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여행을 시작할때는 내가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든가 아니면 내 영혼의 구석 어딘가에 덕지덕지 달라붙어있을 욕망의 덩어리를 버려야 한다든지 하는 의무감 비슷한, 어쩌면 강박관념이라 표현해도 좋을 무엇인가가 분명 존재한듯 싶다. 인도-네팔 45일간의 1차 여행을 마치고 남미와 중동을 저울질하다 중동으로 떠나온 이번 여행은 그저 두 발이 가져다주는 자유로움을 따라 걷고 있는듯 했다. 그런데 터키 카파도키아의 어느 동굴 호텔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체 게바라" 여행을 떠나 삶의 이면을 다시 한번 바라보라고 등 떠민 이가 그였다. 그가 의대생 시절 오토바이 한대로 떠난 남미 여행이 나에게 길을 떠나도록 오랜 세월 재촉했고, 어떤 계기로 그 발을 내딪은 것인데, 그의 여행기를 다시 읽으며 내가 길떠난 의미를 다시 떠올려보게 된 것이다.너무 큰 욕심은 부리지 않을 생각이다. 사실 욕심만으로 될 일도 아니지만, 나이테가 나무는 겨울에도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듯 자유로운 길떠남 어딘가에도 영혼은 조금씩 자라고 있을것이다. 비 내리던 터키의 어느 시골 버스안에서 창문밖으로 그려지던 그리운 이들의 서늘한 눈매, 그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히 충만하다.
예상보다 일찍 시리아로 내려왔다. 터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살인적인 물가와 우기 특유의 우중충한 날씨에 시달리다 흑해의 어느 마을에서 일정을 바꿔 카파도키아만 찍고 바로 시리아 국경을 넘었다. 애초 일정이 터키 30일, 시리아 15일 이었는데 터키를 열흘 정도 줄이고 다마스커스까지 내려오니 요르단 국경이 코앞이다. 요르단에는 인디아나 존스 3 <최후의 성전>에 나온 페트라 유적지와 적색의 와디럼 사막이 있으니 그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고 또 다시 국경을 넘게 될듯 싶다.
지금 머무는 다마스커스는 말그대로 고대 도시가 어떠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인간이 거주한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느낌은 굳이 골목골목을 누비지 않아도 알수있다. 다마스커스행 버스에서 내리던 순간 불어닥친 세찬 돌풍이 부드러운 손길처럼 느껴진 순간, " 아, 이 도시에서 한참을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저녁무렵 의식을 알리는 모스크의 영혼의 소리가 들리고 저 수천년의 골목을 밝히던 가로등 위로 푸드득 날아가는 비둘기를 보는 순간 한참을 있기로 결정해버렸다. 내일을 다마스커스 올드 시티를 구석구석 누벼봐야겠다.
중동여행이후 한글이 되는 곳은 이곳 다마스커스 숙소가 처음이다. 인터넷 까페를 찾아다니지 않은 내 게으름이 그 이유겠지만.
인도 네팔의 많은 한국 배낭 여행자와 대조적으로 이곳은 한국뿐 아니라 외국의 여행자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중동인들이 영어도 잘 안되다보니 거의 묵언수행을 하듯 여행을 하고 있다.
터키 카파도키아의 열기구는 세계 3대 열기구에 속한다. 110~230유로까지 그 비용도 다양한데 큰 맘먹고 탄 열기구가 카파도키아의 멋진 바위와 부딪히고 벌판에 불시착했다. 나에게 카파도키아는 요정의 굴뚝, 젤베 계곡, 로즈 밸리보다도 그 바위가 더 기억에 남을듯 싶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고 요금도 환불받았다. 어쨌든 난 그 유명한 카파도키아 열기구를 20분을 공짜로 탄듯 싶어 열기구보다 더 날아오를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