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라캉 살림지식총서 340
김용수 지음 / 살림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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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라캉 - 김용수, 살림(2008)

 

한국비평이론학회와 살림출판사가 함께 비평이론의 대중화를 위해 기획한

비평이론 시리즈 세 번째 권.

  내가 좋아하는 살림지식총서. 340번은 자크 라캉에 대한 이야기. 작고 얇아서 휴대하기 좋은 책이지만 가볍게 들고나가서 읽기보다는 집중해서 읽게 하는 마력의 살림지식총서 시리즈. 내가 라캉에게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책장에 두 권이 꽂혀있다. 둘 다 라캉 입문서 역할을 하는 책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듯한데 일단 살림책으로 라캉과 만나기로 선택했다.


>> 나는 이 책을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에 대한 쉽고 충실한 입문서로 쓰고자 했다. 이론 전반을 두루 다루기보다는 '욕망의 윤리'라는 하나의 핵심 주제에 집중하여 독자들이 라캉의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특히 이 책에서 욕망과 쾌락이 지닌 정치적 가능성을 드러내고 싶었다. 욕망의 정치, 쾌락의 윤리가 자유로운 공동체를 향한 희망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길 기대한다.


>> 관심사와 연구계획은

주로 포크너의 문학과 정신분석을 연구해 왔다. 요즘 관심은 정신분석 영화이론에 있다. 그중에서도 정신분석 개념들과 영화기법을 연결하여 영화 작품을 세밀하게 해석하는 작업에 무한한 흥미를 느낀다. 앞으로 정신분석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문학과 영화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자 한다.

(책날개에서 발췌)

 입문서면서 하나의 주제인 '욕망의 윤리'에 집중해서 이야기하기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책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자크 라캉을 더 파고들고 싶어졌다. 그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상가로 유명하다. 흔히 정신분석하면 프로이트를 생각하는데 이제 내게는 라캉의 자리가 더 커질 거 같은 느낌이다. 물론 프로이트의 책을 읽을 때도 흥미롭기는 했지만 라캉은 마음에 들기까지 했으니까. 물론 이 책은 라캉이 직접 쓴 책이 아니라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 읽어서 제대로 라캉을 알려면 그의 책을 만나야겠다.


 그런데 독자인 내가 라캉에게 매력을 느꼈으니 저자의 의도는 성공이다. 살림책을 읽으면 대개 그렇게 된다는 게 함정이다. 거기서 확장하는 건 오로지 독자의 몫. 대개 거기서 그쳤다면 라캉은 꼭 파고들고 싶어졌다는 게 차이점이다. 예전에 미쉘 푸코도 이렇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라캉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그렇다면 라캉의 매력은 무엇일까.


 자크 라캉이 제시하는 정신분석의 윤리는 한마디로 "네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라는 명령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욕망에 대한 적극적이고 비타협적인 긍정을 요구하는 이러한 도덕원칙은 그 급진성으로 말미암아 당혹스러운 충격으로 다가오기 쉽다. (…중략…) 욕망은 흔히 윤리의 적으로 여겨진다. 성숙한 개인의 인격을 완성하는 데 있어 욕망은 도덕적 성취를 위협하는 이물질이다.


(12쪽, 정신분석과 욕망 일부 발췌)

 지금 들으면 그다지 충격적인 말은 아니다. 네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은 당연한 말이 아닌가? 이것을 동물적 혹은 성적 욕망으로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닫지 못한다면? 그런 쪽으로 만 확대해석하는 게 문제다. 삐뚤어진 욕망이나 내면은 이렇듯 확장된 사고가 정지한 상태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확실히 이 발언은 위험할 수 있다. 잘못 이해했을 경우의 파장이 클 테니 말이다. 그래서 또 다른 예를 아래 인용한다.


'욕망에 일치하여 행동'하는 것이 그리 단순한 일은 아니다. 우선 모든 종류의 욕망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자는 의미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가령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소비의 욕망들은 정신분석에서 윤리적인 긍정의 대상일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욕망의 만족을 대체하는 환상이고, 진정한 쾌락으로의 접근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욕망은 또한 타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파괴적인 욕망과도 구분되어야 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타자를 소멸시키는 반윤리적인 욕망이기 때문이다.

