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마지막 날이다. 마땅히 직업도 없는 내가 무슨 휴가가 필요하겠냐마는 나는 휴가를 정했다. 내 휴가는 차를 타지 않고 지내는 것이다. 휴가라면 의례 여행을 생각하기 일수이지만 언제부턴지 내가 그리는 휴가는 한 곳에서 고요히 있는 것이다. 결혼 후 두 번째 휴가였다.

첫 번째 휴가는 해인사 근처 암자에서 지냈다. 1주일. 행복했다. 그때는 아파서 그곳에 간 것이지만-딱 한번, 아파서 어쩔 줄 모르긴 했지만- 대체로 아프지 않고, 고요하고 평온했다.

그렇게 행복했던 기억은 아주 가까이에도 있다. 처음 선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언젠가는 잘 살았던 아이였구나 싶었다. 복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복이 이리도 많아 여기 고요히 앉을 수 있는가...행복이 아니라 희열에 가까웠다. 이래서 인연이라는 것이 있나 보다. 숨통이 트이고, 세상이 밝아졌다.

이번 휴가는 2주간이었다. 첫 번째 휴가나 선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만큼 행복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좀더 필요한 때였다. 이번엔 "기억"이 하나의 테마가 되었다. 오늘 찾아온 친구에게 내가 대학 때 어떤 애였는지 기억하냐고 했더니 말해준다. 기억. 잘 생각이 안 난다. 들으면서 생각했다. 아, 내가 가슴 아프거나 부정적인 기억들을 없애가고 있구나.

기독교 방송에서 한 목사님이 치매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 많은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라고 하셨다,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서 60세가 넘으면 그 추억으로 사는 거라고, 그 추억이 없는 사람이 걸리는 병이 치매라고.

그러나 내 생각엔 모든 기억 속에는 어둡고 아픈 기억이나 아름다운 기억들이 섞여 있다. 어느 것이 내게 뿌리를 내리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사라진 기억 속에 나는-그 친구 말에 따르면- 열정적으로 말하고, 비가 오면 튀어나가고, 시를 소리내어 읽고, 종교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언제나 곧 떠날 것처럼 보였다고.

그런데 지금 나는 천천히 말하고, 가만히 바라보고, 눈으로 읽고, 가만히 앉아 말 없이 수행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나 보다.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 우리 집에 온 친구도 말했다. 20대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너무 힘들었다고. 나도 그래서 기억이 나지 않았나 보다. 가만히 생각하면 행복했던 기억이 넘친다. 작은 언니를 생각하며 요즘도 눈물 짓지만 처음엔 우울했던 기억뿐이었는데 지금은 언니가 나를 기쁘게 해줬던 감동적인 순간들이 떠오른다. 기억조차 행복해지려고만 한다. 가만히 두면 흘러가겠지, 약간의 불편도 함께 흘러가겠지.

다음 주부터는 다시 밖으로 나간다. 차를 타고 갈 만한 곳도 갈 것이고, 밖에서 사람도 만나고, 볼 일도 볼 것이다. 그리고 다음달 중순이면 동안거가 시작된다. 이번엔 산철결제가 없어서 3개월이나 선방에 가질 못했다. 게으르던 마음을 추스리고 조금씩 좌선을 하고 있다. 처음엔 수행이 깨달음이나 자비나 이런 단어들을 떠오르게 했다. 요즘의 나에게 수행은 자기조절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심신에 대한 조절, 자기에 대한 조절...그게 가능해야 자비고, 깨달음이고 가능해지는 게 아닐까...내가 지금 수행이란 걸 하고 있거나 말거나...그래서 시원하거나 답답하거나, 조절이 되거나 말거나......쉽사리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내게 수행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으로 느껴진다.

휴가의 마지막 날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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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0-29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를 참 조용하고 의미있게 보내시는군요...

이누아 2005-10-29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의미는 모르겠지만 조용하긴 꽤나 조용했지요. 하지만 덕분에 알라딘에 참 자주 들락거렸어요.

