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기형도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 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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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28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기형도의 인기비결이 뭘까요? 아..이 쌩뚱맞음이여..

icaru 2005-10-28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언냐!!!!!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별들에게 물어봐! 여유~
에이 지송해여~ 그냥 댓글 달고파서리....
저는 특히,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로 시작하는 그의 시 '오래된 서적'이 제일 좋슴다~

비로그인 2005-10-28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쿠, 어쿠..전 사실 기형도(한 사람 더 보태면 '백석')를 좋아하긴 하는데 그의 시를 잘 외워두질 못하기 때문에..요것이다 딱 꼬집어 말은 하지 못하겠지만..이런 귀절이 얼핏 생각나네요.
' 잘 있거라, 사랑아, 짧은 밤들아..' 하구요, 에..또'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어쩌면 울어야 할 지도 모른다..'하구요, 여러가지 빛 바랜 어휘들이 마치 낙엽처럼 떠돌아요..그의 시를 읽다보면.. 저 같아요. 제가 아니더라도 은밀히 감추어뒀던 일부분인 어떤 제 모습으로 다가와요..

이누아 2005-10-28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기형도의 시 전부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몇 편을 아껴요. [마이리뷰-그리고-목록보기3]을 하시면 기형도 시집에 대한 짧은 감상이 적혀 있어요. 입 밖으로 내기 머뭇거려지는 감춰진 자신의 일부인 절망의 단어를 중얼거리면서도 단호하게 말하는 게 사람들을 사로잡는 건 아닐까요?
이카루님, 그 시 마지막이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군요. ^^

2005-10-29 0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