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7
글로리아 네일러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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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 앨리스 워커를 잇는 미국 흑인여성작가. 그녀는 자신을 소개하는 이 짧은 문장이 맘에 들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도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을 읽고 영감 받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하니, 이 평가는 넘치는 것도 모자란 것도 아닐 것이다. '미국흑인'이나 '여자들', '페미니즘'에 꽂힌 건 아니고, '옴니버스 형식으로 촘촘히'에서 내가 좋아하는 미드 <멜로즈 플레이스>를 떠올렸다. 시즌1로 막내린 미스터리 형식의 멜로인데, 흑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멜로즈 플레이스라는 펜트하우스에 세들어 사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의 변주곡이라는 점에서만 닮았다. 세입자들은 각자 비밀을 갖고, 사랑과 우정, 배신과 질투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은 평범한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 멜로즈 플레이스의 마당에 있는 수영장에서 주인여자가 시체로 떠오르지만 않았다면. 이 죽음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세입자들의 삶을 조명하는 미스터리 구조다. 옴니버스라기에는 뭣하지만, 같은 장소의 공동체적삶을 묘사해내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리고 이 책은 참 따뜻하면서도 무엇보다 쉽게 읽히고 재밌다.

 

토니 모리슨은 원래 몇 권 갖고 있어서 앨리스 워커와 글로리아 네일러를 함께 사들였다. 이들은 흑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태생이든 문학의 주제든 인종학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비슷한 선에 존재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는 이제 내 것이라는 생각에 들떠서 저지른 주문이었다. 한동안 누구의 아픔에도 발 담그기 싫은 무료함이 계속되긴 했어도, 브루스터플레이스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여자들의 인생은 나를 실망시키지도, 들뜨게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마지막까지 응시한 나는 마음으로만 오래도록 그녀들의 거칠 것 없는 행복을 빌었다.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명제를 상기하면서. 살아가는 일은 대상불문하고 누구나 신파가 아닐까 싶어서 짧은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흑인여자 일곱. 이들은 모두 과거나 현재에 내면의 상처, 한정된 상황, 흑인이라는 인종 안에 갇혀 부당한 어떤 일들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이들이다. 고정된 세상의 시선에 맞서 싸우는 여자가 있는 반면, 그저 살아가는 여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체념하는 여자도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녀들에게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 하나 더 공통점을 찾자면 어떠한 연유로 이곳, 브루스터에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기억을 통한 시간의 흐름은 마치 용해된 유리와도 같아서 분명하지 않다가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구체화할 수 있다. 3년이란 세월이 한 번의 대화, 한 번의 눈길, 한 번의 고통 속으로 녹아들어 갈 수 있다. 또한 한 번의 정신적 고통이 산산이 부서져 3년이란 세월에 고루 뿌려질 수도 있다. 시간은 말이 없고 아리송하여 단번에 나락으로 떨어지지도 않고 날마다 조금씩 사라지지도 않는다. 한평생이 거품처럼 사람을 현혹시키는 투명한 파도를 타고 흘러가다가 이따금 기대하지 않았을 때 제멋대로 의식 위로 튀어 올라 물보라는 일으키는 한편으로 시간은 소용돌이치며 사람의 마음속으로 유유히 흘러간다. (p.70)

 

매티는 사탕수수 내음이 온 초원을 가득 채우는 고향에서 부모님과 살았다. 아버지는 교인에 아주 엄격한 분이어서 딸의 안전을 위해 많은 것을 금지시키며 키웠다. 집집마다 넘치는 일거리를 도와주기 위해 와있던 일꾼 부치와 걷다가 의도하지 않게 그에게 남자 냄새를 맡게된 건 울퉁불퉁한 그의 팔근육과 사탕수수를 쳐내는 화려한 칼놀림이 아니라 푸른 초원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전해준 사탕수수 내음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혼모가 되었고, 아버지는 용서하지 않았다. 죄인처럼 고향을 떠나 아들 바질을 낳았고, 아무도 받아주는 곳 없이 떠돌다가 아무 대가 없이 자기와 아들을 받아준 미스 이바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 손녀 시엘까지 넷이 한 집에서 산다. 20대에 미혼모가 된 그녀는 장장 30년을 이 집에서 보낸다. 아들 바질을 물고 빨고 감쌌던 매티의 母情의 끝은 결코,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바질의 엇나감과 나약함을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매끄러운 길

청명한 날

그런데 나는 무엇 때문에 홀로

이 길을 여행하고 있는가

얼마나 기인한가

사랑이라는 길이 그토록 쉽다니

저 앞에 우회 도로가 있는 걸까? (pp.132-133)

 

본격적 이야기는 느즈막히 브루스터로 오게 된 매티와 한때 매티가 고향을 떠났을 때 함께 지내다가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인해 헤어졌던 에타가 매티가 있는 곳으로 오면서 시작한다. 옴니버스 식이라 일곱 명의 흑인여자들의 삶을 조명하고는 있어도 그녀들의 이야기는 연대의 힘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의 매력을 잘 아는 에타는 남자에게 기대 한평생 편안하게 살아간다. 남자들을 탐색하여 사랑을 빙자하지만 개중에는 정말로 사랑한, 사랑받은 남자들도 있었다. 그 순간이 지나치게 짧고 마지막은 항상 보잘 것 없었다는 사실만 빼면. 착실한 신도인 매티를 따라나섰다가 교회에 출장예배 나온 우즈 목사와 서로, 감정의 교란을 벌인다. 에타는 그가 자기 목적을 모르는 줄로 알지만 우즈는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더 영특하다. 이 능숙한 게임은 보는 나마저 아릿하게 한다. 이 여자들에게는 어째서 하나같이 편리한 삶이란 없는가 하고. 그녀의 사랑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룻밤의 정사는 사랑으로 시작되지 못한 관계를 반영하는 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키스와나는 흑인계 중에서도 꽤 안정적인 삶을 일군 부모님 품을 떠나 브루스터로 왔다. 아프리카계 이름으로 바꾸고, 허름한 아파트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브루스터 주민들과 연합하여, 흑인에게만 유독 가혹한 많은 상황들을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오랜만에 찾아온 엄마의 잔소리가 달갑지 않지만 키스와나는 그것 또한 사랑에서 나온 거란 걸 안다. 엄마는 딸이 부모님 그늘에서 편히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일궈내겠다는 '혁명'의 동기가 보잘 것 없다거나 중요치 않다고 여긴다. 한편, 말다툼은 본질을 벗어나 바깥 궤도를 공전하지만, 그녀들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거나 가만 두게 될 것이다. 엄마와 딸이니까. 매티를 처음 받아줬던 미스 이바의 손녀 시엘은 집을 들락날락하는 남편 대신 홀로 딸을 키우다시피 한다. 시엘의 남편 유진은 매티 또한 달가워하지 않으며 뱃속에 든 아이를 부정하기까지 하다가, 어느 날 일자리를 얻어 다른 도시로 가겠다고 선언한다. 남편을 붙잡으려는 시엘의 간곡함과 그녀를 뿌리치는 남편의 실랑이가 반복되는 동안, 방치되어있던 어린 딸은 감전되어 죽었다. 딸의 장례식 후, 처음에는 울부짖지도 못하던 시엘은 따스함이 남아있는 브루스터의 여자들틈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응어리진 마음을 토해낸다. 그녀의 슬픔과 아픔을 가장 가까이에서 받아내는 단 한 사람은 역시, 매티 뿐이다.

 

코라는 어릴 적부터 인형을 좋아했다. 열세살이 넘도록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형만 찾아대서 부모님의 걱정은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인형이 아니라 진짜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녀에게는 아빠가 다른 아이들이 여럿 생긴다. 열여덟 즈음부터 낳은 아이들은 커갈 수록 도로 뱃속으로 넣고 싶은 충동마저 느끼게 하는데, 그녀를 찾아온 키스와나가 남자친구가 책임자인 <한 여름밤의 꿈> 공연을 보러 오라고 제안한다. 그날밤, 코라와 아이들 모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요한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들의 삶은, 이전과도 이후와도 다를 것이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두 여자가 브루스터로 들어온다. 소리소문도 없이 마을 주민이 된 테레사 로레인을 사람들은 레즈비언으로 오해하고, 키스와나 주재 하에 열린 회의 차 모인 자리에서 주민 소피와 에타의 비난 섞인 다툼에 의해 크게 상처 입는다. 그녀를 위로하는 건 브루스터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중년남자 벤이다. 그는 로레인을 보며 자신의 딸을 떠올린다. 벤의 사연은 앞선 모든 슬픔을 압도할 만큼 마술적이고 환상적이다. 과거의 일과 상상 속의 일이 뒤섞여 설명되는 벤과 아내, 딸은 평범한 가정이 사소한 일로 어떻게 산산조각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로레인과 벤의 불행은 우연히 일어난 슬픈 비극이어서 마음이 아팠다.

 

2008년은 미합중국의 대전환의 해였다. 미국 정치사상 최초로, '백인'이 아닌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제4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미래의 시작이다. 미국은 유럽의 백인들이 16세기부터 몰려와 토착 미국인(이른바 인디언)들을 멸절, 희생시키고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데려온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만든 나라다. '노예'로 시작된 흑인들의 위상은 '검둥이'와 '흑인'을 지나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정치적 정의'에 따라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이르렀다. 토착 인디언을 제외하면 미국 역사상 가장 착취되고 억압되고 차별됐던 미국 흑인들의 지위가 날로 새로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p.342)

 

브루스터로 몰려든 흑인들 중 특히 여자들의 삶을 조명한 '소수자 담론'이자 '타자의 서사'라고 옮긴이가 덧붙인다.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그 속에 든 아픔은 미국흑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가난, 차별, 가족해체 같은 것들이다. 흑인여성들이 겪는 고통은 인종과 성, 두 가지 차별이 복합화되어 더욱 부조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백인이 사는 거리와 벽 하나의 차이를 두고 형성된 브루스터, 일곱 명의 여자들에 대한 사연이 끝나고 덧붙여지는 마지막 장의 '구역 파티'에서도 여전히 그들은 이 안에서조차 하나가 될 수 없다. 타자의 시선에 의해 억눌린 감정이 비슷한 위치의 이웃들에게 화살처럼 튕겨져 나가는 것이다. 이들의 협동체를 구상하고 실현하려는 중심에 일곱 명 중의 한 명인 키스와나가 있고, 오랫동안 마을에 살며 모든 이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실제로 大母같은 역할을 해내는 매티가 있다. 그들이 바꾸려는 평등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백인 집주인이 터무니없이 올려달라는 월세에도 개인적으로는 저항하지 못할 만큼 주눅들어 있거나 힘이 없다. 단결이 힘이건만, 여자들은 여전히 이웃과 으르릉 거린다. 후반부, 브루스터의 벽이 무너져내리는 장면으로 끝나는 것은, 흑인과 단절되어 있던 세계와의 화합 혹은 소통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소 모호하지만, 그들의 도전이 실패한 것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첫 술에 배부르랴, 의아해하면서도 한 번 힘을 모아본 이들은 다음 번에 더욱 필사적으로 힘을 모을 것이고, 다다음에는 비로소 같은 슬픔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고, 다다다음에는 서로의 불신을 완전히 깨고나와 불의에 대항할 것이고, 이후에는 완전히 그들만의 자리를 찾을 것이다. 언제나 흑인들의 요구는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자신들의 자리를 내어달라는 것이었다. 네일러는 그 과정을 특히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아주 드라마틱하게 잘 그려놓았고, 이 소설은 단지 흑인 틈에서가 아니라, 백인들과 맞물려 상대적으로는 더 가혹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는 미국 흑인 여성들의 의지와 인내로 빚어진 삶에 대해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 처절하게 묘사하면서도 절망스럽지 않다. 오히려 아주 희망적이다. 그래서인지, 막막하긴 하지만 아주 기분이 좋다. 나아가야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생겨난다. 따뜻한 힘을 주는, 바닥에서 시작하지만 아주 발랄한 시작이다. 갑오개혁으로 법제적 신분제가 폐지되고 완전한 노비해방이 되었으나 실제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처럼, 흑인 대통령이 나오고 신자유주의 물결로 온 세계가 휩싸여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1982년에 발표된 이 소설과 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변하고 있고, 변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소 감정적이지만 작가가 말한 것처럼 이 소설은 연애소설 같은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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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4-21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로 살아가는 것도 어려운데 흑인으로 사는 것까지 더해지면 그 무게는 상상이 되질 않네요...
오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잘 모르고 편견에 편견을 더 해 그들을 바라보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변하는건 더디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겠죠?

