(?)를 하는지 미친 사람 취급하지만, 그는 행복할 뿐이다. 기르던 원숭이가 쓰고 있던 논문을 갈가리 찢으며 즐기고 있을 때도 그는 평정을 잃지 않는다. 콘라드 로렌츠의 이러한 동물 사랑은 가끔은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안타깝기까지 하지만 종국에는 깊은 감동을 부른다. 그런데 제목이 왜 <솔로몬의 반지>일까? 본문을 잠깐 인용해보기로 하자.

 

"솔로몬 왕은 짐승, 새, 물고기, 벌레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나도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 솔로몬처럼 모든 동물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내가 잘 아는 몇몇 동물과는 나도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모든 동물과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나는 솔로몬보다 못하지만, 솔로몬처럼 마법의 반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그보다 낫다. 솔로몬은 반지 없이는 가장 친한 동물의 말도 결코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다. 신화 속의 솔로몬이 마법의 반지를 이용해 동물과 대화했다지만, 현재의 콘라드 로렌츠는 한결같은 동물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마침내 동물과 대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솔로몬보다 자신이 뛰어나다는 콘라드 로렌츠의 귀여운 자만심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 속의 에피소드는 기존의 동물 관련 책내용의 오류를 꼬집는 학술적인 것에서부터, 동물과의 사이에서 겪었던 한바탕 웃음짓게 만드는 내용, 애완동물을 선택하고 키우는 요령 같은 실전적인 정보까지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유전정보에 깊숙히 자리한 생명과도 같은 먹이를 포기하고, 자신의 자식을 돌보는 물고기의 이야기였다. 먹고 살기 급급해 제자식도 버리는 인간들도 많은 판에, 인간에 비해 뇌크기가 비교도 안되는 한낱 물고기가 입에 든 먹이를 뱉어버리고, 새끼 물고기를 먼저 구하는 결말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야 말았다.

 

작가 콘라드 로렌츠는 우수한 학자일뿐 아니라 뛰어난 문필가였다. <솔로몬의 반지>에 나오는 온갖 인용들을 보면 고전이나 인문학에도 소양이 깊은 것 같다. 도대체 한국의 그 많은 우수한 과학자들로부터는 언제쯤 이런 지적이면서도 따뜻한 수필을 기대할 수 있을까. 기존의 성과 위주 교육의 탓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가십 한 가지. 그렇게 동물을 사랑했던 마음 따뜻한 사나이 콘라드 로렌츠는 나치 동조자 혐의도 걸려 있다. 그가 연구한 비교행동학이라는 것도 인간과 동물을 비교해 그 우열을 가린다는 점에서 웬지 나치의 '우생학'의 위험한 향기가 풍기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혐의일 뿐이니 그냥 흥미거리로만 생각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솔로몬의 반지>속의 콘라드 로렌츠의 모습을 보면 그가 악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게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의 마음 속에 악(惡)이 있으리라고 나는 믿지 못하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영엄마 2006-06-0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 리뷰 당선 축하!!! ^^

oldhand 2006-06-0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축하드립니다. 벌써 두번째죠? ^^

jedai2000 2006-06-1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감사합니다. 항상 축하해주시고, 신경써주셔서 고마워요. ^^

올드핸드님...감사합니다. 작년에도 한 번 됐으니 통산 세 번째네요. ^^

상복의랑데뷰 2006-06-17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잠정 은퇴가 아쉬울 ^^;;

jedai2000 2006-06-17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가끔씩은 쓸 테니까요. 하지만 플레잉 코치 정도로요..^^
 
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역(驛)은 사람이 들고 나는 장소. 오늘도 센다이 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가 흩어진다. <러시 라이프>에서는 센다이 역에서 한 번쯤 스쳐 지나갔을 인간 군상들의 돌고 도는 인생과 기막한 사연들이 신나게 펼쳐진다. 역에는 늙은 개가 있고, 에셔의 그림이 그려진 포스터가 있으며, 하늘 높이 솟아있는 전망대가 있다. 그런 역의 풍경은 누가 봐도 동일하지만 보는 사람의 현재 처지와 품고 있는 사연에 따라 그 느낌은 달라지는 법이다. 여기 역 주변을 서성거리는 다섯 명의 사람이 있다. 우리가 살면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인줄 알았던 이가 훗날 소중한 인연으로 다가오거나 끊고 싶은 악연으로 얼룩지는 것처럼, 서로를 전혀 몰랐던 이 다섯 명의 사람은 무심결에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몇 십억년의 겁을 지나야 겨우 옷깃 한 번 스치는 인연을 만들 수 있다고 불가에서 그러지 않았던가. 과연 이 다섯 명의 인연은 어떤 것일지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최고 속도가 240킬로미터나 되는 신칸센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목적지는 연쇄 토막 살인사건으로 흉흉한 분위기의 센다이 시. 화가 시나코는 엄청난 부자 화상에게 팔리다시피 한 처지이다. 도둑 구로사와는 평소대로 작업(?)에 열중하다 빈 집에서 만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인물을 만난다. 카운슬러 교코는 유부남인 축구선수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남편과 축구선수의 아내를 죽이려 계획을 짜고 있다. 자살한 아버지의 기억으로 고통받는 가와라자키는 신흥 종교의 교주에게 마음을 의탁하며 위로받고 있는데, 교단의 중견 간부로부터 뜻밖의 제의를 받는다. 실직자 도요타는 역 주변을 빈둥대다 그곳을 떠돌아다니는 늙은 개와 친구가 된다. 이상 다섯 명의 인물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로 다섯 편의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모두 기구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주인공들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헤어지고,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지 기발한 이야기가 쉴새없이 펼쳐진다.

