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출처 : http://blog.naver.com/yeopa/30072571305
성공회대학교 노동대학 : http://nodong.skhu.ac.kr/index.php
(아 정말 저녁 7시에 성공회대학교까지 갈 수만 있다면 너무나 멋진 강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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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를 넘어서지 못하는
조직노동에 대한 성찰
(조이여울 / 여성주의저널 “일다” 기자)
[자료1] 노동시장, 여성의 지위 어떻게 변했나
조이여울 기자/ 일다 2008년 5월 15일자 기사
여초(女超) 현상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남성교원할당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과 더불어 ‘초등교원 여초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거론된 것을 비롯해,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등에서 여성합격자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선 것에 대한 매체의 관심도 유달랐다. 대기업 임원급 여성 수가 증가한 것에 대해, 여성의 승진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인 ‘유리천정’이 무너졌다고 진단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노동시장의 문은 여성에게 얼마나 열려있는가. 여성들은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누리고 있는 걸까. 한국사회에서 여성노동자의 지위는 변화했을까.
공교롭게도 KTX여승무원, 기륭전자, 이랜드로 대표되는 여성노동사안들은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저항과 사회적 지지여론에도 불구하고, 수년째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발이 묶여있다. 비정규직과 파견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 단결권 억압, 여성들이 다수인 직무에 대한 성차별 통념과 불법파견,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외주화 확산 문제는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겪고있는 현실이다.
과연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는 얼마나 변화했는지, 여성노동의 현 주소를 찾아가보자.
법제도 바뀌었는데 현실은왜?
“소수의 여성들이 상위 고위직으로 들어가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여성의 고시합격비율이 높아지는 것 같은. (사람들은) 뭔가 큰 변화가 있는 것 같다고 여기는데, 상당히 소수죠.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의 전반적인 지위는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고 체감합니다." (정형옥)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의 전반적인 지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가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0.2% 정도에 그친다. 20년 전인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당시에 비해 5%밖에 증가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여성임금은 남성의 67.8%에 불과해 무려 30% 이상 격차가 있다. 이 같은 지표들을 토대로 보았을 때에도, 노동시장 내 여성의 지위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정형옥(성공회대 여성학 강사)씨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여전히 낮은데도 불구하고, 갈수록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차별이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성별로 직무를 분리하는 방식이다.
작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연구한 ‘유통업계 여성비정규직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놓여있는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 한가운데 ‘성별직무분리’가 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통서비스업 내의 20개 업무 중에서 남녀의 비중이 40~60%인 "중립" 직무는 3개에 불과해, 결국 대다수 업무가‘남성의 일’, ‘여성의 일’로 나뉘어 있었다. 실태조사를 진행한 연구팀은 "현장의 노동자들이 ‘성별 격차’를 대단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그것은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성별의 노동자 즉 "비교의 대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정형옥씨는 "여성들이 받는 불이익을 이야기하려면, 누구에 비해서 불이익 받는지 비교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성별로 직무를 분리해버려서 여성들과 유사한 일을 하는 남성들이 없기 때문에 불이익에 대해서도 비교하기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성별로 직무를 분리하는 방식은 성차별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으면서도, 여성들이 성차별에 대해 문제제기하기는 더욱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의 일, 여자의 일’ 아직도
성별 직무분리는 유통업계만 아니라 금융 쪽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2006년 증권노조 여성위원회가 진행한‘증권산업 여성비정규고용실태조사’에서도 성별직무분리가 임금과 고용형태, 승진 등에서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의 격차를 심각하게 벌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당시 실태조사를 진행했던 정희선(현 전국운수산업노조)씨는 "단일하게 한 가지 차별만이 존재하면 문제의식을 갖기가 더 쉬운데,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면서 특히 ‘고졸여성, 대졸남성’과 같이 성별 직무분리가 학력과 결합되어 마치 "(차별이 아닌) 당연한 신분이자 자격"처럼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정희선씨는 특히 ‘왜 지금도 남자의 일, 여자의 일이 구분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철도공사의 경우에 기관사는 거의 다 남자들이죠. 지하철이나 전기 쪽도 여성이 별로 없고. 만약 여자기관사가 뽑혔다 하면 그게 미담이 되고, 인생 성공기가 되고, 이슈가 되죠. 당연한 일이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항공 쪽 조종사들도 거의 여자가 없죠."
‘남자의 일’이라고 인식되는 일자리들이 많을수록 그만큼 여성들의 취업은 제한을 받게 된다. 정희선씨는 "주요 공기업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여성의 경우 아주 엘리트들만 본사 관리직으로는 몇 들어갈 순 있을 텐데, 일종의 양극화라고 봐야죠. 관리직에만 소수 뽑고, 기술직이라든가 아래로 내려가면 전혀 없는 현상이 나타나는 거에요. 통념적으로 대학졸업장 필요 없는 안정적인 직업들, 직종들엔 여자들이 갈 수가 없어요. 대신 콜센터 같은데로 가게 되는 거죠."