요새 이곳은 벚꽃이 절정이예요. 내일 꽃놀이 가려 했더만, 주말 내내 비온다네요.ㅠ.ㅠ
그래도 따뜻해서 너무 좋아요.

아이리시스 2012-04-22 20:19   좋아요 0 | URL
벚꽃은 남쪽에서 피면서 위로 올라가는 거군요(처음 알게 된 1인). 오오, 당연한 걸 저는 뭐 이렇게 지식인양 크게(?) 깨달을까요.. 현맘님, 꽃놀이 가셨어요? 여긴 어제 비, 오늘은 맑음인데요. 쫌 있으면 또 결혼식 불려다녀야 해서 좌절-_- 귀찮-_- 그냥 저는 왜, 결혼식에 남들이 가서 박수를 쳐야하는지 모르겠어요. 옷 사러 가야해요. 히히히. 그건 좋아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4-23 20:32   좋아요 0 | URL
결혼식에 예쁜 옷 입고 가서 박수치지는 마요..ㅎㅎㅎㅎ
맛있는 밥 먹고, 친구들 중에 멋진 남자는 없나..(아..아이리시스님은 그럴 필요 없군요!)
흠흠...
예쁜 옷 사서 사진 찍어 보여줘요~ 난 젊은 아가씨들이 그런게 부러워요. 뭘 입어도 예쁘잖아요!

아이리시스 2012-04-24 16:32   좋아요 0 | URL
히히히히히히히 그럼 되겠구나. 박수 안 치기. 박수 안 치는 건 내 자존심이에요ㅋㅋㅋ
평소에는 뷔페 갈 일 없으니까 저는 초밥을..( '') 왜요, 멋진 남자는 언제나 필요하죠!!!
흠흠..
네! 예쁜 옷 입어서 예쁘게 사진 찍어서 쏠게요. 뭘 입어도 뭐 그렇게 예쁘진 않답니다..히히히.

댈러웨이 2012-04-21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때인가 아프리칸을 본 적이 있어요. 그때는 '아 연탄처럼 새까맣다'라는 생각만 했죠.
세월이 이만큼 지나서는,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그들을 볼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제 마음대로 폄하를 해 버리죠.
뿌리 깊은 뭔가가 머릿속에 깊게 박혀 버린 탓이겠죠. 이거, 없애기가 쉽지 않아요.

'검둥이->흑인->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의 발전, 인상적이에요.
그래서 저도 오늘 처음 아프리칸'이라는 표현을 써 보네요. ^^

아이리시스 2012-04-22 20:35   좋아요 0 | URL
이 소설에는 딱히 백인에게 억압받는 흑인여성이 그려지는 건 아니고, 사회적 배경을 모두 배제한 채 개인적 아픔에 주목하고 있어서 이 책으로는 그 차별이란 게 아주 확 다가오지 않지만요. 남자가 버리고 가면 여자는 대부분 아이와 버려지잖아요. 먹고 살기 힘든 거 똑같고.. 흑인이라고 별다를 게 없잖아요. 저는 동병상련(?) 느껴요.(불쌍) 저는 피부 까만 편이어서 컴플렉스는 있는데 그렇다고 흰 피부가 부러운 건 아니예요,라고 해도 엄청 부러워요ㅠㅠㅠ 우리 엄마아빠는 왜 날 이렇게 낳아가지고;;
 
조드 1 - 가난한 성자들 조드 1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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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유라시아 내륙 평원에서 일어나는 대재앙. 물이 부족한 건조지대에서 겨울철 가뭄과 추위가 겹치며 정점에 이르렀을 때, 유목민의 생명줄인 가축이 한꺼번에 수천 마리씩 죽어나가는 사태를 지칭한다. 섬나라나 해안에 인접해 있는 땅에서 맞이하는 기후적 재앙인 '쓰나미'와 정반대 개념.

 

 

광활하고 호전적인 몽골땅에 늑대(족)의 후손들이 살았다. 납치결혼 당해 남편을 일찍이 보낸 어떤 여자가 달빛으로 잉태하여 낳은 아들 중에 '바보'라는 뜻을 가진 막내가 있었는데, 부모의 죽음 후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재산다툼이 벌어지자 지나치게 온순해서 투미한 데가 있던 막내(보돈차르 몽학)를 형들은 철저히 배제한다.

 

...내 소중한 자식들아. 절대로 흩어지면 안 돼. 이 가녀린 배가 화살 다섯 발을 세상에 쏘았어. 그리고 봐주는 남자도 없이 혼자서 지켜왔다. 나는 머지않아 죽지만 너희는 누구도 함부로 꺾지 못하도록, 어떤 일이 있어도 너희만은 세상이 무섭지 않도록 반드시 뭉쳐서 살아야 해. 알았니? (p.24)

 

병들어가는 약한 말에 태워 다른 곳으로 쫓아버린 것이다. 혼자가 된 '바보'는 오히려 절정에 다다른 꽃봉오리처럼 활짝 피어난다. 싸움보다는 지혜를, 욕심보다 우정을 택해 인고의 기다림으로 차츰 실현해가면서, 인정을 느낀 매가 자기 앞에 먹이를 물어다 나르도록 만든다. 지혜의 힘은 위대하다. 정말로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 자가 아니라 (타인으로 하여금) 무엇을 하도록 만드는 자이다. 전혀 가늠하기 힘든 이야기는 바로 이 예기치 못한 땅의 과거로, 아주 오래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한다. '바보'는 씨앗을 널리 퍼뜨린다. 씨앗은 땅 속으로 스며들어 멀리멀리 커간다. 마침내, 뿌리를 내리고 후손을 길러 거대한 민족이 탄생한다.

 

초원의 삶은 눈이 생명이다. 혹독한 겨울과 고립무원의 고독, 사방을 둘러봐도 그지없이 막막한 일망무제의 벌판밖에 없는 땅에는 지평선 너머에도 지평선이 있고, 그 너머에도 또 지평선이 있었다. 한 생명이 좁게 갇혀서 지내거나 사방팔방으로 열린 세상에서 드넓게 살도록 해주는 건 오직 눈의 능력에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pp.16-17)

 

녹록치 않은 초원의 삶에는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 외에 어떤 원칙도 존재할 여지가 없다. 섬세한 투박함이 거친 난세를 헤쳐나갈 유일한 무기. 늑대는 말과, 말은 늑대와, 인간은 땅과 한판 사투를 벌인다. 버려진 씨앗 중에, 아버지 죽음 후 성골이라는 이유로 무리로부터 배척 당한 테무진이 있다. 테무진이 뺏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끊임 없이 죽이려 하는 키릴툭. 그리고 같은 씨앗으로부터 왔지만 테무진이 흰 뼈라면, 그는 검은 뼈이다. 남몰래 테무진을 질투하는, 껴안을 때와 돌아설 때를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자무카. 대립각이 이게 전부일 리 없다.

 

목숨을 잃는 자는 죽어서도 많은 일을 하지만 용기를 잃는 자는 살아 있어도 아무 일 못한다. (p.48)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고, 살겠다는 몸부림이 처절해 보이지도 않는다. 용맹과 강직의 땅. 유럽사에 스며든 유라시아 대륙의 광대한 몽골. 13세기. 난세에 영웅이 출몰한다 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나고 싸우고 스러져갈 것인가. 모든 것들의 중심에 영웅 테무진이 있다. 몽골 고원의 생생한 역사는 오로지 테무진을 실감시킨 작가의 철저한 고증과 상상력에 의해 복원된다. 한낱 영웅의 일대기가 아니다. 대단한 역사의 기록 앞에 현실은 고요히 침잠하고, 쓸데없는 에너지는 자취를 감춘다. 눈을 감으면 푸른 초원의 한복판에 서있는 내가 느껴진다.

 

"하늘에는 기러기들의 세상이 있고, 물에는 물고기들의 세상이 있어. 초원에는 사내들의 세상이 있지. 그걸 지켜야 하기 때문에 다들 고통을 참으면서 자기 다리를 견디는 걸 좀 봐. 이럴 때 한 명이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하찮은 자리로 떨어지고 말 거야. 너는 누구와도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확인시켜주었어. 그래,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라." (pp.61-62)

 

초원에서는 유목보다 사냥이 쉽다. 혼자 남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물과 불을 가르는 일은 곧 전쟁으로 치부된다. 서로의 삶이 어떤지 알기에 쉽사리 귀를 빌려주려 하지 않는다. 제게 기댈까 걱정부터 한다. 삶은 아름답고 참혹하고 몽롱하다. 산 사람들은 반쯤 미쳐있거나 저마다 붕 뜬 세상을 산다. 짐승도 마찬가지다. 하늘의 목소리를 듣는 자들, 함부로 울음을 울지 않는 자들, 현세에 귀 기울이는 자들, 바로 그들이었다.

