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청소부의 꿈, 한 장 사진에 이끌리다"
길 가다 만난 어느 여행자가 한국에서 추천할만한 것을 묻는다면 난 서슴없이 세 가지를 말할 것이다. 하나는 끊어질 듯 아스라히 이어진, 달리는 버스 창으로 손을 들어 그 곡선을 따라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정겨운 시골의 산 능선이고, 둘은 느끼함으로 범벅이 된 그들의 속을 달래줄 고추 가루 흠뻑 묻은 김치와 반찬수 헤아리기 곤란한 전통밥상이고, 셋은 신발 벗고 누워 잠이 들어도 좋을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이다. 여행 중 가장 놀라웠던 사실 중 하나는 대부분의 나라가 화장실 사용이 무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도는 화장실 옆에 사용료 수급원이 앉아 지키면 대부분 그 옆에서부터 길게 줄을 지워 노상방뇨 하는지라 나도 그 옆에서 동참하곤 했다. 터키는 그 비용을 지불하는데 한국 문화에 익숙한데다 배낭여행자 특유의 경제 관념에 익숙해지면 그 돈이 그리 아까울 수가 없다. 비싼 곳은 무려 1유로나 하는 곳을 보았으니. 또한 여행이 길어질수록 10시간 이상 걸리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자연스레 생리작용에 대한 통제력이 향상되곤 한다. 1유로의 건방진 유혹을 뿌리치고 샤프란볼루로 향하는 야간 버스에 올라탔다. 경험상 다음날 새벽 도착하여 찾아들 숙소까지 문제없을 듯 싶었다. 얼핏 잠이 들었다 깨어난 곳은 고속도로 중간이었다. 차는 잠시 정차한 상태였고 잠결에 바라보니 훈련소로 향하던 청년들이 도로변 산기슭에 올라 일렬로 소변을 보고 있었다. 이게 왠 횡재냐 싶어 허겁지겁 기어올라 그들 옆에 일렬횡대를 유지하며 의식에 참여하였다. 잠시 후 왠지 나를 의식하는 눈초리가 느껴져 바라보니 터키 청년들이 전부 고개를 내밀고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뭔가 수상한 기운이 느껴져 먼저 내려오니 한 청년이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왜 남의 나라에 와서 노상방뇨를 하나요?”
“너희들이 하니 나도 하지. 이걸 자업자득이라 하니라”
잠시 말문이 막힌 청년이 다시 조심스레 이야기를 걸었다.
“저기, 우린 내일 훈련소에 입소할 예정이고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고향 앞으로 쏴! 를 하고 있는 겁니다. 나름의 의식이죠”
자업자득이란 말로 그의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반격에 다소 주춤하였다.
“나도 한때 군인이었느니라”
불쑥 이 말을 던지고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잠든 척 하고 있으려니 성스러운 의식을 마친 젊은이들이 차에 오르며 조심스레 한마디씩 했다.
“야, 저 사람 예전에 군인이었대”
<샤프란볼루 마을 풍경 - 반대편 언덕의 나무 한그루와 그네>
한때 굴뚝 청소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어느 시절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영화 속에 등장한 주인공 꼬마가 검댕을 잔뜩 묻히고 굴뚝 청소를 하다 바라본 북유럽 어느 마을의 지붕 풍경에 사로잡힌 시점이었음은 분명하다. 굴뚝 옆에 주저앉아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다소 어른스러운, 우수에 잠긴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 지붕들의 끝없는 이어짐은 나에게 상당히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었고 이스탄불의 한 숙소에서 집어든 한 장의 사진이 나를 샤프란볼루로 이끈 것이었다. 그곳은 터키가 아닌 북유럽의 어느 마을인 듯 싶었다. 버스가 정차한 곳은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었고 언덕을 따라 쭈욱 이어진 길은 아직 여명이 다 밝아오지 못한 새벽이었다. 거미줄의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골목길은 오래되어서 낯설지 않은 숨결을 고스란히 뿜어내고 있었다. 1층은 다소 투박한 석조 건물이었고 2층부터는 목조 건물의 형태였는데, 2층 건물은 1층보다 넓어 밖으로 튀어나온 건물의 아랫부분을 큰 나무 기둥을 사선으로 석조 건물에 박아 지탱해 놓은 형태였다. 그리하여 내가 걸어가는 좁은 골목의 윗부분은 이웃집의 창문이 상당히 가깝게 위치하여 서로 손을 뻗는다면 연서 한 장을 전달할 수도 있는 거리였다. 2층 목조건물은 사방이 직접 나무를 깍아 만든 유리창틀로 온통 채워져 막 떠오르기 시작한 햇살을 받기 시작한 동네는 가볍게 반짝였고 창과 창 사이로 겨우 들어선 햇살은 골목길을 서서히 은은하게 물들였다. 누군가 창을 열고 아침을 맞으면 창틀은 나무만이 지닐 수 있는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음을 골목길에 흘리고 있었다.
