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의 한 보살님이 선방에 못 나오시게 되었다. 아흔의 나이탓일까, 도둑질과 술장사를 빼고는 다 해보았다는 그 고생탓일까...귀도 잘 안 들리고, 걷기가 힘들어서 더는 나오실 수가 없다고 한다.
그분이 선방에서 입으시는 옷을 물려받았다. 모두가 그분의 옷을 받고 싶어했지만 젊은이를 밀어주라는 강력한 요청에 의해 나에게 돌아왔다. 정갈하고 좋은 옷이었다.
우리 집과 아주 가까운 곳이 그분의 집이라 같은 방향의 다른 분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왔다. 그분이 택시 안에서 우셨다. 함께 타고 있던 보살님이 20년이나 다니던 절을 다리가 아파 못 온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날 만도 할 거라고 하셨다. 그분의 집까지 따라가서 동방아와 옷 몇 가지를 더 얻어왔다. 그분의 연락처와 내 연락처를 서로 교환했다. 집이 가까우니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연락을 할 수 있게 그렇게 한 것이다. 불편하신데도 혼자 사신다. 그래도 그게 더 편하시다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런 게 늙는 거구나 싶었다.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늙음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음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이름만 대면 한국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아들을 두셨지만 그것이 그분의 행복이 될 수 있을까? 위안이 될 수는 있겠다만은.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에 "부서진 수레는 갈 수가 없고, 노인은 수행하기가 어렵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그분의 집을 나설 때 그분이 "내 옷 입고 꼭 성불하이소" 하신다. 조금이라도 젊어서 공부하는 인연을 만난 것에 감사한다.
그분의 옷에 부끄럽지 않게 수행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