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랑귀인 나는 오설록에서 50%할인 한다는 메일을 받고 장바구니에 세일물품을 하나씩 담았다.
그런데 보니 3만원 이상일때 예쁜 찻잔세트를 준다고 되어있길래, 다시 한번 팔랑귀를 흔들며 하나씩 더 담아서 3만원을 채웠다. 마침내 받고 보니 이런! 어여쁜 찻잔은 없고 안에 차 거름망이 있는 자그마한 텀블러가 같이 왔다.... '회사에서 차마시는 니가 무슨 찻잔이야?' 이렇게 인공지능적으로 판단한 다음 내게 텀블러를 보낸걸까?
유홍준 교수의 교토문화답사기가 더디게 읽힌다. 돌아올 봄에(가능하다면 벚꽃철에) 싼 표를 구한다면 교토나 가볼까 하며 여행서 읽듯 읽으려던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꽤 두툼한 읽을거리다. 연구자들이야 깊이 이런저런 기원을 탐구하겠지만, 나는 어느 나라의 영향을 받았든 일본 사람들이 일본땅에 만든 것은 그들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그 사람의 정신이 묻어있다. 일본카레는 일본 것이고 김밥은 우리것이고 뭐 그렇다.
일전에 본다던 일본드라마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에 보면 연하의 남자친구에게 또래의 짝사랑녀가 생긴다. 그러자 이 연상녀는 그녀와 장기를 두는 상상을 한다. 짝사랑녀가 '젊음'이라는 장기말을 던지자 연상녀는 패했다며 고개를 숙인다. 이런 바보! 나라면 '성실'이라는 패를 던졌을텐데. (이 여주인공은 정말 어처구니 없게 성실하다)
그닥 많이 접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일본 문화의 요체를 성실과 정진에 있다고 본다. 어느 사회에서나 긍정적인 가치임은 틀림없지만 사람됨의 주요가치로 무엇을 보냐의 차이는 있는듯 하다. 대를 이은 가업 이야기나 목조로된 사찰이 불에 탈 때를 대비해 그 목제를 조성한 숲 이야기 등 일본 이야기 속에 끝없이 강조되는 성실함을 본다. 우리나라 드라마속 터프한 로맨스 가이도 만나본 적이 없는데 일본드라마속 상냥하고 성실한 남자들이 현실에 있으리라 물론 생각지 않지만, 성실과 정진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높지 않나 생각해본다.
쓸데 없는 얘기가 이렇게 길어진건 찻잔으로 다시 보내달라는 말도 못하고 소심하게 텀블러도 괜찮다며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나를 보면 우리의 주요 정서는 조화(어우러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근혜님은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는가. 이런 생각이 드니 또 괜히 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