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요리책
엘르 뉴마크 지음, 홍현숙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왜 죽은 자의 생각에 관심을 가지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길고 긴 12년을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한 수학이니 물리니 문학 따위를 배우며 지루하게 보내야 한다. 왜? 

이 책은 종교가 지성을 압도하던 중세의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다. 고대로 부터 축적된 인간의 지식(죽은자들의 뼈로 이루어진 성)을 무지한 권력에 이용하려는 자들에 맞서 수호해 온 요리사 이자 철학자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들이 요리사인 만큼 온갖 이국적인 허브와 향신료들, 요리의 묘사를 읽다보면 입에 침이 고인다. 또 그 시절의 허름한 베네치아 뒷골목의 비루한 풍경과 역겨운 정치야사  그 땀냄새까지 전해질 듯 생생하다. 

우리 사회가 다른 이들이 보기엔 미친 것 같았던 사람들의 아이디어에 의해 도약해 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죽은 자들의 책을 지키는 것은 인류를 위해서라는 대의가 있는 듯해 보인다. 그러나 그런 대의 말고라도 1+1 이 꼭 2는 아님을 알게 될 때의 쾌감은 개인의 삶에서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래서 우리는 책과의 대화를 멈출 수가 없나보다.  

사실 예전부터 전해져오는 민중의학이 오늘날 과학적 검증에 따라 옳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무척 많은 것을 보면, 우리 역사에도 은밀한 지식의 전수자들이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절이 되기까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지식을 지키려는 요리사들의숨겨진 투쟁기에 한번 동참해 보자.
느긋한 휴일에 맥주한잔과 더불어 읽기 좋은 책이다.
(다이어트 중이거나 배고플때 읽는 건 자멸이다.)  

<책 속의 몇 구절>

p333
나는 아버지가 스스로 부끄러운 존재임을 시인한 그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단다. 나는 용서하면 자유를 얻게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지. 우리는 용서할 줄 알아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단다.  

(중략)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안돼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지. 더 오래 사셨다면, 속죄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이세상에 가방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중략)
불행히도 우리 중 일부가 그런 깨달음을 얻기 전에 세상을 떠나는 것뿐이란다. 물론 이번 삶 말고 또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믿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그건 다른 얘기지. 

p451
우리 모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페레로 주방장은 내 결점보다 내 가능성을 더 크게 보았고, 나는 프란체스카의 지극히 현실적인 면보다 그녀의 매력을 더 크게 보았다. 그러니 우리가 늙어죽는다는 확실한 사실보다 다시 젊어지고 싶다는 희망을 더 크게 본 총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p593
"예수는 하늘이 주신 그대로의 온전한 인간이었단다. 그건 우리에게 고무적인 소식이지. 인류가 신의 모범에 따라야 한다면 과연 뭘 할 수 있겠니? 루치아노, 네안에도 예수가 지녔던 것과 똑같은 힘이 있단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돼." 

(중략)
"그렇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지. '내가 해냈으므로 너희도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예수가 말했단다. 뭔가를 만들어낼 때 어쩌면 우리 모두가 아뎁토인지도 모르지." 

p595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살아 있는 것은 째깍거리며 가는 시계와 다를 게 없단다. 죽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만, 목적을 갖고 고결하게 사는 건 가치 있는 일이지."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비밀의 요리책을 읽는 내내 수상한 식모들이 떠올랐습니다. 식모와 요리사 그리고 은밀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공통점 때문일까요? 물론 비밀의 요리책이 촘촘한 역사적 배경으로 한다면 수상한 식모들은 좀더 기발하고 발칙한 가벼운 읽을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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