“당연히 남자의 일"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에, 여성들은 아예 처음부터 구직을 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는 점도 악순환을 지속시키는 한 요인이 된다. 정희선씨는 "노동조합도 이제 ‘채용’의 문제에 대해 개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동조합이) 여성고용이나 장애인고용과 같은 이슈를 새로 개발해서, 성별로 구분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데 아직 인식이 없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도 교육이 되고 캠페인이 되지 않으면 남자의 일은 앞으로도 계속 남자의 일이 되겠죠."
일하는 엄마의 삶의 질은 개선되었을까
빈순아(전국여성노조 정책국장)씨는 아이를 키우는 여성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보육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나아질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 때도 노동공약 자체를 별로 얘기한 바가 없는데, 그나마 공약을 내놓은 것이 보육이죠. 보육은 책임지겠다는 둥 큰소리 쳤지만 피부로 와 닿는 변화가 없어요."
빈순아씨는 어린이집이 지역마다, 국가가 관리하는 형태로, 저렴하게 누구나 아이를 보낼 수 있도록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저소득층의 경우엔 보육료 감면혜택이 있지만,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나 한부모 여성의 경우엔 아직도 보육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보육이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여전히 다수의 여성들이 보육을 떠안고 있는 현실이잖아요. 아이를 믿고 맡길 수만 있다면, 여성의 노동력은 상당히 달라질 것입니다."
공보육 강화와 더불어, 여성노조는 현안으로 ‘성별 임금격차’ 문제를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은 왜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일까. 성별 임금격차 문제는 여성의 빈곤과 경제적 자립 문제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그러나 정작 "성별 임금격차에 대한 데이터나 연구가 별로 많지 않다"고 한다.
“같은 시간 일하는데도 왜 성별 임금격차가 크게 나는 것인지, 연구를 통해 상세하고 구체적인 원인을 분석해보려 합니다. 이를 토대로 여성운동 내부에서 바꿀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자고 활동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여성노동의 이원화, 소외된 여성들에게 ‘초점을’
한편,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은 여성이 훨씬 높은 상황이지만, 일부 여성들 중에는 전문직을 가지고 자신의 생애경력 관리를 하는 층이 생겨난 것에 대해 여성노동시장이 "이원화"되었다고 분석하며 여성들 간 격차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은수미(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씨는 "(여성들 중에) 남녀고용평등법의 효과라고 보여지는 일부 ‘개선된’ 층이 있다"면서, 반면 저임금을 받으며 시간이 지나면 더욱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여성들은 제도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갈수록 여성노동시장이 양극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도적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여성노동자들은 간병인, 도우미, 청소용역, 백화점 판매원과 같은 서비스직,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100만원 미만 월 소득을 받는 여성들이 이에 해당한다. 사회보장제도에서도 비껴가 있고, 경력관리가 되지 않으며, 건강이 악화되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임금이 줄어들고 고용불안에 떠는 여성들.
은수미씨는 저임금을 받는 여성노동자들과 비정규노동자들의 심각한 노동현실에 비해, 여성운동이나 시민단체들 내부에서 이러한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은 너무 미약한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했다.
“남녀고용평등 정책과 적극적 조치 등이 어떤 여성들에게 효과가 있고, 어떤 여성들에게는 효과가 없었는지 모니터링을 해봐야 할 때입니다. 명확하게 혜택을 받지 못한 층에 대해서는 새로운 대책이 만들어져야 하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야 합니다. 초점을 옮겨야 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선 실태조사부터 시작해야 할 단계인 것 같습니다."
[자료2] 여성386은 어디에… -"결혼과 함께 사라지다"
조이여울 기자/ 일다 2003년 8월 11일자 기사
‘386’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30대의 나이에 80년대 학번이고 60년대생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시대와 나이와 학력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용어이니만큼 별로 좋은 표현이라 할 수 없고,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사장될 용어라 생각한다. 다만, ‘386’이 과거 암울했던 시기 사회변혁을 부르짖었던 이들을 지칭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젠 정치적으로 새롭게 등장한 세력들을 흔히 통칭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용어를 빌어오기로 한다.
