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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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내게 어려웠다. <농담>을 잘 안 읽히면 농담으로 치부하고서라도 끝까지 읽어내겠다, 하는 오기로 시작하기 전에 나는 다른 두 작품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내가 만든 기회였다. 하나는 읽다 말았다를 반복했고 하나는 책장에 그저 꽂히기만 했다. 나는 체코에 무궁한 호기심이 있었다. 이 나라는 유럽에 있지만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전도연과 김주혁의 <프라하의 연인>을 나만 그 전작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데 그건 파리는 낭만적이고 아름답지만 프라하는 절망스럽고 슬퍼서다.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풍경에 나는 늘 울고 싶었다. 그런 우울이 뚝뚝 떨어지는 도시에서 난 작가라면, 나도 모르는 내가 원하는 것이 들어있지 않을까 해서 끊임없이 쿤데라 옆을 서성였는지도 모른다.

 

나름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 생각과 달리 잡는 순간부터 너무 잘 읽혀서 놀라웠다. 여자들은 군대 얘기를 싫어한다지만 내가 겪지 못할 일이라 그것도 너무 재밌다. 물론 수감생활도, 탄광생활도 루드빅에게는 비극이지만 내게는 활력. 그런데 이렇게 리뷰를 써도 될까. 이 놀랍고 경이롭기만한 위대한 농담을 나는 반의 반이나마 이해하긴 한 걸까. 쿤데라의 국가가 낯설고 이질적인 만큼 작품 속 인물과 배경도 마찬가지로 다가온다. 이름 달린 몇 명의 인물들로부터 각각 반추되는 루드빅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삶의 다양성에 얽힌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설명하게 한다. 그 와중에 쿤데라의 목소리가 종종 흘러나온다. 잘 읽히면서도 어렵다. 스탈린주의나 트로츠키주의 같은 용어에 얽힌 지식들을 나는 단편적으로 혹은 이데올로기적으로만 알고 있다. 처음에는 불안하게 시작했다. 지금은 그것들을 모르더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굵게 관통하는 이 작품의 줄기는 결국 한 인간의 정체성, 존재의 농담일텐데 그것을 체코의 공산화 시기의 혁명 이후로 배경을 맞추어 전개해나간다. 이데올로기, 사랑, 정체성, 이것들이 한 선으로 연결된다. 남자의 대학시절은 공산주의 운동으로 점철된 지식터에서 스탈린을 비판한 트로츠키 옹호자를 처치하려는 시대였다. 당시 체코는 막 공산주의화 되려 하고 있었다. 주인공 루드빅의 험난한 여정을 따라 이 소설은 진행된다. 한 사람의 우스갯 장난이 궁극적으로 이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지게 하는지.

 

학창시절, 모임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루드빅이 여자친구와의 장난스런 편지에 쓴 트로츠키 만세! 라는 글 하나 때문에 강제로 입대하게 된다. 그로인해 그가 꿈꿨던 모든 것과 가지고 있었던 생각, 사상, 친구, 지식들까지 모두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당해 부대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모든 것이 착오로 인한 것이며, 진실을 말하기만 하면 받아들여질 것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혹독하다. 한때의 잘못을 쉽사리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으며, 바꿀 힘 같은 건 애초 자기에게 없었다는 것을 차차 알아간다. 그는 무언가를 희망했던 이들이 그것을 포기하거나 버려가는 과정의 3단계를 차례로 밟는다. 오랜시간 공을 들여 아주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나는 그 생각을 하기 싫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싫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나는 오늘날 자신들이 신봉하던 시대의 움직임에 의해 나처럼 거부당하고 떠밀려나간 사람들이 자기 운명을 떠벌이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 추방된 자라는 내 운명을 나 역시 영웅화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된 자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내가 검정 표지 속에 보내지게 된 것이, 내가 용감했기 때문도 아니고, 투쟁을 했기 때문도 아니며, 내 생각과 다른 생각들에 대항하여 싸웠기 때문도 아니라는 것을 냉정하게 상기해야만 했다. 그렇다, 나의 전락에는 그 어떤 진짜 드라마도 선행하지 않았고, 나는 내 이야기의 주체라기보다는 차라리 대상에 가까웠으며, 그러므로 (괴로움, 깊은 슬픔, 실패 등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 내 이야기를 가지고 무언가 대단한 척 내세울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p.173)