 

테무진은 천지사방에서 엄습하는 초원의 위험 앞에 전면 노출되어 하루하루를 연명했지만 도망자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도 딱히 방법이 없으니, 언제나 침묵했고 날마다 고독했다. 제길, 운명은 하늘의 것. 간밤에도 그가 볼 수 없고 확인되지 않는 세상 밖에서 천 개의 별이 태어나고 천 개의 별이 죽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p.79)

 

나코 어른의 손에서는 말이 초원을 가르며 달리는 바람 소리가 났다. 말과 함께 한 세월과 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나코 어른과 그의 아들을 사람들은 말 부자(父子)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초원의 적이 되어 쫓기고 쫓기면서도 한 가족 못지 않게 정다운 체온을 나누었던 황금 말을 도둑 맞은 테무진에게 나코 어른의 아들 보오르추가 다가온다. 테무진은 보오르추와 가족들을 통해 처음으로 초원에서의 정을 느낀다. 한 뿌리에서 났지만 뒤춤에 칼 꽂아 돌진하는 이들 틈에 버텨온 그에게, 한 번도 무리에 낀 적 없어도 자신을 친구로 여겨주는 이들이 감탄스러울 수밖에. 초원의 정은 끈끈하고 뜨거웠다. 팔딱팔딱 심장이 요동칠 만큼 절박하면서도 고요한 시간을 선사하였다. 힘줄과 뼈로 만든 악기, 백마의 기마술, 고운 노래 그리고 협동심. 모든 것들이 초원의 광활함 앞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괴팍한 날씨 때문에 초지가 피폐해져서 가축들이 지쳐 죽는 걸 조드라 한다. 조드는 근본적으로 고원에 물이 없어서 생기는 것인데, 피해의 양상은 크게 네 가지로 드러난다. 하나,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가축이 초지를 찾을 수 없게 되는 것, 이게 하얀 조드이다. 둘, 여름이나 가을부터 초지가 말라서 겨울 뿌리까지 고갈되는 재난, 이것을 검은 조드라 한다. 셋, 극심한 눈보라가 몇 날 며칠이고 계속되거나 콧구멍을 막는 흙바람 때문에 가축이 한 발짝도 나다닐 수 없게 되는 재앙이 눈보라 조드이다. 넷, 일찍 내린 눈이 따뜻해지는 바람에 철철 녹아서 흐르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강추위에 아주 두꺼운 얼음이 되는 것, 그래서 눈에 번히 보이는 풀뿌리에 입도 대지 못한 채 굶어 죽는 것이 거울 조드이다. (p.116)

 

테무진은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온통 혼자의 그림자 뿐인 질주하는 대지에서 비로소 친구와 가족의 정을 만난 것이다. 산 너머 산, 산 너머의 산에도 산이 있을, 지평선 너머가 보이지 않는 희미한 땅의 달빛에서 그는 지금도 슬픔으로 치장하고 있을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돌이켜보면,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조차도 그 어디엔가는 사랑의 숨결이 숨어 있었다. (중략) 인간을 기르는 건 세상이다. (중략) 그런데 왜 못 죽였을까? 칼을 쥔 손에 몇 번이나 힘이 들어가 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는데, 왜 휘두르지 않고 돌아갔을까? 테무진에게는 그것이 언제나 수수께끼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의문이 풀렸다. 매번 남들이 보고 있었다는 것. 비겁한 이웃을 원망할 일이 아니라 감사해야 된다는 말이 백번 옳다. 아버지를 잃고 죄도 없이 붙들려온 어린 소년을 뚜렷한 잘못도 없이 죽였다가 인심을 잃게 되면 키릴툭의 권세는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목이 자신을 살린 것이다. 그 이목을 일컬어 사람들은 세상이라 부른다. (pp.173-174)

 

테무진은 길을 떠날 때 하늘에게 묻고 말에게 물었다. 광야에는 숨을 곳이 없다. 도망치고 또 도망하고 숨는 삶 도중에 친구를 만난 것이었다. 보오르추의 열린 귀에 테무진이 속삭였다. 여자의 가슴과 닿았던 추억담과 약혼녀를 찾으러가기까지의 결심을. 초원에는 지도자가 없었다. 통솔, 화합, 통합 대신 분열, 경쟁, 싸움만이 있었다. 전쟁이 아니면 죽음이었다. 약혼녀와의 잠자리에 실패하고 아버지의 위독소식을 듣고 돌아가던 그날 아버지를 보내며 비로소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배운다.

 

테무진은 버르테와 혼인한다. 그녀는 언젠가 찾아들 하늘의 별빛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밤의 흔적을 지붕에 올려 푸른 하늘에 알리는 것과 말 떼 속에서 진짜 수컷을 없애는 이유, 사막에서 죽은 사람을 매장할 때 낙타 새끼를 함께 묻는 이유, 절망에 눈멀고 낙담, 후회 같은 감정 기관을 잘라야 하는 것 등 초원의 모든 위험에 노출된 테무진의 아내가 되는 길은 멀고도 멀다. 시어머니 후엘룬의 뜨거운 보살핌 속에, 오래된 그녀의 슬픈 사연을 벗 삼아, 그들의 간격은 좁혀지고 또 좁혀진다. 게르의 중앙에 화덕을 피우고 웃음을 꽃피운다. 행복을 배운다. 오래가지 못하더라도 행복은 행복이다. 곧 다가올 미래는 예상하지 못해 애처로운 短歌다.

 

초원의 삶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오로지 삶 뿐이었다. 막힘 없이 푸르고 넓은 초원을 달리고 달려 인간을 결박하는 기후로부터, 다른 생명체로부터 도태되지 않고 생존하는 일이 전부였다. 테무진의 어깨가 무거웠다. 한때 아버지에게 목숨을 빚진 케레이트 왕, 토오릴칸에게 목숨을 구하러 가면서도 그의 눈은 별똥 같은 반짝임을 감출 수 없었다.   

 

전투가 일어난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을 보유한 친구들과 어제까지 행복한 웃음을 지었던 게르를 떠나면서 그만 생모와 아내 버르테를 두고 온 것이다. 유목민 그리고 초원의 전투란 生과 死 혹은 女人에게서 시작되고 女人에게서 끝났다. 하지만 전쟁이란 언제나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일 터였다. 지금 버르테가 처한 상황과 똑같이 아버지 예수게이의 부족에게 납치되어 뿌리내린 어머니는 테무진에게 일생일대의 선택을 자연의 섭리처럼 요구한다.

 

"버르테는 다른 남자와 살 거다. 그래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너의 아내야."

(중략)

"울 생각 마라. 자신의 생애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이해하기에 인간은 너무 작아. 인생은 아주 크단다. 우리는 자기 발밑도 온전하게 볼 수가 없어. 사랑의 생명이 끝나버린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 걸 누가 알아? 한데 그것도 하나의 생명이란다." (p.290)

 

테무진은 버르테를 찾기 위해 토오릴칸, 자무카와 삼자동맹을 결성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득이기에 각자 발톱 숨긴 채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다. 메르키드를 처치하기 위한 작전의 지휘는 자무카, 어린 몽골의 겁없는 지도자에게 남몰래 대립각 세우는 지도자는 토오릴칸이었다. 테무진은 보르칸 산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비로소 초원의 중심에 자기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도움을 구해야 할 자가 아니라 도움이 되어줄 자라는 사실을 확신한다. 비극은 경탄의 강을 흘러 뜨거운 성공의 세월을 예감하고 있었다.

 

'버르테! 초원의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광야를 횡단하는 구름만 남더라도 나는 당신을 찾을 것이오.'

 

테무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옹기라트에서 데려와 버르테의 피가 흐르는 곳이라면 손가락 발가락까지 입 맞추던 날, 한없이 높으면 높은 곳, 한없이 깊다면 깊은 곳까지 내려가 천 마리의 벌 떼들이 마치 꽃잎을 누비는 것처럼 부끄럽지도 지치지도 않고 덤비던 밤에 한 약속이었다. (p.321)

 

어려움을 아는 자, 어려운 자를 거둘 줄 안다. 버려짐을 아는 자, 버려진 자의 마음을 꿰뚫는다. 전쟁통에 버려진 아이를 만나면 데려와 달라던 어머니의 부탁을 거스를 수 없는 것 또한 앞으로 테무진이 가야 할 길에 놓인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그 가치를 드러낼 체제이자 가치관일 것이다. 삼자동맹의 시작은 성공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영웅이란 무릇 시대가 만들어내는 것. 또한 그 영웅은 절대로 포기와 타협을 모르는 법. 지혜로운 자, 영웅이 되리라.

 

알랑고아의 후손, 하얀 뼈를 물려받은 테무진에게 늘 가혹하기만 했던 초원의 삶이 드디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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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4-13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이런 이야기...색다른데요? 초원이라니.
물론 제가 생각하는 그런 낭만적인 초원은 아닐 것 같긴 하지만...ㅎㅎ

어렸을 때 흑룡강을 배경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같은걸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스케일이 다르더라구요.
그때 한참 유라시아 내륙 지방을 동경하기도 했었어요. 그곳의 삶은 진짜 다르겠죠?

아이리시스 2012-04-13 23:04   좋아요 0 | URL
몽골의 시조 알랑고아가 주몽의 딸이라는 설이 있더라고요. 아까 다(1권만) 읽고 언뜻 찾아보니까, 이 소설 주인공 테무진이 훗날 징기스칸인데 몽골제국 탄생을 그리고 있어요. 몽골역사에 관심이 생겼어요. 책에 나온 가계도 아니, 족보 보니까 정신이 없는데 몽골식 이름이 입에 안 붙어서요. 엄청난 자료조사와 고증을 거쳐 탄생한 부지런한 작가의 탄생물 같아서 좋았어요. 몽골 가고 싶은데^^

오.. 그 다큐멘터리는 어떤 다큐멘터리일까요. 몽골배경 한 번 찾아보고 싶어요. 저는 이런 류의 다큐는 예전에 <차마고도>가 마지막..ㅠ 맨날 유럽,미국 이런 곳들 여행기만 줄기차게 보고요. 낭만적인 초원 전혀 아니고요. 목가적 삶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그것마저 날려버렸어요=3

잘잘라 2012-04-13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기를 잃는 자는 살아 있어도 아무 일 못 한다..
용기를 잃는 자는 살아 있어도 아무 일 못 한다..
음..
어떤 일을 할 때는 항상 용기가 필요하다는..
용기를 잃지 않도록 잘 간수해야겠다는!!^^

아이리시스 2012-04-13 23:27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와서 천천히 글들도 읽고 마실 다니면 포핀스님 댓글도 만나는군요!
사실은 영웅 일대기 그린 역사소설이 생각하는 대로 좀 뻔한 면이 있는데, 간혹 허를 찌르는 지혜의 구절이 있어서 참 좋아요. 저도 저 장면이 기억에 남았거든요. 차라리 죽으면 기억에라도 오래 남지만, 살아서 허접하면 죽느니만 못하다는 게요.