(17쪽, '보 에스 바(Wo es war)' 일부 발췌)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파괴하는 것도 반윤리적인가? 이 물음에 대답 현명한 답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김영하 작가의 책이 떠올랐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문학동네」) 각설하고 라캉이 말하는 욕망의 윤리에 대해 오해하지 말라는 말이다. 바로 위에 인용한 글에서 '보 에스 바(Wo es war)' 또한 We ar war로 잘못 보지 않기를. "그것이 있던 곳에 내가 존재한다(We es war, soll ich werden)."라는 프로이트의 말에서 온 것. 욕망은 내가 아니라 그것일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는 순간. 어쩌면 사로잡힌 욕망에서 헤어 나오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어려운 이유가 책에 나오는 말처럼 또한 '그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핵심주체가 타인이 아닌 나이기 때문에.


라캉의 윤리가 긍정하는 욕망은 물론 이러한 환상에 사로잡힌 욕망이 아니라 환상을 가로지르는 욕망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대상이 아닌 부재의 대상을 향하여 움직임으로써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윤리적 행동과 관련된다.

(28쪽, 쾌락과 충동 일부 발췌)

 명쾌한 말이다. 이렇듯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사드와 칸트의 접점을 이야기할 때도 흥미롭다. 자신의 철학을 이해시키고자 다른 이들을 데려와 연결하는 공존 능력. 인정ㅂ다고 싶은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그런 발상 자체가 재미있다. 게다가 칸트의 우화 이야기를 할 때 칸트가 놓친 것을 바로 찾았다. 다른 가능성도 있는 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음 문장에서 라캉 또한 그 점을 언급했다. 그래서 더욱 라캉에게 관심이 간다. 라캉의 책이니 그가 유리한 입장에 놓이는 건 당연하건만 그럼에도 흥미를 끄는 이유는 공감하기 때문이겠지. 그의 사상을 더 알아보고 싶다. 그때 공감의 폭이 더욱 커질지 아니면 그칠지 확인해야겠다. 가끔 나오는 지젝을 보며 아끼는 책 「삐딱하게 보기」를 꺼내 보려 했더니 못 찾았다. 오래도록 꺼내보지 않아서 어딘가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을듯하다.


 끝으로 다시 말하지만 라캉의 "네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라는 여러 가지 불순한 욕망이 아니라 '순수 욕망'이라 불러야 한다고 김용수 저자는 말한다. 깨부숴야만 나올 수 있는 것처럼 틀을 깨고 열린 사고와 열린 욕망을 기필코 추구해야 더욱 다양화된 그 무언가가 탄생할 것이다.


 

라캉의 윤리가 긍정하는 욕망은 물론 이러한 환상에 사로잡힌 욕망이 아니라 환상을 가로지르는 욕망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대상이 아닌 부재의 대상을 향하여 움직임으로써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윤리적 행동과 관련된다.



(28쪽, 쾌락과 충동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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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 세월호 추모시집
고은 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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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 고은 외, 실천문학사(2014)​

​세월호 추모시집

 세월호 참사 1주기. 아이들의 1주기로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 위로 캡사이신 비가 내렸다. 갈 수 없어서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자니 추모의 자리는 또다시 아비규환을 떠올리게 했다. 유족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고 사는 모든 부모들은 이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들의 현재진행형인 끝나지 않는 싸움 앞에서 함께 울고 절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분노한다. 2014년과 2015년 분명히 해는 다르건만 나아진 게 없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런 역적 같은

이런 강도 같은 참변 앞에서

과연 이 나라가 나라 꼬라지인가 물었습니다

이런 무자비한 야만이 저지른 희생 앞에서

이 사회가

언제나 청정한 하루하루일 것인가를 따졌습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얼마나 인간이었던가를 뉘우쳤습니다

영혼이라는 말

양심이라는 말이

왜 있는지 몰라야 했습니다 알아야 했습니다

(24쪽, 고은 시인의 '이름 짓지 못한 시' 일부 발췌) ​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한다. 그러나 국민을 책임질 이 나라는 일련의 여러 사건 때처럼 잊히기를 기다린다. 보통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지 자문하게 된다. 국민의식은 높아져가지만 정치의식은 제자리걸음인지 오래이다. 진정한 진보란 무엇일까. 비단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전체적인 상황을 유추해보며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용감한 이들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보통의 사람. 추모만이 길이 아닌 분노와 관심이야말로 보통의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나와는 무관한 삶이 아니라 그들은 모두 우리네 아이였고 우리였다. 추모시집의 제목처럼 그렇게.

