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우주 - 세기의 책벌레들이 펼치는 책과 책이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한 대화
움베르토 에코.장필리프 드 토낙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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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와 카리에르의 대담 형식의 책.

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

대신 이들의 대담 형식은 문학, 철학 등을 넘나들어 재미있지만 잘 축약된 정리 형식은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야 워낙 유명하니 그렇다 쳐도 카리에르는 누구인가 했더니 프랑스 출생의 소설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 어떤 영화가 있나 찾아보았더니(책에는 밀란 쿤데라 원작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프라하의 봄)과 「양철북」만 나와있다.) 오오오~~~~ 「시라노」, 「지붕위의 기병」,「써머스비」등 내가 본 영화도 여러 개 있었다. 카리에르는 그래서 영화 이야기도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말발은 물론 글발도 기본인 이들.

그만큼 책에 대한 이들의 여러 이야기와 만나다 보니 유명 작품서부터 전혀 새로운 작가(키르허)까지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난 이 책에서 카리에르의 사려 깊은 성찰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에코야 워낙 유명하니까. :) 그의 입담과 생각의 깊이 또한 이 책의 장점이다.

 


에코 우리가 앞에서 얘기했듯이, 현대의 매체들은 빠른 속도로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리죠.

이런 물건들은 금방 읽을 수 없는 것, 짐만 되는 잡동사니가 될 수 있는데,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 하죠?

현대의 문화 산업이 지난 몇 년 동안 시장에 쏟아 낸 모든 물건들보다 책이 우월하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었습니다. 따라서 만일 내가 쉽게 운반할 수 있고, 시간의 파괴 작용에 대한 저항력을 증명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난 책을 선택하겠습니다.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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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에르 그런데 두 분은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을 볼테르가 어떻게 번역했는지 아십니까? <Arrête, il faut choisir et passer à l'instant / De la wie à la mort ou de l'être au néant

(잠깐, 선택을 하고 당장에 넘어가야 한다. / 삶에서 죽음으로, 혹은 존재에서 무로.)>

이렇게 되어 있어요. 꽤 괜찮지 않습니까?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의 제목을 이 볼테르의 번역에서 따왔는지도 모릅니다. (58-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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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에르 과거는 끊임없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현재보다도, 그리고 어쩌면 미래보다도 더 많은 놀라움을 감추고 있지요.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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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에르 이렇게 여과의 개념에 대해 토론하다 보니, 우리가 여과하여 마시는 포도주들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군요. 그런데 요즘에 나온 어떤 포도주는 <여과되지 않은> 점을 장점으로 내세운답니다.

이 포도주는 불순물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고, 바로 그것들이 ㅡ 여과하면 걸러져 버리는 ㅡ

아주 특별한 풍미를 가져다주는 거지요. 어쩌면 우리는 학교에서 지나치게 여과되어 불순한 맛들을

상실해 버린 그런 밍밍한 문학을 맛보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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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내가 가르치던 한 학생은 각 도시의 관광안내 책자만을 수집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아무 쓸모없는

것들이라서 정말 아무런 값어치도 없는 책들이었죠. 하지만 그는 그 책들을 바탕으로 해서,

<수십 년에 걸친 한 도시의 변천사>라는 주제의 박사 논문을 썼답니다.

그런 다음 이 논문을 출간했죠. 즉 그는 수집한 책들로 책 한 권을 만들어 낸 셈이죠. (162-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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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에르 걸작은 걸작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걸작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위대한 작품들은 독자인 우리를 통하여 서로 간에 영향을 준다는 점도 덧붙여야겠지요. (…중략…) 우리가 거쳐 온 삶의 행로들, 우리의 개인적인 체험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우리가 얻는 정보들, 심지어는 우리 집안의 불행한 일들이나 아이들의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옛날의 작품들에 대한 우리의 독서에 영향을 끼치는 겁니다.(…중략…) 우리가 책을 펼치면, 책은 우리에 대해서 얘기해 주지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 시대부터 지금까지 살아 왔기 때문이며, 그런 우리의 기억들이 책에 덧붙여지고 섞여 들었기 때문입니다. (179-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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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사실 『햄릿』은 걸작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안에 얽혀 있는 다양한 원천들을 조화롭게 정돈해 내지 못한 산만한 비극에 불과합니다. 이 때문에 이것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햄릿』이 걸작인 까닭은 그것의 문학적 질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걸작이 된 것은 바로 우리의 해석에 저항하기 때문이죠. 말도 안되는 말을 내뱉어 놓으면 이름이 후에에 남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 법입니다.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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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내가 조금 편협할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침대에 누워서도 잠이 들지 못하고 몸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고 있는 누군가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30페이지를 할애해야 하는지를.> 이것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번째 편집자 리뷰의 일부입니다. 『모비 딕』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지요. 