여성정치세력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이전에도 대학의 젊은 여성들, 혹은 여성운동권들 사이에선 ‘여성386은 어디에 있는가?’하는 의문이 제기됐었다. 각종 신문이며 TV에서 소위 ‘386 인사’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 그러나 그 인사들 중에 ‘여성’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언론이 ‘386’의 현재 위치를 조명했을 때에도 카메라에 잡힐 만한 인물들은 거의 다 남성이었다. ‘386’이 곧 남성들을 지칭한다는 것은 1980년대의 정치적 상황을 다룬 영화 <박하사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영화에서 억압과 투쟁과 좌절과 타협으로 점철된 시대적 아픔을 겪어낸 이들은 전부 남성이며, 여성들은 단지 그들의 ‘첫사랑’이거나 ‘성매매 대상’이거나 혹은 ‘아내’로서만 존재했다.
존재했으나 잊혀진 이들
너무나 ‘당연하게도’ 여성386은 존재했다. 다만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여성정치세력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면서 '사라진' 여성386들을 수소문했다. 당시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는지,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왜 보이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런 의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이런 질문에 솔직하고 통찰력 있는 답변을 해 줄 취재원을 찾은 것은 몇 주 전의 일이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니던 시절 학간 연대조직에서 활발한 활동을 폈고 졸업 후 기성 운동조직에 몸 담았었던 정모씨. 정씨는 인터뷰에 앞서, 자신 뿐 아니라 당시 활약했던 여성386들의 삶을 함께 돌아보며, 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평가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씨와의 인터뷰는 "존재했으나 잊혀진 ‘여성386’들의 삶에 전형적인 패턴이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운동판의 남성 패거리 짓기
“당시엔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운동의 성격 자체가 여성배제적이었던 것 같아요. 꽃병(화염병) 던지는 전투조가 앞장을 서고, 여자들은 뒤에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남학생들에게 꽃병이나 벽돌을 깨서 날라다 주었죠. 선봉에 서는 이들은 언제나 남학생들이었는데 투쟁의 양식이 워낙 폭력적이고 남자들에게 유리한 방식들이었어요. 군인들처럼 잘 달리고, 힘이 세고, 화염병 잘 던지는 게 필요했죠."
대학운동사회의 지도부들 역시 남성들이 장악을 했다. 남녀공학의 경우 총학생회장단뿐 아니라 투쟁국장, 총무부장, 기획부장 대부분 남학생들로 구성됐다. 여학생들은 학술부장, 문화부장을 맡았다. 전대협(한총련의 모체) 집회 등 대단위 집회에선 사회를 보는 이들도 모두 남성이었다.
정씨는 대학 4학년 때부터 학간 연대조직에 들어가 일했기 때문에 지도그룹들과 만날 기회 많았다고 했다. 그들은 다 남자들로 구성돼있었다. 소수의 여자들이 문화부에 소속돼있었을 뿐이다. 큰 행사 운영은 물론, 대학 동아리조직 등 작은 단위들 조차도 지도그룹은 남자가 80~90% 장악했다. 그렇다고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의 수가 적었는가 하면 당치않다. 남성들의 수 못지 않았고, 열성적으로 활동했으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던 이들도 많았다.
“사회로 진출하면서부터 눈에 띄게 배제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시민운동으로 나아갈 때, 남자들끼리 모여 뭔가를 궁리하기 시작한 거죠. 패거리 짓기의 시작인 셈인데 능력 있던 여자선배들은 거의 제외됐어요. 단체, 연구소 등 조직이 만들어질 때 그룹의 남성들끼리만 주도를 한 거죠. 내가 활동했던 문학운동판에서도 30대 중반까지의 젊은 여자 선배들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기성 문학운동단체(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의 남자들은 남자후배들만 끌어줬죠.”
산산이 부서진 꿈 혹은 대단한 착각
그렇다면 활동의 모델이 되어줄 만한 여자선배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 답은 정씨의 인생경로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답은? 아마도 남성386의 ‘인생경로’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을 ‘결혼’이다. 학생문학연대조직에서 일하던 정씨는 당시만 해도 ‘동등하게’ 활동을 해왔던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하자마자 바뀐 게 뭔지 아세요? 이름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정00란 이름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누구부인’으로 불리게 됐어요. 결혼 전엔 동료였는데 말이에요. 내 남편을 ‘형’이라 부르던 이들은 나를 ‘형수’라고 부르게 되는 식이죠. 점차 조직에서 내 자리도 없어졌고 집안에 틀어박히게 됐어요. 반면 남편은 그 대단했던 조직에서 중요한 자리에 앉아 활동을 계속해나갔죠."
정씨는 ‘남편과 부인은 일심동체’ ‘남편이 내 몫까지 밖에서 일한다’ ‘나의 일-아내로, 며느리로, 어머니로서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운동이다’라는 기존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모 조직 문화부 간부수련회를 우리 집에서 했어요. 그 때 난 밥해줬어요. 항일무장투쟁처럼 보급투쟁을 한 셈이죠. 정말 고마운 맘으로 정성을 다해서 했다니까요. 그것밖에 조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거에요."