​뒤집어라, 뒤집힌 저 배를 뒤집어라

뒤집어라, 뒤집힌 세상을 뒤집어야 살린다

탐욕으로 뒤집힌 세상, 부패와 음모와 기만으로 뒤집힌 세상

이게 아닌데, 이럴 순 없어, 뒤집지 못한 우리들

가슴을 치며 지켜만 봐야 하다니, 회한의 눈물을 삼키며

우리가 너희들을 다 죽이는구나, 뒤집어라,

폭력과 약탈로 뒤집힌 세상을 뒤집어야 살린다

이렇게 내버려둘 순 없어 저 죽음을 뒤집어라

뒤집지 않고서는 살리지 못해 저 죽음의 세력을 뒤집어라

(85쪽, 백무산 시인의 '세월호 최후의 선장 박지영' 일부 발췌) ​

 이 책은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두고 나온 추모시집이다. 그러니 작년 7월에 출판되었는데 지금 읽어도 가슴 먹먹하기는 여전하며 뭐하나 시원하게 해결된 것도 없어서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세월호 관련 책으로 아마도 가장 많이 읽은 책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이겠지만 나는 시인들의 추모시를 먼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마도 다음 주에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고 있을 것이다. 차마 못 읽어나갈 거 같아서 마주하지 않았던 책. 이제 얼굴을 맞대고 바로 읽어야만 하겠다. 

​돌려 말하지 마라

온 사회가 세월호였다

오늘 우리 모두의 삶이 세월호였다

자본과 권력은 이미 우리들의 모든 삶에서

평형수를 덜어냈다

(89쪽, 송경동 시인의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일부 발췌) ​

​ 시인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투명하지만 힘센 시를 지어올렸다. 누군가는 슬퍼하고, 분노하고, 미안해하고, 넋을 위로하고, 썩어빠진 권력 등을 비판했다. 그들의 자괴감이야말로 우리의 자괴감이었다. 그러나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이들은 여전히 그렇지 아니하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 이제는 잊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화물차 기사들, 20대 청년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까지. 또한 간접적인 영향으로 타격을 입은 진도 시민들의 정신적 타격, 살아남은 이들의 정신적 충격 등 우리는 그 모든 아픔을 잘 모른다.

​엄마 아빠

부탁이 있어요

우리 없다고 이 나라를 떠나지는 마세요

우린느 죽지 않았어요

검은 리본은 싫어요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

우리는 지금

천년의 장미를 찾아 수학여행을 떠나는 길이에요

엄마 아빠도 아시잖아요

천녀의 장미를 찾아 돌아오는 날까지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

몸은 여기 두고 250개의 물방울이 되어

홀가분하게 더나요

무사히 돌아오는 그날

엄마 아빠 안 계시면 우린 무척 슬플 거예요

(101쪽, 안상학 시인의 '엄마 아빠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 일부 발췌) ​

  ​그들이 물방울 되어 홀가분하게 날아오르는 날은 과연 언제란 말인가. 살다 보면 누구나 억울한 날 있다지만 이건 그런 차원을 넘은 비교할 수 없는 인재, 수장이 아니던가. 전 국가적인 충격 앞에서 어찌 보면 국민 모두가 마음 어딘가에 구멍이 뚫렸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린 살아있지 않은가. 그러니 지나친 우울증에 빠지라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잘못 생각한 것이다. 우린 깨어나야 하고 이들을 지켜보고 응원해야 한다.

