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과 영혼의 경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히무로 유키는 심장외과 수련의로 격무에 시달리고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해가며 의술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심장에 문제가 있는 많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라는 사명감도 없진 않지만, 사실 그녀에겐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녀가 중학교 때 아버지가 대동맥류라는 심장 질환으로 수술을 받다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아버지의 집도의는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인 니시노조 선생으로 누구나 성공할 것이라 확신했던 수술에 실패해 충격을 준 바 있다. 당시에는 수술도 사람이 하는 것이라 늘 100퍼센트 성공할 순 없었을 것이라며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아버지 사후 니시노조 선생과 유키의 어머니가 사실상의 애인 관계로 발전함에 따라 의혹이 슬며시 고개를 쳐든다. '혹시 니시노조 선생이 어머니를 얻기 위해 일부러 수술에 실패해 아버지를 죽인 건 아닐까?"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들에 가야 뱀을 잡는 법, 유키는 그 의혹을 풀기 위해 니시노조 선생의 지근거리를 맴돌게 된 것이다.

한편 유키가 일하는 병원에는 또 다른 불운한 기운이 감돈다. 전자기기 회사의 엔지니어인 나오이 조지가 병원 간호사에게 접근해 병원의 정보를 빼내가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산업 스파이? 아니었다. 그는 병원이 은폐하고 있는 의료사고 기록을 공개하지 않으면 병원을 폭파하겠다는 내용의 협박장을 보낸다. 아무리 찾아봐도 별다른 의료사고 기록이 없는 병원 측은 난감해하고 결국 경찰에 신고하지만 협박장은 계속되고 중요한 수술이 잡혀 있는 날을 타깃으로 한, 목적을 알 수 없는 조지의 병원 테러 계획은 착착 진행되어 간다.

<사명과 영혼의 경계>는 이렇듯 유키의 과거에 얽힌 비밀과 현재 조지가 꾸미는 테러가 맞물려 돌아가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메디컬 스릴러다. 언제나 그렇듯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구구절절한 해설이 필요없고 짤막한 내용 소개면 충분하다. 워낙 흥미진진한 플롯을 잘 짜기로 이름이 높고, 작품의 핵심 콘셉트 자체가 시쳇말로 독자를 백발백중 낚기 때문이다. 이 책을 처음 손에 든 독자들은 아마 대단히 기대가 컸을 것이다. 지난 날의 미스터리한 의료 사고와 현재의 긴박한 테러가 겹친다니, 이거 하나도 아니고 둘이네, 완전히 재미의 혼수상태로 빠져들겠군, 하면서.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작품에서는 살짝 기대를 접어도 좋을 듯하다. 아니, 어쩌면 다른 의미에서의 혼수상태를 맛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비밀>이나 <게임의 이름은 유괴>같이 뒷 이야기가 전혀 짐작이 안 되는 작가의 페이지터너들에 비해서 이 소설은 너무 빤하다. 마치 처음 시도되는 무슨 인터랙티브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으니까. 내가 상상한 내용 그대로가 페이지에 펼쳐지니 심지어 신기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히가시노 게이고에 익숙한 독자 혹은 그렇지 못한 누가 읽어도 점쟁이가 방구들에 앉아 천리 밖을 내다보듯 훤히 결말이 내려다 보일 것이다. 화투 패 다 까고 치면 그걸 무슨 재미로 하나. 적어도 미스터리라는 딱지를 붙이고 나온 작품이라면 이보다는 더 치밀했어야 한다고 느낀다. 하다못해 반전이라도 그럴싸한 게 나와주면 좋았을 텐데, 게이고가 요즘 줄기차게 밀고 있는 감동 코드에 대한 집착으로 한 방을 끝까지 기대했던 내 기대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용의자 X의 헌신> <붉은 손가락>의 신파에 가까운 감동으로 제법 재미를 보았을까. 이 작품도 기어이 독자를 울리려 하는 것 같은데, 감동도 한두 번이지 이제는 지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언급한 두 작품이 출중한 미스터리적인 재미에 감동의 요소를 버무려 미스터리 애호가와 보통 독자들을 다 만족시킬 수 있었다면, <사명과 영혼의 경계>는 미스터리로서는 실패했고, 우리나라 드라마처럼 끝에 가면 모두가 다 착해지는 종잇장같이 얄팍한 사람들이 빚어내는 억지 감동 일변도라 점수를 높게 줄 수 없다. 사실 이 작품에서 조지가 꾸미는 계획이라는 것도 대전제 자체가 말이 안 되고 너무 불안요소가 많아, 이 책을 보고 실제로 같은 계획을 꾸미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고 싶을 지경이니까. <백야행>이나 <편지> 같은 작품들을 보면 단순히 관객의 눈시울을 적셔 주머니를 털어내는 말랑한 작가만은 아닌데, 요즘 입금이 잘 되는 모양인지 약간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