 

그는 오해로 얼룩진 자신의 신념을 끊임없이 위협받는 동안 운명처럼 만났던 루치에와의 만남이 환상보다 한없이 처져버리자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이제 그에게는 원래의 것도, 돌아갈 곳도, 밝혀내야 할 것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는 옷을 입고 여자는 홀딱 벗은 채로 한 방에 있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의 섹스에 대한 환상은 올곧고 순결하여 새침하기까지 한 루치에의 옷을 단 한 번도 벗기지 못함으로서, 그녀에게 화를 내고 외면하고 윽박지르게 되면서 그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망과 싸우던 틈을 타, 루치에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림으로서 끝난다. 사랑하는 남녀에게 있어, 섹스의 농담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너무 솔직하면 떠나버리고, 너무 가리면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화를 유발하게 된다.

 

내가 딱 하나 경이롭다고 생각했던 <농담>의 구절은 이것이다. 쿤데라가 루드빅의 입을 빌려, 민속 예술의 전통이 이어질 수 있는 배경과 이데올로기에 대해 열변했던 부분. 이 단락이 대단하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체제라는 것을 이토록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대단해서다.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서.

 

예전의 농촌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 마을의 한 해 행사는 이런저런 의식들로 이어졌다. 민속 예술은 이러한 의식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들판의 농가 여인에게 영감이 찾아오면 그 입술에서 곧 샘물처럼 노래가 샘솟아 나온다고 상상했다. 그러나 민속 노래는 지적인 시와는 다르게 생겨난다. 시인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자기에게만 있는 유일한 어떤 것을 말하기 위하여 시를 쓴다. 그러나 민속 노래를 통해서 사람들은 남과 구별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섞이려고 한다. 그것은 종유석처럼 형성된다. 새로운 모티프, 새로운 변형들이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져 덮이면서 민속 노래가 형성되는 것이다. 노래하는 사람마다 새로 어떤 요소를 덧붙이는 가운데 그 노래는 대대로 전해 내려간다. 그러니까 이런 노래들을 지은 사람은 여러 명인데, 그들은 모두 자기가 한 공헌 뒤로 겸허하게 사라져버렸다. 그 어떤 민속 노래도 혼자서 존재하지는 못했다. 제각기 자기 기능이 있었다. (중략)

 

자본주의는 이러한 집단 생활을 파괴했다. 민속 예술은 그래서 자신의 기반, 존재 이유,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사람이 타인과 멀리 떨어져서 혼자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는 그것을 부활시키려 해보아야 아무 소용 없다. 그런데 사회주의는 사람들을 이런 고립된 삶의 올가미로부터 해방시켜 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집단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동일한 공동의 이익으로 연대하여. 그들의 사적인 삶은 공적인 삶과 일체를 이룰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의식들로 하여 서로 결합될 것이다. (중략)

 

어느 곳에서든 민중의 예술은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제 이해하겠는가? (pp.202-203)

 

하지만 한 마디 농담으로 동무들에게 내쳐진 그는 자기를 사실상 망가뜨린 친구에게 복수심을 품고 그의 아내 헬레나에게 접근한다. 단지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를 점령한다면 친구에게 복수할 수 있다고만 생각해서다. 그에게 여자의 본질은 이런 것.