<이런 작품이 젊은 독자층의 관심을 끌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보바리 부인』을 쓴 플로베르에게 보낸 답변은 이랬지요. <당신은, 잘 묘사된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히 불필요한 세부들의 무더기 속에 당신의 소설을 파묻어 버렸습니다.> 에밀리 디킨슨에게는 <당신의 각운은 모두가 잘못되었습니다>라고, 또 콜레트의 『학교에 간 클로딘』에

대해서는, <열 권도 팔지 못하게 될까 봐 겁납니다.>라고 말했지요. 조지 오웰에게는 그의 『동물농장』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어요. <동물들에 대해 쓴 이야기를 미국에서 파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안네의 일기』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말했고요. <이 아이는 자신의 책이 단순한 흥밋거리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222-223쪽) + 에코가 말하는 멍청한 사람들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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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에르 플로베르는 바보짓bêtise이란 <결론지으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보는 자기 혼자서 항변의 여지가 없는 결정적인 해답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그는 어떤 문제를 영원히 종결짓기를 원하는 것이죠. 그런데 종종 어떤 사회에 의해 하나의 진리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이 미련함은 역사적으로 거리를 두고 보면 지극히 교훈적입니다. 즉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지요. 우리는 우리가 가르치는 내용을 미와 지성의 역사에 국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국한했다고 해야겠죠. 하지만 우리가 말했듯이 이 미와 지성의 역사는 인간 활동의 지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추(醜)의 역사 말고도 ㅡ 당신도 관심이 많으시겠지만 ㅡ 오류와 무지의 역사를 검토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232-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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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에르 인간의 어리석음을 연구하면서 처음으로 발간하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멍청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고말고요! 다른 사람들을 멍청이로 취급할 때, 우리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어리석음은 바로 그들이 우리에게 내미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지요. 항

구적이고 정확한, 그리고 충실한 거울입니다.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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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에르 정말이지 우리 정신은 넋 나간 소리를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수집하는 모든 책들은 우리 상상력의 바로 이런 현기증 나는 차원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헛소리와 광기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리석음이 있는데, 이 양쪽을 구별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245쪽)

 

책은 죽지 않는다
영구적인 저장 매체? 그것만큼 일시적인 것도 없다
닭들이 도로를 건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데에는 한 세기가 필요했다
워털루 전투 참전자들의 이름을 모두 대기
여과된 것들의 복수
오늘날 출판되는 모든 책은 포스트-인큐내뷸러이다
기어코 우리에게까지 도달하려 하는 책들
과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천치들, 멍청이들, 혹은 우리의 적들이 준 것이다
그 무엇도 허영을 막을 수는 없다
바보짓에 대한 예찬
인터넷, 혹은 <담나티오 메모리아이>의 불가능성
불에 의한 검열
우리가 읽지 않은 모든 책들
제단 위의 책, <지옥>의 책
죽고 나서 자신의 서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위의 목차만 보아도 흥미가 생길 듯.

인용한 부분은 극히 일부이며 이나마도 적는데 시간이 걸리니 개인적인 각 발췌에 대한 이유나 느낌은 생략한다. 나중에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또 모르겠다.

책은 사라질 것인가? 과연 책을 대체할 수 있는 게 도대체 있을까.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처럼의 책. 다만 보관성이 더 좋아진다면 어떨까.

종이 형태가 아닌 다른 형태로 변화할 수는 있겠지만 또 다른 문제는 만약 책이 영구 보존된다면

수많은 이 책들은 또한 어찌해야 할 것인가. 과연 모든 책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가치는 또한 누가 정한단 말인가.

 

 

서평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좋지만 이제 서평을 쓰는 일은 아마도 없을 듯.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것뿐.

 

카리에르 마치 우리가 통과하는 사건들이 우리를 변화시키듯, 독서가 행해질 때마다 책은 변화되는 법이죠. 위대한 책은 항상 살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 자라나고 늙어가되, 결코 죽지는 않습니다.

시간은 책을 비옥하게 만들고 변화시킵니다.

반면 흥미를 끌지 못하는 책들은 역사 옆으로 미끄러져 나가 사라져 버리죠. (179쪽)

에코 판매대 위에 보이는, 하지만 우리의 것은 아닌 책들의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 정신이 살찌워지지 않았던 사람이 우리 가운데 몇이나 될까요? 책을 그저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거기서 어떤 지식을 길어 낼 수 있었던 경험 말입니다. 우리가 읽지 않은 그 모든 책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약속하고 있지요. (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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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29 16:31   좋아요 0 | URL
저는 서평을 일차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쓰고, 그 다음으로 기억하기 위한 것입니다. 책에 대한 느낌이 정리되지 않은 채 산만하게 방치하면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나지 않게 되더라고요.

은비뫼 2015-05-29 22:04   좋아요 0 | URL
공감합니다. 저도 그래왔어요. 정리하고 기억하려고. 그런데 요즘 다른쪽에 시간을 두느라 메모만이라도 남기려 합니다. 분명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