Laika 2005-10-29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곳에 고요히 있는 시간 -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인거 같아요...
휴가엔 모두 어디론가 무언가 해야한다고 생각하기에 조급해지는데...
저도 나중에 그런 시간을 한번 가져보고 싶네요..

이누아 2005-10-29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카님, 그런 시간을 한번 가져 보세요. 생각보다 갑갑하거나 그렇지 않아요. 능동적인 고요는 평온을 주더라구요.

비로그인 2005-10-29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밤에, 살짝 쓸쓸모드로 들어갈 뻔한 복돌이 달려왔숨돠. 절 부르시는 거 같아서요. 캬..글쵸, 이십대. 에공, 전 신기하죠. 슬라이드 치즈 차곡차곡 넘어가듯, 아주 뿌옇게 생각나는 거 보니까 기어나오려 애쓰는 기억, 어지간히도 밟아쟁인 모냥이에요. 흐..어서어서 시간이 흘러야 더욱 제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지금 딱 50세였음 좋겠숨돠!!

이누아 2005-10-29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9시부터 좌선해야지 했는데 아직도 컴퓨터 앞입니다. 나가려다가 큰나무 블러그에 갔다가 옛날 사진을 봐서요. 기분이 좋아요. 즐거운 추억들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네요. 또 친구가 이렇게 상기시키고.

50세? 지금도 많이 힘겨우신가 봐요. 영화제목은 모르겠는데 아가씨가 그런 생각을 해요. 노인을 보면서 내가 저 사람 나이였으면...그때 그 노인도 내가 저 아가씨 나이였으면 하고요. 근데 정말로 둘이 뒤바뀌어서 지내게 되는 이야기요. 결국 제대로 돌아와요. 그 아가씨는 아가씨로 돌아오기를 바랬거든요. 님이 50세가 되어서 "되기를 바라는 그때"가 지금이 될지도 모를 일이죠. 세상은 모를 일이 많으니까요.

왈로 2005-10-2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u had seen the movie - 'The city of joy' when we were in the university and talked to me that 'the power is controll'. I remember it still now. ^.^

이누아 2005-10-30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로 답하고 싶다만--;; 그게 [시티오브조이]였나? [필라델피아] 아니었나? 왔다 갔다 한다. 니가 그 말을 자주 했어. 그래서 나도 기억해. 어느 때보다 지금 공감하고. 그렇게 유익한 말을 잊지 않도록 한 번씩 던져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2005-10-31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1-01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2:02속삭이신 님, 그것도 모르고 기다렸네요. 흑흑...내용이 뭐 문젭니까? 제작했다는데 의의가 있지. 창피하다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신 분인가 봐요.^^ 그리고 운동 먼저!!
 

몇 달 전에 인터넷 신문으로 기사를 봤다(기사는 국민일보). 한 목사님이 티벳에 가서 아이들에게 뭘 주면서 사진을 보여 주신다. 달라이라마다.  사진을 보여 주면서 "이 분보다 더 훌륭한 분이 계신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야"라고 했다는 바로 아래 기사다.

기사를 볼 때도(8월 말인가, 9월 초에 봤다) 가슴이 답답했는데, 오늘 친구가 와서 히스토리 채널에서 산 달라이라마 관련 다큐멘타리 비디오를 함께 보다가 이 이야기가 나왔다.  

달라이라마는 서양인에게 가능하면 개종하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화의 일부이고, 진리는 결국 하나이기 때문에 굳이 바꿀 필요가 없을 거라고. 달라이라마는 티벳 문화만 보호해 준다면 독립도 포기할 수 있다고, 그냥 자치구로만 인정해 달라고 하셨다. 티벳 문화가 무엇인가? 티벳 불교를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다. 아니, 티벳 불교가 바로 티벳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고지에까지 올라가 한국인 선교사가 전도를 한다. 그게 무슨 잘못이겠는가. 자신이 가져서 너무 좋아서 나누고 싶어 미칠 것만 같은데 뭐라고 하겠는가. 그래도 생각한다. 이상하다고.