용기.. 저는 요즘 신이 잘 안나요. 자동적으로 용기도 없어요. 밤이니까 자고나면 또 나아지겠죠. 자기 전에 맛있는 부침개 부쳐먹어야겠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잘라 2012-04-14 13:57   좋아요 0 | URL
쑥부침개 해먹어요! 직접 쑥 캐다가요!(야외활동이 필요해욧!!) 완전끝내줘요^^ 쑥 향기~~~~

아이리시스 2012-04-15 16:41   좋아요 0 | URL
그렇잖아도 엄마가 막 아빠더러 쑥 캐드시라고 그러던데, 요즘 이것저것 봄씨앗 심느라 울아빠 바쁘셔요. 저는 쑥국 몇 번 먹었어요. 부침개도 해먹어요? 오늘 진짜 날씨 따뜻해요!! 신나요!!^^
 
벨아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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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뒤루아는 다행히도 여자가 아니다. 모파상은 <목걸이>, <여자의 일생> 등으로 유명한데, 대부분이 그렇듯 학창시절 읽는 세계문학전집으로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즈음 읽은 것들은 줄거리나 교훈 보다는 배경과 이미지로 기억 속 깊은 곳에 남아 있다. 모파상의 것은 포우와 같이 그다지 좋아하는 작품 스타일이 아니었다. 여러번 말했듯, 나는 소재나 주제보다 문체에 더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벨아미>를 읽게 된 건 단연코 내세울 만한 이유가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은 접어두고 나는 이 작품이 매우 맘에 든다. 다만, 뒤루아가 여자였다면 만인의 여자들이 재수없어할 부류였다는 것만은 명확히 알겠다. 나는 이런 여자들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매우 싫다. 대신 나라면 엮여서 감수하는 쪽보다는 다가가지 않고 무시하는 편을 택하겠다. 그래왔고 또 그럴 것이다. 가진 걸 휘두르지 못해 안달하는 이들, 겉으로는 명쾌한 척 하지만 뒤에서 온갖 수작 부리는 이들, 알고보면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가능한 많은 일들 앞에서 자기논리는 명료하고 남의 것은 그 반대라는 식으로 일갈하는 이들. 무엇보다도 내 욕망, 이라는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주는 피해를 정당화하려는 이들. 말하지 않는다 해서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아닌 것처럼.

 

처음에 벨아미-이는 나중에 뒤루아가 얻게 되는 별명이다-는 평소 너무나도 경멸하고 싶은 부류라서 읽으면서 또는 읽고나서 그에게 동화되고 이해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여전히 욕망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원한다는 것과 원하는 것을 가지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적어도 그 반대인 것보다는.

 

벨아미는 전직 하사관이었지만 지금은 그저그런 철도회사에서 박봉으로 일하는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남자다. 군대에서 알았던 신문기자 친구 포레스티에를 만나면서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가 욕망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실행하기까지는 짧은 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옮긴이는 내가 놓친 부분을 얘기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뒤루아에게는 단 3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19세기 중후반 파리의 상류 사회는 퇴폐와 자유, 향락, 불륜 혹은 이 모든 것들이 넘실대는 막 걷힌 장이었다 해도 과언 아니다. 다 같이 미쳐있으면 오히려 제 정신인 보통 사람이 이상해보이는 것처럼 경계를 넘어있는 시대였다. 몰라도 아는 척만 하면 되고, '욕망'이 그 어떤 도덕적 가치와 의미보다 상위에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들은 종종 서로를 속였고, 자신도 속였다.

 

"누구나 그 이상을 알진 못하지. 궁지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스무 명가량의 멍청이들은 예외지만 말일세. 강한 사람으로 보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무식하다는 꼬리를 잡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네. 교묘하게 처신해서 어려움에서 빠져나오고 장애물은 피해서 돌아가고 그 나머지 모르는 것들은 사전을 이용해서 남의 눈을 속이는 거지. 인간이란 거위처럼 어리석고 잉어처럼 무식한 법이네." (p.18)

 

무대는 활짝 열려 있었고 아무도 그것을 닫을 마음이라곤 없었다. 벨아미는 친구로부터 신문사 영입제의를 받고-정확히는 기사를 써보겠냐는 제의-그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하면서 국회의원이자 신문사 사장 왈테르 가족을 만나 그 자리에서 알제리 정책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면서 처음으로 모두의 시선을 끌게 된다. 특히 포레스티에의 아내 마들렌이 소개한 먼 친척 마렐 부인이 이 날부터 자기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는 자신의 외모와 말투와 대화방식이 상대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한 마디로 자신이 먹힌다는 사실을 안 것-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빳빳하게 온 사교장을 누빈다. 남자가 여자에게 혹은 여자가 남자에게 반하는 데는 때로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번드르르한 외모와 상냥하고 친절한 말투, 자기에게 호감이 있다는 듯 살짝 다가가면서도 튕기는 태도. 무엇보다 빨리 이것들을 깨달은 벨아미였다. 그의 깨달음이 머지않아 모든 이의 희극과 비극을 양성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벨아미를 응원할 것인지, 만류할 것인지. 전자를 선택하는 편이 훨씬 더 편하다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이지만. 끌리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나중에 씁쓸한 그의 성공에 박수치며 이건 아니야, 라고 외쳐도 그때는 이미 늦다.

 

 

여기서 이 노래를 떠올렸다. 나는, 뜬금없게도. 몇 번이나 좋아한다고 말했고, 몇 번이나 페이퍼에 등장시키고, 얼마 전에는 무려 현빈이 부르는 것도 올렸던, 바로 그 노래. 에릭 클랩튼의 "원더풀 투나잇". 이 곡을 떠올리면 아무 것 없어도 밤은 언제나 완벽해진다.

 

 

접힌 부분 펼치기 ▼

It's late in the evening
: 늦은 저녁입니다

She's wondering what clothes to wear
: 그녀는 무슨 옷을 입을까 망설입니다.

She puts on her make-up and brushed her long blonde hair
: 화장을 하고 긴 금발머리를 빗어 내립니다

And then she asks me "Do I look all right?"
: 그리고 내게 묻지요 "나 괜찮아 보여요?"

And I say "Yes, you look Wonderful tonight."
: 나는 대답합니다. "그래요 오늘 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워요"

We go to a party and everyone turns to see
: 우리는 파티에 나갑니다 모두들 고개를 돌리고

This beautiful lady who's walking around with me
: 나와 함께 춤추는 이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지요

And then she asks me "Do you feel all right?"
: 그녀는 나에게 묻습니다 "기분 좋아요?"

And I say "Yes, I feel Wonderful tonight."
: 나는 대답하지요 "그래요 오늘 밤 난 정말 황홀해요"

I feel wonderful because I see the love light In your eyes
: 나는 정말 황홀하다오 그대 눈 속에서 사랑의 빛을 바라볼 수 있기에

And the wonder of it all is that you just don't realize How much I love you
: 그 무엇보다 경이로운 것은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대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It's time to go home now
: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

And I've got an aching head so I give her the car keys
: 나는 머리가 아파서 그녀에게 차 열쇠를 건네 줍니다

She helps me to bed and then I tell her as I turn out the light
: 그녀는 나를 침대 위에 누이고 나는 불을 끄면서 그녀에게 말합니다.

I say "My darling, You are wonderful tonight"
: 내 사랑 오늘 밤 당신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Oh my darling, you are wonderful tonight.
: 오 나의 사랑, 오늘 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워요  

펼친 부분 접기 ▲

 

 

 

이 노래를 처음 듣고 가사를 찾아봤을 땐, 이 감미로운 가사가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스토리를 알려줘서, 확장시켜 소설을 지어냈다. 그리고 이 부분이 가장 좋다. 파티에 가려고 제일 예쁜 드레스를 꺼내 입은 여자가 자기를 기다리고 서 있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부분. "나 괜찮아 보여요?"

 

하나 더 있다.

 

파티에서 실컷 즐기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술 탓인지 살짝 어지럼증을 느끼는 남자가 여자에게 차 열쇠를 건네주고, 집에 도착해서 남자를 부축해 침대에 부드럽게 눕혀주는 여자. 남자가 침대 옆에 놓인 스탠드불을 끄고 여자도 그 곁에 눕는 부분.

 

사실, "내 사랑, 오늘 밤 당신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라는 부분에서는 그다지 설레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그리고 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미국에 가고 싶었다. 사치와 화려함이 뒤죽박죽된 파티에 초대받고 싶었다. 허영으로 똘똘 뭉친 <가십걸>의 주인공들처럼이라도 상관 없었다. 거기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사랑하는 상대를 가지고픈 욕망, 에만 끌린다. 처음에는 꿈도 얘기했지만 점점 사랑하는 대상과 경제력을 얻을 기회만 호시탐탐 넘본다. 때때로 자조하며 짐승도 한낱 지조는 지키는데, 하면서도 계속 본다. 재밌으니까. <파리의 연인>처럼 파리에서의 파티도 좋을 것 같고, 무도회도 좋을 것 같고, <오만과 편견>의 영국풍 사교계도 상관 없었다. 나는 그저 파티면 되었다. 실제 나는 파티의 분주함이나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기웃거리는 것 등을 즐기지는 않는데도. 하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과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지는 않는다. 술집 보다 광장을 좀 더 좋아하는 게 흠이라면 흠.

 

 

 

어쨌든, 이 남자 좀 재수없는데 한편으로는 멋지다. 자기가 얼만큼 유혹할 수 있는지, 자기가 무얼 할 수 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남자라.. 역시 나는 다시 생각해도 그 반대로 서툴게 다가오는 남자가 훨씬 낫지만 벨아미를 미워할 수가 없다. 재수없어할 수는 있지만 미워지지는 않는다. 남녀 관계에 있어 계산적일 수 있음은 여러가지 의미로 볼 때 서로 다른 장단점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 정도는 밀당이 필요하고, 밀당이 관계를 오래 지속시킬 수도 있다는 것은 맞다고 보지만 자기의 가치와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는 것은 언제나 옳지 않다고 느낀다. 벨아미는 그렇게 한다. 그리고 자기가 나쁘다는 의식조차 없다. 잘못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없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는 벨아미의 입을 빌어서는 절대 선과 악, 옳고 그름, 가능과 불가능 같은 것들이 말해지지 않는다. 그 지점이 바로 문학으로서의 예술로 기능하고, 나는 이게 굉장히 마음에 든다. 모파상이 그려낸 벨아미가 좋아진 이유다. 그럼 이제부터는 모파상이 한 짓들을 낱낱히 고하고 분석해볼까, 라고 하기에 뭐 있을까. 사교계에서 자기 장점이 어필됨을 알았으니 점차 자기를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 날개를 찾아 동분서주하겠지. 뻔한 거 아닌가.

 

<벨아미>는 두 가지만 이해하면 된다. 선악의 경계를 흔들며 사교계에서 귀부인들의 마음을 훔치며 고급 정보를 얻으면서 언론사의 고지위까지 한 계단 한 계단 밟아가는 욕망의 화신인 남자의 모습과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프랑스가 가장 타락한 시기의 언론계를 상세히 묘사함으로서 프랑스 언론역사의 발전과정을 되짚어보는 것. 모파상의 사실적 문학은 동시대 다른 작가들처럼 문체에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 에밀 졸라를 잇는 프랑스 19세기 작가이자, 스승 플로베르를 통해 콩쿠르 형제, 알퐁스 도데, 투르게네프 등과 교류했던 모파상은 이들보다 더 사실적 묘사를 통해 철저히 묘사로만 파리의 상류사회와 사교계의 귀족부인들을 그려낸다. 서정성 있는 문체를 썼던 알퐁스 도데나 투르게네프와는 짐짓 다른 모습이다.

