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한번쯤은 아이가 아직 어린 여자 선배들 집으로 나들이를 나선다. 그러지 않으면 좀체 보기가 어렵기 때문인데, 어제는 우리 대학 최고 똘똘이 스머프 정책 담당을 했던 돌쟁이 아이를 가진 언니네로 나선다.
아이 데리고 더운 날 고생일텐데 마음만큼 별로 가져갈게 없다. 집에서 올려온 매실찌 한줌, 고향에서 올라온 오이가 시들어 못먹을거 같아서 담근 오이지 한줌, 고추가 좋길래 고추 큰놈 몇 개 배를 따서 무채로 속을 채운 고추 김치 몇개 주섬주섬 채워넣고 한시간남짓 달려간다.
도착하니 벌써 나 먹이겠다고 닭백숙이 보글보글 끓고 있고, 내 머리 두개만한 수박도 대기중이다. 돌쟁이 녀석은 겨우 한달 전에 보았는데 훌쩍 커 버렸다. 내가 아는 사람의 얼굴이 자그마해져 있는 걸 보는 게 참 신기하고, 돌이면 벌써 저렇게 못먹는게 없다는 것도 신기하고, 인간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세상에 적응하나 보다.
반찬이 별미라고 온갖 칭찬이 이어지고 ^^ 5섯집이 묶어서 귀농하면 땅이며 집준다는 얘기도 하고, 같이 내려갈 힘좋은 총각을 구하는 얘기도 하고, 아토피 때문에 제주도로 유학간 아이 이야기도 하다 보니 다음 약속 장소로 가야할 시간이다.
나서는데 굳이 시할머니가 주셨다는 검은콩 미숫가루를 집혀준다. 다음에는 꼭 저녁에 오라고, 감자며 옥수수 좀 가져가라고 아쉽다며 오래도록 문가에 서서 손을 흔든다.
참 사람 인연이 이리 이상하다. 우리 스물엔 언니가 아이엄마가 되서 내가 반찬해 오는 날이 있으리라는 상상을 했겠는가.
사는 곳이 멀다보니 이야기가 시간이 늘 아쉽다. 그래도 늙도록 딱 이만큼 만원도 안될 반찬에 서로 감사해 하며 이렇게 살 수 있기를.. 딱 이만큼은 서로 변하지 말기를 내 마음부터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