 교육부가 추모관 건립을 추진하는데 단원고 학생과 교사만 해당된다고 한다. 교육부가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진행했다면 학생과 교사가 아닌 다른 이들까지 평등하게 추모할 수 있었겠지. 게다가 우리도 안 하는 일을 외국인이 한단다. 배우 오드리 헵번의 아들 션 헵번 페리가 비정치성, 비이념성으로 세월호 기억의 숲(9일 착공식이 있었다)을 조성한다. 그가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에서 첫 영화 일을 시작한 인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게 30여 년 전 일이라는데 이 외국인은 나라와 민족을 떠나 세월호 유족을 위해 이 일을 추진한 것이다.

 고맙고 동시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유대인들은 학살 당시의 역사적 이야기와 상황을 철저하게 되새겨 배운다고 한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라 꼭 되짚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가슴에, 뼈에 넣어두는 거란다. 일련의 참사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숙고해볼 일이다.

 

■간단 서평: 세월호 관련 책 중 이 책은 시인들이 모여 쓴 추모시집.

유가족의 목소리 대신 시인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우리네 마음이 시집에 들어있다.

 

엄마 아빠

부탁이 있어요

우리 없다고 이 나라를 떠나지는 마세요

우린느 죽지 않았어요

검은 리본은 싫어요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

우리는 지금

천년의 장미를 찾아 수학여행을 떠나는 길이에요

엄마 아빠도 아시잖아요

천녀의 장미를 찾아 돌아오는 날까지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

몸은 여기 두고 250개의 물방울이 되어

홀가분하게 더나요

무사히 돌아오는 그날

엄마 아빠 안 계시면 우린 무척 슬플 거예요



(101쪽, 안상학 시인의 `엄마 아빠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 일부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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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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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계 - 강유원, 살림(2004)

살림지식총서 085

 가족 모두를 괴롭히던 감기가 사그라졌다. 어른들은 거의 나았고 아이들은 약간의 감기 불씨가 남았지만 그럼에도 예배가 끝나자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하며 오후까지 놀았다. 덕분에 꽃잎이 날리는 모습을 오늘은 오래도록 볼 수 있었다. 책을 들고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그 순간을 즐기는 게 더 좋았다.

 책이라는 텍스트를 늘 지니고 있어도 좋겠지만 이런 유형의 텍스트가 아닌 무형의 텍스트가 모두에게 있으니 구애받지 않는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공중으로 떠다니고 흩어지는 것들이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하니 말이다.

 사실 어느 이웃분이 감기 걸렸다고 하니 즐거운 책을 읽으라고 처방을 내려주셨다. 그래서 책장을 쭉 훑어보다가 피식 웃어버렸다. 그런 책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손길이 가는 책은 대부분 인문쪽이거나 우울하다고 할 수 있는 책들이었다. 발랄하다고 생각하는 김애란 작가의 책등도 있었지만 결국 손이 간 책이 「책과 세계」였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책은 즐겁기보다는 진지하다. 서론이 길었는데 각설하고 간단하게나마 이 책의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살림지식총서 대부분의 책이 얇고 가격도 싸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아주 진득하다. 얇으니 대략적이며 입문하기 좋고 다른 쪽으로 의식을 확장하는 길을 열어준다. 이 책 또한 고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저자의 의도이기도 했다. 훌륭하다. 저자의 의도가 성공했으니까. 그럼에도 저자의 말처럼 버려둘 수 없는 책이었다.

>> 나는 이 책을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썼다. 하나는 고전에 대한 자극을 주면서 그것들로 직접 다가가는 길을 알려주고, 다른 하나는 그 책들을 읽기 전에 미리 그 책들이 어떻게 서로 이어져 있고 대화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목적이든지 이루어진다면, 이 책은 불필요해진다. 결국 이 책은 잊혀지고 버려지기 위해 쓰여진 셈이다.

>> 관심사와 연구계획은

인간의 주관적 정신과 객관적 세계가 만나는 접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탐색하고 정리하여, 가능하다면 그 오고감과 산물들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이다. 철학은 객관세계를 잊은 채 공상에 몰두하고, 자연과학은 인간을 내버려둔 채 물신숭배에 빠져, 그 둘이 도저히 화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지 해볼 작정이다.

