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이와 다른 사람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행위까지도 성찰과 토론의 좋은 주제로 여겼다.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 "하루 종일 모여 앉아있어도 의로움에 관한 얘기는 없이 조그만 지혜를 과시하기에나 바쁜 사람들, 참 딱한 사람들이다."
(개인으로서의 자아를 고찰 대상으로 삼은 사람, 공자)-86쪽
공자는 백성에게서 노동력 아닌 물자를 거두는 것은 호혜적 관계를 망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통치자가 재물을 쌓아놓기 시작하면 어디에서 그칠지 한도가 없을 것이고, 백성은 불만을 가지게 되어 필요한 일이 있어도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되리라는 것이었다.-168쪽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답답하게 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게 된다.-182쪽
극도의 참상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어진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온나라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을 정도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을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초나라왕이 자기 군대가 포위하고 있던 지역에 자반이라는 사람을 보내 성안 사정을 살피게 하였다. 그런데 성안에 들어가보니 자식을 서로 바꿔 잡아먹을 지경의 참혹한 사정이라 왕에게 돌아와 '우리군대가 군량이 떨어져간다고'는 것을 적에게 알려줬다고 이야기해 초나라왕이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위의 글은 그런데 왜 초나라왕이 자반을 처벌하지 않았을까에 대한 동중서의 대답이다.)-196쪽
사람에게는 다섯가지 못된 재간이 있는데, 강도질과 도둑질은 거기 끼지도 못한다. 첫째는 통찰력이 있으면서 독을 품은 마음이다. 둘째는 편파적이면서 행동이 완고한 것이다. 셋째는 거짓을 말하며 논쟁을 즐기는 것이다. 넷째는 기억력이 좋으면서 추악한 것만 담아놓는 것이다. 다섯째는 잘못을 잘 저지르면서 변명이 궁색하지 않은 것이다. 이 못된 재간 가운데 하나만 가진 사람도 종당 군자에 처형당하지 않을 수 없다.
(소정묘라는 군둥에게 연설하며 다니는 자를 공자가 처벌한 이유를 설명한 대목)-211쪽
공자는 자식 입장의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받았던 것을 되돌려줌에 있어서는 부모에게서 받았던 절대적 사랑을 잊어서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자식에게 불가능한 수준의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가 어떻게 느낄지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 것 하나만을 공자는 요구했다. 자식이 그 한가지만 지킬 수 있다면 어진 자식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222쪽
자식이 예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이나 어떠한 도덕적 충동도 없다면 "예는 무엇에 쓸 것인가?"라고 공자는 묻는다. 그러나 예법의 절도에서 도움을 얻지 못한다면 따듯한 사랑과 착한 마음을 가진 똑같은 자식이라도 태도를 제대로 취하지 못한 끝에 효를 이루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223쪽
공자 스스로는 자신에 대해 어떻게 말했을까?(중략)
나는 어렸을때 신분이 비천하였기에 천한 일에 재간이 많다. 나는 관직에 등용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예에 능하게 되었다.
내게 지식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천한 사람이라도 나에게 성심으로 물으면, 나는 양쪽 긑을 다 두드리며 정성을 다하였다.
누구 못지않게 노력해왔지만 군자의 도리를 실천하는 데는 아직도 미치지 못했다.
나가서는 대신들 섬기는 일, 들어와서는 어른들 모시는 일, 장례 치르는 일을 감히 게을리하지 못하며 술 때문에 곤란을 당하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이 어찌 내게 문제 이겠는가.
거친 밥을 먹고 맹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개 삼는 그 곳에 즐거움이 또한 있도다. 의롭지 못한 길로 얻는 재산과 신분은 내게 한낱 뜬구름이로다.
재산을 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면 저자 바닥에 채찍을 들고 서 있는 경비 노릇이라도 나 또한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 -254~255쪽
내 사람됨이 힘을 쏟을 때는 먹을 일을 잊고, 즐거울 때는 근심도 잊어 늙어가는 줄도 모르는 그럼 사람이라고 하지 그랬느냐.
성인과 어진 이를 내가 어찌 자처하리오. 다만 행함에 지쳐하지 않고 가르침에 싫증 내지 않는다는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내가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사람들이 꼭 알게되어 있으니.-256쪽
사람들의 도덕적 품성과 감정은 메말라가고 있다. 이 도가 이 시대 이 나라에서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천하만대에 통할 것을 바라겠는가. 나는 그때 깨달았다. [시경]과 [서경]도, 예와 악도 천하를 혼란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내가 해온 것보다 더 좋은 길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천명을 알고 천도를 맞이하는 사람은 마음이 무겁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찾기는 찾은 것이다.
공자가 찾은 것은 '모든 것을 맞아들이며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걱정하며 모든 일을 하는 것'이었다.-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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