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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게"
      
 
나의 눈물에는 왜 독이 들어 있는가

봄이 오면 봄비가 고여 있고

겨울이 오면 눈 녹은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있는 줄 알았더니

왜 나의 눈물에는 푸른 독이 들어 있는가

마음에 품는 것마다

다 독이 되던 시절이 있었으나

사랑이여

나는 이제 나의 눈물에 독이 없기를 바란다

더이상 나의 눈물이

당신의 눈물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독극물이 든 검은 가방을 들고

가로등 불빛에 길게 그림자를 남기며

더이상 당신 집 앞을

서성거리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살아간다는 것은 독을 버리는 일

그동안 나도 모르게 쌓여만 가던 독을 버리는 일

버리고 나서 또 버리는 일

눈물을 흘리며

해독의 시간을 맞이하는 일

  

정호승, <이 짧은 시간 동안>에서 "사랑에게" 332쪽.

 

 

 시가 인생을 위로해줄 때가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시인이 말했다.

 절실하게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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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혹은 거품의
눈물,
그 생애에 걸친 소금기


눈물은 왜 바다처럼 찝찔해야만 할까
 


폭풍우, 폭풍우도 없이!
 


 

(진이정,「눈물의 일생」전문)

 

참고 발췌「시인세계」2003 여름호.
       원시집은 진이정의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세계사, 1994)

                       ■ 진이정(1959-1993)
1959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남. 경희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1987년《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1993년 작고.
 

 이웃님의 포스트를 보고 진이정을 기억해내다
그의 유일한 한 권의 시집「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를 읽지는 못했다. 시 계간지에서 기획특집으로 다룬 글을 통해 그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위에 올린 시를 보며 얼마 전 올린 함민복의「눈물은 왜 짠가」도 떠오른다. 사실 1989년 유하, 박인택, 함민복, 차창룡은 동인을 결성해 주마다 만나 새로 써온 시를 읽고 합평회를 열었다고 한다. 가령 진이정의「진창」은 시인이 원고지 뒷면에 썼다고 한다. 주로 원고지 뒷면을 사용했던 거 같다고 차창룡은 당시를 회상한다.「아트만의 나날들」을 읽으며 나는 시인을 이해하고 싶어졌었다. '죽으면, 그렇다…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라는 말 그리고 긴 시에서 그의 허무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절한 시인. 나는 여태 아트만(참자아)을 찾는 중이다. 그러나 시인은 어쩌면 벌써 찾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나 빨리 우주로 속해버린 것일지도….

 

-4341.01.28.달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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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정겨운 함민복

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긍정적인 밥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제1부 선천성 그리움 / 제2부 달의 소리 

제3부 거대한 입     / 제4부

 

따뜻하고 절실한 마음. 그리고 지독한 짝사랑이 떠오르는 시집. 제3부에는 물론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풍자하기도 한다. 바네트 뉴먼의 「디오니소스」가 표지그림인데 제목과 잘 맞아떨어진다.

시인의 가을이란 시의 일부분처럼 시인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고 싶다.

(가을의 원문: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4341.01.12.흙의 날. 작년 9월에 만난 책. (07144-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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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죽으면 내 영혼의 어느 부위가 제일 맛있을까? 
  

 (14쪽,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6.) 


 
    
··백번 그녀를 만나고 한번도 그녀를 만나지 못하였다·· 
 

모기가 내 눈동자의 피를 빨게 될지라도 내 결코 당신을 잊지 않으리라 ··    

 (71~72쪽, 흐린날의 연서中)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음 / 이레






 함민복. 그가 쓰면 산문도 다 시적이이구나.
모든 글 하나하나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는 사실은 내게 벅찬 행복을 주고, 때로는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
는 맹렬한 작은 화로였다. 어쩌면 이렇게 글마다 마음을 매이게 하는지. 이 깊은 성찰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뱉어내던지 말이다.
 강화도에서 욕심 없이 살아가는 이 시인의 마음이 맑아 그런 깊음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이리라. 그곳의 마니산은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다. 오르다 잠시 쉬면서 한눈에 들어오는 강화의 바다와 갯벌에
취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갯벌을 직접 밟아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그저 산을 오르기만도 솔
직히 어려웠었다. 남들보다 힘겹게 산을 오르기 때문이다. 
 시인이 푹푹 빠져가며 걸었던 그 갯벌이었을지도 모르는 갯벌이 시공을 초월해서 내 안에 들어온다. 그
가 갯벌서 걷다 가끔 뒤돌아 마니산을 볼 때의 시점과 내가 오르던 마니산에서 갯벌을 내려다보던 시점이 겹쳐진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작가와 마음으로 만난다. 그 뜨뜻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다. 아무래도 시인은 추억의 시간을 나눠주는 이들인가 보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마음이 깊은 사람들이다.