- 책날개에서 발췌.

 이론적으로 체계화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 저자라면 가능할 거 같다. 저자의 저서를 찾아보니 인문학, 철학, 고전 쪽으로 책을 내고 번역했음을 알았다. 어떻게 풀어가는지 조금씩 만나봐야겠다. 무언가를 정의하기 위해 고심해본 적이 있다면 그 사고과정이 얼마나 힘들지 알 것이다. 몰입의 즐거움과 결과는 색다른 희열을 안겨준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을 읽고 흩어진 사고들이 이어지는 경험을 했다거나 한 단계 성숙해진 나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물론 이 책을 읽고 그런 희열을 느끼진 못했지만 생각해본 적 없는 시선을 발견해서 좋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고대세계의 텍스트들은 본래 기억에 의지하여 암송되어 전해지다가, 진흙판, 금속 그릇, 거북 등껍질, 죽간, 파피루스 등에 기록된 것들이다. 그것들을 기록한 매체가 대중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아무리 고대세계의 텍스트들이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우리에게 전해지는 내용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또한 텍스트들의 유통은 근본적으로 지배계급-사회의 상층 일반이기보다는 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력과 부를 지닌 집단-에 의해 좌우되었음을 알 수 있다. (39쪽)

  역사가 흔히 승자의 기록이라 하지 않던가. 역사학자들이 새롭게 찾아내 조금씩 달라지는 세계사 등을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텍스트 자체를 두고 그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을 추론하고 추적하는 것은 독자 대부분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나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의 어느 한 조각(혹은 조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뼈저리게 느낀 순간! 그 틀에서 우린 벗어날 수 있다. 아니 의식이 벗어나도록 다른 틈을 찾게 되는 적극적인 태도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틈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것이 이 책의 강점이다.


​ 마키아벨리 역시 본질적으로 궁정 지식인이었다. 그 역시 지배자를 위한 이념과 실천 지침서, 즉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그였다. 그러나 그는 전원에 파묻혀 고요한 질서를 찬양하는 비현실적 궁정 지식인이 아니라, 분열과 반목, 침략과 방어라는 날것의 현장에서 동분서주했던 서기관이었다. 그의 텍스트들은 역사적 현실이라는 컨텍스트에 너무나 철저하게 밀착되어 있어서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그에 대한 텍스트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이다. (64쪽)

 일반적인 혹은 상식적인 시선과는 확실하게 달랐다. 고전이 왜 고전일 수밖에 없는지는 읽어봐야 아는 일이지만 그 고전의 배경이나 시대상까지 알고 읽으면 더 풍부함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몰랐던 이야기들을 저자는 들려준다. 대략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때 이 책을 펼치면 좋을 거 같다. 특히나 서양철학과 중세, 르네상스 시기의 책을 읽을 계획인 독자라면 먼저 이 책을 읽거나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책과 세계, 텍스트와 컨텍스트에 대해 잠시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읽을 계획이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 늦추고 있다. 이 책을 만나며 다시 한 번 빨리 읽고 싶어졌다. 즉흥적으로 읽는 책도 있지만 때를 기다리는 책이 있으니 내게 아퀴나스의 책이 후자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에필로그를 남기며 이 책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파우스트』의 한 구절처럼 '모든 이론은 잿빛'이어서 이론은 현실에 맞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이론적 파악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론적 파악의 출발점인 읽기를 그만두어야 하는가? 그것이 극단의 현실에 대한 올바른 대응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고전이 보여주는 자아들을 자기 몸에 넣어보고, 다시 빠져나와보고, 다시 또 다른 것을 넣어보고, 또다시 빠져나와본 다음에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무의미한 일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질 자아가 과연 진정한 것인지 확인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예 텍스트를 손에 잡지 말아야 하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92~93쪽. 에필로그 부분 발췌)


 ■간단 서평: 인문학이나 고전 입문서로는 추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조금이라도 읽고 그것들과의 접점을 찾거나 새로운 시각에 눈 뜰 독자에게 추천하는 책.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 :)