그러나 세뇌를 하면서 자기위안을 삼기엔 현실을 견디기 너무 힘들었다. 정씨는 자신이 남편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건강한 활동가’이기 때문이라 했다. "내 운동에 도움이 될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나의 운동을 빛나게 해 줄 조력자로 선택한 거예요. 산산이 부서진 꿈이었죠. 현실은 전혀 달랐어요." 정씨는 결혼과 더불어 시댁의 경조사를 다 도맡게 되었고, 남편을 변호하고 커버해주고, 그의 모든 것을 다 챙겼다. 아이를 낳고부터는 양육에 매달렸다.
“한 번은 남편의 여성동료가 집에 온 적이 있어요. 그 친구가 말하길 ‘다들 언니 칭찬을 해요. 가난하고 너무 힘든 상황인데도 선배(남편) 일을 하게 배려해주고, 조용하게 사는 거 보면서 후배들이 훌륭하다고 말해요’ 하는 거예요. 내가 그랬죠. 아니라고. ‘남편 일이 곧 나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남편의 운동은 남편의 운동일 뿐이고 남편 인생과 내 인생이 같이 있지 않다는 걸 매일 피부 깊숙이 느끼면서 산다’고. ‘그래서 너무나 힘들다’고."
정씨는 "남편이 날 억압하면서 집에 있어야 한다고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할 수 있으면 해봐라 하는 식이었죠. 그렇지만 자기 운동의 시간을 나눌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여자 희생 위에 선 남성386들
정씨는 주위 다른 여성활동가들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려줬다. 무엇보다 자신은 ‘옥바라지’를 안 한 게 천만다행이라 했다. 너무 많은 결혼한 여성활동가들이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는 것으로 젊은 세월을 보냈으니 말이다.
“지금은 유명인사가 된 남자와 결혼한 선배가 있었는데 두 사람은 결혼하기 전엔 동등하게 일했다고 볼 수 있어요. 서로 감옥살이할 때 옥바라지도 돌아가면서 했으니까. 그러다 결혼을 했는데, 남편은 문학예술청년단체를 크게 만들었죠. 물론 돈은 한 푼도 못 벌었고 오히려 있는 돈을 조직에 가져다 썼죠. 그 선배는 어떻게 됐겠어요? 가정경제 꾸리느라 시어머니와 애기옷 장사했어요."
현재 잘 나가는 모 단체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는 남성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과외며 입시학원이며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다는 친구 이야기, 연구소를 차리고 이를 기반으로 경력을 쌓아 온 남편과 그의 뒤에서 운전연수를 하며 가족생계를 꾸려갔던 부인의 이야기… ‘여자 희생 위에 선 남성386’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문제는 운동권 여성이 비운동권 남성과 만나 결혼하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것.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시피 당시 여성들이 ‘비혼’을 택하는 일 역시 매우 드물었다. 즉, 많은 경우 여성386들은 남성386의 뒤에서 헌신하며 가리워진 삶을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386의 삶, 개인의 일 아니다
정씨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혼 후에야 정씨는 자신의 결혼생활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됐다. ‘이게 내 개인의 일인가’ 반문도 해보았다. 개인의 문제라 생각하려니 너무나 억울한 것들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정씨가 선뜻 인터뷰에 응한 것도 자신의 삶, 그리고 사라진 여성386들의 삶을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로 바라보길 원했기 때문이다.
“이혼을 하고 나니 나 자신이 잘 보이더군요. 결혼 이후 내가 겪었던 일들이 과연 나만의 문제였나,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정리해서 얘기할 수준은 아니지만 분명히 대한민국 여성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내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죠."
정씨는 최근 한 친구의 이혼소식을 들었다. 1980년대 후반에 공장에 취업해 파업을 주도했던, 훌륭한 노동운동가였던 그 친구는 결혼과 동시에 인생이 ‘찌그러졌다’고 했다. 친구는 병들어 누운 시아버지 병수발을 들었고 아들 둘의 양육을 도맡았다. 친구의 남편은 내놓으라 하는 마초였다는데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두 사람이 이혼을 했다는 것이다.
“10년간 참고 또 참으면서 살았던 친구인데 어떤 경위로 이혼을 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 남편 보기도 싫고 답답하게 사는 친구의 모습도 보기 싫어 연락 안 한지 꽤 됐는데, 조만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아야겠어요."
[자료3] 노동자 ‘연대’ 요청합니다 - KTX여승무원들의 호소
조이여울 기자/ 일다 2006년 10월 11일자 기사
“억울해서 (투쟁을) 포기할 수 없어요. 불법 파견으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억울하게 당해왔는데요."
