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참 수다스러운 작품이다. 

오래된 산부인과를 배경으로 그 곳에 의사로 일하던 데릴사위가 병원의 밀실에서 흔적없이 사라지고, 그의 아내는 20개월째 임신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사라진다는 소문이 횡횡하다. 이유없이 감이 좋은 탐정과 고서점 주인, 형사, 삼류작가와 잡지 편집자가 이 산부인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추적해가는 것이 큰 줄거리다. 

그런데 이야기 사이사이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온갖 주제를 떠들어댄다. '영'은 무엇인지, 뇌, 마음, 의식, 무의식, 설화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이야기의 공동체 안에서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작가는 이렇게 열심히 독자들에게 이론을 가르킨 다음 사건 속에서 실례로 써먹는다.  

뇌가 정보를 선별해서 편집해 기억시킨다는 이야기를 한다음 주인공이 사실과 다르게 사물을 인지한다던가, 현기증고개라 불리는 곳의 설화를 알려줘서 기괴한 분위기를 잔뜩 조성하더니 마지막엔 그 길에 구조를 슬적 알려주기도 한다.  

어려운 대화가 잔뜩 오가는 이 책의 놀라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기괴하고 어두운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나를 나로 인지하게 하는 것들 조차 불신하게 되는 공포. 내가 눈으로 본 것조차 신뢰할 수 없는 커다란 혼란에 휩싸인다. 그러나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존재의 이면엔 내가 모르는 이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는 종교와 미신, 관습에 대한 맹목적 복종의 시대를 지나 과학에 대한 맹신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먼 훗날 우리 시대의 '과학 맹신'을 돌아보면 지금 우리가 오래된 관습에 대해 가지는 한심한 느낌과 별다르지 않은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요즘 '당연한 것'들에 대한 부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러나 이해와 포용이 배제된 부정 또한 아무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후다닥 음울한 소설 속 세계에서 안온한 현실로 돌아온 내 머릿속은 약간 더 몰랑해졌다. 그리고 평범한 것들의 범위도 조금은 더 넓어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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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1-08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정리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