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누구일까? 애써 잡은 물고기를 지키기 위해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불운한 노인일까, 아니면 노인으로부터 그 물고기를 빼앗기 위해 피냄새를 맡고 몰려든 탐욕스런 상어일까? (중략)
그런데 어젯밤에 나는 깨달았어. 나는 노인도 아니고 상어도 아니야. 나는 바로 그 노인에게 잡힌 물고기야.(중략)
낚싯바늘에 입이 꿰어 고통에 몸부림치다 곤봉에 맞아 끝내 아름다운 몸체를 뒤틀며 숨을 거둔 물고기. 고깃배에 매달인 채 상어들에게 살점을 물어뜯기고 피를 흘려 바닷물을 붉게 물들였던 바로 그 청새치. 그러다가 마침내 온몸의 살점이 모두 떨어져나가 거대한 뼈만 남은 채 돛대에 수치스럽게 매달린 청어치. 그게 바로 나야.-147~1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