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판토 해전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4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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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 그 마지막까지 왔다. 마지막은 늘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하지만 레판토 해전이 의미하는 마지막은 지중해 세계인 중세의 끝을 의미한다. 1571년 10월 7일이 그 운명의 날이었고 대투르크 제국과 기독교 연합 함대 사이에 벌어진 해전을 그녀가 들려준다. 전쟁사지만 잔인함이나 영웅담이 아닌 역사의 바탕에 기인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역사라는 큰 이름의 물줄기에서 파묻혀 보이지 않고 사라진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읽어보게 되었다. 그래서 독자에게 쉽게 다가오는 이야기였다.
 
 기독교 연합 함대란 베네치아 공화국과 로마 교황 그리고 스페인 동맹함으로 이루어졌다. 투르크는 해군 전통이 빈약해서 실전에서 해적이 해군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강한 투르크도 약점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정치적인 입장에서 차이를 극명하게 보인 투르크 내 온건파와 강경파는 갈등하고 있었다.
 
 1571년이라는 숫자를 보면 감도 안 오지만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 급제한 해로 20대였다. 또한 카라바조가 10월에 태어났다. 재미있는 사실 또 한 가지는「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도 레판토 해전에 참가했다는 사실이다. 젊은 날의 세르반테스는 이 해전을 겪으며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레판토 해전은 기독교 연합 함대와 투르크의 해전이었지만 베네치아 공화국에 대해 많은 관심이 간다. 막대한 부를 가진 풍족한 베네치아 공화국은 여러 면에서 매력이 있었다. 에스파냐 왕국이 베네치아 공화국을 좋지 않게 생각한 이유만 보아도 그렇다. 이탈리아 반도를 차지하려던 에스파냐를 가로막은 유일한 국가(강력히 저항)가 베네치아 공화국이었으며 비타협적인 반종교개혁 운동의 진원지였던 에스파냐와 대조적으로 베네치아는 가톨릭 국가이면서도 타종교를 믿는 민족에게 배타적이지 않고 관용적이었다는 점, 정교분리의 입장에 서서 늘 교황청과 일정한 선을 그어온 당시 서유럽 국가에서 유일하게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같은 라틴계 민족이면서도 에스파냐와 베네치아의 민족성이 극단적으로 달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두 나라는 서로의 필요성에 의해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로 변화하는 관계란 전쟁사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늘 있는 일이다.
 
 다시 레판토 해전으로 돌아가자면 당시 상황이 투르크와 기독교 연합 양군을 합쳐 500척의 갤리선과 17만 명의 인간이 충돌한 싸움이었다니 상상만으로도 그 일대의 바다가 덮어온 역사 앞에 진지해진다. 각국의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결국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자면 전쟁은 늘 슬픔이 따른다. 승리했더라도 누군가는 희생하거나 죽어서 이룩된 게 전쟁이기에 말이다. 기독교 연합이란 이유로 그들이 배에 내건 동맹기에는 가운데는 십자가형을 받는 그리스도를 수놓고 그 발치에 동맹 참가국인 교황청과 에스파냐 왕국, 베네치아공화국의 문장을 새겼다. 투르크는 그러면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과 별이었겠지. 터키 역사 교과서에는 레판토 해전이 실리지도 않을 만큼 그들에게는 치욕의 역사라고 하던데 말이다.
 
 치욕의 역사라도 역사는 역사지 아니한가.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에 우세하게 전하더라도 그러니 더더욱 반대쪽도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승자, 강자에 의한 역사를 바로잡거나 제대로 보고자 유적을 발굴하고 다른 기록을 찾는 것일 테니까.
 
 아무튼 무적의 투르크군에게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이후 기독교 세력이 동맹하여 118년 만에 얻어낸 값진 승리가 바로 레판토 해전이었다. 책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말한다. '전쟁은 피 흘리는 정치이고 정치는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라고. 지금도 변함없이 유효한 말이다. 역사란 거대한 물줄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소시민으로 머나먼 나라의 옛이야기가 다시금 삶 속에서 꽃 피는 이유이다. 
 