 

그러자 지껄이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랐다. 자기에게 모든 주의를 끌고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대단치 않은 말 하나하나까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음미하면서 듣도록 하는 저 말재주가 탁월한 남자들처럼 칭찬을 받고 싶었다. (p.42)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본능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인정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누구나 두 가지의 경계를 지키기 위해 아슬아슬 넘나드는 불편한 선이 분명 있을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비난 당하는 일은 면하기 위해 욕망과 인정 사이에서 간신히 균형 맞추며 살아간다. 이제 벨아미처럼 모든 것이 용서되는 시대도, 무시되는 시대도 아니다. 오늘의 선이 내일의 악이 될 여지도 얼마든지 있다. 돌이켜보면 온라인 세상에서 나는 얼마나 타인에게 이끌려가기 쉬운가, 나는 얼마나 쉽게 타인을 이해한다 하거나 판단하는가. 이왕이면 끌려가는 것 보다는 서로를 통해 하나로 모아지는 관계가 좋다. 하지만 나를 강조함으로서 타인을 간과하는 무심한 사람인 적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누군가에게 내 무관심을 사과하고, 더 많이 애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나를 반성하고, 앞으로의 나를 부탁하는 날이다. 내가 벨아미인 것도 당신이 벨아미인 것도 싫으니, 부디 서로 맞춰가자고 제안하는 날이다. 나는 판단이 필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이해와 위로 그리고 나를 인정하는 내가 되고 싶을 뿐이다. 어쩌면 벨아미도 그랬던 게 아닐까. 반대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상처받아 여자와 권모술수를 이용해서라도 왕의 자리에 한 번쯤 서서 호령하고 싶었을 뿐이지 않을까.

 

다 갖기 위해선 다 걸 수밖에 없는, 가진 것 없는 한 남자의 상류층 편입기. 모파상은 벨아미를 통해 당시 파리의 속은 텅 비었음에도 겉만 꾸며대는 상류사회의 구멍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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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3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4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1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겉치레는 공허해요. 한껏 가슴을 부풀리고 머리를 꼿꼿이 들고 있어도
무너져 있는 내면을 발견하게 되는건 시간 문제...살면서, 나이 들어가면서 내 모습이 그럴 때가 많아
좀 우울하기도 하죠....

누군가가가 사람들로 꽉찬 엘리베이터에 제가 타는 걸 보고 농담으로 '젊은 사람이 걸어가지~'하는데
울컥했잖아요..ㅋㅋㅋㅋ 저도 이제 4학년이거든요! 저도 무릎이 좀 시리거든요!
이렇게 말하고 또 우울했어요.ㅎㅎ

파리가 또 그리워 파리 관련된 책을 장바구니에 넣고 고민하고 있는 중이예요. 오늘 날씨는 정말 파리스럽네요~

아이리시스 2012-03-14 12:25   좋아요 0 | URL
이제 4학년ㅋㅋㅋ 다른 사람들이 현맘님만큼만 내면에 대해 고민하고 또 발견하고 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할 거예요. 정말로요^^ 사실은 이것저것 엄마로서, 일적으로도 욕심 많고 따뜻한 분이면서 항상 현맘님 모습에 대해 고민하시잖아요!! 부럽게..^^

한번씩 그런 날이 있죠! 저는 학교다닐 때 봄만 되면 떠나야한다는 생각에 거의 미쳐가지고;; 날씨 좋으면 진짜 미칠 것 같지 않아요? ^___________^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14 16:50   좋아요 0 | URL
ㅋㅋㅋ 여기 오늘 비와요!!!!
파리스러운 날씨는 흐리고 우중충한 날씬데...제가 파리 갔을 때 그랬거든요. 세번 다..어쩜.
그래서 제 기억 속 파리는 그래요.
예전엔 봄만 되면 좀 짜증도 나고 햇살 쨍쨍한거 싫고 그랬는데 나이 들었나봐요. 이젠 봄바람과 봄햇살이 좋은걸 보니까요. 심지어 꽃 피는걸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아이리시스 2012-03-15 20:33   좋아요 0 | URL
저도 겨울에 가서 파리는 늘 비내린 샹젤리제, 베르사유 이런 것들만 기억이 나는데 현맘님도 예전에 그랬다는 걸 들었;; 는데도 제가 기억력이 그지라서;; 혼자 헛소리를ㅋㅋㅋ

맞아요, 봄 좀 그래요. 괜히 바람도 들고 바람드는 만큼 뭘 할 수가 없고 뭘 해야할지를 모르니까 늘 신경도 좀 곤두서 있고 짜증도 났어요. 그때 어느 교수님은 미칠 만큼 몰두할 수 있는 걸 찾아서 밤 꼴딱 새면서 해보거나, 여행을 떠나라고 하셨어요!! 그때 땅끝마을까지 혼자 여행하고 싶었는데 그걸 할 용기가 안나더라고요. 그게 안되면 책이라도 미칠 만큼 읽으라고 했어요!! 여기서 미친다는 건 '과유불급'도 되는 거지요. 히히. 꽃. 좋죠! 꽃!

cyrus 2012-03-1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내용이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랑 비슷할거 같아요. 배경도 비슷하고 두 소설 다 사회 진출에 대한
욕망을 가진 두 젊은이가 나온 것도 같고요. 펭귄에서 나온 것도 있는데 집에 민음사 전집이 많아서 이걸로
먼저 읽어봐야겠어요. 나중에 이 책 구입할 때 이 글, 땡스투해야겠어요 ^^

아이리시스 2012-03-15 20:40   좋아요 0 | URL
모파상이랑 발자크를 함께 읽는 중이었는데 <벨아미> 읽고나니 힘이 떨어져서 <고리오 영감>은 초반에 막 넘기다 하숙집 사는 인물들 이름을 다 놓쳐버려서 던져버렸어요. 다시 찬찬히 읽어야 정리될 듯 해요. 오오, 이건 223번이라 시루스님 전집에 없는 거군요. 저는 얼마 전에 펭귄이 더 최근 번역본인데도 더 저렴하길래 이걸 샀어요! 사실 번역은 잘 모르니까요. 괜찮아야 할텐데 하며 사는 거죠ㅋㅋㅋ
 
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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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내게 어려웠다. <농담>을 잘 안 읽히면 농담으로 치부하고서라도 끝까지 읽어내겠다, 하는 오기로 시작하기 전에 나는 다른 두 작품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내가 만든 기회였다. 하나는 읽다 말았다를 반복했고 하나는 책장에 그저 꽂히기만 했다. 나는 체코에 무궁한 호기심이 있었다. 이 나라는 유럽에 있지만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전도연과 김주혁의 <프라하의 연인>을 나만 그 전작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데 그건 파리는 낭만적이고 아름답지만 프라하는 절망스럽고 슬퍼서다.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풍경에 나는 늘 울고 싶었다. 그런 우울이 뚝뚝 떨어지는 도시에서 난 작가라면, 나도 모르는 내가 원하는 것이 들어있지 않을까 해서 끊임없이 쿤데라 옆을 서성였는지도 모른다.

 

나름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 생각과 달리 잡는 순간부터 너무 잘 읽혀서 놀라웠다. 여자들은 군대 얘기를 싫어한다지만 내가 겪지 못할 일이라 그것도 너무 재밌다. 물론 수감생활도, 탄광생활도 루드빅에게는 비극이지만 내게는 활력. 그런데 이렇게 리뷰를 써도 될까. 이 놀랍고 경이롭기만한 위대한 농담을 나는 반의 반이나마 이해하긴 한 걸까. 쿤데라의 국가가 낯설고 이질적인 만큼 작품 속 인물과 배경도 마찬가지로 다가온다. 이름 달린 몇 명의 인물들로부터 각각 반추되는 루드빅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삶의 다양성에 얽힌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설명하게 한다. 그 와중에 쿤데라의 목소리가 종종 흘러나온다. 잘 읽히면서도 어렵다. 스탈린주의나 트로츠키주의 같은 용어에 얽힌 지식들을 나는 단편적으로 혹은 이데올로기적으로만 알고 있다. 처음에는 불안하게 시작했다. 지금은 그것들을 모르더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굵게 관통하는 이 작품의 줄기는 결국 한 인간의 정체성, 존재의 농담일텐데 그것을 체코의 공산화 시기의 혁명 이후로 배경을 맞추어 전개해나간다. 이데올로기, 사랑, 정체성, 이것들이 한 선으로 연결된다. 남자의 대학시절은 공산주의 운동으로 점철된 지식터에서 스탈린을 비판한 트로츠키 옹호자를 처치하려는 시대였다. 당시 체코는 막 공산주의화 되려 하고 있었다. 주인공 루드빅의 험난한 여정을 따라 이 소설은 진행된다. 한 사람의 우스갯 장난이 궁극적으로 이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지게 하는지.

 

학창시절, 모임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루드빅이 여자친구와의 장난스런 편지에 쓴 트로츠키 만세! 라는 글 하나 때문에 강제로 입대하게 된다. 그로인해 그가 꿈꿨던 모든 것과 가지고 있었던 생각, 사상, 친구, 지식들까지 모두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당해 부대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모든 것이 착오로 인한 것이며, 진실을 말하기만 하면 받아들여질 것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혹독하다. 한때의 잘못을 쉽사리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으며, 바꿀 힘 같은 건 애초 자기에게 없었다는 것을 차차 알아간다. 그는 무언가를 희망했던 이들이 그것을 포기하거나 버려가는 과정의 3단계를 차례로 밟는다. 오랜시간 공을 들여 아주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나는 그 생각을 하기 싫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싫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나는 오늘날 자신들이 신봉하던 시대의 움직임에 의해 나처럼 거부당하고 떠밀려나간 사람들이 자기 운명을 떠벌이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 추방된 자라는 내 운명을 나 역시 영웅화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된 자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내가 검정 표지 속에 보내지게 된 것이, 내가 용감했기 때문도 아니고, 투쟁을 했기 때문도 아니며, 내 생각과 다른 생각들에 대항하여 싸웠기 때문도 아니라는 것을 냉정하게 상기해야만 했다. 그렇다, 나의 전락에는 그 어떤 진짜 드라마도 선행하지 않았고, 나는 내 이야기의 주체라기보다는 차라리 대상에 가까웠으며, 그러므로 (괴로움, 깊은 슬픔, 실패 등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 내 이야기를 가지고 무언가 대단한 척 내세울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p.173)

 

그는 오해로 얼룩진 자신의 신념을 끊임없이 위협받는 동안 운명처럼 만났던 루치에와의 만남이 환상보다 한없이 처져버리자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이제 그에게는 원래의 것도, 돌아갈 곳도, 밝혀내야 할 것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는 옷을 입고 여자는 홀딱 벗은 채로 한 방에 있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의 섹스에 대한 환상은 올곧고 순결하여 새침하기까지 한 루치에의 옷을 단 한 번도 벗기지 못함으로서, 그녀에게 화를 내고 외면하고 윽박지르게 되면서 그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망과 싸우던 틈을 타, 루치에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림으로서 끝난다. 사랑하는 남녀에게 있어, 섹스의 농담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너무 솔직하면 떠나버리고, 너무 가리면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화를 유발하게 된다.

