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모든 바에서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4월
품절


담배나 술을 거대 미디어를 통해 광고하는 한편, 대마초를 금지해서 연간 많은 인간을 범죄자로 만든다. 옛날 유럽에서는 커피를 금지해서 위반자를 기요틴에 올린 녀석이 있었는데 그와 비슷한 난센스다. 뭐, 어느 시대라도 국가나 권력이 하는 짓은 엉터리다.
규제가 있건 없건 일본은 머지않아 술과 마약의 세례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일본에서는 물건과 돈 대신에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중략)
교양이 없는 인간에게는 술을 마시는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교양이란 학력이 아니라 '혼자서 시간을 죽이는 기술'이기도 하다.
요인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나머지는 일본인이 이 잔을 받아 다 마실지 어떨지다. 나는 마셨다. 마약을 택하지 않았던 까닭은 에틸알코올이 가장 손에 넣기 쉬운 합법 마약이다. 그것도 정신적 요소와 상관없이 일정 이상의 양을 복용하면 누구에게나 확실히 '듣는' 상당히 강렬한 마약이다.-108쪽

혼자서는 외롭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부랑자와 꼭 붙어 자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분수를 중심으로 등거리로 흩어진 하룻밤 가족을 이룬다. 이 과묵한 가족에게 분수는 텔레비전 같은 것이었다.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었다.-123쪽

소설이나 만화에 나오는 알코올 중독은 술이 떨어져 괴로워 몸부림치면서,
"술, 술을 줘."
라고 절규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배가 고플 때 그때까지 잊고 있던 술의 존재가 떠올랐다. 혹은 이상하게 불안하고 초조할 때는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이런 때에 위스키를 한잔 마시면....'
바로 지우려 해도 그 생각은 일상의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었다. 참을 수 없이 마시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막연하게 여기서 한잔 마시면, 하는 것이다. 내 안에 그런 회로가 생긴 것 같다. 불안, 고통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마신다'는 회로에 접속된다.-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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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09-11-19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양이란 학력이 아니라 '혼자서 시간을 죽이는 기술'이기도 하다.
: 이 말에 공감이 가네요. 리뷰 제목도 정말 맘에 쏙 들어요. 추천 꾹~

무해한모리군 2009-11-19 09:24   좋아요 0 | URL
오늘 출근길에 읽은 에콜로지카에 이런 대목이 나오더군요.
이 사회는 생각과 욕망을 운하처럼 표지판이 잘 된 길로만 흘려보내라고 한다고요.

문득 그렇다보니 아주 조금이라도 이 표지가 없는 순간 '멍'해져 버리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그렇게 '멍'하고 있거나 쓸데없는 뭔가를 소비하는게 사회가 만들어 놓은 표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리뷰가 많이 밀려서 간단히 밑줄긋기 해놓은 곳에 이리 찾아주시고 댓글을 달아주시어 고맙습니다.

머큐리 2009-11-1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대신에 (인스턴트)커피를 넣으면 바로 저의 얘기로 돌변하는군요..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11-19 13:03   좋아요 0 | URL
술도 커피도 하여간 뭐든지 넣으면 제 얘기인 저는 어쩝니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