추석 연휴가 끝날 무렵, 서울 용산역 철도노조 건물 옆에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만난 이도경씨(부산KTX승무지부 조합원)는 사회초년생이던 여승무원들을 폭발 직전까지 몰고 간 일터에서의 일들에 대해 다시금 이야기했다.
그것이 바로, 노동부마저 철도공사가 KTX여승무원들의 업무를 한국철도유통(구 홍익회)에 도급한 것에 대해 "적법"하다고 판단한 지금에도, 승무원들이 2백일 넘는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법파견, 노동자의 삶을 어떻게 만드나
“처음에 입사했을 땐 집에서 업어주고 환호했어요. 350여명 모두 정년 보장, 준공무원 대우한다고 했거든요. 수업시간에도 철도공사 관리자들도 그렇게 얘기했고요. 서류로 받아놓은 게 없어 아쉽죠.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하나씩 이건 아니구나 싶은 일들이 계속되는 거예요."
첫째, 승무원 교육단계부터 문제였다. 철도공사가 아닌 철도유통에서 일을 맡아 하다 보니, 유통은 공사 측으로부터 돈만 챙기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교육시간을 대충 때우는 정도로 진행을 했다. 승무원들은 업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열차를 타면서 스스로 일을 터득하고, 서로 모여 논의해서 노하우를 쌓아야 할 지경이었다.
둘째, 승무원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관리조차 되지 않았다. 철도유통은 출결 사항만 체크할 뿐이지, 승무원들의 업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업무에 필요한 장비조차 제대로 마련해놓지를 않아 곤란을 겪었고, 승무일정표도 제대로 짜주지 않아 근무에 형평성이 없었다. 즉, 어떤 사람은 일요일에만 쉬고, 어떤 사람은 가장 일이 많은 날에만 계속 일하게 되는 것이었다.
셋째, 업무와 역할의 문제였다. 철도공사 직원인 열차팀장 1명과 철도유통 소속인 승무원 3명이 한 차량에 탔다. 차내 손님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한 역할뿐 아니라, 구간마다 해야 하는 검표 업무도 승무원이 했다. 원래 팀장의 역할이었던 자유석 검표까지 승무원에게 맡겼고, 차 내에서 차표 끊어 수익금을 챙기는 일도 승무원이 했다.
유실물 처리도 승무원이 했다. 열차에서 내리면 여러 가지 차내 취급에 대한 일들을 건마다 모두 보고하고 정산해야 하는데, 그 마감 업무도 승무원의 몫이었다. 심지어 사고가 났을 때도 팀장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아 승무원들이 손님들을 일일이 상대하고, 여기 저기 연락하여 상황 보고를 해야 했을 정도다.
넷째, 월급과 성과급 즉 대우의 문제다. 승무원들은 기차 안에서 보내는 7시간 외에도 1시간 전에 출근해 유니폼 입고 준비하는 시간, 마감시간까지 합하면 하루 9~10시간을 일했다. 출퇴근도 일정치 않고 밤차로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숙박하고 새벽 차로 올라와야 하는 일정임을 감안하면 강도 높은 노동시간이다. 그렇게 일하고 받는 돈은 월급 120만원.
반면 철도공사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인 팀장은 경력에 따라 400~500만원을 받았다. 승무원들이 가장 괴로운 업무로 꼽는 것이 차 내 수익금을 걷는 일인데, 그렇게 걷힌 수익금은 팀장의 성과급으로 돌아갔다. 칭찬을 해주는 민원이 들어오면 그 성과도 팀장에게 돌아갔다. 같은 공간에서 팀장보다 중요한 업무를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승무원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말할 수 없었다.
다섯째, 납득할 수 없는 평가 시스템이었다. 1년에 2번 시험을 보고 레포트도 내야 했다. 그런데 승무일정이 각자 다르다 보니, 같은 시험을 6일에 걸쳐 보는 식이었다. 전혀 공평하지 않은 것이다. 근무태만이니 고객들의 평가니 해서 가감을 한다는데, 기준도 알려주지 않았고 평가서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래 놓고 1등부터 350등을 매겨서 붙여놓는 것이었다.