 

내가 딱 하나 경이롭다고 생각했던 <농담>의 구절은 이것이다. 쿤데라가 루드빅의 입을 빌려, 민속 예술의 전통이 이어질 수 있는 배경과 이데올로기에 대해 열변했던 부분. 이 단락이 대단하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체제라는 것을 이토록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대단해서다.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서.

 

예전의 농촌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 마을의 한 해 행사는 이런저런 의식들로 이어졌다. 민속 예술은 이러한 의식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들판의 농가 여인에게 영감이 찾아오면 그 입술에서 곧 샘물처럼 노래가 샘솟아 나온다고 상상했다. 그러나 민속 노래는 지적인 시와는 다르게 생겨난다. 시인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자기에게만 있는 유일한 어떤 것을 말하기 위하여 시를 쓴다. 그러나 민속 노래를 통해서 사람들은 남과 구별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섞이려고 한다. 그것은 종유석처럼 형성된다. 새로운 모티프, 새로운 변형들이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져 덮이면서 민속 노래가 형성되는 것이다. 노래하는 사람마다 새로 어떤 요소를 덧붙이는 가운데 그 노래는 대대로 전해 내려간다. 그러니까 이런 노래들을 지은 사람은 여러 명인데, 그들은 모두 자기가 한 공헌 뒤로 겸허하게 사라져버렸다. 그 어떤 민속 노래도 혼자서 존재하지는 못했다. 제각기 자기 기능이 있었다. (중략)

 

자본주의는 이러한 집단 생활을 파괴했다. 민속 예술은 그래서 자신의 기반, 존재 이유,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사람이 타인과 멀리 떨어져서 혼자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는 그것을 부활시키려 해보아야 아무 소용 없다. 그런데 사회주의는 사람들을 이런 고립된 삶의 올가미로부터 해방시켜 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집단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동일한 공동의 이익으로 연대하여. 그들의 사적인 삶은 공적인 삶과 일체를 이룰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의식들로 하여 서로 결합될 것이다. (중략)

 

어느 곳에서든 민중의 예술은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제 이해하겠는가? (pp.202-203)

 

하지만 한 마디 농담으로 동무들에게 내쳐진 그는 자기를 사실상 망가뜨린 친구에게 복수심을 품고 그의 아내 헬레나에게 접근한다. 단지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를 점령한다면 친구에게 복수할 수 있다고만 생각해서다. 그에게 여자의 본질은 이런 것.

 

사실상 내가 한 여자에게서 좋아하는 것은 그녀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방식, <나에게> 그녀가 의미하는 그 무엇이다. 나는 한 여자를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의 등장 인물로서 사랑한다. 햄릿에게 엘시노어 성, 오필리아, 구체적 상황들의 전개, 자기 역할의 <텍스트>가 없다면 그는 대체 무엇이겠는가?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허하고 환상 같은 본질 외에 그에게 무엇이 더 남아 있겠는가? (p.232)

 

처음에 바란 것은 그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과 이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는 것뿐이었지만, 그것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서 복수를 실행에 옮기며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자기 행동을 타당화하려는 것에 불과한.

 

올곧고 투명하다. 그런데 그게 어떤 거죠? 있는 그대로 살고, 자기가 원하는 것, 욕망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러면 다 아닌가요. 사람들은 규범의 노예들이에요. 누가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말해 주면 그렇게 하려고 애쓸 뿐, 그것이 뭔지 자신들이 무엇인지 절대 알게 되지 못하죠. 대번에 그들은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과감히 자기 자신이고자 해야 해요. 헬레나, 결혼을 하셨다고 해도 저는 처음부터 당신이 마음에 들었고 당신을 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어떻게 다르게 할 수도 없고,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어요. (p.259)

 

돌고돌아 그는 인간이란 '욕망'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닿은 것이다. 농담으로 내뱉은 말을 책임지기 위해 원하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오며, 아무리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제자리에 닿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그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찾기 시작한다. 이대로라면 쿤데라의 말대로 옳은 것과 나쁜 것,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차이가 있기나 한 건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은 '본질'에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조차도. 하지만 그 이데올로기 또한 가장 억압받고 왜곡되고 엇나가기만 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 아니던가. 그가 그 한 마디에 이끌려 이 먼 곳까지 떠밀려 온 것처럼. 지금 헬레나를 통해 실현하려는 바로 그 복수처럼.

 

겉으로 사랑 이야기, 더 들어가 꼬여버린 인생에 대한 반추 같은 거지만 체코가 낯선 나라다보니, 배경과 체제 이해가 자동적으로 되지는 않는다. 간신히 이해해보지만 온전하지는 않을 테니까 지금의 체코 공화국이 되기까지의 과정 이해와 역사적 지식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다. 그것 없이도 <농담>은 충분히 유머와 풍자와 조롱 조의 소설로 읽히지만, 알면 더 많이 보일 것이다. 소설은 타인의 자료조사와 지식창출에 기댄 기본적으로는 아무리 사실적이라도 '픽션'이다. 그래서 소설은 이해를 도와주지만 소설적 이해는 결코 실제와 같지 않다. 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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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社會主義 共和國, :Československá socialistická republika)은 체코슬로바키아1960년부터 벨벳 혁명 직후인 1990년초까지의 공식 국가 명칭이다.

 

1943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망명 정치가 에드바르트 베네시 (Edvard Beneš)는 소련의 외교 정책에 무조건 따르라는 스탈린의 요구에 응하여, 베네시 선언에 따라 백만여 명이 넘는 주데텐의 독일인을 "부자"로 치부하여 추방하고, 헝가리인들도 쫓아냈다. 베네시는 스탈린과 군사ㆍ경제 분야에서 "긴밀한 전후 협조"를 약속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를 향한 인민의 길"에 따라 대지주의 재산, 공장, 광산, 제강소, 은행을 몰수하여 국유화하였다. 베네시는 러시아의 하수인은 아니었으며, 그의 계획에서는 다른 동구권 국가의 몇몇 내정 개혁과 다른 점이 있었으나, 스탈린은 베네시가 재산 몰수를 실시했고, 여타 소비에트 블록 나라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자 세력이 강하다는 점에도 만족하여 그를 반대하지 않았다.

 

1945년 3월 베네시는 모스크바를 방문하였다. 소련 내무인민위원회의 질문 목록에 답변한 뒤 베네시는 주데텐에 사는 이백 만 여명의 독일인과 400,000명에서 600,000명 사이의 헝가리인을 국외로 퇴거시키고, 붉은 군대와 긴밀히 공조하는 강력한 군대를 육성한다는 계획으로 소련 정부를 기쁘게 하였다. 1945년 4월 세 개의 사회주의 정당이 지배하는 거국 연정인 제3공화국이 창설되었다. 공산당의 힘이 강했고(이들은 300석 가운데 114석을 점하였다) 베네시가 소련에 충성하였기 때문에 다른 동구권 국가와 달리 소련 정부는 체코슬로바키아에 블록 정치를 강제하거나 "믿을 만한" 간부를 최고위직에 앉히도록 요구하지 않았으며, 행정부과 입법부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예전대로 하던 구조를 계속 유지하였다. 그러나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1946년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고도 자신의 입지를 펼치지 않는데 처음으로 실망하였다. 이들은 지방 정부를 공산당이 장악한 새로이 구성된 위원회로 대체하여 기존의 행정 실권을 빼앗았으나, 군대내에 "부르주아"의 영향을 제거하거나 실업가와 대지주와 재산을 몰수하지는 못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어느 정도 독립적인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어 처음부터 소비에트 블록의 전형적인 정치ㆍ사회ㆍ경제 체제를 갖추지 못했으므로 소련 당국은 이를 문제시하게 되었다. "애국 전선" 바깥의 세력들은 정부에서 배제되었으나, 이들은 아직 건재하였다. 붉은 군대가 점령한 나라들과 달리, 체코슬로바키아에는 공산당이 이미 주도적인 역할을 주장할 수 있어서 소련의 군정 당국이 없었다.

 

소련 당국은 다가오는 1948년 선거에서 공산주의자가 승리하리란 기대를 잃어갔다. 1947년 5월에 크렘린의 어느 보고서에서는 서방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반동적 요소"가 강해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마셜 계획의 자금을 얻을 것을 잠시 고려하고, 그리하여 1947년 9월 시클라르스카 포렝바에서 코민포름이 여러 공산당을 비난하면서, 루돌프 슬란스키 (Rudolf Slánský) 는 국가 안보국(StB)이 당내 정적을 제거하고 반대자를 숙청하여 권력을 잡을 계획으로 프라하에 돌아왔다. 1948년 2월 초에 공산주의자인 내무 장관 바츨라프 노세크 (Václav Nosek) 는 국가 경찰대에 남은 비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려 하는 월권 행위를 하였다. 소련의 발레리안 조린 (Valerian Zorin) 대사는 쿠데타를 준비하기 위하여 프라하에 도착하였으며, 비공산주의자가 장관직에 오르고 군대가 병영에서 출금 조치되자 정변을 일으켰다. 붉은 군대에 복무하는 조린 (Zorin) 과 함께 공산주의자 "행동 위원회"와 노동조합 민병대가 이내 조직되어 무장하고, 반공주의자를 숙청할 준비를 갖추었다. 베네시는 내전이 일어나고 소련이 간섭할 것을 두려워하여 1948년 2월 25일에 항복하고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이 장악한 정부를 인명하였으며, 그 지도자는 스탈린주의자인 클레멘트 고트발트 (Klement Gottwald) 로, 이틀 뒤에 총리직 취임에 선서하여 독재를 이끌었다. 유일하게 고위직에 있던 비공산주의자인 얀 마사리크 (Jan Masaryk) 는 2주 뒤에 시체로 발견되었다. 소련이 지원한 쿠데타는 대놓고 잔인하게 행동하자 서방 국가들은 이전의 어떤 사건보다도 충격을 받았으며, 일시적으로 전쟁 자세를 취하여, 미국 의회내에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마셜 계획에 반대하던 소수의 사람들조차 찬성으로 돌아섰다.

 

1948년 2월 쿠데타가 일어나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이 집권하자 체코슬로바키아는 새 헌법이 발효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Československá republika)이라는 인민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그 후 공산주의 체제의 안정을 위해 1960년 신헌법을 채택, 시행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사회주의의 최종적 승리"의 상징과 마찬가지로 1960년 7월 11일에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국호로 바꾸었으며 1990년 벨벳 혁명 때까지 유지되었다.

 

1969년 각각 동등한 지위를 갖는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두 구성공화국이으로 이루어진 연방제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이행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을 휩쓴 개혁, 개방 물결 속에 1989년 벨벳 혁명으로 다당제가 도입되고 공산정권이 붕괴되었고 1990년 4월 1일 공식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으로 변경하여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명칭은 사라졌다.

