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먹는 한약 탓인지 요즘은 5시 눈을 떴다가도 다시 잠이 들기 일수다. 그렇게 다시 잠든 시간에는 꿈을 꾸게 된다.

어제 아침 꿈은 기분 좋은 꿈이었다. 오늘 아침 꿈은 기분 나쁜 꿈이었다.

좋지 않은 꿈을 꾸니 얼굴이 밝지 못하다. 거울을 보다 내가 뭐하나 싶다.

화두가 잘 잡힐 때는 꿈을 꾸다가도 화두를 챙길 수 있는데 요즘은 이 모양이다. 꿈에 끌려다닌다.

[잠과 꿈의 명상]이라는 책을 보고 꿈의 명상을 했을 때의 꿈은 아주 선명했었다. 그러나 화두를 잡는 사람이 자면서도 화두를 잡아야지 하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이런 마당에 좋은 꿈이니 나쁜 꿈이니 하다니...

선희야, 좋은 꿈이라 좋아할 것 없고, 나쁜 꿈이라 싫어할 것도 없다. 인생사도 큰 꿈이라고 하는데 하루 저녁 꿈에 네 존재가 영향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좀 부끄럽지 않냐? 

화두일여가 되기 위해 분발하자. 너무 나태한 마음으로 지낸 듯.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도 눈 떴을 때 벌떡 일어나야지. 널 믿는다, 선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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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사는 것은 큰 꿈이다. 깨고 잠자고 하는 것은 작은 꿈이다. 그 작은 꿈은 큰 꿈에 따라 있게도 되고 없게도 되곤 한다. 그리고 큰 꿈은 꿈 아닌 것에 의지하여 숨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저 하룻밤의 꿈이, 어떤 것은 해를 지내는 것 같은 오랜 것이 있고, 어떤 것은 순식간의 잠깐인 것 같은 것이 있다. 그 길고 짦음이 비록 다르나 모두가 다 환각에서 오는 것이니 한 번 웃고 말아야 할 것인데, 꿈속에 있는 자들은 오히려 간절히 연모하여 차마 잊지 못하는구나.                               -[술몽쇄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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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dandy 2004-06-17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고 사는 것도 큰 꿈이라... 멋집니다. ^^ =b !

2004-06-17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6-18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방의 한 보살님이 선방에 못 나오시게 되었다. 아흔의 나이탓일까, 도둑질과 술장사를 빼고는 다 해보았다는 그 고생탓일까...귀도 잘 안 들리고, 걷기가 힘들어서 더는 나오실 수가 없다고 한다.

그분이 선방에서 입으시는 옷을 물려받았다. 모두가 그분의 옷을 받고 싶어했지만 젊은이를 밀어주라는 강력한 요청에 의해 나에게 돌아왔다. 정갈하고 좋은 옷이었다.

우리 집과 아주 가까운 곳이 그분의 집이라 같은 방향의 다른 분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왔다. 그분이 택시 안에서 우셨다. 함께 타고 있던 보살님이 20년이나 다니던 절을 다리가 아파 못 온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날 만도 할 거라고 하셨다. 그분의 집까지 따라가서 동방아와 옷 몇 가지를 더 얻어왔다. 그분의 연락처와 내 연락처를 서로 교환했다. 집이 가까우니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연락을 할 수 있게 그렇게 한 것이다. 불편하신데도 혼자 사신다. 그래도 그게 더 편하시다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런 게 늙는 거구나 싶었다.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늙음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음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이름만 대면 한국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아들을 두셨지만 그것이 그분의 행복이 될 수 있을까? 위안이 될 수는 있겠다만은.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에 "부서진 수레는 갈 수가 없고, 노인은 수행하기가 어렵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그분의 집을 나설 때 그분이 "내 옷 입고 꼭 성불하이소" 하신다. 조금이라도 젊어서 공부하는 인연을 만난 것에 감사한다.

그분의 옷에 부끄럽지 않게 수행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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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6-15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인연, 부러운 인연이십니다. 감사하는 모습도 보기 좋구요~^^

행복한여행자 2004-06-16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따뜻한 마음 늘 수행으로 열심히신 모습이 마음 따뜻해집니다.

혜덕화 2004-06-16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에 못나오셔도 아마 집에서 열심히 수행하실 거라고 믿어요.
좋은 도반을 두신 님의 파장도 아마 그분만큼 좋은가봅니다.
꾸준히 수행하시기 바랍니다.

2004-06-16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6-16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6-16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공부는 안 하고 먹기만 한

오전에 일이 있어 늦게 선방에 갔다. 딱 두 시간 앉았다 일어서는데 허탈하다. 한 시간은 조느라, 한 시간은 망상으로...