여섯째, 대우가 더 나빠졌다. 첫 직장이라고 억울해도 참고 또 참으며 일했는데, 1년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월급이 깎였다. 게다가 한 열차에 3명 탑승하던 것이 호남선에서 2인 탑승으로 바뀌면서 전체 다 2인으로 줄인다는 얘기가 들렸다. 안 그래도 인원이 모자란 상황인데 ‘내년에 계약 안돼’ 라는 말이 돌았다. 정년까지 보장한다더니,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노동자라면, 우리의 이 투쟁에 함께 해달라
현재 철도공사는 노동부 "적법" 판정에 의기양양해하면서, 새로 도급을 준 KTX관광레저에 들어오면 정규직으로 입사시켜 주겠노라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승무원들이 KTX라는 노동현장에서 제 역할을 하고, 노동자로서도 삶의 존엄성을 가지고 살려면, 철도공사에 "직접고용"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KTX승무지부 민세원 지부장은 "이렇게 명백한 불법 파견에 대해서 당사자가 포기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싸워왔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불법 하청으로 시달려도 구제할 수 있는 길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 사안이 왜 중요한지, 왜 같이 해야 하는지, 노동자들과 모든 시민들이 알아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민세원 지부장은 "지금은 국감 준비를 하고 있는데, 국감 통해서 철도공사와 노동부의 문제를 폭로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정치인들에게 "성실하게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는 한편, 노동운동 진영에 대해서도 "이제껏 우리 문제에 대해 나 몰라라 해 온 것 아니냐"며 "연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노조 측에) 요구하는 것이 없으니까, 부담도 안 느끼고 방치하는 것 같아요. 이 문제가 노동자 전체의 중요한 사안이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것인 만큼 공공연맹이나 민주노총 차원에서 해야 하는 몫이 있는 건데… 노조가 본인들 기득권에 연연해서 기능을 상실하고 제 역할 못하면 없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지켜내야 할 건 노동자 개개인 삶의 소중함이잖아요."
[자료4] 증권사의 ‘여직원 신화’ - 채용서 퇴직까지 성차별 현황 드러나
조이여울 기자/ 일다 2006년 12월 20일자 기사
증권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연구자료가 나왔다. 증권노조는 여성위원회와 연구원 4인이 공동으로 지난 8개월간 <증권산업 여성.비정규직 고용실태조사>를 실시해, ‘채용에서 퇴직까지 노동생애로 바라본 차별과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연구보고서를 작성했다.
증권노조 측은 고용차별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선 인사기록과 통계자료가 중요한데, 대다수 증권사가 성별로 구분된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있다 하더라도 ‘기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실제로 근거를 가지고 차별행위를 문제 삼거나 대안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밝혔다. 그만큼 이번 연구결과는 중요한 자료라는 것이다.
이 연구는 한국증권업협회에 가입되어 있는 국내 33개 증권사 중 기업실태조사에 응한 17개 증권사에 소속된 2천10명의 개인설문과 11명의 심층면접을 통해 조사됐다. 증권사들의 인력운용 현황과, 채용부터 퇴직에 이르는 인사관리 제도전반과 운용실태, 여성인력고용의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모성보호 및 육아지원제도 등을 파악한 자료다.
‘부장급’ 남성 1010명, 여성은10명에 불과
조사결과에서 주목할 통계는 증권사의 ‘업무’가 성별에 따라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승원 연구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불문하고 주로 여성은 관리업무(지점관리, 콜센터 등), 남성은 영업업무를 담당하는 성별 분업체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채용과 배치 단계서부터 성별 분리현상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는 비정규직에 있어 더욱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17개 증권사의 업무배치별 인원현황을 보면, 정규직의 경우 ‘지점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전체 1천865명 중 1천604명(86%)이 여성이며 남성은 261명(14%)이다. 기업에 따라 지점장을 지점관리 업무에 포함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지점장을 제외한 ‘지점관리’직 남성 인원수는 이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지점영업’ 업무의 경우는 여성이 16.1%, 남성이 83.9%를 차지한다.
비정규직의 경우엔 성별 분리채용과 분리배치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지점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전체 1천13명 중 여성이 996명으로 89.3%를 차지하는 반면, 남성은 17명(1.7%)에 불과했다. 비정규직 콜센터의 경우도 여성의 비율이 95.6%를 차지했다. 역시 ‘시설관리’나 ‘잔담투상’ 업무는 남성이 90% 넘게 차지하고 있다.
한편, 정규직 노동자들의 직급별 현황을 보면 ‘부장급’은 남성이 1천10명에 달하는 반면 여성은 10명에 불과해 충격을 주고 있다. ‘차장급’은 남성이 2천81명이며 여성은 34명이다. ‘과장급’도 남성 2천329명, 여성은 223명이고, ‘대리급’은 남성 2천412명, 여성이 795명이다. 즉 여성노동자들은 직급체계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고용형태별 초임 격차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마다 차이가 있지만 17개 기업현황의 평균을 내면 정규직 남성의 초임을 100으로 보았을 때 정규직 여성은66.6, 비정규직의 경우 38.1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승진에 필요한 근속년수나 급여의 차이는 학력과 군필 여부, 그리고 업무배치와 고용형태와 관련이 있어서, 여성노동자의 고용차별실태는 복합적인 다른 차별요인들과 맞물리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하위업무에 여성집중, 비정규직화
이번 연구에서 또 하나 주요하게 제기된 것은 증권산업 ‘비정규직’ 고용실태와 관련한 것이다. 비정규직 고용 비율이 가장 높은 직무는 ‘콜센터’로 88.8%로 나타났고, 지점관리와 본사일반사무직의 비정규직 비율은 30% 수준으로 나타났다.