남경에 있을 때 선교를 위해 온 언니가 있었다. 중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전도의 자유는 없다. 전도하다가 걸리면 잡혀 가고, 외국인은 추방된다. 그래서 그 언니는 잠자코 지냈다. 편지까지 조심하면서. 그런데 그 목사님은 다음에도 가서 예수님 이름으로 뭘 할 생각이면서  다녀와서 신문에까지 글을 실었다. 다시 가려면 비밀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중국이 모른 체 해주고 있는 건가?

티벳 사역자들은 티벳 문화 파괴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적이 있을까? 지금, 티벳과 몽골(몽골은 한국인 3000명 중에 200명이 선교사라고)엔 "전도열풍"이 불고 있다. 내가 불자라서가 아니라 부서져가는 티벳 문화를 보는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고도의 정신문명이 산산조각나는 데 우리 나라 사람이 일조하는 것만 같아서 착잡하다.  

=============기사내용=============================================

[티베트에서 일어난 작은 기적] (하) 현지 소녀의 감사선물 달걀3개·나뭇잎 하나



‘메추리알보다 약간 큰 달걀 3개와 나뭇잎 하나.’

세상의 셈으로 따지면 한없이 볼품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티베트자치구 게리 주민들이 인천시 학익2동 평안성결교회 정연동 목사의 손에 쥐어준 이것들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게리는 티베트의 라싸에서 버스로 5시간을 달려야 갈 수 있는 곳으로 정 목사가 게리를 방문한 것은 통역을 맡은 쓰마 취전(14)양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쓰마양은 정 목사에게 훈련 받은 사역자로부터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이다. 쌀 라면 식용유 간장 사탕 과일 등 주민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안고 마을에 들어선 정 목사가 받은 게리의 첫 인상은 ‘궁핍’이었다. 가난이라는 말조차 사치스럽게 여겨질 정도였다.

“게리 주민들은 하루 한 끼만 먹어요. 한 끼라고 해야 보릿가루를 조금씩 입에 넣고 우물거려 삼킨 뒤 야크젖에 물을 타서 끓인 차를 마시는 것이 전부입니다. 귀한 손님을 접대한다고 내놓은 음식이 밀가루를 반죽해서 구운 빵이었어요.”

정 목사는 선물로 가져간 식용유와 간장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다. 당장 끼니를 해결할 곡식과 야채가 없는 게리 사람들에게는 쓸모없는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정 목사는 마을 앞 공터로 나갔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공을 차는 아이들을 쓰마양이 불러모았다. 아이들의 맑고 순수한 눈이 예수님 말씀을 전하는 정 목사에게 쏠렸다. 티베트는 모계사회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버지를 모른 채 외할머니 슬하에서 자란다. 별다른 소득이 없다보니 교육이나 의료 혜택은 꿈도 못 꾼다.

저녁 때가 되자 정 목사는 집집마다 방문하며 전도를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예수님’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나 사람들이 워낙 착해서 예수님을 거부하지는 않았어요.”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면 잘 받아들일 것 같았다. 다만 지속적으로 지도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정 목사를 안타깝게 했다.

이틀간의 선교 일정을 마치고 정 목사가 게리를 떠나던 날. 마을 주민이 모두 그를 배웅하러 나왔다.

“쪼마네 엄마가 그들에게는 아주 귀한 식품인 달걀 3개를 줬어요. 우리가 봐왔던 달걀보다 매우 작아 메추리알인 줄 알았죠. 혹시 닭도 못 먹어서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렸어요.”

쓰마양은 먼 곳까지 와서 귀한 복음을 전해줬는데 줄 것이 없다며 집앞에 서 있는 나무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서 성경책 갈피에 끼워주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곱습니까. 어떻게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순수한 그들의 마음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정 목사는 쓰마양이 선물한 나뭇잎을 ‘티베트 소녀 취전이의 선물’이라는 글귀가 쓰인 사진틀 안에 넣어 목양실에 걸어놓고 매일 티베트인들의 때묻지 않은 마음을 떠올리고 있다.