<사명과 영혼의 경계>는 몇몇 흥미로운 소재를 짜집기해서 철저히 기계적으로 쓴 작품이라 장인의 화려한 솜씨는 느낄 수 있을지언정 깊이 배어나오는 맛이 없다. "그 정도 벌었으면 이제는 좀더 매 작품마다 시간과 공을 들여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셔야죠"하고 작가에게 투정하고 싶어진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굉장한 다작 작가라 그만큼 범작이나 태작이 나올 확률도 높은 것 같다(당연히 걸작이 나올 확률도). 물론 범작이라도 게이고 특유의 미칠 듯한 '읽히는 맛'은 항상 있고, 이번 작품에서 강조하는 사명이라는 주제에도 상당히 공감하는 편이지만 가장 아끼는 작가라 부득이 쓴소리를 적는다. 사실 신인 작가의 작품이라면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지만, 내가 좋아하고 기대하는 게이고의 수준은 이 정도가 아니라서. 작가의 사명은 역시 언제나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전작보다 늘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아닐까. 독자에게 또 한 번의 신선한 충격을 전할 수 있는 그의 신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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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7-11-2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평점은 후하게 주셨어요..^^헤헤..
히가시노 게이고는 별로 취향이 아닌지라 소설을 본것이 몇개 없긴 하지만,
딱 그 느낌이었거든요. 먹힐만한 코드 몇개를 적절히 버무려서 내놓은 기계적인 소설같다는 느낌이...많이 보기도 전에 중견작가의 매너리즘이 깊이 느껴진다는..^^;

jedai2000 2007-11-29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은 별 두 개 반 주고 싶었는데 반 개짜리 별이 없어서요 ^^
워낙 다작이라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기계적인 소설 느낌이 나는 작품들도 있고, 범작들도 많이 양산했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수준이 높다고 생각해요. 작가로서 큰 야심없이 내가 재미있는 얘기 들려줄 테니 한번 들어보라구, 하는 그런 썰 잘 푸는 친구 같은 느낌인데 먼 훗날 문학적인 평가는 받지 못할지라도, 오늘의 독자들 기호를 가장 잘 꿰고 있는 대중작가로서 분명히 인정받을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기대에 못 미친 이번 작품은 좀 씹었구요, 대부분의 작품은 옹호합니다. 애플님께서도 <게임의 이름은 유괴> <호숫가 살인사건> <비밀> <백야행> <편지> <붉은 손가락> 같은 작품들을 보시면 평가가 약간 후해지실 것 같긴 한데 ^^

Apple 2007-11-29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비밀과 편지는 보았는데, 게임의 이름은 유괴는 관심이 좀 갔었는데 그걸 봐야겠군요..^^

jedai2000 2007-11-29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임의 이름은 유괴> 잼있죠 ^^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 읽으시면서 뭘 얻겠다, 이런 자세가 아니라 철저하게 엔터테인먼트로 봐야 가장 재미있습니다. 심심할 떄 가볍게 읽어보세요. 꽤 만족스러우실 거예요 ^^
 