혜영 연구원은 "여성들이 집중된 직무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으며, 콜센터 업무 비중은 최근 증가 추세에 있는데 이 직무를 아예 비정규직으로만 고용하는 증권사들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비정규직의 업무 내용은 정규직과 동일하거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을 통해 확인됐는데,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여성들의 83.0%가 "정규직과 거의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동일한 업무를 하지만 임금은 확연히 차이가 나며, 근속인정이나 승진의 기회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계약 갱신을 많이 하고 근속이 오래되어도 임금 상승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김은아 연구원은 증권산업의 여성 고용의 특성이 "하위업무와 하위직급에 여성들이 집중되고, 여성집중업무가 비정규직화 되고 있다"고 말했다. 관리업무와 콜센터 등에 여성들을 집중 채용하는 것은 ‘여성은 단순 반복적이며 보조적인 업무에 적합하다’는 성차별 인식에서 오는 것이며, 객관적인 직무분석이나 평가 없이 인사관리 전반에 걸쳐 구조적으로 여성들을 차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합리적 직무분석 통해 ‘간접차별’ 해결해야
설문에 응한 응답자들은 공통적으로, 증권사들이 ‘영업업무는 수익과 매출을 내는 업무고, 관리업무는 비용이 드는 업무’라는 식으로 여성들이 다수 일하는 ‘직군’에 대해 평가 절하해 보다 값싸게 여성노동력을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11일 여의도 교보증권 본사에서 열린 연구조사결과 발표자리에서, 김진(법률사무소 이안) 변호사는 "구인 사이트를 뒤덮고 있는 수많은 ‘여직원 채용’ 광고에서 보듯, 여성이 담당하는 업무는 보조적이고 부수적인 일이라는 ‘여직원 신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김진 변호사는 "노동 가치와 강도의 본질적 차이가 있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골라, 그 범위를 계속 좁혀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희선 연구원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이야기하며, "성차별적 인식이나 경영적 편리가 아닌, 합리적 판단에 근거한 직무 분석을 실시하고 통합적인 직무체계와 가치를 산정해 임금 규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은순 증권노조 여성위원장은 사측과의 임단협 교섭과 조합원 교육 등을 통해 노동조합이 해야 할 과제들을 강조하며, ‘무엇보다 (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그 목소리를 모아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료5] 민주노총이 진짜로 밝혀내야 할 의혹 - 성폭력 사태, 근본적인 접근필요
조이여울 기자/ 일다 2009년 2월 12일자 기사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민주노총 성폭력 사태에 대해, 지도부가 책임을 통감하며 전원 사퇴했지만 민주노총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아주 멀고 험난해 보입니다.
11일, 민주노총은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이번 사건을 둘러싼 몇 가지 의혹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A씨의 집을 위원장의 도피처로 삼은 경위에 관한 것입니다.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실제로 많은 여성조합원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한미FTA 관련한 이석행 위원장의 수배에 따른 도피과정’이라는 중요하고 긴급한 순간에 A씨의 집을 은신처로 삼기로 한 건은 누구의 의견이고, 어떤 정황 속에서, 무엇이 가장 큰 이유로 참작되었는지, 거기부터 조사해야 할 것입니다.
A씨 측이 밝힌 입장에 따르면, 같은 연맹 소속 조합원인 B씨의 간곡한 요청으로 이석행 위원장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주었다고 합니다. A씨가 평소 이석행 위원장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이거나, 위원장이 직접적으로 요청을 할만한 관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원장이나 중앙간부들에겐 수많은 지인들이 있을 텐데, 굳이 B라는 중간매개 인물을 통해 A씨에게 은신처를 제공해달라고 부탁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혹시 여성조합원이 남성조합원보다 위원장을 더 잘 보살펴줄 것이라는 ‘성별’ 역할을 계산한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후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보았을 때, 민주노총 지도부가 A씨를 노동운동의 주체이자 동지로서 대했다고 믿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위원장을 숨겨주는 것은 사실상 범인도피로 법을 위반하는 것이므로, 공무원 신분인 A씨에겐 큰 희생이 따를 수 있는 요청입니다. 이석행 위원장이 검거될 수 있다는 점과, 그 이후에 A씨가 감당하게 될 일들에 대해서 얼마나 고려가 있었는지, 사전에 A씨에게 얼마나 정보가 제공되었는지 여부도 중요합니다. 이는 조직이 조합원들에게 무엇을 얼만큼 요구하며, 어떤 선택권을 주는가의 방식과 관련해 더 논의되어야 할 사항입니다.
