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민기가 아저씨나 본부장 역할을 하니, 아 세월이 이만큼 흘렀나하는 생각이 절로든다. 뭐랄까 내 맘속에 정말 소년같고, 청춘같은 배우인데. (옛날에 군대다녀와도 소년으로 있어달라고 알라딘에 쓴 적도 있다)


청춘하니까 생각나는데 최근에 버닝을 봤다. 우울할 때 즐겨보는 영화중에 <완득이>랑 돌아가신 김주혁 배우의 <홍반장>이 있다. 작은 마을에 다정한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워낙 좋아한다. 히어로물도 좋아하고. 그러니까 전혀 내 취향의 영화는 아니다. 심지어 감독의 전작인 시가 더 좋았다. 그래도 영화에서 유아인이 연기한 종수는 인상깊었다. 그 또래 배우중에서 유아인 만큼 가난한 역할을 많이 해본 배우가 있을까 싶게 참 찢어지게 가난한 역할을 많이도 했다. 그중 종수가 가장 유아인이란 배우에 가서 붙은 느낌이 든다. 완득이와 밀회의 선재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정할 수 없어도 받아들이고 있다. 계층의 사다리를 맹렬히 욕하거나, 미친듯이 기어오르려는 자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킥복싱을 하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사랑에 빠지는 그 순수와 반짝임이 아름답다. 버닝에서의 종수는 문창과를 나와서 글을 쓰고, 택배배달을 한다. 시종일관 그는 무표정하고 건조하며 텅비어 보인다. 저런 사람이 글을 쓸 수 있을까? 쓰고는 있을까? 빛이 들지 않은 여자의 방에 짧은 순간 드는 흐린 빛, 그 빛마저 허구로 느껴져 서글퍼지는 영화였다. 누구에게나 꿈에 반짝이던 청춘 한줌 쯤은 있어도 될텐데 스물에 중년의 마음이 되어야 하는 세상인가. 


백리시를 읽고 있다. 스물초중반에 행복한 개인이 되면 된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성공한 여성이니, 페미니즘이니 뭐가 중요한가, 내가 행복하면 된다고. 그런데 살다보니 나의 비폭력에 더욱더 잔인해지는 무리와(나는 간디가 아니라 참을 수가 없다. 애당초 간디가 옳은지도 모르겠지만) 목을 졸라오는 가족주의와 등튀에 꽂히는 칼날같은 비판들이, 내 행복과 이 사회 정치 구조라는 것이 너무나 붙어있어 문득문득 놀랍다. 나는 매사 너무나 불편하다. 그리고 그 불편을 설명하는게 너무 귀찮고 어렵다. 두껍고 매우 작은 글자로 되어있지만 어렵지는 않다. 언제나 내게 수수께끼인 애초 가진 적도 없는데 경상도에 뭔가를 뺏어갔다고 생각하는 경상도 친지들과, 미친듯이 꼴페미라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는 자들의 '이유'를 알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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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7 17: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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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9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