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 듣는 자, 기억하는 자, 그리고 술마시는 자 - 나는 술마시는 자>


기사단장 죽이기를 다읽었다. 통신사 음악앱에 하루키가 좋아하는 클래식이라고 모아둔걸 들으며 읽다 도저히 취향이 아니라 집어치우고, 컨츄리송과 함께 슬렁슬렁 읽어냈다.

어느 음악가는 공간에 들리는 소리를 잡아채 기록한다했고, 어느 조각가는 덩어리에서 필요없는 부분을 깍을 뿐이라 했으며, 작가는 시작하면 스스로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했다.

그소리를 듣고, 그형상이 보이는 것을 재능이라고 하나보다. 낡은 산꼭대기 가옥, 오페라가 흐르고 물감냄새가 나는 작업실에 독자를 데려가 창작 활동이라는게 이런거야라며 하루키가 한켠 보여준다.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온갖 주제를 자기방식으로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대단한 작가다. (무려 타국 음악어플에 본인이름으로 된 클래식모음이 있는 작가라니! 그런데 개인적 취향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째즈 였으면 더 좋았겠다)

언제나 소설과 비소설을 함께 읽는 편이라 이걸 마치고 시대의 소음과 러시아혁명을 읽는다. 그다음엔 아마 세여자를 읽지싶다. 세 조선 혁명가에게도 지향이었을 러시아혁명은 어쩌다 시대의 소음과 같은 경직된 통제사회로 가게되었을까.

삶이 힘에 부쳐서 조금은 뜨거웠던 이들의 글을 읽는다. 주말에는 장장 6시간짜리 에니어그램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듣기로 했다. 조금, 조금더 우울과 힘을 내서 싸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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