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사람들. 우리가 무엇때문에 계속 사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 540쪽

 이 세상을 돌리는 거대한 시스템의 작은 톱니.  

삶은 조금도 반대방향으로 약간 삐딱한 방향으로 도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만 같다. 거기다 느닷없이 여기저기서 날라오는 불행의 돌덩이들이 암초처럼 기다리고 있는데 왜 우리는 살아갈까?  

소설은 1976년 뉴욕 사람들 - 창녀, 아일랜드에서 온 성직자, 이주민, 판사, 베트남전에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들 - 의 삶을 담담히 보여준다. 복숭아 처럼 달콤하던 삶이(그들 중 몇몇에겐 가혹하게 짧았지만) 어느날 흠집이 나고, 상처에 휘청거리면서도 끝내 살아내는 것 말이다. (물론 그들중 몇몇은 살아내지 못했다)

이 소설엔 대머리에 검은 망토를 입은 작은 바퀴벌레 같은 유태인 판사가 나온다. 그는 미국 사법제도의 죄인들이 흘러들어오고 나가게 하는 문이다.  

그는 훨씬 적은 봉급을 받는 판사직을 선택했다. 이 범죄로 들끓은 도시에 법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의 의미 뿐 아니라 있어야만 하는 법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가졌었다. 그는 뉴욕의 도덕성을 캐내는 중요한 광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저 이 거대한 시스템의 문이 되었고, 자신이 지지한 전쟁에서 자신의 아들을 잃고도 슬픔을 말하지 못하는 아비가 되었고, 그 슬픔을 아내와 나누지도 못한다.   

여기 창녀가 있다. 어린 나이의 낳은 그녀의 아이도 창녀가 되었고, 어린 나이에 어미가 되었다. 아이의 교과서가 필요해서 다시 시작한 창녀일. 어쩌다가 그 일을 그녀의 아이가 하고 있을까? 어쩌다가 아이가 마약쟁이가 되었을까? 

아이를 엄마와 함께 거리에 서게 한 삶을 만든 하느님은 엉덩이를 세게 걷어차여야 한다.  

아니다. 아이의 교과서를 위해 거리에 서야 하는 세상을 만든 사람들이 엉덩이를 걷어차여야 한다. 아이를 위해 하루이틀의 연차를 냈다 해고 당하는 세상을 만든 사람들이 혼이 좀 나야한다. 하느님은 인간까지 신경쓰시기엔 너무 바쁠테니까.

나는 나를 미스 블리스(행복, 축복이란 뜻)라고 부른다, 난 아주 행복하니까. 남자들은 그냥 내 위에서 움직이는 육신일 뿐이다. 검은 성기들. 그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 350쪽 

이 와중에도 그녀는 그녀 자신을 사랑했고, 그녀의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했고, 한 남자에게 마음을 주었다. 단지 우리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 사랑을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지, 내 아이를 어떻게 보호해야할지, 아니 스스로를 어떻게 소중히 해야할지 알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우리 대다수처럼.

그는 언젠가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사랑이란 말을 자신들이 배가 고프다는 것을 과시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그는 '그들의 욕구를 미화하기 위해서'라는 식으로 말을 했었다. 

- 384쪽 

창녀인 그녀도, 판사인 그도, 남부의 부유한 집안 출신 부자집 부인도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과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알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친구가 되고 싶은 그녀에게 '나 오늘 너무 외로우니 옆에 있어달라'는 말을 유수한 대학 학위가 있는 그녀도 '돈을 지불해 드리겠다'는 바보같은 말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니까.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 말로 내뱉는 순간 달라지는 것들, 언제든지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 - 고향집 마루에 어머니와 밥상을 마주하고 앉은 순간,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가진 순간 -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나를 찌르더라도 더 많이 겸손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 드라마를 보고도 매번 울고 마는 - 더 깊게 이 모든 아름다움들을 음미할 수 있는 나이듬. 

이 상처투성이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대단하다. 이 잔인한 시대에 약간의 인간다움을 더 유지하려고 애쓰는 우리는 또한 동지다. 다정스런 벗이다.

글로리아는 세상에 수치라는 건 없으며, 삶이라는 건 수치스러워지길 거부하는 일이라고 했다는 이야기? (554쪽)  

우리가 처음에 알던 사람은 우리가 마지막에 아는 사람이 아니다.(587쪽)  

우리는 휘청거리며 나아간다. 재슬린은 생각한다. 침묵으로 작은 소음을 들이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우리 자신의 행동을 발견한다. 그것으로 거의 충분하다. (5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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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10-07-12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급 포스팅...ㅎㅎ,

흠...이 책의 선정은 맘에 드신건지...

무해한모리군 2010-07-12 20:44   좋아요 0 | URL
정리를 제대로 못했어요.

책은 좋은 책들이 그렇듯이 어떤 삶의 보편성에 닿아있었어요.

2010-07-13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