얼론
리사 가드너 지음, 박태선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미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내 경우에는 할리우드다. 영화 산업은 20세기 초반부터 미국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세계 만방에 미국과 미국인의 (조작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 어찌 보면 미국의 근간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한 편 만드는데 1천억씩 쓰는 나라가 미국 외에 어디가 또 있겠는가. 이렇게 영화가 발달한 나라다 보니 미국의 대중소설가들은 대부분 애초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거나, 혹은 어린 시절부터 줄기차게 봐왔던 영화의 영향을 무의식 중에 받아 글을 쓰는 것 같다. 스릴러 작가들에게 이런 경향은 연쇄살인범을 등장시켜 엽기적인 방식으로 살육을 저지르는 과정을 세세하게 보여준 <양들의 침묵>의 토머스 해리스 이후에 더욱 심화된 듯하다. 인육을 먹고 시체 입에 나비 유충을 넣어두는 등의 장면들이 시각적으로 대단히 인상적이라 영화화하면 그럴싸한 그림이 나왔던 것이다.

 

토머스 해리스 이후에 등장한 베스트셀러 스릴러 작가들, 제임스 패터슨이나 조지프 파인더, 할란 코벤 등의 작품은 별다른 각색도 필요없을 정도로 영화적이다. 작가들로서는 책의 판매 이외에도 천문학적인 영화화 판권 수익이라는 가욋돈을 노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얼론>의 리사 가드너 역시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예 영화화하기 용이하게끔 눈을 사로잡는 박력 있는 도입부로 시작한다. 아내와 아들을 학대하는 폭력 남편이 권총을 들고 두 사람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아내 캐서린은 남편의 눈을 피해 경찰에 신고하고, 신고를 받은 보스턴 경찰국의 저격수 바비가 출동해 맞은편 건물에서 남편을 노린다. 바비는 아직까지 실제로 사람을 죽여본 경험은 전무한 상태로 되도록이면 피를 보지 않고 끝났으면 싶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발광이 심해져 권총을 아내의 머리에 똑바로 겨누자 바비는 결국 방아쇠를 당긴다. 폭죽처럼 터져버리는 남편의 머리.

 

아무리 공무수행이라지만 살인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바비는 내사를 받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보통 세력가 가문이 아니었다. 남편의 아버지인 저명한 가뇽 판사는 아들이 아니라 캐서린, 즉 며느리가 손자를 학대한 것이라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친다. 남편을 죽이기 위해 살살 약을 올려 결국 그의 폭발을 유도한 것이고, 신고를 한 이유도 경찰국의 저격수가 출동해 남편을 대신 죽여줄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바비는 혼란에 빠진다. 나는 명예로운 경찰 저격수로서 한 여자와 아이를 구한 것인가, 아니면 사악한 여인의 계략에 휘말려 살인의 도구로 전락한 것인가. 이 도입부는 정말로 굉장하다. 시종일관 빠른 템포에 강렬한 긴장감과 도덕적인 망설임을 곁들여 바비의 혼란스런 심리를 선명하게 그려낸다.

 

가뇽 판사는 바비를 살인죄로 고소하고, 손자의 양육권을 요구한다. 서로 엇갈리는 가뇽 판사와 캐서린의 모호한 주장들은 각각 설득력이 있어 누구의 말도 쉽사리 믿을 수 없다. 예컨대 판사는 며느리가 손자의 밥을 제대로 주지 않고, 손자의 배변을 냉장고에 담아두는 등 기행을 일삼는다고 지적하지만, 캐서린은 아들이 희귀병을 앓고 있어 음식을 제한할 수밖에 없고, 아들의 상태를 매일 체크하기 위해 배변을 보관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더구나 바비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캐서린의 매력에 흠뻑 빠짐으로써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캐서린은 초등학교 때 유괴와 감금, 성폭행을 당한 희생자로서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악몽을 꾸고 있었기에 바비의 보호본능을 자극했던 것이다.