 

한편, 이후의 체코 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은 1992년, 각각 체코슬로바키아로 분리할 것을 결의하여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는 완전히 소멸하고 두 독립국인 체코 공화국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나누어졌다.

 

[출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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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공부.. 하지 말 걸 그랬어..( '') 하루에 한 문단씩 읽어야겠어..( '')

 

루드빅은 자신을 이렇게 불운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파벨 제마넥의 아내 헬레나를 굴복시켜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그녀를 정복했을 때 비로소 깨닫는다. 헬레나와 제마넥의 오래된 관계, 과거에 묶인 사이일 뿐 현재의 둘 사이는 애틋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음을. 한때 증오하는 그 남자의 모든 것인 여자였지만 이제 그에게 있어 아무 것도 아닌 존재. 그 여자를 정복함으로서 그에게 복수하려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과 이제는 그가 아니라 자신이야말로 바로 그 실수로 썼던 엽서 속 편지, '트로츠키 만세'라는 농담에 길들여져버렸음을. 그는 돌이킬 수 있을 것인가. 언젠가 자신의 욕망 앞에 끝내 꼬리 내리지 못한 채 흐느끼다 소리없이 안개처럼 떠나버렸던 루치에를 다시 만나게 된 지금이 바로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할 계기인가.

 

그가 헬레나를, 여자를 다루는 방식은 남녀의 차이를 관통하는 사유인 동시에, 쿤데라의 의식 속 여자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여자의 생각을 다루는 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나름의 규칙이 있는 법이다. 이성으로 여자를 설득하려 하거나, 아주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여자의 의견을 반박한다거나 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여자가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이미지(원칙이나 이상, 신념 같은 것)을 파악하고, 우리가 바라는 그녀의 행동과 그 이미지가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궤변을 동원하여)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이다. (p.259)

 

그는 친구 코스트카를 기다리며 루치에의 소식을 애타게 갈망한다. 코스트카에게 듣게 된 루치에의 비밀과 자기를 떠난 이후의 그녀의 삶에 대해 듣고는 한 사람이 가졌던 세월과 시간, 비밀에 대해 떠올리며 이제 그녀가 완전히 저를 떠났다는 것을 느낀다. 제마넥에게 복수하려 헬레나에게 접근했던 이유, 그 시작이 되려 굴욕적으로 자신을 사로잡는 걸 느끼며 루드빅은 괴로워한다.

 

내가 복수하고자 했던 나의 과거, 그러나 여기서 마주쳤는데도 마치 나를 알지도 못한다는 듯이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가 버린 나의 과거, 그 과거 전체가 나에게 보여준 것과 동일한 그런 차가운 무관심.

 

나는 굴욕과 수치로 숨이 막혀왔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은 마음, 혼자 있고 싶은 마음, 헬레나와 제마넥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그제와 어제와 오늘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을 다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마지막 흔적까지 모두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었다. (p.385)

 

그는 겨우 과거를, 이제 나에게 밖에는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못하는 과거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헬레나에게도 자신의 모든 꼼수와 계획적 언행을 털어놓는다. 승리의 문턱에서,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이전부터 루드빅은 과거를 원망하고, 과거를 향해 복수하려는 이 모든 계획들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쭉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 멈추지 않은 채 질주함으로서 마지막에서 맞닥뜨린 건 결국 패배와 좌절 그리고 자기 바닥을 확인하는 일 뿐이었다. 그는 절망한다. 세상에 나서 제 바닥을 스스로 자초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보다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까.

 

마지막 챕터에서는 지금까지 있었던 15년 사이의 기나긴 일들보다 더 폭풍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루드빅은 야로슬라브의 연주 악단에 참여하여 여지껏 겪었던 일, 저질렀던 잘못, 존재와 영혼의 상관관계, 처음에는 고쳐볼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나중에는 잊기로 한 부질없는 것들을 하나하나 상기시키고 또 잊어간다. 역사 속에서 혹은 개인의 일생 안에서 생성되는 존재의 모든 말과 행동에서 어떤 인간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던져준 채로. 다른 말로는 책임.

 

나는 비로소 루드빅 아니면 코스트카의 입으로만 과거, 현재를 드러내는 신비의 여인 루치에가 궁금했다. 존재의 가벼움, 영혼의 무거움, 현실의 영면화 등 쿤데라가 늘 드러내왔던 작품세계가 여기 <농담>을 지나치지 못한다. 여전히 이해불가에 어렵고 난해하고 나 자신이 별 것 또는 별 것 아니게 느껴지게 하는 이 모든 힘. 이미 있어왔던 것과 새로 생겨날 것에 대한 조화의 힘. 존재와 영혼이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 루드빅의 아니, 쿤데라의 모든 농담이 존재한다. 쿤데라는 읽고나서도 여전히 어렵다. 빛을 비추는 곳마다 어둡다. 기교가 아닌데 기교처럼 느껴지는 문체가 암담하면서도 아름답다. 삶의 지혜를 찾고싶다. 오래된 것을 무시하지 않고 새 것을 받아들일 용기를 갖고 싶다. 함부로 농담을 건네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당신에게 건넬 새로운 농담을 찾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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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3-0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밀란 쿤데라 <불멸> 읽고 참 좋아서, 아는 사람들한테 선물할 때 늘 이 책을 고르고는 했었는데, 막상 그의 대표작이라는 <농담>은 읽어본 적이 없네요. 아..이 이야기가 이렇게 욕망이 가득한 이야기던가요. 내용으로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이 연상되네요..

아이리시스 2012-03-10 00:16   좋아요 0 | URL
제가 책장에 꽂아만 둔 게 <불멸> 이거든요. 이건 걱정을 전혀 안한 게, 괜찮다는 분을 많이 봐서(얼마전에 샤이닝님도, 오늘 맥거핀님도) 시간만 내면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두께는 이것보다 많이 두껍던데요. 당분간은 쿤데라랑 멀리할 듯.

오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들 좀 검색해봤는데 시작을 <지하로부터의 수기>로 하면 어떨까 했었는데 완전 신기하네요. 맥거핀님이 언급하시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1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 농담이네요. 근데 항상 느끼는거지만, 말은 정말 잘 골라서, 가려서 해야 해요.

요새 도서관에 펭귄클래식 시리즈가 아주 꽉 들어찼는데 손에 안 들어와요.
이 민음사 시리즈가 왠지 오래된 친구처럼 정겨워서 그런지 새로 나오는 고전들이 판형도 종이질도 느낌도 좋은데
왠지 이 시리즈만큼 친근해지지 않네요. 뭐 그렇다고 제가 민음사 시리즈를 사들이는 만큼 읽어대는 것도 아니예요.ㅋ


아이리시스 2012-03-14 12:29   좋아요 0 | URL
저는 구소련,독일 사정들 잘 몰라가지고;; 최대한 찾아보고 아는 척 하며 쓴 거예요!!
사상으로 사람을 구속하고 잡아가둔다는 게 시대착오적인 구석이 많은데, 예전에 우리 때도 그랬잖아요. 사상범들 잡혀오면 말로만이라도 전향해도 살려준다는 거, 그거 생각났어요^^

펭귄클래식이 누워서 들고 보기는 좋아요. 한때는 가벼운 책에 목말랐는데 전집 중엔 맘에 드는 게 없어요. 민음사랑 펭귄클래식도 크기는 다 어정쩡해서;; 그래도 민음사가 여전히 제일 친근해요!! 아직 못 읽은 게 많은데 자꾸 사들이고 있어요. 히히히.
 
사랑의 사막 펭귄클래식 124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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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모리아크(1885-1970)는 프랑스 보르도(거대 포도농장이 있어 와인 원산지로 유명한 곳) 출신으로 195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여 그의 작품들은 '레지스탕스 문학'으로도 분류된다. 법정 체험을 그린 <테레즈 데케루>(1927)가 대표작이지만 읽기는 연대가 더 빠른 <사랑의 사막>(1925)으로 시작했다. 짧은 분량으로 어렵지 않게 읽히지만 "그의 소설에 드러난 깊은 정신적 통찰, 그리고 인간 삶의 드라마를 관통하는 예술적 강렬함"을 이유로 노벨상을 수여한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평가에 걸맞는 압축된 작품세계를 느낄 수 있다. 

 

모리아크는 보르도 지방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모친의 영향으로 인간의 타락과 죄악, 인간 본연의 내적 갈등과 고통, 신의 은총 등을 통찰하는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스토리 보다는 심리묘사에 중점을 두고, 자유와 갈망의 수단으로 '사랑'과 '소통'을 택하여 자기 존재를 새롭게 증명하기 위해 안달하는 주인공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사랑의 사막>은 정확히는 자기 존재를 증명함으로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구를 두 남자가 같은 여인을 바라보며 얻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랑'으로 환원시킨다. 단조로운 이야기 속 빛나는 통찰과 돋보이는 문체. 두 남자는 어떤 파국을 맞게 될 것인가. 혹은 누가 행운아가 될 것인가.

 

종종 레몽은 회상 속에서, 그해 여름의 무더위와 자신을 휩쓸었던 내면의 뜨거운 불을 혼동했다. (p.35)

 

이야기는 어른이 된 레몽이 어느 술집에서 복수를 위해 기다리고 기다린 마리아와 우연히 마주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째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곧이어 시대를 20년 전 그가 열일곱의 소년이었던 시절로 되돌린다.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의사 아버지와 수다스럽고 경박한 어머니, 결혼한 누나와 매형, 예쁜 조카들과 함께 사는 레몽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지루하고 의미 없는 삶의 단면으로 느낀다. 학교에서 집, 집에서 학교로 이리저리 불려 다니지만 학교는 돌벽으로 둘러싸인 창살 없는 감옥처럼, 선생님을 비롯한 친구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지루한 존재들로 다가올 뿐이다. 집에는 남편과 자식들 닦달하는 게 유일한 낙인(본인은 애정인 줄 앎) 어머니와 제 가족 살 길과 행복 외 어떤 것에도 관심 없는 누나 부부, 그저 우호적이기만 하면 부모 역할 다인 줄로 아는 아버지 때문에 피곤함을 느낀다. 안팎 어느 곳에서도 인정 받지 못하는 레몽은 하물며 또래의 관심사인 '여자'나 '과시'에도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방황한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는 일정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늘 사랑을 위한 빈자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다. (p.40)

 

레몽의 어머니는 남편이 무뚝뚝하고 무관심하며 늘 한 걸음 뒤에 있는 듯한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을 그의 직업적 특성으로 이해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남편 쿠레주 박사와 아들 레몽이 자신이 제일 비난하는 이웃집 마리아에게 빠져있을 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 어쨌든 아버지와 아들, 두 남자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각각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마리아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에게 사랑과 남자는 이러했을 뿐이지만.