 

몇 년 전에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라는 영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낡은 총을 둘러싸고 그것을 훔치기 위한  여러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얽키고설킨 실타래처럼 보여지다 결말에 이르러 시원하게 풀리는 구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러시 라이프>는 바로 이런 구조를 차용했다. A라는 인물이 무심코 행한 일이 B에게 영향을 주고, 그런 식으로 모든 일들이 꼬이고 막힌다. 이 작품에서는 멀쩡하던 시체가 잠시 뒤 토막이 나있고, 토막난 시체가 들러붙어 거리를 활보하게까지 되는데, 이 모든 미스터리는 최종장에서 확실하게 풀려 버린다. 등장인물들의 행적을 하나하나 확인하다 보면 마치 퍼즐을 푸는 것처럼 모든 이야기가 제대로 들어맞구 있구나, 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엄밀히 말해 추리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원래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작가 이사카 고타로가 추리소설의 자장 아래 작품들을 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국내에 나온 <칠드런>이라는 작품도 은행터는 과정에서 꽤 근사한 트릭을 사용했고, 이 작품에서도 거의 초자연적으로까지 보이는 기괴한 일들도 종국에는 모두 논리적으로 해결을 보고 있다.

 

1971년생인 젊은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복잡한 이야기를 직조하는 능력은 발군이고 날렵한 복서의 스탭을 보는 듯한 경쾌한 전개도 돋보인다. 거기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미묘한 깨달음을 주는 성장소설의 느낌도 배어 있어 여러모로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다. 국내에는 단 세 편 <칠드런> <러시 라이프> <중력 피에로>가 나와 있지만 작가의 역량을 확인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무엇보다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로도 매력이 있어 이사카 고타로라는 작가의 등장은 거의 신의 선물로까지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천재(天才)라는 말은 이사카 고타로 같은 작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욱 놀라운 건 2000년 작인 이 작품에서 스쳐 지나가듯 언급되는 가면을 쓴 은행강도의 이야기가 2년 뒤 <칠드런>에서 사용됐다는 것이다. 자신의 작품들이 교집합과 합집합을 이루며 일종의 이사카 고타로 월드를 형성하고 있다는 건데, 향후에 쓸 작품들까지 염두에 두고 집필을 하는걸 보면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젊고 재능 넘치는, 한 마디로 대단한 작가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이사카 고타로가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지만, 10년쯤 뒤에는 동아시아의 모든 독자들이 그의 작품에 열광할 것임을 예언하는 바이다.

 

많은 차들이 모여 정체 현상을 일으키는 러시 아워라는 시간대. 인생도 그렇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전부 각각의 인생이 있으며, 그 많은 인생이 모이고 모여 러시 라이프를 형성한다. 우리는 이 작품의 주인공들처럼 얼결에 누군가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누군가에게, 저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사는 누군가에게, 인생이 뒤흔들릴 만큼 커다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 말이다. 일본의 젊은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이 작품은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사는 우리 한국의 독자들의 인생에도 작은 영향을 줄 만큼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을 보증한다.

 

 

-츠카모토가 시내를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행객들이 산적에게 살해당하는 얘기야. 여행객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결국 모두 죽어. 그래서 어딘가 비밀스런 장소에 다음에 올 여행객들을 위해 산적들의 약점을 적어두는 거야. 덕분에 다음 여행객들은 산적을 물리칠 수 있었지. 승리한 거야."

"해피엔딩입니까?"

"아니, 그렇지는 않아. 이번엔 산적 쪽에서 새로운 패거리를 몰고 와서 여행객들을 죽여 버리고 말았거든."

"비극입니까?"

"어떻게 생각해? 나도 처음엔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시점에서 보면 완전히 달라져."

"다르다고요?"

"여행객은 세균이고 산적은 항생물질. 예를 그렇게 든 거지. 새로운 항생물질에 의해 세균이 박멸된다는 이야기야."

"예?"

"이런 단순한 이야기도 뼈대에 조금 손을 대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게 돼. 정의나 악, 그런 것은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반전이 가능해."

 


댓글(5)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6-05-26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러시 라이프인가 봐요^^

상복의랑데뷰 2006-05-26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구 이겼네요 ㅋㅋ 저도 조만간 읽어볼 생각입니다~

jedai2000 2006-05-26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그렇죠. 아주 뛰어난 소설입니다. ^^

상복의 랑데뷰님...축구 간만에 재미있었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아주 좋은 작품이예요.

페일레스 2006-05-27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이거, 뽐뿌질이 장난이 아닌데요? 간만에 사서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 생겼네요 흐흐.
얼마 전에 [우부메의 여름]을 다 읽었는데, 교코쿠 나츠히코라는 작가도 장난이 아닌 것 같아요.
좀 늘어지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jedai2000 2006-05-28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히 말씀드려서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은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아주 출간 러시입니다. 기존에 나온 <칠드런>과 이번에 나온 <러시 라이프>, <중력 삐에로> 그리고 오늘 나왔다는 <사신 치바>까지 일본에서의 인기가 한국에서도 이어질 모양입니다. 여러 작품들이 이사카 고타로 월드를 이루고 있으므로 그의 작품 여러 편을 보실수록 재미는 배가될 것입니다. 꼭 읽어보세요. ^^

글구 교고쿠 나츠히코도 매력적이죠. 한때 일본에서 '교고쿠 신드롬'이라는 용어까지 생겼다고 하니까요. 국내에도 그 신비로운 분위기나 엽기적인 사건들, 묘한 등장인물들로 인해 인기가 높죠. 물론 늘어지는 부분이 많지만 뭐 그건 교고쿠 스타일로 잘 봐주자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