이번 선교여행을 통해 정 목사에게는 큰 숙제 하나가 생겼다. 정 목사는 게리 뿐만 아니라 라싸에 있는 탁아시설 등을 방문하면서 티베트 어린이들의 복지 사역이 시급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티베트 선교의 시작은 어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려서부터 기독교 신앙으로 철저하게 교육시키면 이들이 성장해서 민족 복음화를 이루는 일꾼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정 목사는 티베트 사역자들과 학교 설립 문제를 논의하고 1,2년 후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귀국할 때 1만리를 돌아왔지만 티베트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땅이 되게 하려면 앞으로 더 많은 길을 달려가야 하겠죠.”

서윤경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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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29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목사님, 옴마옴마...뭐, 저런 쓰잘떼기 없는 말쌈을 하신데요, 그래..화악~짜증이 올라오네요. 달라이라마에게 뭔가 상당한 열등감이 있는 거 아닐까요?

이누아 2005-10-2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부서져가는 티벳에서 저렇게 하셔야 하는지...달라이라마가 돌아오고, 티벳이 안정될 때-그럴 때가 있다면- 그때 하시면 싶어요. 학교도 하느님 이름으로 말고 그냥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지어주면 고마울텐데...

달팽이 2005-10-29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는 티베트의 문화 그 자체에서 축복받을 수 있다는 길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도 닫힌 종교의 맹목적인 신자일 뿐이군요..
슬프군요...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수록 인간사의 비극은 막을 내릴 수 없을 테니까요...
그것이 좀 유연하든지 극단적이든지 자신 종교의 틀을 벗어날 수 있는 영성이 열리기 전까지는 말이죠...

이누아 2005-10-29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자기 종교의 틀을 벗어날 수 있는 영성"이 열려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 또 공감합니다.

왈로 2005-10-29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런 일이 있었구나. 기독교인들의 맹점이 이거 아닐까. 다른 종교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거. 창현이 친구 중에 제일 친한 친구가 한동안은 우리집에만 오면 하는 말 '너 부처님 믿으면 지옥간다. 그러니까 나랑 교회가자.' 두번까지는 가만 듣고 있었는데 세번 얘기할 때 내가 그랬지. '00아 너한테 하님이 중요한 분이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에게는 부처님이 하나님만큼 중요한 분일 수 있으니까 그런 얘기 하면 안된다.' 그래도 걔는 또 똑같은 얘기 하고. 더한건 걔 엄마가 그런 자기 아들 자랑스러워 하고. 여름 성경학교에 창현이 데리고 가더니 나까지 같이 가자 하길래 목소리 깔고 조용히 말했지. 종교만큼은 서로 얘기하지 말자고. 그래도 그 엄마 우리집에 놀러 와서는 하남님의 은총과 목사님의 훌륭한 설교. 전도 얘기 끝없이 늘어 놓고. 오, 이럴 땐 어찌할까요....

이누아 2005-10-30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나도 창현이나 니가 겪는 그런 일을 많이 봤어. 스님들 보고 아이들이 마귀라고 한다고. 그래서인지 저 정목사님의 "어려서부터 기독교 신앙으로 철저하게 교육시키면"이란 말이 무섭게 느껴진다. 바르게 자라도록 도왔다가 나중에 지가 결정하게 두면 좋으련만, 백지 같은 아이들에게 일단 도장부터 찍고 보자는 거 같아 씁쓸..그 아줌마는 무례하다.

내맘의 강물 2005-10-31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때? 초등하교 3학년쯤으로 기억하는데 부장집사님이 오후예배를 마치고 전도하러 가자고 우르르 데리고 나가 "야들아, 빵줄게 교회가자"하고 던지시는 그 말이 그때가 아직도 너무 생생하게 기억난다. 기독교는 지독하게 전도를 하려하는데 어느 종교보다 높은 벽을 쌓아놓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서 잘 해 볼라치면 뒤에서 쟤 왜저래? 어른이든 애들이든...그래서 너무 혐오스러웠다.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교회의 전도방식은 아직도 빵줄게 교회가자고 한다 하루에도 몇번씩 벨누르면서 문두드리고 심지어 아파트 현관문을 불쑥 열기도 하는... 안에서 어떤 상황이 있는지 배려하지도 않고,..나도 한때 교인이었지만 꼭 술자리에서 술권하는 그런 사람들 같다. 좀 크면서 그 독실하다고 믿었던 신앙이 흔들려 그만두었지만 나가지 않던 그날 외할머니 장례식인 일요일. 아프던 머리가 말끔하더라 그 정신으로 사랑을 전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내일도 현관문 밖에서 ..교회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믿고 구원받으세요~

