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비연 > 풍장 -황동규-

 

풍장(風葬)1

- 黃東奎 -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 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시집 풍장,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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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0-07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
숙연해진다. 한때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어느 바람부는 언덕에서 회한없이 뿌려지기를...그것도 잠시나마 풍장이라고 할수 있을라나...

icaru 2004-10-07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남미 어딘가에선 아직도 풍장의 문화가 남아 있다던데..

군산은 검색이 심하군요...흐흐... 몰랐습니다...

비로그인 2004-10-07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동규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많은 부분에서 '죽음'을 접하게 되죠.
그의 시에 있어 죽음은 곧 '아름다운 삶'의 또다른 이름이기에, 이승에서의 모든 걸 훌훌 털어 버리고 "바람과 놀게 해 다오"....이런 싯구절이 빚어진 게 아닐까 하네요.
오랜만에 제가 좋아하는 시 한 편 잘 감상하고 갑니다. ^^

잉크냄새 2004-10-07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죽음은 곧 아름다운 삶의 또 다른 이름이다 ]라....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삶, 사랑, 죽음이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은 어떠한지... 그들은 진정 이 세상의 삶을 소풍이라고 말할수 있고 바람과 노니는 죽음을 꿈꿀수 있는지 궁금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