 

사실상 내가 한 여자에게서 좋아하는 것은 그녀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방식, <나에게> 그녀가 의미하는 그 무엇이다. 나는 한 여자를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의 등장 인물로서 사랑한다. 햄릿에게 엘시노어 성, 오필리아, 구체적 상황들의 전개, 자기 역할의 <텍스트>가 없다면 그는 대체 무엇이겠는가?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허하고 환상 같은 본질 외에 그에게 무엇이 더 남아 있겠는가? (p.232)

 

처음에 바란 것은 그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과 이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는 것뿐이었지만, 그것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서 복수를 실행에 옮기며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자기 행동을 타당화하려는 것에 불과한.

 

올곧고 투명하다. 그런데 그게 어떤 거죠? 있는 그대로 살고, 자기가 원하는 것, 욕망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러면 다 아닌가요. 사람들은 규범의 노예들이에요. 누가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말해 주면 그렇게 하려고 애쓸 뿐, 그것이 뭔지 자신들이 무엇인지 절대 알게 되지 못하죠. 대번에 그들은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과감히 자기 자신이고자 해야 해요. 헬레나, 결혼을 하셨다고 해도 저는 처음부터 당신이 마음에 들었고 당신을 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어떻게 다르게 할 수도 없고,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어요. (p.259)

 

돌고돌아 그는 인간이란 '욕망'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닿은 것이다. 농담으로 내뱉은 말을 책임지기 위해 원하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오며, 아무리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제자리에 닿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그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찾기 시작한다. 이대로라면 쿤데라의 말대로 옳은 것과 나쁜 것,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차이가 있기나 한 건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은 '본질'에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조차도. 하지만 그 이데올로기 또한 가장 억압받고 왜곡되고 엇나가기만 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 아니던가. 그가 그 한 마디에 이끌려 이 먼 곳까지 떠밀려 온 것처럼. 지금 헬레나를 통해 실현하려는 바로 그 복수처럼.

 

겉으로 사랑 이야기, 더 들어가 꼬여버린 인생에 대한 반추 같은 거지만 체코가 낯선 나라다보니, 배경과 체제 이해가 자동적으로 되지는 않는다. 간신히 이해해보지만 온전하지는 않을 테니까 지금의 체코 공화국이 되기까지의 과정 이해와 역사적 지식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다. 그것 없이도 <농담>은 충분히 유머와 풍자와 조롱 조의 소설로 읽히지만, 알면 더 많이 보일 것이다. 소설은 타인의 자료조사와 지식창출에 기댄 기본적으로는 아무리 사실적이라도 '픽션'이다. 그래서 소설은 이해를 도와주지만 소설적 이해는 결코 실제와 같지 않다. 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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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社會主義 共和國, :Československá socialistická republika)은 체코슬로바키아1960년부터 벨벳 혁명 직후인 1990년초까지의 공식 국가 명칭이다.

 

1943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망명 정치가 에드바르트 베네시 (Edvard Beneš)는 소련의 외교 정책에 무조건 따르라는 스탈린의 요구에 응하여, 베네시 선언에 따라 백만여 명이 넘는 주데텐의 독일인을 "부자"로 치부하여 추방하고, 헝가리인들도 쫓아냈다. 베네시는 스탈린과 군사ㆍ경제 분야에서 "긴밀한 전후 협조"를 약속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를 향한 인민의 길"에 따라 대지주의 재산, 공장, 광산, 제강소, 은행을 몰수하여 국유화하였다. 베네시는 러시아의 하수인은 아니었으며, 그의 계획에서는 다른 동구권 국가의 몇몇 내정 개혁과 다른 점이 있었으나, 스탈린은 베네시가 재산 몰수를 실시했고, 여타 소비에트 블록 나라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자 세력이 강하다는 점에도 만족하여 그를 반대하지 않았다.