둘째, 이석행 위원장 검거 이후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A씨에게 경찰에 불려갔을 때 허위진술을 하도록 요구한 점에 관한 것입니다.
‘강요’냐 ‘논의’였냐 양방이 다르게 진술하고 있지만, 민주노총 측이 거짓으로 진술을 하도록 종용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B씨의 부탁을 받아서가 아니라, 집 앞에 위원장 등이 와있었다고 거짓 진술하라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측은 9일 기자회견문에서 이 문제에 대해 오해가 있을 수 있었다며 "A씨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였던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A씨가 가장 잘 알 것입니다.
이처럼 A씨와 민주노총 간부들이 판단을 달리 했을 때, 민주노총 간부들은 A씨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존중해주지 않았음이 드러납니다. ‘A씨를 위해서’였다고 주장하는 민주노총의 기자회견문에서, 그 태도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읽게 됩니다.
셋째, 가해자 김씨의 성폭력과 강간 미수 행각의 본질이무엇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피해자 측에 따르면 이석행 위원장이 A씨의 자택에서 검거된 바로 다음 날, 대책을 논의하자며 만난 김씨는 귀가한 A씨의 집에 침입해 성추행하고 강간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고 합니다.
성폭력은 권력관계를 기반으로 일어나는 범죄이고, 가해자들은 여러 의도에서 범행을 저지릅니다.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주기 위해 성폭력을 행하기도 하고, 분풀이로 가해하기도 하며, 입막음을 하거나 자기 수하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성적 폭력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이번 사건은 여러 정황을 통해, 후자에 가까울 것이라는 추정을 하게 됩니다.
위원장이 검거된 바로 다음 날이라는 정황도 그렇고, A씨를 설득하고 같은 편으로 포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A씨로 하여금 조직을 순순히 믿고 따르도록 회유하는 임무를 띤 가해자 김씨가 어떻게 그 와중에 자신이 설득해야 할 대상인 A씨에게 성폭행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정치인의 이른바 ‘정치적 스킨십’의 실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의 여성단체장 성추행 사건을 통해, 선거를 앞두고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여성단체의 대표를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성추행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진 적이 있었습니다.
또 작년에 보도된 ‘스포츠 성폭력의 실태’에서도 지도자(교사)들이 학생들을 자기 선수로 만들기 위해, 다루기 쉽게 하기 위한 일환으로 성폭행을 가하고, 감독교사들끼리 ‘코칭(가르치는)의 수단으로’ 성폭력의 방법을 사용해볼 것을 권하는 얘기도 서슴지 않는 것이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여성을 성폭행함으로써 자신과 특별한 관계로 만들고, 무력하게 만들어 순순히 따르도록 하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이는 ‘이상한 개인’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정치적 스킨십’이란 한국의 가부장적인 정치문화 속에 자리잡은 것이고, 스포츠 지도자들의 성폭행 역시 교사들 사이 공유되고 전수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이처럼 성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성폭력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부터 제도적인 문제까지 아울러 봐야 합니다.
성폭력 범죄와 사건 은폐의 배경이 된 조직문화
필요할 땐 갈급하게 요청하며 헌신을 요구하고, 공무원 신분이 위협받는 희생을 한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동지로서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으며, 위원장 검거 이후 대책을 이야기하고 조직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만난 당일 집으로 찾아가 강간을 시도했던 민주노총 중앙간부의 범죄행위는 여성을 비하하고 동등한 주체로서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혹은 도구로 바라보는 조직문화의 연장선 상에 놓여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성폭력 사실이 알려진 다음에도, 민주노총 지도부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도와주지 못한 채 오히려 감시를 하거나 조직을 생각하라고 압력을 넣는 일이 가능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면서도 운동의 주체로 인정해주지 않는 조직, 도움을 준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조직, 동지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취급하는 조직, 중앙간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는 조직. 이렇게 먼저 신뢰를 저버린 조직에 대해 A씨가 믿음을 가져주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의문은 비단 A씨만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이 사건을 통해 갖게 된 의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근본적인 의문에 대해 민주노총은 답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 [성공회대학교노동대학]20기9강 가부장제를 넘어서지 못하는 조직노동에 대한 성찰/조이여울일다기자|작성자 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