좀 기가 죽어 집에 오려는데 보살님들이 한사코 수박을 먹고 가라고 하신다. 공부도 안 했는데...말을 흐려보지만 이미 자리에 앉았다. 수박은 맛있다. 맜있는 수박이 슬프군.

며칠 좀 잘 된다 싶더니 기어이 이런 날이...

하긴 잘 되는 공부, 못 되는 공부가 어디 있나. 깨닫고 못 깨닫고만 있지.

오늘을 기점으로 선지식들의 법문 테잎을 다시 들어야겠다. 자극이 필요한 듯.

선희야, 기운내고 정신 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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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결제일. 아침에 절에서 마련해준 작은 버스를 타고 선방 보살님들과 동화사에 갔다. 진제 스님도 친견하고, 선원장 스님도 뵈었다. 결제법회에 참석해 법문도 듣고.

다시 절에 와서 자기 자리 확인하고...

아침부터 움직였더니 몹시 피곤하다. 노보살님들이 나보다 더 체력이 좋으신 것 같다. 

그래도 여러 스님들께 인사하고, 좌선할 자리도 마련하고 하니 내가 무슨 복이 이렇게 많은가 싶다.

남편이 오늘 저녁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한다. 있는 것 먹든지 아니면 시켜 먹자고. 나의 피로를 이해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지해 주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 그것도 좋은 일이다.

여러 가지로 감사하고, 기분 좋은 날이다.

좋구나, 선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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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6-02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왔다 갑니다.^^

비발~* 2004-06-02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일의 마이리뷰에 뽑히셨네요? 축하축하~~

이누아 2004-06-02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울타리님, 저도 자주 님의 서재를 찾아 갑니다. 요즘은 코멘트를 적는 난이 없더군요. 있어도 잘 적지 못하지만 없으니 좀 허전하기도 하고.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비발님, 감사합니다. 저는 아주 놀랐습니다. 뽑힌 데 대한 부상인 적립금이 5천원이 아니고 5만원! 하하, 기분좋은 날입니다. 근데 어디로 사라지셨나요? 요즘 뵙기가 무척 어렵군요. 서재도 너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잘 계시죠? 잘 뵙지 못하지만 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혜덕화 2004-06-0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엔 갓바위에 몇번 가본 기억이 있습니다.
어제인가? 중앙일보에 하안거 결제일에 대한 기사를 보고, 스님들 공부 열심히 하시길 기원했습니다. 함께 수행 할 수 있어 행복하시겠네요. 마음 들여다보는 행복한 시간 되기 바랍니다.

이누아 2004-06-04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수마와 망상이 화두와 함께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선사들 말씀이 망상이 일면 망상을 따라다니지 말고 화두만 챙기라고 하시더군요.
혜덕화님도 매달 하시는 3천배 수행으로 근원적 질문에 대해 더 맑게 나아가시기를 빕니다.
 

내일은 하안거 결제일이다.

오늘 선방에 가서 자리와 사물함을 정했다. 선방 노트를 봤더니 보살님들의 연세가 적혀 있다. 거의 70대다. 80에 가까운. 나이가 드신 줄은 알았지만 생각 이상이다. 그런데도 참 젊게 보이신다.

입승 보살님이 저번 달에 세상을 뜰 뻔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편찮으셨다고. 그러자 다른 보살님이 고비를 넘겼으니 올해는 살겠네 하신다. 입승 보살님 왈 "올게(올해)가 안 지났는데 어째 아노? 지나봐야 알제". 웃으며 나누시는 대화. 연세가 여든이 훨씬 넘은 두 보살님의 대화이고 보면 웃으면서 듣기가 뭐하다.  

절에 주지 스님이 바뀌었다. 새로 주지가 되신 스님은 선수행을 하신 분이라 선방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셨다. 선방 생활의 여러 가지 부분에 대해 배려해 주셨다. 그분의 수행의 흔적은 손가락이다. 손가락 두 개가 없다. 입승 보살님은 선수행 하시는 분이  새로 주지가 되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기뻐하신다. 아이처럼 즐거워하신다.

젊은 노보살님들. 죽음을 두려워하시지 않는 분들. 내가 무슨 복이 이렇게 많아 이런 분들의 도반이 되었나 생각하면 흐뭇하고 감사하다. 재가자라고 핑계대며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몸으로 보이신다.

내일은 결제일이다. 나날이 결제일이어야 겠지만 날을 따지고, 결심을 해야 하는 내게는 또 다른 시작이다. 내일은 결제일이다. 화두를 향해 마음을 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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