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에서 맥그로드간즈로 넘어오는 길은 긴 여정이었다. 정해진 버스 시간은 12시간이었지만 보통 인디언 타임 2시간 포함시켜 14시간으로 일정을 잡는다. 게다가 내가 탄 버스는 새벽 2시경 어느 한적한 산길에서 고장나는 바람에 달밤에 체조라도 하듯 현지인들과 뒤엉켜 버스를 밀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새벽 어둠을 뚫고 나타난 마을버스에 올라타기까지 지체된 3시간 포함, 무려 17시간이 소요된 여정이었다. 그 긴 여정에서 두명의 젊은이를 만났다.

21살의 한국인 처자는 벌써 2달째 여행중이었다. 티벳 자치구와 파키스탄을 거쳐 이곳 인도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맥그르도간즈에 살고 있다는 티벳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녀가 머물던 바라나시에서 델리까지 기차로 12시간, 다시 델리에서 맥그로드간즈까지 버스로 12시간, 무려 24시간의 거리를 달려가는 길이었다. 앙탈이라도 부리듯 혼자 투덜거리다 누구냐는 물음에 남자 친구라고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폼이 영락없는 소녀다. 근데 사랑일까, 호기심일까.

21살의 티벳 청년은 올초 티벳사태 이후 6000미터의 히말라야를 넘어 이곳 맥그리드 간즈로 왔다고 한다. 맥그리드간즈에서 만난 한국인 처자를 배웅하기 위해 델리까지 12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12시간의 버스에 올라탄 상태이다. 같이 찍은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며 여자친구라 말하며 환하게 웃는 폼이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청년이다. 근데 사랑일까, 착각일까.

그들의 사랑을 호기심일까, 착각일까 내 나름의 잣대로 생각한다는 것이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곳에서 티벳인과 결혼한 사람을 셋이나 보았다. 사랑에 국경이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사랑은 번갯불 치듯이 그렇게 시작되기도 한다. 근데 여기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며 본 젊은 티벳인들의 눈에는 불안함과 고독이 서려있다. 히말라야 저쪽에 고향과 부모를 모두 두고 넘어온 그들이기에, 국적불명의 불안한 미래이기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여행자의 객창감에 던진 아주 작은 호의에도 큰 의미를 두게 되지 않을런지. 여행자는 본질적으로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런지. 벼랑끝까지 몰려있는 그들에게 단 하나의 상처는 돌이킬수 없는 아픔을 주게 될 것 같다. 

사랑은 쉽게 말하여지면 안될것 같다. 쉽게 말하여진 사랑은 부서지기 쉽고 깨어지기 쉽다. 그 조각은 가슴에 돌이킬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그 상처는 오래도록 아물지 않는다. 단순한 나의 노파심으로 그치길. 그들의 사랑이 진정이길.

"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늙어가는 아내에게" 일부 - 황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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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8-12-12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이면 맥그로드간즈를 떠난다. 참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다시 델리로 가는버스에 12시간 시달리고, 자이살메르까지 기차로 무려 19시간을 달려가야한다. 그 다음에는 사막이 나를 기다릴 것이다.

2008-12-12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3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viana 2008-12-13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먼곳에 가셨네요.지금쯤이면 사막을 보기 위해서 열실히 달려가시겠네요.
건강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
다른 사람의 연애가 아니라 님의 연애이야기가 슬며시 기대되네요.ㅎㅎ

잉크냄새 2008-12-13 22:00   좋아요 0 | URL
하하, 중이 제 머리 못깍잖아요. 그저 남의 연애담이나 이렇게 떠들고 다니게 될런지도.

가시장미 2008-12-13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하시더니 언제 또 그 먼 곳까지 가셨어요? 와우~!! 대단하세요 ^^
잉크냄새님의 글을 볼 때마다 놀라네요. ㅋㅋ 인도의 커리는 어떤가요? 드실만 한가요?

참 사랑이 뭔지..라는 생각을 만들게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이군요. 그렇게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고 즐거울 수 있다는 건 행복일텐데, 현실의 어려움에 의해 오래 지속되지 못 한다면 상처로 남을 수도 있으니, 타인으로 하여금 그런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정말 사랑일까?

하긴 남 이야기가 아니죠. 제가 사랑한다고 말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가는 순간입니다. "우린 정말 사랑하긴 했을까~~ 느낄 수가 없잖아~~"라는 노래가사도요 ㅋㅋ 사실 사랑이냐 아니냐로 정의할 수 있는 성질의 감정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현재까지 유지되지 않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하긴 힘들겠죠. 누구에게나 지금의 감정이 중요하니깐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 모든 사랑이 그때는 중요하고 소중하고 간절했으니.. 모두 사랑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현재의 감정은 아니니... 이거 참 ㅋㅋ

어쨌든 몸 건강히 잘 다녀오시고 종종 소식전해주세요 ^-^* 홧팅!

잉크냄새 2008-12-13 22:03   좋아요 0 | URL
지나간 사랑의 감정일지라도 그 순간에 진실하였다면 사랑이라 할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저 글을 쓴것은 티벳이라는, 여행자라는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추억거리로 생각한 감정이 남겨진 자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어서 몇자 적어본 겁니다.
인도 음식은 라씨 빼고는 아직까지 별로입니다. 라씨는 나중에 한국가면 한번 만들어보고 싶군요. 아니면 프란차이즈라도 하나 차려야할듯...

가시장미 2008-12-13 22:55   좋아요 0 | URL
저 라씨 알아요! ㅋㅋ 예전에 인도 음식점에서 일한 적이 있거든요. ^^
저도 일하면서 제일 맛있는 게 라씨라고 생각했어요. 으흐 체인점 차리시면 저도 자주 먹으러 갈텐데. 으흐

잉크냄새 2008-12-14 15:45   좋아요 0 | URL
특히 바나나 라씨가 최고.
원래 지금쯤 델리에 도착해서 기차역으로 가야하는데 어제 버스가 끊겨 오늘에야 이곳을 떠납니다.

stella.K 2008-12-13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중이시군요. 멋지십니다. 그 여행에서 잉크님의 사랑을 주운 줄 알았더니
정말 남의 사랑에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ㅎㅎ
암튼 여행 잘 하시고 무사히 귀환하시길...아, 언제쯤 귀환하시는지...?^^

잉크냄새 2008-12-13 22:06   좋아요 0 | URL
원래 연애 못하는 사람들이 남의 연애에 콩나라 팥나라 떠든다죠.ㅎㅎ
아마 귀국은 1월 중순이나 말경이 될것 같네요.

2009-01-06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10 0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3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10 0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