『파우스트』의 한 구절처럼 `모든 이론은 잿빛`이어서 이론은 현실에 맞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이론적 파악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론적 파악의 출발점인 읽기를 그만두어야 하는가? 그것이 극단의 현실에 대한 올바른 대응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고전이 보여주는 자아들을 자기 몸에 넣어보고, 다시 빠져나와보고, 다시 또 다른 것을 넣어보고, 또다시 빠져나와본 다음에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무의미한 일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질 자아가 과연 진정한 것인지 확인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예 텍스트를 손에 잡지 말아야 하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92~93쪽. 에필로그 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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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in BLUE - 꿈꾸는 여행자 쥴리와 져스틴의 여행 에세이
쥴리.져스틴 글.사진 / 좋은생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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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중해 in BLUE - 쥴리&져스틴, 좋은생각(2007)

 한때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는 나라들이 ​무진장 부럽던 때가 있었다. 사실 지금도 지중해는 언젠가 꼭 떠나보고 싶은 나라들을 고루 끼고 있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이집트, 터키 등 생각만으로도 눈부신 햇살과 반짝이는 바다가 손짓하는 느낌이다. 유럽 문명에서 무척이나 중요했던 지중해. 그 역사는 찬란하지만 수많은 충돌이 있었다. 특히나 동서 양 문명 간의 충돌을 체험하고 겪어낸 터키가 궁금하다.

 지중해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이다. 무엇이 이토록 그들을 지중해의 매력에 빠지게 했을까. 그곳에 가면 알베르 카뮈나 장 그르니에 등을 추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지중해의 풍경 앞에서 그들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채 심장만이 뛸까.


 이 책의 저자는 쥴리와 져스틴 두 명이다. 사진과 글을 썼는데 따로 구분해두지는 않았지만 읽으며 대략적으로 누가 썼는지 느껴졌다. 아마도 한 장씩 번갈아 가면서 쓴듯한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재미 있는 사실은 두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네이트 주관 여행 공모전에서 상을 타고 이후 만나서 함께 그리스, 이집트, 터키를 여행하며 쓴 책이 바로 「지중해 in BLUE」이다. 첫만남과 여행으로 이들은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었다는데 여행자라 가능한 이야기인 거 같다.

 오래전 파리에 여행 갔을 때 만난 외국인들(그들 또한 여행자라서)은 현지인과는 확실하게 다르지만 미묘한 동질감을 느꼈으니까. 낯선 공간에서 스친 잠깐의 만남 동안 웃어줄 수 있는 여유와 격려가 떠오른다. 쥴리와 저스틴도 함께 3개국을 여행하면서 그런 동질감과 위안, 공감 등을 나누었을 거 같다.


 책의 모든 페이지마다 직접 찍은 여행 사진이 가득하다. 상대적으로 글은 적어서 짧은​ 단상을 기록한 느낌이지만 그 안에서 그들이 느꼈을 감정이 공유되는 순간이 좋았다. 그래서 이 책은 여행 정보나 여행기로만 만날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지중해를 마음에서 불러내주었다. 솔직히 그런 정보는 여행책을 참고해야 하겠다. 지중해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하다. 가슴이 뛴다!

무거운 짐을 들고, 졸린 눈을 뜨고,

매 순간의 공기와 햇살,

그리고 차창에 박힌 어두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스스로가 정한 마음의 국경, 자신만의 나라,

자신만의 사랑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 그리스 007_먼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일부발췌.​ 

 

 

 

 

퍼즐을 맞추듯 나를 채운다.

여행을 하며 나를 채울 조각들을 찾는다.

살아 있는 한 퍼즐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그것이 정상이며 그래야만 움직인다.

완성된 퍼즐은 정지해 있다.

내가 채울 다음 조각은?

당신이 채울 다음 조각은?

 

-​ 그리스 027_퍼즐놀이 일부발췌.

기대했던 것이 없다고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고

미리 탓하거나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조금만 더 길게 생각하면 기대 이상의 멋진 세상이 보인다.

조금만 더 길게 생각하면 거기에 뜻하지 않은 선물이 있다.

(…중량…)

조금만 더 길게 생각하면

잃는 것이 없다.

 

- 이집트 021_조금만 더 길게 생각하면 일부발췌.