 
■간단 서평: 전쟁 3부작 마지막. 한 시대의 끝에서, 전쟁사에서 역사의 의미와 이름 없는 이들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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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섬 공방전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5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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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 두 번째 책 「로도스 섬 공방전」을 읽기 전에 로도스 섬을 먼저 찾아보았다. 로도스의 어원은 장미꽃 피는 섬이라는 낭만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이 살기 좋은 기후와 환경을 가진 로도스 섬은 지중해의 낙원 같은 곳으로 지금도 남아있는 로도스인들의 예술작품은 그들의 예술성을 보여주었다. 지중해에 간다면 이스탄불의 소피아 대성당뿐 아니라 로도스 섬도 보고 싶다.
 오스만투르크에서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다르게 이 작은 로도스 섬을​ 침략한 이유는 그곳의 성 요한 기사단을 치기 위함이었다. 1453년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킨 메메드 2세는 수도를 아예 콘스탄티노플로 옮기고 지중해 세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1480년 로도스 섬도 정복하고자 10만 대군을 파견했으나 성 요한 기사단이 버텨냈고 운 좋게도 투르크 병사들은 역병이 도는 등의 이유도 있었다. 이후 1520년 쉴레이만 1세가 로도스를 아예 접수하기로 결심하고 실행한다.
 이슬람 세계에 맞서는 기독교 세계의 최전선 기지 로도스 섬은 에게 해(다도해라는 의미)의 작은 섬일 뿐이었다. 수도복을 걸친 성 요한 기사단은 20대 귀족 출신 수도사로 전투시에나 갑옷을 착용했다. 쉴레이만 1세가 즉위 즉시 로도스 섬을 제압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당시 시리아, 아라비아, 이집트를 비롯한 대정복 사업이 1517년 일단락되었으나 그 와중에도 눈엣가시로 남은 서방 세계의 상징을 부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게다가 투르그 인들이 그쪽으로 가면 성 요한 기사단이 해적질을 했다고 한다. 대국 오스만투르크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물론 로도스 섬 말고도 베네치아 공화국 소유의 크레타, 키프로스도 있었지만 해군력이 약한 투르크가 해군력 강한 그들에게 무모하게 덤비지는 않는다.
책 프롤로그의 이탈리어어로 '카데토'(cadetto)는 "프랑스 가스코뉴 지방에서 생겨나 중세 이후 전 유럽에 퍼진 말. 봉건 귀족의 둘째 이하 아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중세 봉제 아래서 지위나 재산은 모두 장남에게 상속되는 것이 상례였으므로 둘째 이하 아들은 성직이나 군사 방면에서 자수성가해야 했다. 오늘날에는 귀족의 둘째 이하 자제라는 본래 뜻은 사라지고 군사적인 면만이 남아서 육​·해·공군 사관학교의 생도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 프랑스어 cardet, 영어 cadet." (프롤로그 17쪽)

  저자는 로도스 섬의 성 요한 기사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교양 역사서에 저자만의 감성도 살짝 들어있다. 성 요한 기사단과 맞설 세력은 터키 술탄의 친위부대​ 예니체리 군단으로 역시 20대로 절대충성을 했다고 한다. 수도사처럼 결혼, 자기 소유의 집 등이 금지되었고 오직 알라신과 술탄을 따른다고 한다.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이들은 언제나 이렇듯 젊은이들이었다. ​로도스 섬의 성 요한 기사단으로 대부분이 카데토로 20대 젊은이들. 성 요한 기사단 장 파리소 드 라 발레트 28세. 잠바스타 오르시니 25세. 안토니오 델 카레토 20세. 그들과 대적하는 투르크 용사들은 터키 술탄의 친위부대인 예니체리 군단. 당시 술탄 쉴레이만 1세 28세. 이 꽃다운 20대들의 로도스 섬 공방전.