 

스릴과 서스펜스, 속도감, 반전까지 구색은 다 갖췄다. 적어도 마지막 50페이지 전까지는 최고의 페이지터너로 부족함이 없고 한 편의 잘 빠진 할리우드 스릴러를 보는 듯한 완성도가 출중하다. 그러나 리사 가드너가 뒤로 갈수록 익숙한 할리우드식 스릴러의 클리쉐들을 반복하면서 몰입감이 떨어지고 말았다. 캐서린을 유괴했던 사이코가 출감하면서 다시 그녀를 노린다는 설정은 사이코 연쇄살인마와 주인공들이 최후의 대결을 벌이는 전형적인 스릴러 공식을 다시 한번 재현하는데 그칠 따름이고, 반전조차도 너무 진부해 이런 류의 소설이나 영화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결말에서 왜 가뇽 판사가 그토록 손자의 양육권을 원했는지의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만은 기발하고 전체적인 내용과도 잘 어우러졌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외에는 전부 안이하게 끝맺었다. 이 정도 이야기를 짜낼 수 있는 작가가 왜 더 도전적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이런 전형성을 너그럽게 봐줄 수 있는 독자라면 평가가 후해질 여지는 있다. 문장력이나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출중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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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11-05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너그럽게 봐줬습니다^^

Apple 2007-11-05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이거 보려고 노리고 있었는데,살짝 아쉬운 작품이었군요..으음...

jedai2000 2007-11-05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항상 너그러우신 물만두님 멋져요 ^^

애플시즈님...솔직히 재미있게는 봤는데 마무리가 영 평범해서 걸리네요. ^^ 그래도 한번 읽어보세요.

2007-11-16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dai2000 2007-11-16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디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네요 ^^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존 르 카레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올 가을을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 <본 얼티메이텀>의 영향 때문일까. 최근 여자들이 선호하는 남자 순위에서 스파이가 뜨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스파이들의 광대한 세계가 최근 한 편의 영화 때문에 갑자기 조명받고 있다는 건 그냥 농담이고, 사실 스파이는 인간들 사이에 전쟁이 발생한 이래 늘 존재한 거니까 그 역사가 무궁무진하다. 왜 동양 최고의 병법서라는 손자병법에도 '용간(첩자)편'이라는 항목이 있어 필승의 핵심 요소로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적진 한복판에서 온갖 위험과 맞닥뜨리는 와중에 기지와 결단력을 발휘해 핵심 정보를 가져와 자국을 승리로 이끄는 스파이들의 이 유서 깊은 활약에는 누구나 다 관심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파이들의 행동 방식이 워낙 은밀하다 보니 그 실체를 알기는 어렵다(물론 실체가 알려져서도 안 되겠다). 그래서 <본 얼티메이텀>의 제이슨 본 같은 무지막지한 암살자 스타일의 과장된 스파이도 대중문화 속에서 그려지는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제이슨 본같이 활동하는 스파이가 있다면 3일 안에 몬테카를로 앞바다에서 시체로 떠오를 듯(영화처럼 기억만 상실된다면 다행이고).

 

베일에 쌓여 있지만, 오늘도 세계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그들을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정답은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읽는 것이다. 1931년생 존 르 카레는 20편 남짓한 작품들 모두에 스파이를 등장시켜 스파이 소설 분야에서는 현존하는 작가 중 최고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표작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1963년 미국과 영국의 양대 추리문학상인 에드거앨런포상과 골드대거상을 휩쓸었으며, 2005년에는 영국추리작가협회 창설 50주년을 맞아 그간의 골드대거상 수상작 중에서 베스트를 뽑는 자리에서도 당당히 1위에 올랐다.

 

