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앙토넹 아르토에 따르면 '삶이란 물음을 남김 없이 태우는 것'이라고 한다. 

요즘 나를 사로잡은 질문은 이런 것이다.
왜 우리는 박근혜 정권을 선택했는가? 이다.
정치란 현재의 제약을 뛰어넘는 담대한 상상력과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여야 한다.
그런데 최근 내가 목도하는 정치는 법과 절차라는 최소한의 규제조차 무시되며 폭력과 협박으로 내달리고 있다. 

문제는 이 정권이 투표로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가 해고를 어렵게하고, 복지를 늘리겠다는 입에 발린 거짓말을 하기는 했지만, 과연 그 말을 믿어서 지지한 것인가) 누군가 말했듯이 히틀러도 투표로 선출되었다. 미국대선에서 백만장자 트럼프의 주 지지층이 저소득 백인이라는 것 또한 놀랍다. 경제적으로 벼랑끝에 몰린 이들의 분노와 관심을 엉뚱한 화풀이 대상을 제시해 인기를 끄는 오래된 수법이 여전히 먹혀들고 있다. 아니 솔직히 좌절과 두려움이 너무 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후대에 의해 석유문명으로 불릴 우리 사회는 명확하게 한계지점에 와 있다. 우리는 경이로운 생산력 증대의 시기에도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로 배곯는 자와 비만 질환에 시달리는 자가 공존하며, 가난한 자와 전쟁으로 죽어가는 자들의 피로 배부른 자들이 으스되며 살아가는 두려운 세상을 만들었다. 오래된 책들에서 답을 찾는다. 전운영 선생의 시선과 새로운 자본 읽기를 골랐다. 솔직하게 말하면 원인분석 따위는 필요없고 행간에서 약간의 희망을 발견하고 싶다. 


 


요즘 인터넷 글들을 너무 읽었더니 문장이 엉망이다. 해괴한 단어들이 옮아버렸다. 

처방전으로 마음에 드는 비극 두편을 골라본다. 왠지 칼의 노래는 읽고 팔아버리고 중고로 또 사고를 반복하고 있다. 다시는 안볼 것처럼 헤어졌다 뜬금없이 너무 읽고 싶다. 빨강의 자서전은 헤라클레스에게 죽임을 당하는 빨강괴물의 입장에서 노래한단다. 비극적 사랑이야기라니 취향이다.  


왠지 너무 슬픈 책들만 골라버렸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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