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 대회가 지상파 방송을 타지 않은 것은 2002년의 일이다. 2001년 모 방송사가 미스코리아 대회를 방송하였다가 된통 당하고나서 부터이다. 또 다시 슬슬 슈퍼모델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시작하고 있지만 이제 미스코리아는 왠지 한물간 느낌이다.
나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미스코리아는 가수로 전업한 옛날의 김성희, 모래시계로 상종가를 친후 재벌가의 며느리가 된 고현정, 아나운서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떠난 장윤정, 한참 잘나가다 섹스비디오 파문으로 매장당한 오현경 정도이다.
스물세살의 오월, 옥상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나에게 상황병의 특명이 떨어진 것은 하늘은 푸르고 아이들은 자라고 바다바람은 시원하고 햇살은 눈부신 날이었다. 안테나 있는데로 기어올라가 방향을 잡으라는 것이었다. 낮이었던걸로 미루어 아마 그해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재방송중이었던 모양이다. 열약한 군부대 실정상 제대로 된 TV 시청은 힘들었고 수영복에 눈이 동그래진 병장들의 성화에 상황병이 취한 특단의 방법이었다.
한손에는 총을 한손에는 안테나를 붙잡고 이리저리 자리를 잡다 최종 결정이 난 곳은 보기에도 위태위태한 건물 난간의 끝이었다. 위풍당당하게 남대문을 지키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비견할 정도로 왼손에는 좌경계총 자세를, 오른손에는 너덜너덜한 안테나를 자유의 여신상의 햇불마냥 들고 있었다. 그때 바라보았던 오월의 바다처럼 고요한 바다는 없었다. 그런 어정쩡한 자세는 떠나갈듯한 환호성과 런닝과 팬티만 걸친 몇몇 병장들의 웃기지도 않은 워킹 흉내가 끝날때까지 계속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해의 첫 매미 울음을 들은것 같다. 하늘은 푸르지 아이들은 자라지 바다바람은 시원하지 햇살은 눈부시지. 좀 이르지만 매미가 안 울고 배길 날씨가 아니다. 스물 세살의 오월은 눈부신 햇살속으로 환청처럼 쏟아지던 매미울음과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 올 해의 첫 매미 울음 / 인생은 / 쓰라려, 쓰라려, 쓰라려 > - 이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