"교황청의 주인이 누가 되든 간에 2년 전 루터의 파문 뒤로 공공연히 활동하고 있는 루터파에 관한 대책이 지상 과제로 간주될테니까요."(안토니오)
"그래. 로마 교황으로서는 만사를 제쳐놓더라도 이것만은 끝을 봐야 되는 문제야. 프로테스탄트라는 루터 일파의 세력이 아직 침투하지 않은 나라에서도 성직자건 평신도건 할 것 없이 동요하고 있어. 나같이 맨날 빈정대기만 하는 놈도 일단 교황 자리에 앉으면 이 문제만은 피할 수 없어. 이교도 투르크한테 어떻게 대처한다 하는 것은 나중 문제지.
 더구나 우리는 유럽 내 세력들이 치고받는 재편기에 전투를 벌여야 해. 운도 정말 없지. 아라곤과 카스티야 군주가 결혼해서 정식으로 통합된 에스파냐, 유럽에서 중앙집권화가 제일 잘된 프랑스, 대륙 진출에 실패한 덕에 오히려 국내 통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영국, 명목상 왕 위의 왕이라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선거후들이 다들 힘이 강해서 중앙집권화에 뒤처진 독일, 그리고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교황청, 나폴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나라들이 균형이라고 하기엔 좀 이상하지만 어쨌든 균형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기묘한 상태를 유지했지.
 그게 조금씩 변하더니 이제 결정적으로 옛날하고는 달라지기 시작했어. 역시 동쪽의 투르크가 자극한 거라고 봐야겠지.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비잔틴제국도 없어지고, 대신에 투르크가 그 자리에 차고앉아서 옛 비잔틴제국 영토의 '계승'이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게 됐지. 투르크는 이 대의명분을 최대한 활용해가면서 북으로는 빈을 압박하고 동으로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을 넘어서 페르시아 땅까지 갔고, 남쪽으로 홍해를 포위했고, 서쪽으로는 이집트부터 알제리까지 북아프리카 전체를 영유하는 대제국으로 성장했으니까. (…중략…) 나폴리 이남은 에스파냐령이 되어버렸지만 밀라노 중심의 북이탈리아 지방 영유권을 두고 두 나라가 다투고 있으니까. 피렌체공화국도 프랑스 밑에 들어가서 형식적인 독립만 유지하는 상태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까 이탈리아에 남은 독립국이라곤 이제 실질적으로 베네치아공화국밖에 없어. 베네치아도 이탈리아 내의 상황에 대처하는 데 급급한 만큼 괜히 동쪽에서 투르크와 문제를 일으킬 이유가 없겠지. 그 때문에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이 로도스가 죽게 내버려두는 거고.
 자, 이런 게 우리가 태어난 고향 유럽이야. 이런 상태에서 성 요한 기사단을 도와 이교도를 정벌하자고 떠들어보았자 누가 이 멀고 먼 남쪽 섬까지 와주겠나? 이탈리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에스파냐와 프랑스를 합쳐 5만 명의 군사가 동원되지만, 그 10분의 1만큼이라도 이곳에 파견해줄 왕은 없어……. 같은 또래인 그들은 앞으로도 세상을 좌우하겠지만, 우리는 외롭게 싸우다 이 남쪽 섬에서 죽는 수밖에 없겠지." (오르시니) / (119~122쪽 부분 인용)

  서유럽의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싸워야 했던 성 요한 기사단. 그들의 신념만이 남아 역사로 전한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야만인 오스만투르크가 아닌 신사적인 오스만투르크의 모습이다. 로도스 섬을 차지하고 나서도 대학살을 감행하지 않고 그저 성 요한 기사단이 떠나도록 두었다. 갈 사람은 가도록 자유롭게. 종교적 이념의 차이로 역사는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고 많은 이들이 피 흘리며 죽었다. 물론 지금도 자살폭탄이나 테러가 존재한다. 다만 예전처럼 사람 대 사람으로 많은 인원이 서로를 죽이지 않을 뿐 전쟁은 끝이 없다.

 다시 책의 내용으로 가서 투르크에게 패할 수밖에 없었던 성 요한 기사단은 이후 로도스 섬을 떠나 방랑하다 몰타섬에 정착했으나 후에 나폴레옹에 의해 이 터전에서 떠나게 된다. 그러나 기사단의 후예는​ 지금도 남아서 의료활동을 한다고 한다. 로마에서 가장 멋지다는 거리로 유명 상점이 많은 콘도티 거리에 성 요한 기사단 본부가 있으며 기사로 존재하지만 예전처럼 결혼을 못하거나 하진 않는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이것으로 기사단 창설의 처음 이유였던 당시의 사명으로 돌아간 것이다. 전쟁 기사가 아닌 의료활동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머나먼 옛이야기만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닿게 느껴진다.

 신념을 지키고자 무모해 보여도 그 무엇과 싸울 수 있는 용기. 그런 대의명분이 나에게는 무엇인가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간단 서평: 전쟁 3부작 그 두 번째. 얇은 책이지만 읽을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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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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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마다 생각나는 이미지나 추억이 있다면 당연히 겨울에는 눈(雪)이겠지. 그리고 이 계절만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어울리는 시간 또한 없을듯하다. 제목만으로도 전체적인 이미지가 떠올라 마음이 차분해지는 책. 그리고 유명한 시작 문장은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렇게 설국으로 빨려 드는 시작의 순간이 좋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7쪽)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는 문장. 그것도 긴 터널을 빠져나온 후에 보는 풍경이라고 상상해보니 이토록 간결하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전할 수 있어서 부러웠다. 잠시 멈춰 서 호흡을 고르며 이 순간을 음미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풍경 묘사를 통해 이미지를 불러내들인다.



