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정부 냉소주의자와 생활하는지라 당연하게도 무정부주의도 냉소주의도 싫다. 영화 리틀포레스트에 '누군가가 나를 죽일 줄 알면서도 그저 기다리는 삶을 살기는 싫었다'는 대사가 나온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아도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애처러운 발버둥은 사랑스럽다. 몸으로 부딪혀 깨닫지 않은 것을 입에 담지 않는 사람들은 믿음직하다.
<동의 해신 서의 창해>편에서는 어지로운 나라의 왕이 되기로 한 자, 천명을 받아 그를 왕이 되게 했으나 태생적으로 백성을 착취하는 국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끊없이 회의하는 기린이 있다. 천명은 기회이나 그 기회를 잡을 것인지는 인간의 의지인바, 기린은 국가를 원하는지 천명을 가진자에게 묻고, 그는 터무니 없이 사치스럽게 지어진 궁과 황폐해진 땅, 굶주린 백성을 갖기로 한다.
그러나 그의 기린은 그의 진심과 자질을 끝없이 의심한다. 도대체 왜 이 가난한 나라의 왕이 그는 되었는가. 민중은 국가가 없어도 존재하지만 백성이 없는 국가란 없다. 백성이야 말로 국가의 몸통이라고 왕은 말한다. 그렇다면 애당초 국가란 없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이 책에 어떤이는 말하길 언제나 인간은 무리지으려하고 누군가는 왕이 되려해왔으니,기왕이면 천명을 받은 왕이 낫지 않은가 한다. 다행히 이야기속 왕은 내 백성이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그 나라 백성은 운이 좋았다.
현실세계에서도 기왕지사 국가를 없앨 수 없다면, 민중을 위해 일해줄 바른 권력자를 고르려 하지만, 권력자가 되기위해서는 강하고 영리해야하니 저 모든 것을 가진 자를 선거라는 뽑기를 통해 가리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
운에 맡기기엔 결과는 너무나 치명적이다. 경제난에 자식을 죽이고, 아이들은 꿈을 잃고 방에 쳐박히며, 노인들은 목을 맨다.
책 속 세상에서 천의를 거스르면 왕이 실각하고, 기린은 목숨을 잃는다. 현실에선 민중의 과거와 미래를 차곡차곡 쥐어짜 외국 곡간에 싾아두고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살아간다.
다시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 우리에게 국가가 짐일 뿐이지만 없앨 힘은 없다. 그런데 가만히 있기엔 현실은 너무 참혹하다. 답은 수만개다. 지역화폐일 수도 있고, 직접민주제의 확대일 수도 있고, 직접민주제를 할 시간이 있게 기본급을 올리는 문제일 수도 있다. 여하튼 설령 문제를 풀지 못하더라도 허우적 거리기를 멈추지 말자. 결국 세상속에 가라앉아 죽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