그 자신은 미국,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공로상 격으로 각각 수여하는 최고의 영예, 그랜드 마스터와 다이아몬드 대거를 모두 획득했고 영국 왕실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았으니 스파이로 가장 덕본 사나이라고 해도 부족함은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존 르 카레는 어떻게 이렇듯 거대한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을까? 그는 1961년에 이 작품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를 통해 등단했다. 하지만 그가 이 방면의 선구자는 아니었다. 이미 1950년대부터 이언 플레밍의 007시리즈가 충분히 스파이라는 매력적인 존재를 대중들에게 충분히 각인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존 르 카레는 뭔가가 달랐다. 문장에는 품격이 넘쳤고, 무엇보다 007시리즈가 현실 어디에도 존재할 법하지 않은 영웅의 대활약을 그리는 오락 소설이었다면, 르 카레의 스파이 소설에는 온전히 제 목소리를 내는 '인간'이 있다. 배신과 암투, 간계 속에서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쓸쓸해하는, 국가라는 거대 조직 속의 부산물에 다름 아닌 스파이의 뒷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존 르 카레는 스파이를 등장시킨 무수한 작가들 속에서 그 혼자만이 찬란히 빛날 수 있는 차별성과 문학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본다.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는 처녀작이지만 존 르 카레 작품의 특징이 대부분 담겨 있는데,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한다는 스파이계의 노병 조지 스마일리가 처음 등장한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만 해도 독일에서 공작을 펼쳤던 노련한 스마일리는 중년이 지나 현장에서 뛰기 곤란해지자 정보부의 한직에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외교부의 고관이 대학 시절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다는 투서가 날아들자 스마일리는 그와 면담을 한다. 그에게서 그럴 듯한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스마일리는 면담을 종료하지만, 다음 날 고관은 권총 자살을 한다. 유서에는 스마일리에게 가혹한 취급을 받았다며, 모멸감에 자살한다고 밝혔다. 분명히 면담 분위기는 좋았는데 왜 그가 그런 말을 남겼을까. 스마일리는 조사를 위해 이른 아침 죽은 남자의 아내를 만나는데 정확히 8시 30분에 남자가 신청한 모닝콜이 울린다. 죽기로 결심한 남자가 왜 다음 날 아침 일찍 깨워달라는 전화를 부탁했을까?

 

제목 그대로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의 미스터리를 푸는 이 작품은 역자후기에도 적혀 있듯이 전통적인 미스터리 소설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당시만 해도 애거서 크리스티풍의 본격 미스터리가 마지막 불꽃을 태웠을 시점이라 존 르 카레도 그 영향을 받아 초기작 2편에서는 플롯에 본격 미스터리 성향이 엿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나 장기는 숨기지 못하는 듯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에서도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처럼 이념이나 헛된 이상을 좇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나이를 먹어 사랑도 떠나고 공허감만 가득해진 중년 스파이들의 애상이 그려진다. 결말도 무척 좋고,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에 등장한 몇몇 반가운 인물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그 무시무시한 독일 스파이 문트까지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요즘처럼 첩보위성이나 인터넷 등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스파이와 접선자가 극장에서 라커룸 번호표를 바꿔 비밀 정보가 든 가방을 교환한다는 식의 고전적인 스파이 기법을 보여준다. 로테크(lowtech) 시절의 스파이들에 동경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 존 르 카레가 그렇게 스파이들의 세계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던 건 그가 실제 영국 정보부 소속이었기 때문이란다. 본명이 데이비드 존 무어 콘웰인데, 존 르 카레라는 필명을 쓴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그래서 그가 그리는 스파이들과 그들의 세계가 그렇게 정교하고 실제적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미스터리 작가 중에서 스파이나 정보부 일을 했던 사람이 꽤 있다. G.K. 체스터튼, 존 버칸, 이든 필포츠 등은 1차대전 때 활약했고, 007시리즈의 이언 플레밍 역시 정보부 출신인데, 사람을 죽이라는 지령을 받고 문 앞까지 갔다가 차마 못하고 돌아온 일화가 있단다. 아마도 자기가 못해서 007을 시켰나 보다.  

 

 

p.s/ 번역, 윤문 상태 아주 안 좋다. 다음에 나오는 작품에는 신경 좀 더 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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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10-24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그래서 스파이를 잘 알았던거군요^^

jedai2000 2007-10-24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가장 궁금한 작품인 '카를라를 찾아서' 3부작도 꼭 완간됐으면 좋겠어요 ^^
 
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사람이 본래 욕심이 끝이 없고 죄가 많은 동물이라 그런지 뉴스를 보면 하루에도 수십 건의 범죄가 저질러지곤 한다. 그렇게 다양한 범죄 가운데서도 내가 항상 답답함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유괴를 저지르는 범인들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잡히는 모습이 나올 때다. 아니, 하고 많은 범죄 중에 왜 하필(?) 유괴를 하느냔 말이다. 일단 납치하기도 어렵고, 납치 대상을 관리하기는 더 어렵고, 납치된 사람이 범인의 용모나 특징, 행동을 기억하기도 쉽고, 게다가 무엇보다 몸값을 받아내는 건 더 어려운데 말이다. 지상 최고의 유괴를 다룬 이 책 <대유괴>에서도 작가 역시 유괴 실행범 중 리더의 입을 통해 유괴의 난점들을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있으니 앞으로 영리를 위해 유괴를 저지르려고 작심하고 있는 멍청한 자들은 필히 참조하기 바란다. 