이누아 2005-11-01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원?! 카툴릭에서는 하느님을 영접하지는 못했지만 수행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나아가는 비그리스도인들을 잠재적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그들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선포했어. 일반인에게 나눠주는 카톨릭 자료에 적혀 있었어. 놀랍지?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기형도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 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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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28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기형도의 인기비결이 뭘까요? 아..이 쌩뚱맞음이여..

icaru 2005-10-28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언냐!!!!!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별들에게 물어봐! 여유~
에이 지송해여~ 그냥 댓글 달고파서리....
저는 특히,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로 시작하는 그의 시 '오래된 서적'이 제일 좋슴다~

비로그인 2005-10-28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쿠, 어쿠..전 사실 기형도(한 사람 더 보태면 '백석')를 좋아하긴 하는데 그의 시를 잘 외워두질 못하기 때문에..요것이다 딱 꼬집어 말은 하지 못하겠지만..이런 귀절이 얼핏 생각나네요.
' 잘 있거라, 사랑아, 짧은 밤들아..' 하구요, 에..또'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어쩌면 울어야 할 지도 모른다..'하구요, 여러가지 빛 바랜 어휘들이 마치 낙엽처럼 떠돌아요..그의 시를 읽다보면.. 저 같아요. 제가 아니더라도 은밀히 감추어뒀던 일부분인 어떤 제 모습으로 다가와요..

이누아 2005-10-28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기형도의 시 전부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몇 편을 아껴요. [마이리뷰-그리고-목록보기3]을 하시면 기형도 시집에 대한 짧은 감상이 적혀 있어요. 입 밖으로 내기 머뭇거려지는 감춰진 자신의 일부인 절망의 단어를 중얼거리면서도 단호하게 말하는 게 사람들을 사로잡는 건 아닐까요?
이카루님, 그 시 마지막이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군요. ^^

2005-10-29 0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쓸모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익하다오.............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르오             

                                                            

                                                    -   빅토르 위고 지음, 송면 옮김, [레미제라블]1, 동서문화사,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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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27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뉑... 그런 의미로 제 자신과 타인을 향해, 세상을 향해 조용히 미소 짓겠습니다.


음훼훼훼훼...*^^*

이누아 2005-10-27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 아름다운 복돌님의 미소가 유익하군요. ^^
 
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2학년 때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입문]을 읽고서 심한 충격에 휩싸여 그날부터 얼마간 친구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방어기제의 하나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했다. 어떻게 이렇게 딱딱 들어맞는가...그러다 말았다.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사람은 안 보이고 방어기제만 보였던 것이다. 

읽는 내내 불편함을 느꼈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택한 정신분석이나 여행은 저자에게 유익했을 것이고, 권할 만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사람에 대한 태도는 내가 처음 프로이드를 만났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자신에게 기대려고 하는 의존적인 인간에게 내가 좀 차갑게 해도 괜찮다. 왜냐하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고 그가 성인인데도 의존성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니까. 저 사람은 친절하구나, 심리적으로 무엇을 보상받으려고 저러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는 태도.

저자가 인용한 말처럼 "우리가 남에게 보이는 관심이란 대체로 방어의식이거나 시기심이거나 의존성이거나 투사의 감정 중 하나이기 십상"(p.141)이지만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감정의 동요 없이 수용"할 수 있는 것이란 과연 어떤 상태인가? 이런 상태를 용기라고 표현하지만 그렇게 단순할까? 저자가 인용한 "혼자 있기"를 보자.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격리된 극단적인 방어의식 또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분리와 개별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상태 둘 중의 하나만일 수 있을까? 태어나서 3년 안에 완벽한 보살핌과 완벽한 조건에서 자란 사람이 없을진대 어떻게...? 아마 저자처럼 정신분석을 받고 나면 좀 덜할지는 모르겠다. 내가 그걸 안 받아봤으니...

