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가 느끼는 슬픔은 너무 깊고 너무 완전해서, 그 자신이 슬픔 자체인 것만 같다. 그가 붙잡고 있는 것, 그가 간직한 것, 자신의 실패 하나하나가 살을 파고드는 손톱 같다. 자신의 인격, 두려움, 스스로를 아는 능력,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인식하는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 - 157쪽

 요즘 하루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오전 열시다. 6시쯤 일어나는 딸은 젖을 먹고 좀 놀다 잠이 들고, 집안일도 얼추 끝나고 차한잔과 과자 하나를 좋아하는 쟁반에 올려놓고 소파에 앉는다. 라디오를 조그마하게 틀어놓고 컴퓨터 속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외로움. 어디선가 윗집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저기 누군가 나처럼 있구나'라며 위안을 받았다던 전업주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저녁이 되면 오전 열시에는 나를 그토록 즐겁게 하던 고요에 질려버린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받고자 한다. 우리는 무리짐승이다. 

 

하긴 주부만 그렇겠는가. 이 소설 속 남자는 잘나가는 주식투자가다. 엄청나게 비싼 그림들을 비싼 집에다 걸어두고, 청소부와 영양사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날 원인 모를 고통이 그를 덮친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니, 죽기 직전에 전화할 곳 하나 딱히 없는 집에만 쳐박혀 지내는 외로운 이혼남이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이런 순간이 오는지 모르겠다. 삶이 자신이 원하던 것에서 너무 멀리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 말이다. 이제와서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꼬여서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가서 인생의 친구를 구하고, 만나선 티브이만 보던 가족들과는 어찌하면 애정돋는 관계로 돌아간단 말인가. 길에서 헌팅이라도 해야하나?

 

 소설속의 주인공은 전화도 하고, 윗집 문도 두드리고, 길거리 헌팅도 한다. 남들 눈에 이상해 보일만큼 호의를 여기저기 뿌리며 말을 건다. 그 결과 '서로에게 넘을 수 없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해도 지금 그들은 함께 있고, 어느 정도는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아무것도 없는 삶에서 그래도 뭔가 조금은 있는 훨씬 나은 삶으로 진입한다.

 

 음... 그래서 나는 9월에 출근하기 전까지 딸아이가 둘인(요즘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더라) 옆집 아주머니에게 열심히 인사를 해보기로 했다. 또 일주일에 한번 두달동안 베이비마사지도 하러 가기로 했고(사실은 벌써 좀 귀찮다 --) 다음주부터는 아마도(?) 운동도 시작해 보기로 한다. (출근복이 안맞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5킬로가 빠지기는 할까?) 그러니까 아이와 함께인 생활에 많이 적응을 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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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7-04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은 찾으면서도 내가 남을 도와주는 것은 번거롭다고 여기면 동무가 생기지 않는다네요.

머큐리 2012-07-0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출근 60일전이란 태그가 안습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