익숙해지면 떠나고

떠나면 낯설고,

또 익숙해지고 또 떠나고,

여행.

낯섦과 익숙함의 반복.

- 터키 02_여행, 낯섦과 익숙함의 반복 일부발췌.  

 

 

 

길을 잃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길을 잃고 헤매기를 자주 반복한다. 길을 잃으면 찾으면 되고,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조금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고, 유연성과 융통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길을 잃어본 자는 다시 길을 잃더라도 당황하거나 자책하지 않는다.

어쩌면 길을 잃는 것부터가 참 여행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 터키 010_길을 잃는 것에 대해 일부발췌. 

 지중해 바다와 잘 어울리는 온통 하얀색 벽의 집들. 가보지 않았어도 유명한 그리스 산토리니의 풍경. 새파란 바다와 새하얀 집들 그리고 그 위에 쏟아지듯 작열하는 태양. 그리고 기자 피라미드의 이집트. 마지막으로 이스탄불로 기억하는 나라 터키까지 이어지는 여행자들의 노래(나는 이 짧은 글들이 노래처럼 들렸다)에 잠시나마 빠져보았다. 그 나라들의 특색도 다가왔지만 특히나 인상적인 건 여행과 여행자에 대한 글들이었다. 사실 우리 모두 여행자가 아니던가. 기약 없이 유한한 삶을 사는 여행자.


 우리가 여행에서 얻는 것들은 추억이 되고 살아가는 자양분이 된다. 마음속 보물 한가득. 여행자 쥴리와 져스틴에게서 느낀 것은 그런 마음속 지도가 끊임없이 펼쳐지며 더욱 깊어지리란 것이었다. 그들이 여행지에 남겨둔 것들 또한. 그러기에 여행은 멈추지 않을 것이란 사실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 마음의 우물이 말라버리지 않도록 단비를 뿌려준 거 같다.




+ 저자 중 한 명 져스틴님 블로그 http://blog.naver.com/jrkimceo

 

■간단 서평: 지중해 그중에서도 그리스, 이집트, 터키를 여행하며 쓴 책. 낯선 이들이 처음 만나 3개국을 돌며 그들이

            쓴 짧지만 여운 있는 글에서 공감할 수 있는 책. 이 책은 여행정보나 여행기가 아닌 여행, 여행자에 대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길을 잃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길을 잃고 헤매기를 자주 반복한다. 길을 잃으면 찾으면 되고,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조금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고, 유연성과 융통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길을 잃어본 자는 다시 길을 잃더라도 당황하거나 자책하지 않는다.



어쩌면 길을 잃는 것부터가 참 여행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 터키 010_길을 잃는 것에 대해 일부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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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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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 조지 오웰, 민음사(2001)

원제 Homage to Catalonia (1938년)​

 책장에 오래도록 있었던 조지 오웰의 책을 잡았다. 사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버려서 즉흥적으로​ 선택했다. 스페인 내전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우리네 5.18처럼 부당한 상황을 재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혹은 일어났던 일에 대해 더 알고 싶었는데 마침 눈에 띈 책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2006년 국제도서전에서 만난 책인데 이제야 제대로 읽어보았다.


 배경은 스페인 내전(1936~1939. 한참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던 시대)이며 당시 직접 공화파 의용군으로 참전한 오웰의 기록문학이다. 당시 파시즘에 반대하고자 반파시즘으로 즉 파시즘과 싸우고자 스페인에 온 외국인들이 많았다. 오웰을 비롯한 헤밍웨이 등의 지식인들도 있었는데 이 책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헤밍웨이」를 통해 당시 상황을 만날 수 있으며 특히 조지 오웰의 책은 기록문학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고 한다. 읽어보니 알겠다. 왜 그런 것인지.