 

1945년 3월 베네시는 모스크바를 방문하였다. 소련 내무인민위원회의 질문 목록에 답변한 뒤 베네시는 주데텐에 사는 이백 만 여명의 독일인과 400,000명에서 600,000명 사이의 헝가리인을 국외로 퇴거시키고, 붉은 군대와 긴밀히 공조하는 강력한 군대를 육성한다는 계획으로 소련 정부를 기쁘게 하였다. 1945년 4월 세 개의 사회주의 정당이 지배하는 거국 연정인 제3공화국이 창설되었다. 공산당의 힘이 강했고(이들은 300석 가운데 114석을 점하였다) 베네시가 소련에 충성하였기 때문에 다른 동구권 국가와 달리 소련 정부는 체코슬로바키아에 블록 정치를 강제하거나 "믿을 만한" 간부를 최고위직에 앉히도록 요구하지 않았으며, 행정부과 입법부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예전대로 하던 구조를 계속 유지하였다. 그러나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1946년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고도 자신의 입지를 펼치지 않는데 처음으로 실망하였다. 이들은 지방 정부를 공산당이 장악한 새로이 구성된 위원회로 대체하여 기존의 행정 실권을 빼앗았으나, 군대내에 "부르주아"의 영향을 제거하거나 실업가와 대지주와 재산을 몰수하지는 못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어느 정도 독립적인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어 처음부터 소비에트 블록의 전형적인 정치ㆍ사회ㆍ경제 체제를 갖추지 못했으므로 소련 당국은 이를 문제시하게 되었다. "애국 전선" 바깥의 세력들은 정부에서 배제되었으나, 이들은 아직 건재하였다. 붉은 군대가 점령한 나라들과 달리, 체코슬로바키아에는 공산당이 이미 주도적인 역할을 주장할 수 있어서 소련의 군정 당국이 없었다.

 

소련 당국은 다가오는 1948년 선거에서 공산주의자가 승리하리란 기대를 잃어갔다. 1947년 5월에 크렘린의 어느 보고서에서는 서방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반동적 요소"가 강해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마셜 계획의 자금을 얻을 것을 잠시 고려하고, 그리하여 1947년 9월 시클라르스카 포렝바에서 코민포름이 여러 공산당을 비난하면서, 루돌프 슬란스키 (Rudolf Slánský) 는 국가 안보국(StB)이 당내 정적을 제거하고 반대자를 숙청하여 권력을 잡을 계획으로 프라하에 돌아왔다. 1948년 2월 초에 공산주의자인 내무 장관 바츨라프 노세크 (Václav Nosek) 는 국가 경찰대에 남은 비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려 하는 월권 행위를 하였다. 소련의 발레리안 조린 (Valerian Zorin) 대사는 쿠데타를 준비하기 위하여 프라하에 도착하였으며, 비공산주의자가 장관직에 오르고 군대가 병영에서 출금 조치되자 정변을 일으켰다. 붉은 군대에 복무하는 조린 (Zorin) 과 함께 공산주의자 "행동 위원회"와 노동조합 민병대가 이내 조직되어 무장하고, 반공주의자를 숙청할 준비를 갖추었다. 베네시는 내전이 일어나고 소련이 간섭할 것을 두려워하여 1948년 2월 25일에 항복하고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이 장악한 정부를 인명하였으며, 그 지도자는 스탈린주의자인 클레멘트 고트발트 (Klement Gottwald) 로, 이틀 뒤에 총리직 취임에 선서하여 독재를 이끌었다. 유일하게 고위직에 있던 비공산주의자인 얀 마사리크 (Jan Masaryk) 는 2주 뒤에 시체로 발견되었다. 소련이 지원한 쿠데타는 대놓고 잔인하게 행동하자 서방 국가들은 이전의 어떤 사건보다도 충격을 받았으며, 일시적으로 전쟁 자세를 취하여, 미국 의회내에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마셜 계획에 반대하던 소수의 사람들조차 찬성으로 돌아섰다.

 

1948년 2월 쿠데타가 일어나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이 집권하자 체코슬로바키아는 새 헌법이 발효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Československá republika)이라는 인민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그 후 공산주의 체제의 안정을 위해 1960년 신헌법을 채택, 시행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사회주의의 최종적 승리"의 상징과 마찬가지로 1960년 7월 11일에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국호로 바꾸었으며 1990년 벨벳 혁명 때까지 유지되었다.