 

"저를 타락시킨 것은 가난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나쁜 무엇이에요. 근사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싶은, 혹은 다시 결혼해서 확실한 자리를 잡고 싶은 욕구 같은 것.. 현재 저를 라루셀 곁에 붙잡아 두는 것은, 치러야 할 전투 앞에서 도망치는 비겁함, 박한 월급으로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은 허영이에요." (p.73)

 

그녀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려 매일 묘지로 가는 여섯시 전차를 타면서 열일곱의 레몽을 본다. 처음에는 침묵 속에 서로의 암묵적 존재를 인정하던 사이에서 점차 각자의 환상을 키워가다 비로소 한 인격체로서 서로를 대하면서 아찔한 혼란을 느낀다. 치료 명목하 집에 오던 쿠레주 박사가 관심을 표해온다는 것을 알고도 철저히 무관심으로 응한 그녀다. 칭송받는 인격에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지만 마리아에게 그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남자일 뿐이다.

 

마리아는 더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즈음 레몽을 만나면서 자기 안에 다시 사랑의 불씨가 타오름을 느낀다. 그것은 강렬하고 강력하다. 들킬까 겁이 난 그녀는 처음으로 찾아와 함께 방안에 있게 된 그를 "혼자 있고 싶어요"란 말로 내치면서 훗날 그를 거칠고 정복에 열올리는 자존심 강한 남자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사실은 흔들리는 자신을 견디기 위해서였을 뿐이지만 레몽에게 그것은 평생에 걸쳐 극복해야 할 남성으로서 거절당한 트라우마로 남는다.

 

당신은 한 여자의 가혹하고 혼란스러운 인생 속에 유일한 기쁨이었어요. 이번 겨울 매일 집으로 돌아가는 전차 안에서, 저는 당신으로 인해 휴식할 수 있었지요. 당신은 몰랐겠지만.. 그렇지만 당신이 보여준 그 영롱한 얼굴은, 내가 소유하길 갈망하는 영혼의 그림자에 불과해요. 당신에 대해서 모든 걸 다 알고, 당신의 모든 불안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 우리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함께 헤쳐가는 것, 당신에게 친구, 어머니 그 이상의 존재가 되는 것.. 나는 그런 것을 꿈꿔 왔어요.. 그러나 마음대로 나 말고 다른 존재가 될 수는 없답니다. 당신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로 인해 타락한 공기를 마시게 될까 봐 겁이 나요.. (pp.139-140)

 

쿠레주 박사와 그의 아들 레몽, 마리아. 세 사람은 상대를 사랑함으로서 상대는 물론 자신에게 가장 상처 입힌다. 때로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사랑인지 자기애인지 혼동된다. 쿠레주 박사는 자신의 본질적 비극을 넘어서야 한다는 걸 알고 체념함으로서 사랑 앞에 절망하고, 레몽은 드디어 닿을 뻔 했던 그녀에게 내쳐짐으로서 상처 입는다. 마리아는 그녀대로 금지된 사랑과 현실의 안락함 혹은 주위 시선을 저울질하다 레몽을 거절함으로서 현실에 안주한다. 셋의 사랑은 자기 것이 아닌 곳에 다다르기 위해 안간힘 쓰다 갈구하던 것을 갖지 못하고 다시 제 세상에 처박히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닮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불륜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러브스토리를 빙자한 인간 본연의 자기탐구에 가닿는다. 인간은 고립되었고, 결국 고립된 자기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타인과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발버둥 친다. 상상 속에서 사랑하는 것이 더 행복하고 현실에 죄가 되지 않는다며 포기해버린 쿠레주 박사나 그녀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라는 것을 알고 20년이 지난 후까지 그녀의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레몽, 여전히 원래 남편을 벗어나지 못한 채 안주하고 있는 마리아. 그들이 원한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랑이 고립된 자신을 꺼내줄 수 있을까. 그들은 그렇게 믿었을까.

 

내가 꿈꾼 건 어떤 침묵이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침묵. 욕망이 태어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 안에 있는 욕망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통하는 침묵. 쓰다듬고 애무하는 모든 행위는 두 존재 사이의 간격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만약 두 존재가 너무나 가까워져, 둘 사이의 경계선이 흐려지고 혼동된다면.. 그때는 결합이, 수치심을 동반하는 이 포옹이 필요 없어지지 않을까?.. (p.169)

 

모든 욕망이 전율했다. 욕망과 쓰다듬고 애무하는 모든 행위, 포옹이란 이름은 존재하는 두 존재 사이의 간격을 전제로 한다는 말에서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나는 껴안아야 했다. 사랑은 바로 이 순간의 감정과 흐느낌과 욕망 뿐이니까.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사랑의 무의미, 몰가치, 허무를 가장 잘 알고있는 여자가 아니었을까. 내 존재가 사라지면 타인을 원하는 마음도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보다 먼저 알고 있었던 똑똑하고 지혜로운 여자. 그런 여자가 먹고 사는 고단함에 지쳐 꺾인 날개로 사랑, 그러니까 욕망하지 않는 남자의 부유함 뒤에 숨어 수치심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각자의 섬일까.

나를 몰라서 나를 알기 위해 자꾸만 너를 괴롭히는 게 아닐까.

내게 있어, 널 괴롭히거나 네게 괴롭힘 당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쯤했을 때, 난 더이상 그들의 결말이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이 소설은 그저그런 단순한 러브 스토리나 불륜의 소재로 빚은 의미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 주인공의 결말이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다들 불꽃처럼 정열적이고 반짝거리는 삶을 꿈꾸지만 애초부터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도.

 

사랑과 존재와 삶은 허구도 아니고 허무도 아니지만 그것들에게 다가가는 감정과 욕망은 허구이자 허무일 뿐이었다. 이전 사랑에 속으면서도 또 시작하는. 끝에 데여봤으면서도 또 끝낼 수밖에 없는. 당신이 아니라 나를 알기 위해 자꾸만 다가가는. 불꽃 같고 굴레 같고 지옥 같지만 때때로 황홀한 삶 그리고 사랑. 그리고 나의 삶. 존재함으로서 완벽해지는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욕망은 타오를 때라야 아름다운 것이다. 나를 알기 위한 여정이 당신에게로 닿는 일 전부라면 아무리 잔혹하고 비극적이더라도 걸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 나를 향해 오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모든 것은 세월이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슬프게도. 좀 더 오랜시간 또렷한 존재로 각인되고자 하는 방법이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거나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감으로서 박제되는 일 뿐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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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3-0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이 먼저 이 소설을 읽으셨군요. 저도 이번에 나온 모리아크 소설 읽어보려고 했거든요. ^^


아이리시스 2012-03-02 14:09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모리아크 좋았어요. <테레즈 데케루>도 보고 싶어요. 짧은 분량인데 다 담겨있더라고요. <좁은문>의 느낌이 나서 좋았어요. 어렵지 않게 읽히는 것도 좋아요.^^

2012-03-01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2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2-03-02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번 리뷰는 특히나 평론가의 리뷰같아서 좋네요 ^____^
표지의 그림이 꽤나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내용 자체는 괜찮아 보여요.
펭귄 클래식은 믿고 있으니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고 싶군요 ^_^
지금은... 8만원이 날라갈 위기에 처해있기에... 후후

아이리시스 2012-03-02 14:17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안녕. 평론가의 리뷰.. 과한 칭찬 기분 좋아요 ^_____^
그보다 끝까지 관심 가지고 읽어주시는 게 더 좋아요.
내용 괜찮아요. 좋았어요. 셜록 홈즈 샀어요? 8만원은 또 뭐예요?
저도 왜 확 지르고 나니까 꼭 읽고싶은 책들이 막 생길까요..
이제 적립금 없는데.. 난 책 살 돈이 없어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오늘은 보험금 독촉 받았어요. 좀 늦었다고 보험 실효됐어요. 방금 살리고 오는 길ㅜㅜㅜㅜㅜㅜㅜ
세상 너무 냉정해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이진 2012-03-02 21:32   좋아요 0 | URL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보험금 독촉이라니 눈물이 앞을 가려요 ㅠㅠㅠ
저도 적립금 0원이어요....... 마일리지만 5천원정도 딱 현금으로 바꿀정도 있어요...
그거가지고는 만화책 나오는거 두권도 못사요.
세상은 너무 냉정하고 할건 많은데 냉정한 세상은 받아주지도 않고.
셜록홈즈는 샀는데... 대체 일주일 전에 샀는데 피아노 연주곡집 하나가 준비가 늦게 되어서 아마 빠르면 내일 올 거 같아요. 두근두근두근두근. 8만원은 해외 사진집인데 한권에 5만원!!! 흑....

아이리시스 2012-03-03 14:38   좋아요 0 | URL
해외 사진집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피아노 연주곡집도 사고? 이야 ^_____^
멋져요!!! 꺄울 >.<

신지 2012-03-02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소설에 드러난 깊은 정신적 통찰, 그리고 인간 삶의 드라마를 관통하는 예술적 강렬함"이라는 말이 잘 와닿는 리뷰였어요. 특히 이번엔 더, 인용하신 문장 뿐만 아니라 리뷰 자체에도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가득하군요 리뷰만 읽어본 상태지만 이 작가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과 작가의 관심에 흥미가 느껴집니다 많이 공감할 것만 같은 느낌... 무의미, 허무, 수치심,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안주하는,

다만 노벨상 수상 작가가 썼다니.............
전 영화로 나왔으면 좋겠네요( ")

아이리시스 2012-03-02 14:22   좋아요 0 | URL
안녕, 신지님. 오오, 그러니까 제가 잘 썼다는 말이죠? 잘 다가가게? 히히(자화자찬) ^_____^
이 작가의 작품들은 주로 펭귄 클래식 시리즈로 나오던데 작가 평판이나 노벨상 수상작가인데도 관심이 좀 덜한 것 같더라고요. 문장은 좀 쉬운 편이구요. 작품세계는 제가 쓰고 싶은 것과도 닿아있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공감할 것만 같은 느낌.. 저도 많이 느껴요.

글쎄, 영화로 나오면 보르도를 맘껏 감상할 수 있을테니 풍경은 멋지겠구요. 내용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알로하 2012-03-09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구절을 정말 공감합니다. 그래서 불멸의 사랑이야기는 해피엔딩보단 새드엔딩이 많은거 같아요. 서로 씻을수 없는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한 고통스러운 사랑이 더 기억에 남게 되고... 잘 쓴 사랑이야기는 여러 개인간의 관계로 시작해서 한 개인의 내면에서 끝나게 되는 듯. 모든 사랑 이야기가 성장담 같기도 하고요. '너'와 '나'의 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좁힐 수가 없으니... 아 허무하네요!

아이리시스 2012-03-10 00:04   좋아요 0 | URL
알로하님 오랜만이에요. 어디 갔다 이제 온 거예요!!!

드라마 <난폭한 로맨스>에서도 도우미 아줌마가 이런 말을 했었구요. <사랑의 사막>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오더라고요. "가장 오래 기억되는 방법은 잊혀지는 것이다"

슬프고 허무해요! 진행형 삶은 변해갈 여지가 많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해피엔딩으로 상상하기 쉽고, 이미 끝난 삶은 마무리 됐기 때문에 불멸로 남아서 새드로 기억되기 때문이라고 하면 완전 맞는 말이잖아요.

자주 와요, 알로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