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을 모셨지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한 볼품없는 작은 사내가 견습웨이터로 출발, 아비시니아 황제를 모시고, 조국 체코를 침약한 독일 나치여성과 결혼하기도 하고, 백만장자가 되었다가 종국에는 모든걸 잃고 아무도 찾지 않는 산골에 홀로 살아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 사내의 한 생의 부침과 체코의 격동의 근현대사가 멋지게 버무려져 있다. 

이 책을 덮고나서 이상한 버릇이 하나가 생겼다. 

무언가를 원할 땐 '내가 이걸 왜 원할까?'하는 고민이 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비싸고 예쁜 신상 구두를 가지고 싶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비싸고 예쁜 구두를 살 능력이 있고, 상류층 아가씨로 봐주길 원해서이고, 더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봄으로서 인정해주고 내 곁에 머물러 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구두를 원하는게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과 외로움 탈피가 필요한 것이다. 

독서의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또 우리는 왜 사는가에 관해 참신한 기법으로 구술하고 있으니 적극 일독을 권하고 싶다.   

p102 - 흥청망청 호텔에서 노는 부자들을 보며

노동은 고귀하다, 라는 주장이 다름 아닌 우리 호텔에서 예쁜 아가씨들을 무릎에 앉히고 밤새 마시고 먹고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바로 어린 아이들처럼 행복할 수 있는 부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전에 나는 부자들이란 형편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소박한 오두막집과 작은 방들 그리고 시큼한 양배추와 감자 이런 것이 사람들에게 행복과 평안을 주는 것이지 돈이 많은 것은 저주받은 거라고 여겼다. 그렌데 가만보니 가난한 오두막집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하여 떠들어 대는 이야기도 다름 아닌 우리 호텔 손님 같은 부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중략)부자들은 노동을 찬양하기는 했지만 그들 스스로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노동을 해야한다면 슬퍼하며 불행할 것이다. 

p214 - 나치의 원칙에 따른 잠자리를 좋은 품종을 얻기위한 개 강제 교배에 비유하며

나는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보며 잃어버린 낙원을 꿈꾸었다. 결혼 전에 여자들에게 잡종 개처럼 다가갔을 때 얼마나 아름다웠던가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고상한 암캐 옆에 누운 고상한 수캐처럼 과제를 앞에 놓고 있었다. 나는 그 과제에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를 잘 알고 있었고 또 본 적도 있었다. 사육사가 적절한 순간을 위해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하듯이! 

p312  

이미 나 스스로 자신을 놀려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 혼자로 충분했고, 사람들이 곁에 있는게 거추장스럽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결국 나중에는 나 자신하고만 이야기하게 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나의 가장 좋고 가장 편안한 동반자, 나의 또 다른 자아, 나의 격려자이며 나의 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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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04-0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 서인영의 구두에 대한 집착은 결국 그녀가 그만큼 고독하다는 역설일까요. 일종의 방어기제? ^^

무해한모리군 2009-04-02 11:56   좋아요 0 | URL
물론 아름다운 것에 끌리고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야 본능이겠지요..
내가 구두를 소유하고 신는 것으로 족하냐 그걸 신고 나가서 남들이 흐뭇하게 봐주어야 족한가 뭐 이런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ㅎㅎ

[해이] 2009-04-0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미지 바뀌시니까 사람이 바뀌신듯한 느낌이^^ 참고로 전 이제 이 이미지로 쭉 가려고요.

무해한모리군 2009-04-03 15:20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하는 그림이라 눈빛이 도전적이잖아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