여자의 인상은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했다. 발가락 뒤 오목한 곳까지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쪽)

 발가락 뒤 오목한 곳을 찾아보았다. 아, 이런 곳까지 살피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난 살펴보기는커녕 언급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곳이다. 아무리 고전이라도 이런 점은 정말 감각적이라 생각한다. 이 밖에도 손가락으로 기억하는 여자라는 글 등 호흡이 긴 문장도 좋았고 짧은 문장도 좋았다. 물론 일어 자체는 훨씬 서정적이라고 극찬하던데 역시 그건 확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별다른 내용도 없다. 여유롭게 사는 시마무라가 니가타 지방에 가끔 와서 보거나 느끼는 것들과 만나는 이들에 관한 것으로 고마코와 요코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이렇게 할 반전도 없지만 마지막 장면만은 처연한 느낌을 오래 느끼게 한다.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한 번에 쓴 글이 아니라 조각조각 썼다는데 그런 영향도 있을까 싶다. 그래서 설국의 진수는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설국 자체가 주는 고요와 침묵에서 나온다.

 그나마 고마코의 말투나 행동이 귀여워서 발랄함을 준다. 요코는 등장부터 창에 비친 모습에서 신비로움을 주었다. 그리고 관찰자 시마무라 아니 작가는 자연묘사에 뛰어났다. 눈처럼 고요하고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거나 덮어버려 침묵을 선물했다. 독자의 마음에서 잡다함을 뽑아버리는 느낌이었다.


 발레리와 알랭을 비롯, 러시아 무용이 한창이던 무렵에 프랑스 문인들이 쓴 무용론을 시마무라는 번역하고 있었다. 적은 부수의 호화본으로 자비 출판할 예정이다. 지금의 일본 무용계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책이라는 점이 오히려 그를 안심시켰다고 해도 좋다. 자신이 하는 일로 스스로를 냉소한다는 것은 어리광을 부리는 즐거움이기도 하리라. 바로 이런 데서 그의 슬픈 몽환의 세계가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와서조차 서둘 필요는 없다. (…중략…)

 시마무라는 죽은 곤충들을 버리려 손가락으로 주우며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을 문득 떠올리기도 했다.

창문 철망에 오래도록 앉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이미 죽은 채 가랑잎처럼 부서지는 나방도 있었다. 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도 있었다. 손에 쥐고서,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운가 하고 시마무라는 생각했다.

(113쪽과 114쪽. 부분 발췌.)

스스로를 냉소하며 어리광을 부리고 슬픈 몽환의 세계가 태어나고. 자꾸만 시마무라는 작가의 반영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삶을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운가라고. 그의 근원적인 세계관이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작가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이 모두 작가이진 않겠지만 설국은 작가의 집약된 내면세계가 확실할 거란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찍 부모를 잃었고 1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조부조차도 그가 15세 때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그가 겪고 감당해왔을 고독과 슬픔은 이후 그의 글쓰기 밑바탕이 되기 충분했다. 작가를 이해하면 그의 글을 더 이해하기 쉬운 이유가 이것이다. 글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허무함을 이해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삶의 경건함까지 아우를 수 있었다. 적당히 그러려니 하는 식의 이해는 이 책을 지루하게 느낄 뿐이겠지만 살면서 느끼는 허무하던 때를 돌이켜보면 충분히 납득이 갈 것이다.

 한때 허무주의에 빠져 산다는 게 지독하고 처절했던 경험. 이제는 그때처럼 좌절하거나 허무하기 어렵겠지만 돌아보니 그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지나고 나면 다 그렇다는 일반적인 논리에 의한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되어버렸다. 과거는 기억하기에 슬프기도 하지만 추억하기에 어느 정도로는 무마되기도 한다. 사실 그렇지 않으면 미쳐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이 오는 니가타 지방에서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보았다. 좀 더 현실적으로 내 마음속으로 침잠하고 싶을 때 이 책을 다시 읽으면 좋겠다. 작가의 내면 지도를 들여다보며 나와 만나는 지점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생각했다.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그처럼 가족을 일찍 잃어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나만의 다른 무언가를 잃어본 때와 겹쳤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마음 지도는 지독히도 새하얗고 침묵으로 들어찬 공간이었다.