 삽화도 정겹고 함민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정겹다.
날마다 책을 읽어도 마음 한편이 뭉클해지는 책들이 따로 있다. 바로 이 책처럼.
이 책을 읽게 해주신 지인에게 마음을 전한다.


-4341.01.11.쇠의 날. 작년 10월에 만난 아름다운 책. (07143-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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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천성 그리움/긍정적인 밥
    from 마음의 책장에 비는 내리고 2008-01-13 00:11 
    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긍정적인 밥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이 모든 것에 싫증나 내 죽음의 안식을 희구하노라.
재덕(才德)이 걸인(乞人)으로 태어난 것을 보고,
공허가 화려하게 성장한 것을 보고,
순진한 신의(信義)는 불행히 기만당한 것을 보고,
찬란한 명예가 부끄럽게 잘못 주어진 것을 보고,
처녀의 정조가 무참히도 짓밟히는 것을 보고,
올바른 완성(完成)이 부당하게 욕을 당한 것을 보고,
강한 힘이 절름발이에 제어되어 무력화된 것을 보고,
예술이 권력 앞에 벙어리가 된 것을 보고,
바보가 박사인 양 기술자를 통제하는 것을 보고,
솔직한 진실이 잘못 불리는 것을 보고,
선한 포로가 악한 적장을 섬기는 것을 볼 때,
이 모든 것에 싫증이 나 나 죽고자 하노라.
죽는 것이 사랑을 두고 가는 것이 아니라면.

(소네트 시집中 66) 75쪽.

..............................................................................

어찌하여 나의 시에는 새로운 장식(裝飾)이 없고,
다양한 모습이나 발랄한 변화가 없는고?
어찌하여 나는 유행을 좇아
새로 발명된 방식이나 신기한 혼합법에 곁눈질 아니 하는고?
어찌하여 나는 한결같이 한 가지에 관해서만 쓰고
나의 창작에 이미 널리 알려진 의상만을 입혀서
글자 하나하나가 내 이름을 드러내게 하고,
그들의 집안, 그들의 내력을 훤히 말하게 하는고?
아! 나의 고운 님이여. 이는 내 항상 그대에 관해서만 쓰고,
그대와 사랑만이 언제나 나의 주제(主題)이기 때문이라.
이리하여 나의 최선의 작품은 옛글에 새옷 입히고,
이미 사용되었던 바를 다시 사용하게 되노라.
저 태양이 날마다 새롭고도 오래 된 거와 같이
나의 사랑도 이미 말한 것을 두고두고 이야기하노라.


(소네트 시집中 76) 85쪽.

  ■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4.26~1616.4.23)
  - 국적 : 영국
  - 작품 : 셰익스피어 4대비극, 5대 희극등 다수
 


소네트시집
셰익스피어 지음, 피천득 옮김 / 샘터사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유럽의 14행시) 154편이 수록되었으며 피천득 선생님이 옮겼다.
앞부분은 결혼을 장려하는 시로 드러내놓고 자식을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니 결혼해야 한다고
그야말로 권유하는 시. 그밖에 열렬한 사랑의 고백과 밀어들이 가득하다. 때로 시에 관한 시도 있는
등 단순히 사랑시로만 채워진 시집으로 볼 수는 없다. 시집의 뒷부분에 소네트의 개념과 시집에 관한
내용이 잘 담겨있다. 번역에서 예스러운 ~느뇨라는 말투를 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보다
묘한 것은 셰익스피어가 그의 남자친구와 그 남자친구의 연인에 관해 썼다는 사실이다. 남자친구와
검은여인 이야기는 책 뒷부분에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그와 무관하게 시로써만 읽는 것도 좋다.
어차피 글이란 작가의 의도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자기만의 세계로 끌어당겨 느끼는 것이니까
말이다.

-4340.12.18.불의 날. (07135-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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