 정부군과 군부 프랑코 장군의 반란군(쿠데타군)의 대치였는데 결국 프랑코 장군의 파시즘 세력이 승리한다. 오웰은 정부군 입장(통일노동자당)으로 패배했다. 그런데 오웰은 이 내전에 참가함으로써 많은 것들을 경험한다. 스페인 혁명을 가로막는 세력이 오히려 좌익임을 발견하며 자신이 속한 통일노동당이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사실 통일노동당을 오웰이 선택한 게 아니라 파시즘의 반대편이기에 자원했던 거였는데 결과는 그가 생각한 것과 다른 것이었다. 이를 통해 혁명의 세력이 누구이냐에 따라 진정한 승리와 그 반대인 패배로 이어지는 결과를 겪었다. 패배란 그저 상대 세력에 눌렸다는 거뿐만이 아니라 배반으로 이어진 결과일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야말로 혼란의 시기였다.

 그러나 이를 통해 오웰은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를 확장해 가는 계기가 되었던 거 같다. 참여할 때는 파시즘에 반대한다는 정의감 등이 앞서서 자세한 상황은 그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직접 참여해서 겪은 내전에서 총알에 맞아도 보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체험하고 스페인 사람들의 엉뚱함과 색다름을 느낀다. 그래서 「카탈로니아 찬가」는 스페인 내전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작가 자신에게도 새로운 국면을 맞는 책이기도 할 것이다. 오래전에 읽은 「1984」, 「동물농장」을 다시 읽어야겠다. 이 책을 읽기 전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다.


​나는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의용군에 입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었다. 마치 수동적인 물체처럼 그냥 존재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중략…) 개인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러니까 나 자신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볼때, 전선에서 보낸 처음 서너 달은 내가 당시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무익했다.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일종의 휴지 기간이었다. 이전에 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으며, 아마 앞으로 살게될 어떤 삶과도 다를 것이다. 그 시기에 나는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웠다. (…중략…) 대다수 사람들에게 사회주의란 계급 없는 사회일 뿐이다. 그것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용군에서 보낸 몇 달이 나에게 귀중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제8장, 138~141쪽 부분발췌)

 

 영국에서는 아직 정치적 불관용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중략…) 자신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숙청>하거나 <제거>한다는 생각은 아직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셀로나에서는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13장, 254쪽 부분발췌)

​ 책의 앞부분은 블랙코미디 같으면서 재치가 있다. 중반 이후부터는 당시의 상황과 특히 11장은 오웰의 정치적 견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셀로나 시가전에 대해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는 오웰이 사실은 왜곡시켰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관적이지만 기록적이었고 얼마나 많은 것들이 오보되고 있는지 짚어보게 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읽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떠한 사건의 전말은 과연 진실일까? 그것들을 모두 제대로 가려 볼 수 있는 능력과 관심이 시급하다. 오웰이 말했듯이 말이다. '진짜 쟁점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있다. 비방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11장, 231쪽)' 특히 선거때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기만 하는 식의 경쟁을 추구하는 그들에게, 국회에서 싸우기만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장이다.


나의 당파적 태도, 사실에 대한 오류, 사건들의 한 귀퉁이만 보았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왜곡을 조심하라.

(14장, 295쪽 부분발췌)

 책을 읽다가 불현듯 옛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오래전 드라마로 <제5열>이 있었다. 당시 이영하, 한진희 등의 배우가 나왔는데 내용은 거의 잊었지만 그 분위기가 기억난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원작자 김성종의 작품들이다. 책으로 읽은 적은 없지만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들. 한 시대를 풍자하고 사건과 그 앞에서 쓰러지는 사람들의 환멸과 희망이 떠오른다. 조지 오웰 또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서 느꼈을 경험적 자산에 여러 요소가 있었을 것이다. 이후 그의 문학적 행보에 영향을 미친 정치적 견해나 의지의 뿌리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끝으로 이 책을 번역한 정영목 교수가 발췌한 오웰의 글을 나 또한 적어본다.

 정치의 목적 ㅡ <정치적>이란 용어는 이 경우 가능한 한 넓은 의미의 것이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도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ㅡ​「나는 왜 쓰는가」에서  

 ■간단 서평: 조지 오웰에 의한 스페인 내전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오웰을 이해하기 위한 책.

 

나의 당파적 태도, 사실에 대한 오류, 사건들의 한 귀퉁이만 보았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왜곡을 조심하라.



(14장, 295쪽 부분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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