 

1969년 각각 동등한 지위를 갖는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두 구성공화국이으로 이루어진 연방제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이행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을 휩쓴 개혁, 개방 물결 속에 1989년 벨벳 혁명으로 다당제가 도입되고 공산정권이 붕괴되었고 1990년 4월 1일 공식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으로 변경하여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명칭은 사라졌다.

 

한편, 이후의 체코 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은 1992년, 각각 체코슬로바키아로 분리할 것을 결의하여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는 완전히 소멸하고 두 독립국인 체코 공화국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나누어졌다.

 

[출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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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공부.. 하지 말 걸 그랬어..( '') 하루에 한 문단씩 읽어야겠어..( '')

 

루드빅은 자신을 이렇게 불운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파벨 제마넥의 아내 헬레나를 굴복시켜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그녀를 정복했을 때 비로소 깨닫는다. 헬레나와 제마넥의 오래된 관계, 과거에 묶인 사이일 뿐 현재의 둘 사이는 애틋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음을. 한때 증오하는 그 남자의 모든 것인 여자였지만 이제 그에게 있어 아무 것도 아닌 존재. 그 여자를 정복함으로서 그에게 복수하려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과 이제는 그가 아니라 자신이야말로 바로 그 실수로 썼던 엽서 속 편지, '트로츠키 만세'라는 농담에 길들여져버렸음을. 그는 돌이킬 수 있을 것인가. 언젠가 자신의 욕망 앞에 끝내 꼬리 내리지 못한 채 흐느끼다 소리없이 안개처럼 떠나버렸던 루치에를 다시 만나게 된 지금이 바로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할 계기인가.

 

그가 헬레나를, 여자를 다루는 방식은 남녀의 차이를 관통하는 사유인 동시에, 쿤데라의 의식 속 여자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여자의 생각을 다루는 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나름의 규칙이 있는 법이다. 이성으로 여자를 설득하려 하거나, 아주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여자의 의견을 반박한다거나 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여자가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이미지(원칙이나 이상, 신념 같은 것)을 파악하고, 우리가 바라는 그녀의 행동과 그 이미지가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궤변을 동원하여)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이다. (p.259)

 

그는 친구 코스트카를 기다리며 루치에의 소식을 애타게 갈망한다. 코스트카에게 듣게 된 루치에의 비밀과 자기를 떠난 이후의 그녀의 삶에 대해 듣고는 한 사람이 가졌던 세월과 시간, 비밀에 대해 떠올리며 이제 그녀가 완전히 저를 떠났다는 것을 느낀다. 제마넥에게 복수하려 헬레나에게 접근했던 이유, 그 시작이 되려 굴욕적으로 자신을 사로잡는 걸 느끼며 루드빅은 괴로워한다.

 

내가 복수하고자 했던 나의 과거, 그러나 여기서 마주쳤는데도 마치 나를 알지도 못한다는 듯이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가 버린 나의 과거, 그 과거 전체가 나에게 보여준 것과 동일한 그런 차가운 무관심.

 

나는 굴욕과 수치로 숨이 막혀왔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은 마음, 혼자 있고 싶은 마음, 헬레나와 제마넥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그제와 어제와 오늘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을 다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마지막 흔적까지 모두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었다. (p.385)

 

그는 겨우 과거를, 이제 나에게 밖에는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못하는 과거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헬레나에게도 자신의 모든 꼼수와 계획적 언행을 털어놓는다. 승리의 문턱에서,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이전부터 루드빅은 과거를 원망하고, 과거를 향해 복수하려는 이 모든 계획들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쭉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 멈추지 않은 채 질주함으로서 마지막에서 맞닥뜨린 건 결국 패배와 좌절 그리고 자기 바닥을 확인하는 일 뿐이었다. 그는 절망한다. 세상에 나서 제 바닥을 스스로 자초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보다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까.

