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알고 있다 - 제3회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니키 에츠코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고양이는 알고 있다>의 여성 작가 니키 에츠코는 개인적으로 불행이 많았던 사람 같습니다. 작가 연보를 읽어보니 4살 때, 척추 카리에스라는 병으로 보행 불능 판정을 받았답니다. 그뒤로 현대적인 치료를 받은 30세가 되서야 겨우 휠체어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약간 회복됐다고 하네요. 29세에 쓴 이 작품은 그러니까 침대에 누워서 쓴 것입니다.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를 침대에 누워 책만 읽으며 지낸 불행한 처지를 보상받고 싶어서일까요. 작가 니키 에츠코는 자신의 작품에서 활달하고 귀여운 소녀 탐정역을 창조해냅니다. 그 탐정의 이름에 자신의 필명인 니키 에츠코라는 이름을 붙여준 건 그저 우연만은 아닐거라 생각되네요.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니키 에츠코의 오빠, 니키 유타로의 등장에도 개인적으로 추측을 해봅니다. 역시 작가 연보에서 보면 작가의 첫째 오빠는 태평양 전쟁에서 전사했다고 하네요. 그뒤로 '전사한 오빠가 있는 누이' 모임 등에서 회장직을 맡았다는데서 보듯이, 오빠의 죽음에도 꽤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 속에서 사이좋은 니키 유타로, 에츠코 남매가 좌충우돌하며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대강의 모습은 어쩌면 작가가 실제로 정말 하고 싶었던 일들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괜히 쓸쓸해지네요.

 

괜시리 우울한 이야기를 서두에 늘어놓았지만, 이 작품은 참으로 밝고 따뜻합니다. 그리고 귀엽습니다. 작품은 하숙집에서 쫓겨난 니키 남매가, 음대에 다니는 동생 에츠코가 피아노를 가르쳐준다는 조건으로 하코자키 병원에 기거하게 되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사온 바로 다음날인 일요일, 병원의 환자 한 명과 하숙집의 할머니가 동시에 실종되며 심지어 기르던 고양이 한 마리까지 사라지는 기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식물학을 전공하며 두뇌 회전이 빠른 오빠 니키 유타로의 추리로 할머니는 병원 부지 내에 있는 방공호에서 발견됩니다만 이미 교살되어 있습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동생 니키 에츠코와 퍼즐을 푸는 일에 애착을 갖는 오빠 니키 유타로 남매의 조사가 지금부터 펼쳐집니다.  

 

<고양이는 알고 있다>는 1957년에 최초로 출판된 작품입니다. 일본 추리소설의 선구자, 에도가와 람포가 자신의 사재를 털어 추리소설 진흥을 위해 만든 '에도가와 람포상'의 제3회 수상작이기도 하지요. 당시 에도가와 람포상은 1회는 평론가, 2회는 추리소설을 많이 내는 출판사에 공로상 격으로 주었는데, 에도가와 람포의 요청으로 신인 작가에게 주는 상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고양이는 알고 있다>는 그 신인상의 최초 수상작인 셈입니다. (현재도 에도가와 람포상은 그 전통이 이어져, 니키 에츠코의 후배격인 여성 미스터리 작가들에게도 많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다카무라 카오루, 기리노 나츠오 등이 그 수상자이죠.)

 

50년대에 쓰여진 작품입니다. 그때는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 존 딕슨 카 등의 고전 미스터리 소설 3대 거장이 모두 생존해 왕성하게 걸작들을 발표할 시기였습니다.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과 인물이 등장한다는 약점이 있지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퍼즐과 트릭을 매력적인 탐정이 논리적으로 해결해내는 퍼즐 미스터리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던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서도 '긴다이치 코스케' 탐정이 등장하는 퍼즐 미스터리로 요코미조 세이시가 역시 많은 인기를 끌었었구요.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니키 에츠코 역시 퍼즐풍의 본격 미스터리를 쓰고 있습니다.

 

살인 사건이 등장함에도 웬지 밝은 분위기, 퍼즐의 구성과 해결에 집중하는 모습 등이 영락없는 애거서 크리스티입니다. 니키 에츠코의 별명이 '일본의 크리스티'인 것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네요. 실제로 <고양이는 알고 있다>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무수한 걸작들과 비교해도 과히 떨어지는 수준이 아닙니다. (물론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의 최일선의 작품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습니다)

 

요즘 퍼즐풍의 본격 미스터리는 그 세력이 많이 줄어, 일본의 신본격 무브먼트를 제외하고는 거의 쓰는 나라가 없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폭우나 폭풍우로 고립된 집에 각각 다른 배경을 가진 일군의 사람들이 모여 한 명씩 죽어나가고, 그것을 명탐정이 해결해낸다는 식의 이야기는 요즘 취향으로는 어쩔 수 없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추리작가들 스스로도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구요. 그러니 이런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참으로 혹독한 시절이 온 거죠. 절대 풀릴 수 없는 불가능 범죄를 마술처럼 척척 풀어내는 명탐정의 그 알싸한 활약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예전 황금기의 본격 미스터리를 보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는데 <고양이는 알고 있다>는 추리소설 애독자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줄 만한 그런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일체의 잔가지 없이, 2건의 살인사건과 1건의 살인미수를 해결해내는 두 남매 탐정의 활약에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밝혀지는 트릭은 깔끔합니다. 기계적 트릭도 있고, 의표를 찌르는 심리적 트릭도 있구요. 여러모로 50년대 고전 본격 미스터리의 맛을 잘 간직하고 있는 그런 작품입니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물의 개성이 아깝다는 거네요. 한마디로, 작고 통통한 몸으로 이곳저곳을 누비는 활달한 에츠코 양과 친절하고 세심하지만 두뇌 명석한 유타로 군이 이야기 내내 사건에만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남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어떤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지 알지 못합니다. 작가가 그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작가는 첫 작품이라 그런지 모든 신경과 관심을 사건, 조사, 추리, 해결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야기는 조금 심심해지네요. 애거서 크리스티가 추리 외에도 로맨스 등의 부수적인 읽을거리를 꾸준히 준비해 독자를 사로잡는 것과는 조금 비교됩니다. 두 남매가 등장하는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이 점이 조금 개선되었나, 어떻게 더 발전했나 살펴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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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6-06-10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어 보여요. 읽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듭니다.

jedai2000 2006-06-1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로 적었듯이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주 재미있어 하실 그런 작품입니다...^^

2006-06-12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dai2000 2006-06-1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익후. 제가 훨씬 감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