저자는 이 심리여행을 통해서 남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타인의 어떤 말이나 행동은 전적으로 그들 내면에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인간은 타인의 언행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존엄성을 타고난 존재라 믿게 되었다(p.294)"고 한다. 남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게 된 것이 타인만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태도는 이 책의 일관된 태도로 내내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이지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존엄성이란 자기 존재에 대한 사랑 때문에 훼손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 모를 때, 타인이 자신의 삶에 너무 간섭한다고 느낄 때, 부질없는 일에 분노하고 있을 때 , 혼자서는 도저히 아무 것도 못할 때 자신을 한번 분석해 보는 데는 유익하다. 그러나 너무 심하게 남을 분석하지는 말기를. 행여 아파하는 사람이 안 보이고 아파하는 이유만 보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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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0-26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언젠가 이 책을 읽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페이퍼를 올린 적이 있거든요.
리뷰를 쓰는 것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답니다.
추천 누릅니다.

이누아 2005-10-25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전 서재지인의 리뷰를 보고 읽게 된 책이라 읽기 전부터 읽고 리뷰를 써야지 하고 생각했던 책이라 리뷰를 올렸습니다. 즐겁게 읽지 못한 책에 대해서는 리뷰를 안 쓰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그러니까 감동적으로 읽은 이들의 리뷰가 훨씬 더 많아서 선택이 좀 헷갈리게 되기도 하는 듯합니다.

바로 그 서재지인, 달팽이님/님이 별 다섯 개를 하지 않은 까닭을 생각하고 좀 신중했어야 했는데...제게는 좀 안 맞았어요.^^;;

비로그인 2005-10-25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뒷통수를 치는 마지막 문장..공감합니다.
사실 전 이 글을 쓴 작가의 <푸른 나무의 기억>이던가요, 그 소설을 읽었는데 역시 심리적인 흐름을 쫓아 쓴 글이었어요. 근데 물살의 흐름처럼 생각의 변화와 힘을 원하던 제게 그 책은 너무 개인적인 우울한 내면에 고여 있어서 읽고 났더니 일주일만에 그 어떤 줄거리도 생각이 나지 않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그닥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 <외출>이란 소설도 그냥 외면하고 말았어요..

이누아 2005-10-25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서른 편도 넘는 리뷰 중에 유익하게 읽으신 분들이 더 많던데 저랑 안 맞았나 봐요. 님에게도 이 분 글이 흡수가 덜 되는 그런 류였나 보네요.

혜덕화 2005-10-26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형경씨의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고, 무척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자신을 그렇게 분석해서 정확하게 볼수 있는 눈에 대해 놀랐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저 자신을 돌아보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된 책입니다.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남을 분석하던 그 시선을 자신에게로 거두어 들이면 더 많은 세상사의 답을 알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불기자심이라는 성철 스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이누아 2005-10-2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브랜든 베이스의 [치유, 아름다운 모험]에서의 치유를 할 때 왜 서른이 넘은 나에게 서너 살의 내가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마침 그때 서재지인의 리뷰를 언뜻 보고 3살 이전의 경험이 주는 영향력에 대해 적혀 있는 책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타인의 힘이 거의 절대적이라 할 만한 나이가 "왜" 인생에서 그토록 중요한가 하는 문제는 전생이나 업의 개념 없이 설명하기는 어려운가 봅니다. 이 책은 그 시기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가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지요. 저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분석을 이용한 저자에게는 동감했습니다만 타인에 대해 분석을 가하는 모습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타인에 대한 태도에 대해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책에도 많은 분들이 감동을 받고,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리뷰를 쓰셨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기호에 따라 책이란 유익함도 되고, 불편함도 됩니다. 제 경우엔 후자가 되었지만요.

예! 불기자심_()()()_

2005-10-26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0-26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4:31속삭이신 분>저도 꾸벅!

달팽이 2005-10-27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불편함 공감합니다. 마지막 문장에 저도 감동...

이누아 2005-10-27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님도 좀 불편하셨군요.^^
로드무비님/페이퍼를 찾아서 읽어 봤어요. 님의 자기애가 좋아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