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 장애인이 뇌성마비 장애인에게 보내는 편지

알고 있니?
난 한 번도 죽고 싶단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걸.
전신 마비에 손가락 하나만 겨우 움직일 수 있지만,
내 비좁은 육신에서 신을 불러본 적도 없어.
나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거든.
신은 두려울 때만 찾는 거야.

고통이란 한이 없단다.
현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단 의미지.
인간은 본능에 따라 살면 돼.
본능은 내게 이렇게 말해줘.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고 .

그 동안 기대를 갖고 살았어.
삶이 내게 걸고 있는 기대말이야.
자원봉사자가 밥을 먹여줄 땐 정말 맛있게 먹으려 했고,
한달에 한 번 목욕을 시켜줄 때 나는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 같았어.
그렇다고 정신적 압박이 없었던 게 아니야.
오로지 정신만은 자유로웠기에 살아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따랐을 뿐
인간에게 살아야 한다는 것만큼 가장 큰 책임은 없단다.

장애인 작업장에서 일하다 힘들 때마다 너는 내게 찾아왔어.
월급이 40만원밖에 안 되고, 잔업수당도 안 주며, 작업반장은 잔소리가 심하다면서.
중증 장애를 가진 네가 노동을 비관하는 건 당연해.
이 곳이 아니면, 네가 취업할 수 있는 사업장을 찾기란 어렵겠지.

너는 행복을 바라지 않았어.
당장 처한 상황에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바빴고,
그런 너의 불평을 듣는 나는 행복했단다.
친구가 생겼기에.

우리 사이에 거리가 있다면,
너는 불행했고 나는 행복했다는 정도일 거야.
이 차이를 잘 생각해보길 바래.
날이 갈수록 호흡이 가빠지고 있구나.
탁 트인 곳으로 가고 싶어.
영원한 삶이 있다면 그곳에 가게 될 거야.

이 편지를 남기는 이유는 영혼도 영양실조에 걸릴 수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야.
너는 절대적인 공정성을 원하지만 그건 환상이야.
극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영혼을 살찌울 수 있어.
장애는 공포가 아니라 인생이란다.
나는 너보다 더 소중한 인생을 살았던 셈이야.


친구
진실로 순수한 인간은 선도 악도 아닌,
절망에서 희망으로 증오에서 사랑으로 승화되는 인간이야.
이 편지가 너의 평화로운 집에 도착하기를 바랄께.

출처: w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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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29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울컥하는 글입니다.
육체보다는 정신이 더 연약하고 부서지기 쉽지요.
그래서 이러저런 중독들에 빠지는 거구요.
아마 지금의 저를 묘사하는 표현 같습니다. "영혼의 영양실조"...

은비뫼 2007-03-29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영혼을 살찌울 수 있어...
잠시 멈추게 하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잉크냄새님.

마노아 2007-03-30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게, 또 행복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글이에요. 잘 읽었습니다.

잉크냄새 2007-03-3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육신의 영양실조는 눈에 띄어도 영혼의 영양실조는 눈에 띄지 않죠.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까지 결코 그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것, 그것이 영혼의 영양실조인가 봅니다.
은비뫼님 / 저도 그 문장 참 오래도록 머물게 하더군요.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는 스스로에게 남겨진 과제겠지요.
마노아님 / 저도 부끄러움이 앞서더군요. 부끄러워할수 있다는 것은 아직 가슴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니 그것도 행복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