 

유괴란 범죄는 본질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어려움을 갖기 때문이다.
1. 인질을 유괴하는 일 자체의 어려움
2. 인질 신병을 극비리에 확보하는 장소와 방법의 어려움
3. 몸값을 받는 방법(가족에 연락하는 방법 포함)의 어려움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은 3항인 몸값을 밥는 방법으로 1과 2는 마지막 3을 완성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또한 이 3항의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다.
1. 인질을 풀어준 뒤의 안전 확보
2. 팀 분열의 방지
3. 몸값의 사용 방법
이 세 항목도 중요한 문제로, 이들 6개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을 때 비로소 유괴는 완전범죄가 될 수 있다.


 

<대유괴>는 감방 동기인 청년 3명이 유괴단 '무지개 동자'를 결성하여 어마어마한 거부 야나가와 할머니를 유괴하는 기둥 줄거리를 갖고 있다. 야나가와 할머니의 재산은 간단히 말해 오사카의 20퍼센트 면적에 해당하는 산을 소유하고 있다니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자산가. 무지개 동자들이 나름 치밀한 계획을 세워 할머니의 동선을 파악하고 갖은 고생 끝에 마침내 유괴에 성공하는 게 초반부까지의 이야기인데, 범행 준비 단계부터 계획을 실행하는 모습까지 실제 옆에서 지켜보는 듯 실감난다. 그런데 무지개 동자들의 손에 떨어진 할머니는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어벙한 그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는가 하면 약소한 5천만엔의 몸값에 오히려 분노하며 내가 그렇게 싸구려로 보이냐며, 100억엔은 요구해야 자존심에 걸맞는다고 큰소리를 친다. 무지개 동자들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5천만엔은 가방 하나면 되는데, 100억엔이라는 돈은 아무리 거부의 집이라도 마련하기 어렵거니와 커다란 트렁크 가방 수십 개에 담아야 하니 그걸 어떻게 운반할 것인가. 무지개 동자들의 고민은 깊어져만 간다.

 

