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처음 마신것은 고3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초등학교 4학년때 친구 집에서 담근 술 한잔씩 먹고 마루바닥에 길게 뻗은 기억이 있으나 그때는 술이라 칭하기는 좀 그렇다치자.) 그 날은 큰누나 결혼식 전날이라 집안이 어수선하여 학교로 공부하러 간다고 집을 나섰다. 교실에는 친구놈 셋이 공부를 하고 있었고 시간이 흘러 저녁때쯤에 그 당시 대히트를 기록한 짜장범벅을 먹으러 가자고 합의가 이루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학교 매점이 문을 닫은 상태에서 슈퍼로 심부름간 한 녀석이 소주 2병을 사오면서부터이다. 그래도 성스러운 학교에서의 음주는 마음에 걸렸던지 소주병 끼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운동장으로 나가서 넷이서 반병 정도씩을 마셨다. 처음 마시던 소주맛, 사실 난 물과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다른 세명은 어느 정도 취기가 돌았던지 학교로 돌아가던 발걸음을 돌려 일명 댓병 1개랑 맥주 6병 정도를 사가지고 인적이 드문 교회 뒷편 언덕으로 몰려갔다. 다른 세명이 맥주를 따는 동안 술이 처음이었던 나는 물맛나던 댓병 1병을 단 투샷만에 해치워버리고 말았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한 녀석들의 제어가 그 시기를 놓친 순간이었고 잠시뒤 필름이 끊기는 현상을 태어나 처음으로 하게되었다.

다음날 눈을 뜬 곳은 농촌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친구녀석의 빈 돼지우리였다. 네명은 담요 한장에 의존해 뻗어서 자고 있고 집주인 녀석은 씩씩거리면서 군불을 뙤고 있었다. 네명이 전부 술이 취해 다른 친구녀석 집으로 찾아간 것이었고 장손으로 보수적이던 친구 아버님에게 보기좋게 쫓겨났다. 불안한 마음에 뒤따라 나온 녀석이 갈곳 없는 우리를 재우기 위한 대안으로 생각해낸 것이 단 한칸 비어있던 돼지우리였던 것이다.

그렇다. 돼지우리에서 눈뜬 날은 큰누나 결혼식이었다. 난 술냄새, 돼지똥냄새를 풍기면서도 구닥다리 오토바이에 의존해 집으로 달려갔고 아버지에게 신나게 얻어터진후 결혼식은 간신히 참석했다. 지금도 큰누나 결혼사진속의 난 술에 몽롱한 몰골로 턱에는 나무밑둥에 처박아 손톱만한 시커먼 상처를 품은채로 돼지똥냄새를 풍기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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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2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잉크냄새님의 술에 얽힌 추억. 그나저나 댓병을 투샷에 해치우시다니!! 비칠~ 저도 초등학교때 친구들이랑 게임하면서, 그 집에 담궈논 포도주를 벌칙으로 마셨는데요, 달착지근한 맛이 좋아 일부러 걸리기도 했다는...ㅎㅎ

갈대 2004-03-2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병을 투샷에!! 잉크냄새님 다시 보게 되네요..ㅋ

비로그인 2004-03-2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좋아요....^^ 불현듯 님의 누님되시는 분의 결혼식 사진을 보고 싶습니다...그 사진 속에서 분뇨내를 풍기고 취락의 쓴맛을 보고 서계실 님의 모습이 너무너무.....보고 싶은 겝니다! ^^
저의 음주 역사는, 자고로 중 3 때 100일주로 마신 맥주에서 비롯하여 고3 때 역시 100일주로 (당시 담임 선생님과 독대하여)마신 청하 한 병까지 거슬러 올라가는군요.
다행히도 전, 제 한 몸 부릴 돼지 우리가 없어 똥냄새 풍길 그 찐한 기회는 없었다는 게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앗, 글고 "짜장범벅~" ^^ 이 얼마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이름인지....
역시 세대가 같으신 삿갓 님이라 ~ 카레 범벅도 인기였다는....^^

잉크냄새 2004-03-28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간 모든 것을 추억이라 할수가 있겠죠. 그때 사진... 악몽입니다. 아마 두고두고 누나한테 놀림당할 소재일겁니다.

 냉.열.사님도 범벅 세대군요.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 이건 팔도비빔면 멘트인데, 범벅 비빔과 같은 원리로 판단됨) 짜장 범벅"

아~ 그 당시 또 하나의 히트상품...."치토스 한봉지 더~"


비로그인 2004-03-28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짜장 범벅이 아직 나오나 보죠?

야자할 때  짜장 내지는 카레 범벅을 먹은 다음...빠삐코 한 개 정도는 먹어 줘야 웬지 풀 코스로 근사한 저녁을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었죠. ^^

글고, 치토스!

그 과자 안에 "따죠"라는 허접한 플라스틱 장난감 딱지(카드?)가 들어 있던~ ^^ 


잉크냄새 2004-03-29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자의 추억이 떠오르네요. 그때는 도시락 두개 싸온거 미리 먹고 야자 시간에는 담치기하여 분식집으로 달려가던 생각이 나네요. 님의 풀코스라는 말을 들으니 도시락 3개로 풀코스 처리하던 녀석이 생각나네요. 한숟갈씩 돌려가며 먹으며 왜 그리 고맙던지...ㅎㅎ
빠삐코 TV선전에도 나왔었는데, 저 고인돌 가족이 무지 정겹게 느껴지네요.
그리고 야자시간에 몰래보던 만화의 추억들... 드래곤볼, 북두신권....

비로그인 2004-03-29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래곤 볼>..^^
만화와 그리 친하지 않은 저도 친구들과 함께 돌려 보던 몇 안 되는 만화책 중 하나였습니다. ^^
오공이의, 구슬을 모으기 위한 그 험난한 여정!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ㅠㅠ

ceylontea 2004-04-06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팔도 도시락이 생각이 나네요... 컵라면 이후.. 네모난 도시락 모양의.. 거 머라해야 하나... 컵라면 비슷한.. ^^
"노을"이라는 소보루 빵하고.. 이름은 생각 안나는데.. 땅콩쨈 발라져있는 샌드위치.. 그리고.. 식빵 모서리를 튀겨서 설탕 묻혀놓은 것... 그런 것 참 자주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잉크냄새 2004-04-06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특히나 땅콩쨈 샌드위치 무지하게 좋아했지요.
지금도 입안에 그때의 맛이 사르르 감도네요.
식빵 모서리 튀긴것 .... 그것도 명칭이 있었는데...기억이 나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