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을 수 있다면 1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12월
구판절판


곧 스물일곱 살이 될텐데. 이제껏 좋은 거라곤 아무것도 모아놓은 것이 없어. 친구도 추억도 없고, 스스로를 좋게 여길 만한 근거도 전혀 없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왜 나는 소중한 것 두세 가지쯤을 두손으로 꽉 움켜쥐지 못했을까? 왜?-199쪽

상페의 작품집을 볼 때면 늘 그랬듯이 그녀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꿈꾸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그 작은 세계, 인물과 사물의 특성을 정확히 포착한 선, 얼굴 표정, 파리 교외에 있는 작은 빌라들의 차양, 노파들의 우산, 시적인 정취가 넘치는 상황들. 그녀는 그런 것들을 무척 좋아했다. 상페는 어떻게 이런 것을 그리는 것일까? 이 모든 소재를 어디에서 찾아내는 걸까?-265쪽

라디오에서 어떤 콘트랄토 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팔뚝에 난 털이 하나씩 모두 뽑혀 나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라디오 진행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비발디의 '니시 도미누스', 성모 승천 대축일 저녁 기도중에서...-269쪽

그냥... 나에겐 전압 조절이 잘 안 되는 문제가 있어서 그래.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겟는데.... 나는 종종 나에게 버튼 하나가 없다는 느낌이 들어. 볼륨을 조절하는 버튼 같은 거 말이야. 나는 언제나 이쪽이나 저쪽으로 너무 멀리가. 적절한 균형을 잡지 못해 언제나 일이 나쁘게 끝나. 내 성향이 그래...-282쪽

외로워 죽겠어, 외로워 죽겠어 하고 그녀는 나직하게 되뇌었다.
영화관에나 갈까? 쳇, 그러고 나서 누구랑 영화에 관한 얘기를 하지? 감동이 자기 혼자만을 위한 것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어? 그녀는 지쳐서 쓰러지듯 현관문을 열었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못내 서운했다.
(중략)
책으로 위로할 수 없는 괴로움은 없다고 어느 위인이 말했다. 어디 정말 그런가 보자....-291~292쪽

자아.. 사람들을 만나는게 너한테 득이 될 거야. 넌 죽은 사람들하고만 살고 있어. 이제 여기에 없어서 네 물음에 대답할 수 없는 사람들하고만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넌 줄곧 혼자 있어. 그러면 사람이 이상해져.-318쪽

"(중략)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지 못하는 것은 서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 아니라 어리석기 때문이야. 생각해봐,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평생 쇠비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나 하겠어?"
"그걸 알아봤자 너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것 역시 어리석은 생각이야. 왜 나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지? 왜 언제나 그런 이익의 관점을 들이대는 거야? 나에게 도움이 되건 안되건 난 상관 안해. 나를 기쁘게 하는 건 쇠비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거야."
-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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