■간단 서평: 줄거리만으로 볼 책이 아닌 작가의 내면세계가 집약된 설국 자체와 만나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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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플 함락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20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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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전문 역사가는 아니지만 그녀의 책은 유명하다. 아니 그녀만큼 집념 있게 한 우물을 파는 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래서 「로마인 이야기」는 끊임없이 독자와 만나는 듯하다. 오래전에 도서관 갈 때마다 조금씩 읽었던 책인데 다시 시작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그녀의 전쟁 3부작을 발견하면서 주저 없이 꺼내들었다.

 다시 작가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고등학생 때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읽고 이탈리아에 관심을 갖고 결국 대학교 졸업 후 이탈리아로 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여러 자료를 토대로 조사해서 책을 집필하는데 몇 십 년이란 시간을 다 바친 사람. 몰입하면 이렇게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 같다. 물론 모든 역사소설은 저자의 주관적 견해가 들어가기에 역사에 대한 상식이 풍부해야 객관적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그래서 선뜻 그녀의 책과 만나는 것을 주저했는데 결국은 시작해버렸다.

 이 책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전쟁 3부작의 첫 권으로 오스만투르크와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의 이야기이자 천 년 넘게 이어온 그리스 로마 문화인 동로마 제국의 끝을 보여준다. 물론 동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서유럽으로 이동한 이들과 이후 피어난 르네상스를 보면 한 문명의 멸망은 다른 문명의 시작임을 알 수 있다. 이교도와 서양 기독교 문명의 충돌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이​ 당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곳임을 떠올리면 여행자들이 그곳에서 느끼는 시공의 역사는 아직 살아 숨 쉬고 있을 것만 같다.

 사실 술탄 메메드 2세가 아니었어도 동로마 제국은 서서히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옛 로마의 영광을 재현할 수만은 없었는데 유럽과 아시아의 가교로 지리적 위치 또한 그랬고 이념도 너무도 달랐다. 이해관계가 얽혀있었으며 동시에 공생과 중립이 존재했다. 그 사슬을 끊어낸 21세의 젊은 메메드 2세​와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의 중심에 있던 성 소피아 대성당. 당시의 비잔틴 제국은 해군은커녕 육군도 없었다는데 어쩌면 예견된 결과일 것이다. 지중해 세계 최고의 도시였던 콘스탄티노플의 가치를 간파한 메메드 2세는 젊고 또한 거침없었다.

 대부분의 역사는 그 초점이 인물 내면 묘사가 아니라 드러나는 업적이나 사건 등에 집중한다. 객관적인 역사 전달을 위해서겠지만 사람이 관여하는 일이니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한 획을 긋는 일들을 한 이들이다. 위대하거나 졸렬하거나. 독특한 인물이나 혹은 평범한 인물이더라도 권력과 만나게 된다면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사실 평범한 이라도 권력을 손에 쥔다면 원하는 바를 손쉽게 얻을 수 있으니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루려는 과정에서 한계와 부딪친다면 더 갈증이 느껴지지 않을까.


 미셸 푸코의 말을 들자면 '권력, 그것은 제도도 아니고 구조도 아니며, 어떤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권한도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복합적인 전략적 상황에 붙여진 이름이다(Foucault, 1976, 122)' (『미셸 푸코, 살림지식총서 26』)

이렇듯 권력은 어떤 상황을 전제로 당시 누군가나 다른 세력과 마주하는 것(대부분 사회지도층이겠지만)으로 메메드 2세만의 권한이기보다 당시 오스만 제국이 나아가기 위한 당면 과제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야망일 수도 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는 발전한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이라는 50여 일의 과정을 보여주며 전쟁에 관심 없는 아니 싫어하는 나 같은 이도 결국에는 재미있게 읽었다.  전쟁 이야기는 재미없지만 과정을 들여다보는 건 좋다. 당시의 상황이나 사람들의 행동을 볼 수 있으니까. 메메드 2세가 당시 동로마제국의 학식 있는 게오르기오스를 등용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약간의 상상력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를 따르며 콘스탄티노플 함락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물론 배경지식을 재검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는데 세계사를 다시 읽어야겠다. 한국사도 그렇고. 그래야 시오노 나나미의 글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더 공감할 수 있으리라. 사실 이 책은 인물 몰입도는 크지 않고 약간 지루한 부분도 있었다. 긴장감도 크진 않았다. 그럼에도 주제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간단 서평: 어렵지 않게 만나는 세계사 이야기 중 한 꼭지. 시오노 나나미의 글 중 하나이겠지만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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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하 (양장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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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세 번째 선물하는 책. 받은이중 1명은 광팬이 되어버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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