<샤프란볼루 지붕 풍경 -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샤프란볼루에서의 일상은 단조롭고도 평화로웠다. 아침 햇살이 눈부신 창 옆에서 주인 아저씨가 가져온 아침 식사를 마치면 신발끈을 묶고 부지런히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저 창 너머의 누군가는 내 발걸음 소리에 잠을 깨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햇살의 은은함과 창틀이 들려주는 경쾌함 울림이 일상의 분주함으로 사라질 즈음이면 가볍게 점심을 먹고 언덕에 올랐다. 그곳은 푸른 초원이 멀리 눈 덮힌 산을 배경으로 아득히 펼쳐져 있었는데 그 배경에 방점처럼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와 그네 하나가 소설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본 나무 옆의 비꺽거리는 그네에 앉아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을 바라보곤 했다. 가끔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검댕 묻은 소년의 어깨 위로 지나가던 바람과도 같았다. 내 어깨 어딘가에 내려앉았던 삶의 찌꺼기들은 살며시 바람에 실려 마을의 지붕위로 살며시 내려앉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집안의 두런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하나 둘 사라질 운명이었다. 언덕의 그림자가 지붕위로 번질 즈음이면 언덕을 내려왔다. 골목의 오래된 가로등이 하나 둘 불 밝히기 시작할 즈음 또 다시 창문의 경쾌한 울림이 들린다. 저 창을 만든 오래 전의 목공은 알고 있었을까. 그가 조심스레 깍아 만든 창틀의 가벼운 울림이 홀로 길 떠난 나그네의 마음을 이리도 어루만질 것을.
<아침 산책길 찻집에서 - 차 한잔 얻어마시며>
중동 지역이 배낭여행자에게 각광받는 이유중의 하나가 이방인에게 베푸는 그들의 친절함이라 한다. 특히, 그들은 낯선 이방인을 집으로 초대하여 차를 대접하는 것으로 그들의 호의를 보여준다. 이방인 접대를 가장 큰 미덕으로 여긴다는 유목민 특유의 핏줄이 아직 흐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러한 율법을 담고 있는 이슬람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마을 외곽을 따라 길게 움푹 파인 계곡을 따라 산책을 나갔다 길을 잃었다. 길을 잃었다기 보다는 방향을 알되 돌아오기 곤란한 지점에 놓인 것이다. 두 시간 가량 숲을 헤치고서야 가시넝쿨을 온몸 가득 붙이고 올라오다 한 청년을 만났다. 약 한 시간 전부터 계곡 위쪽에서 나와 방향을 같이하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준 청년이다. 그는 샤프란볼루의 한 호텔에 근무하는데 그도 산책을 나왔다 계곡 아래서 허둥대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를 따라 찾아간 그의 집은 소박했다. 담장 밖 건초 더미에는 흰 망아지가 홀로 풀을 뜯고 있었고 낮은 담장 작게 놓인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인 거실엔 난로 위 주전자가 끓고 있었다. 소박한 소파와 아래 깔린 거친 양탄자는 난로의 열기를 품어 아늑했다. 그의 동생과 약혼녀를 포함한 네 명은 난로 옆 양탄자에 둘러앉아 어설픈 영어나마 가능한 모든 말들을 쏟아냈다. 그들의 사진을 몇 장 담고 돌아오던 어느 다리 위에서 그는 하얀 볼펜을 건넸다. 골목길을 돌아서며 바라보니 그는 아직 그 다리 위에 서 있었다. 누군가 나의 뒷모습을 저리 오래 바라보아 주었던 적이 언제런가. 외로움은 같은 크기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한 움큼의 관심과 애정이 이리도 마음을 감싸 안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는 작은 점이 될 때까지 그 다리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샤프란볼루 골목의 구두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