전반적으로 따스함과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도저히 납치되었다고는 믿기 힘든 야나가와 할머니의 자신만만한 행동들로 어느새 유괴범들과의 관계가 역전되고 마는 상황의 아이러니가 웃음의 주된 부분이고, 뼛속까지 악인은 아닌 무지개 동자들의 순박함에 기분 좋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 작품 <대유괴>는 1978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세상에 나온 지 이미 30여년이나 된 고전이지만 당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비롯한 상들을 휩쓸었고, '문예춘추'에서 각계 미스터리 전문가들의 투표로 뽑은 20세기 걸작 미스터리 랭킹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야말로 전설이라 부를 수 있을 듯. 사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모 포털 사이트에서 어떤 영문인지 700원만 투자하면 이 책을 e-북 형태로 볼 수 있었다. 몇 년 전 700원 결제를 하고 반 정도를 보았다가 갑자기 취직을 하게 되면서 바빠져 끝까지 볼 수 없었는데, 다행히 이렇게 책으로 묶여져 나와 눈의 피로도 덜고 종이책으로 영구히 보관하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워낙 암암리에 유명했던 작품이라 너무 늦게 소개된 감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독자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무척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즐거움 반 아쉬움 반이 솔직한 심정이었는데, 아무래도 세월의 흔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작품에서 무지개 동자들은 유괴의 여러 난점들을 타파하는 데 매스컴을 이용한다거나, 특별한 운송 수단을 사용하며 위기를 넘기고 목적을 달성한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건 본문 중에 무지개 동자를 쫓는 뛰어난 경찰관인 이카리가 수사에 사용하려고 전파상에서 27인치 텔레비전을 빌려왔다는 대목인데, 일반 TV의 2배에 달하는 위용을 자랑하는 대형이란다. 이미 50인치도 우스운 요즘 세태에 비춰보면 <대유괴>가 어느 정도는 낡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독자들은 아마 매스컴의 허를 찔러 야나가와 할머니의 무고를 생방송으로 중계하며, 몸값을 전달받는데도 위에 언급한 특별한 운송 수단을 사용하여 경찰들을 농락하는 신출귀몰한 무지개 동자들의 모습에 커다란 쾌감을 느꼈을 듯하다. 하지만 이미 범죄자의 추적 과정이 TV로 생중계까지 되며, 어떤 운송 수단도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는 내게는 크게 기발한 느낌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물론 1970년대 작품이라 무조건 낡게 느껴진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1930년대 애거서 크리스티의 트릭이 인간 심리의 보편적인 면에 호소해 그 옛날에 봐도, 지금 봐도, 그 즐거움이 변하지 않는데 반해, 당대의 하이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트릭은 그 하이 테크놀로지가 어느덧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는 미래에는 어쩔 수 없이 그 감흥이 줄어들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즐거운 점을 말해보라면 사실 차고 넘친다. 야나가와 할머니 유괴 사건은 그 기묘함과 엉뚱함이 세상 사람들의 구미를 자극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고 사람들은 마치 한바탕 축제처럼 사건에 관심을 가진다. 전 세계가 떠들석한 이 소란스런 난장판은 작품의 분위기를 한층 더 유쾌하게 만들며, 유괴를 당한(혹은 당해준) 할머니의 진짜 목적이 밝혀지는 결말의 반전은 짜릿하다. 대책없이 순박한 노인만이 아닌 비장의 한 수가 있는 책사로 할머니의 캐릭터를 설정한 건 작가의 탁월함이라 하겠다. 사실 그런 두뇌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 큰 재산을 일구었겠는가. 전편에 흐르는 유머와 인간미, (지금 내 기준으로는 약간은 퇴락했다고 생각하지만) 준수한 트릭과 두뇌싸움, 무엇보다 반전이 돋보이며, 유괴의 준비부터 무사히 몸값을 전달받기까지의 전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유괴소설로서 꽤 높이 평가받을 작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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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팡의 소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학창시절에 누구나 가장 꿈꾸는 것에는 뭐가 있을까. 예쁜 교생 선생님과 연애를 해보고 싶다거나, 교내 농구대회에서 역전의 3점슛으로 스타가 되는 것도 있을 테고, 전교 1등으로 교장 선생님에게 직접 상을 받는다거나 하는 다양한 꿈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만 해도 통쾌하고 짜릿한 건 역시 시험 전날 남들은 다 어렵게 공부하는데 몰래 답안지를 훔쳐내어 간단히 100점을 맞는 것일게다. 솔직히 이런 생각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도 시험 전날 외워도 외워도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 물리 공식이나 국사 연대기 등에 혼절 직전의 상태가 되어 아, 시험지 훔치고 싶다 하는 공상을 자주 했었다.

 

그런데 이런 멋진(?) 계획을 실제로 실행에 옮긴 세 명의 악동이 있었으니, 그들은 선생님들도 포기한 문제아 기타, 조지로, 다치바나였다. 어차피 대학도 포기했고, 성적 잘 받아봐야 써먹을 데도 없지만 얄미운 선생님들도 골려주고 졸업 직전 마지막 추억을 만든다는 생각에서 그들은 그 이름도 멋진 '루팡 작전'을 짜낸다. 시험지가 어디 잠들어 있는지는 이미 파악됐다. 교장실 안에 있는 육중한 철제금고에 있다. 세 악동은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려 침투 계획을 세우고 마침내 실행에 옮긴다. 무사히 잠입해, 보아둔 열쇠로 금고를 열고 시험지를 사뿐하게 가져가려는데, 글쎄 금고 안에 시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소스라치게 놀라 살펴보니 영어를 담당하는 글래머 선생님이다. 그들은 시험지고 뭐고 그냥 금고를 닿고 도망쳐 나오는데, 다음 날 신문을 보니 시체는 옥상 밑 화단에서 발견된 것이 아닌가. 사인은 자살로 판명되어 의혹은 깊어져가지만, 무심한 시간은 흐르고 흘러 사건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도 풍화되고 만다. 그런데 15년 후 어느 날 시효를 하루 앞두고 경찰 측에 의문의 제보가 들어간다. 여선생님은 사실 살해됐고, 비밀은 루팡 작전 안에 있다고.

