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가기전만 하더라도 각 학기마다 진행되는 개강파티, 일일호프, 쫑파티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행사로 취급받았으나 복학한 이후로는 거의 자취를 감추거나 다수의 호응을 얻지못하는 소수의 통과의례식 절차로만 진행되곤 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공대 특유의 칙칙한 냄새나는 건물에서 일일호프가 주는 의미는 남달랐다. 전학년을 통틀어도 각 학년당 한명의 머릿수를 채우지 못하는 여학생들과의 수업환경에 거의 자포자기로 지쳐가고 있던 우리들에게 일일호프는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였다. 다름이 아니라 남자들이 써빙을 본다는 것은 손익구조상 아무리 따져보아도 승산없는 전투인지라 문과대생및 미대생들을 영입하여 써빙을 보게하는 파격적인 제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술을 좋아하나 주머니 사정상 여의치 못한 술문화를 영위하여가는 Drunken Family들의 시야는 다른곳을 응시한다. (여기서 Drunken Family에 대하여 간략히 소개하면, 그 당시 과인원의 상위 5%에 해당하는 소수정예 인원으로 구성된 술조직으로 1주일 기준으로 횟수, 양, 술버릇, 수업 참여도 등 각종 지표를 기준으로 암묵적으로 그 직위를 인정받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들이다. 본인은 아쉽게도 성실한 생활태도로 가끔 이벤트성이나 Guest로만 취급받는 수모를 받았다.) 일일호프의 특성상 준비된 술과 안주가 모자라는 일은 거의 없다. 의욕에 비해 그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는 순간이나 Family가 노리고 들어가는 곳이 바로 이 공간이다.
일일호프가 끝날때쯤 호프집을 찾아들어 한잔 정도로 마지막까지 버티어낸다. 써빙보는 문과대와 미대 여대생들은 안중에도 없고 드디어 그 화려한 주방이 오픈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10000cc 옆에 끼고 골뱅이를 삽으로 퍼다 먹는 기분을 아는가? 소면은 바람에 날리는 덩쿨마냥 탁자위를 구르고, 파전은 사상초유의 두께와 내용물을 자랑하니... 마르지 않는 샘이란 이런 것임을 느꼈다. 대학시절의 일일호프는 그렇게 칙칙한 Drunken Family와 몇몇 Guest들로 마지막을 장식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