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냄새를 맡아보시오.˝
검은 빵 덩어리를 잘라내면서 빵집 주인이 말했다.
˝퍽퍽한 빵이지만, 맛깔난다오.˝
그들은 빵냄새를 맡았고, 그는 맛보라고 권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128쪽,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그토록 읽고 싶어했던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만났다. 그를 수식하는 리얼리즘, 단편, 무라카미 하루키 추천. 이런 말이 아니어도 이 책은 은근한 매력을 발했다. 어찌보면 건조하고 담담하며 일상적인데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이야기라 그럴까. 책을 읽는동안만 환상이나 어떠한 현실밖의 세계에 발을 내딪는게 아니라 오히려 덮고 나서의 여운이 긴 그런 글. 카버문학의 진수가 이런 것이구나를 깨달은 책이다. 얼마 전에 읽은 권여선의 책과도 비슷한 연장선의 책이었다.
내게 기억에 남는 단편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열>, <대성당>이었다. 다음에 다시 이 책을 읽으면 그때는 다른 것을 발견하고 느끼겠지만 첫 느낌은 이렇다. 특히 마지막 <대성당>이자 책 제목인 단편은 아름다웠다. 사람이 사람에게 곁을 내준다는 일에 대해서 돌아보게 된다.
"이 사람아, 다 괜찮네." 그 맹인이 말했다. "난 좋아, 자네가 뭘 보든지 상관없어. 나는 항상 뭔가를 배우니까,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니까. 오늘밤에도 내가 뭘 좀 배운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지. 내겐 귀가 있으니까." 그가 말했다.
(303-304쪽,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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