 

이미 3편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된 요코야마 히데오의 처녀작이다. 사실은 미스터리 소설 공모전에서 가작을 수상했지만 책으로 나오지는 못한 작품을 유명작가가 되고 나서 개작한 것이라 하는데, 요코야마 팬들에게는 실체가 알려지지 않았던 '환상의 처녀작'을 볼 수 있다는 의의가 있어 제법 화제가 됐다 한다. 우리나라에서 요코야마 히데오는 초반부, 중반부까지는 신필이지만, 결말에서 작위적인 감동을 강조하는 신파극으로 돌변하는 약점만이 크게 부각되어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요코야마 히데오 열성팬의 입장에서 이런 세평이 약간 가혹하게 느껴지지만, 또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고도 생각한다(만약 <클라이머즈 하이>의 종반부에서까지 앞부분의 박력과 재미를 그대로 유지했다면 일본 미스터리 올타임 베스트 1으로 꼽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루팡의 소식>은 그런 약점을 상당히 뛰어넘고 있어 누가 봐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간략히 소개한 줄거리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아마도 요코야마 히데오는 미스터리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루팡의 소식>을 준비할 때, 기존에 유행했던 본격 미스터리 작품들을 참조한 듯 기본적으로 본격 미스터리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금고에 있던 시체가 화단 아래로 이동한다는 플롯 자체가 독자들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15년 전의 불가사의한 사건이 현재 관계자들의 진술을 통해 하나씩 퍼즐이 맞춰져가는 짜릿함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요코야마 특유의 작풍-개작할 때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강했을 듯-도 여전하여, 시효를 하루로 설정해 24시간 안에 사건을 풀어야 한다는 긴박감이 출중하며,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은 때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며 부대끼는가 하면, 상대의 실력에 감복하고 우정을 확인하는 등 일본을 지탱하고 있는 조직 사회의 진면목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요코야마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청춘소설의 분위기도 있어, 세 악동들의 난장짓은 가네시로 가즈키의 '좀비스'나 무라카미 류의 <69>에 나오는 청춘들을 연상시킬 정도다. 15년의 세월이 지나 변해버린 세 악동의 현재의 모습은 꿈많았던 학창시절을 통과해 어느덧 세상의 때가 묻은 우리의 모습을 상기시켜 이루 말할 수 없는 소회를 주며, 그 중 한 명인 다치바나가 세상과 손을 끊고 말을 잊은 채 노숙자로 살아가게 된 이유가 밝혀지는 결말부에서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그런데 미스터리의 면에서는 한 가지 이상 설명이 부족하거나 논리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고, 아마도 개작하면서 첨가되었을 거라 보이는 반전에서 사건의 진짜 범인이 밝혀지는 부분이 좀 뜬금없고 그동안 유지되었던 작품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옥의 티가 되는 것같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기준을 통과한 아주 우수한 미스터리 대중소설로 이 책이야말로 요코야마 히데오의 진가를 우리 독자들에게 확인시켜줄 수 있는데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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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코야마 히데오의 &quot;루팡의 소식&quot;
    from 맥, 기술, 영화, 도서 그리고 삶 2008-07-24 23:20 
    바티스타 수술팀의..을 읽고 감상문을 올렸더니.. happyseeker가 추천해준 책.. 미루고 미루다가.. 이번에 갑자기 생각나서 학교 도서관에 가서 덥석 들고 와서 읽었다.. 루팡의 소식이라는 이름에서 루팡과 관계가 있나 싶었는데..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공소시효가 1일 남은 상황에서 (그것도 이미 끝나버렸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과거 자살로 처리된 사건이 살인사건이라는 제보를 받고 그 살인범을 밝힌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