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지금 어디 있니? 내 목소리 들리니?
술한잔 걸치고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면 감성에 젖어 여기저기 의미도 없는 전화를 돌려보거나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찾아보곤 한다. 그냥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감성이 되살아난다. 뭔가 놓쳐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
1Q84 3권을 나오자마자 꽤 오래전에 읽어치웠는데 이제사 몇 자 적어본다.
나는 이 책이 3권이 나올지 몰랐다. 2권까지만해도 이야기는 충분히 완결성을 가진다. 2권까지 읽고 중고샵에 팔아치웠다. 그런데 3권이 나타났다. 앞의 두권보다는 꽤나 친절하게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고 슬슬 풀려간다.
거기에는 시간이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느낌이 있어요. 앞이 뒤여도 괜찮고, 뒤가 앞으어도 상관 없는 듯한."
아오마메는 보다 정확한 표현을 찾으려 한다.
"뭔가 타인의 꿈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감각의 동시적인 공유는 있어요. 하지만 그 동시라는 게 어떤 것인지 파악이 안되요. 감각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데, 실제 거리는 지독히 멀리 떨어져 있어요."
- 404쪽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언급하면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읽어본 적이 없고 아마도 앞으로도 읽을 기회가 거의 없을(이 책을 언급한 대부분의 글에서 이 책의 난해함과 방대함을 이야기 했다) 책을 묘사하는 이 대목이 1Q84를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주인공들이 교차해서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꿈속처럼 일상이 아주 조금 이그러져있다.
이것이 계속 산다는 것의 의미다, 아오마메는 그것을 깨닫는다. 인간은 희망을 부여받고, 그것을 연료로, 목적으로 삼아 인생을 살아간다. 희망 없이 인간이 계속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은 동전 던지기와도 같다.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는 동전이 떨어질 때까지 알지 못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옥죄어온다. 온몸의 뼈라는 뼈가 모두 삐걱거리며 비명을 울릴 만큼 강하게.
- 112쪽
세상의 보통사람들이 할 수 있는데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너무도 많다. 그건 확실하다. 테니스도 스키도 그중 하나다. 회사에 취직하는 것도,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것도.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할 수 있고 보통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도 조금쯤은 있다. 그리고 그 조금쯤의 일을 아주 잘할 수 있다. 관객의 박수가 날아오는 동전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을 향해 어쨌든 내 솜씨를 보여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 467쪽
중년남성이 젊은 시절을 꿈꾸는 듯하다. 티비이요금수납원과 탐정,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한가지를 물고늘어지며 살아온 케릭터들이 가장 실감나게 그려지고, 그 속에 한길을 우직하게 달려온 중년 남성 하루끼를 느낀다. 소설 속 사랑조차도 뜨겁기 보다 끈질기다. 한편으로는 어느때 놓쳐버린 사랑을 떠올릴 때의 잔잔한 애수가, 또다른 한편에서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지만 작은 아주 작은 희망에라도 매달려서 살아내려는 단단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3권은 1Q84의 주인공들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팩이니 주인공들이 그립다면 일독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