 

마지막 챕터에서는 지금까지 있었던 15년 사이의 기나긴 일들보다 더 폭풍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루드빅은 야로슬라브의 연주 악단에 참여하여 여지껏 겪었던 일, 저질렀던 잘못, 존재와 영혼의 상관관계, 처음에는 고쳐볼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나중에는 잊기로 한 부질없는 것들을 하나하나 상기시키고 또 잊어간다. 역사 속에서 혹은 개인의 일생 안에서 생성되는 존재의 모든 말과 행동에서 어떤 인간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던져준 채로. 다른 말로는 책임.

 

나는 비로소 루드빅 아니면 코스트카의 입으로만 과거, 현재를 드러내는 신비의 여인 루치에가 궁금했다. 존재의 가벼움, 영혼의 무거움, 현실의 영면화 등 쿤데라가 늘 드러내왔던 작품세계가 여기 <농담>을 지나치지 못한다. 여전히 이해불가에 어렵고 난해하고 나 자신이 별 것 또는 별 것 아니게 느껴지게 하는 이 모든 힘. 이미 있어왔던 것과 새로 생겨날 것에 대한 조화의 힘. 존재와 영혼이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 루드빅의 아니, 쿤데라의 모든 농담이 존재한다. 쿤데라는 읽고나서도 여전히 어렵다. 빛을 비추는 곳마다 어둡다. 기교가 아닌데 기교처럼 느껴지는 문체가 암담하면서도 아름답다. 삶의 지혜를 찾고싶다. 오래된 것을 무시하지 않고 새 것을 받아들일 용기를 갖고 싶다. 함부로 농담을 건네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당신에게 건넬 새로운 농담을 찾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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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3-0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밀란 쿤데라 <불멸> 읽고 참 좋아서, 아는 사람들한테 선물할 때 늘 이 책을 고르고는 했었는데, 막상 그의 대표작이라는 <농담>은 읽어본 적이 없네요. 아..이 이야기가 이렇게 욕망이 가득한 이야기던가요. 내용으로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이 연상되네요..

아이리시스 2012-03-10 00:16   좋아요 0 | URL
제가 책장에 꽂아만 둔 게 <불멸> 이거든요. 이건 걱정을 전혀 안한 게, 괜찮다는 분을 많이 봐서(얼마전에 샤이닝님도, 오늘 맥거핀님도) 시간만 내면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두께는 이것보다 많이 두껍던데요. 당분간은 쿤데라랑 멀리할 듯.

오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들 좀 검색해봤는데 시작을 <지하로부터의 수기>로 하면 어떨까 했었는데 완전 신기하네요. 맥거핀님이 언급하시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1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 농담이네요. 근데 항상 느끼는거지만, 말은 정말 잘 골라서, 가려서 해야 해요.

요새 도서관에 펭귄클래식 시리즈가 아주 꽉 들어찼는데 손에 안 들어와요.
이 민음사 시리즈가 왠지 오래된 친구처럼 정겨워서 그런지 새로 나오는 고전들이 판형도 종이질도 느낌도 좋은데
왠지 이 시리즈만큼 친근해지지 않네요. 뭐 그렇다고 제가 민음사 시리즈를 사들이는 만큼 읽어대는 것도 아니예요.ㅋ


아이리시스 2012-03-14 12:29   좋아요 0 | URL
저는 구소련,독일 사정들 잘 몰라가지고;; 최대한 찾아보고 아는 척 하며 쓴 거예요!!
사상으로 사람을 구속하고 잡아가둔다는 게 시대착오적인 구석이 많은데, 예전에 우리 때도 그랬잖아요. 사상범들 잡혀오면 말로만이라도 전향해도 살려준다는 거, 그거 생각났어요^^

펭귄클래식이 누워서 들고 보기는 좋아요. 한때는 가벼운 책에 목말랐는데 전집 중엔 맘에 드는 게 없어요. 민음사랑 펭귄클래식도 크기는 다 어정쩡해서;; 그래도 민음사가 여전히 제일 친근해요!! 아직 못 읽은 게 많은데 자꾸 사들이고 있어요.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