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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동아리 친구가 있었다. 나는 첫눈에 거의 동물적으로 저 사람과 잘지낼 수 있을지 없을지를 아는 편인데, 이 친구는 그런 느낌의 친구는 아니었다. 그냥 **야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면서 살갑게 구니까 친구가 된 거라고 할까. 워낙 과선배, 과동기들과 친했기 때문에 동아리는 늘 내 맘속의 2위였고,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난 뭔갈 혼자 하길 좋아하는데 이 아이는 내가 학원을 등록한다고 하면 자기도 같이 하자고 하고, 뭘 해도 같이 하고 싶어 해서 은근슬쩍 떼어내느라 골머리를 썩기도 했다. 그래도 동아리 내에서 우린 '절친'으로 통했다. 그 시절엔 통신사 카드로 매주 금요일마다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이 있었는데 우린 같이 영화를 보는 사이였다.
유럽여행을 먼저 간 건 그 친구였다.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난 자금을 모아야 하니 조금 더 있다가 가겠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 그 친구는 친구의 친구와 같이 갔다가 마음이 많이 상해서 돌아왔다. 친구가 여행에서 돌아온 5~6개월 후 난 혼자서 유럽여행을 갔다.
그것이 시발점이었을까.
그 친구에게 나는 '혼자서 하고 싶은 것은 뭐든 할 수 있는 멋진 아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용기 없는 못난 자신'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떨리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는지, 버벅거리는 영어로 의사전달을 할 때 얼마나 긴장했는지 따윈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자긴 맘이 안 맞는 사람이랑 가서 힘들었는데 넌 좋았겠다는 식의 부러움, 그래도 자긴 혼자서는 못 간다는 식의 어리광 섞인 말들을 많이 하곤 했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 친구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 나는 돈 때문에 매우 괴로운 상황이었다. 친구들은 점점 자리를 잡아가면서 위치도 단단하고, 돈도 웬만큼 받는 것 같은데, 나는 말로는 '좋아하는 일을 하니 만족한다'고 말하면서도 늘 내가 받은 박봉이 상처였더랬다. 집안의 경제사정도 좋지 않았고.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친구는 계산대에 서면 은근슬쩍 행동이 굼뜨기 시작했고, 그때만 해도 '돈이 없다'는 말은 입에도 대지 못하던 나는 그 어색함이 싫어서 그냥 돈을 내버리곤 했다. 정말 기가 막혔던 건 그 친구가 내 예상보다 돈을 훨씬 잘 번다는 걸 알고 나서였다. 잘 버는데 왜 저리 궁상일까. 그렇게 아껴서 뭐 할라고.
돈 내는 거야 그렇다고 쳐도 말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이상하게 내 아픈 곳을 건드리는 것 같아서 언젠가부터 그 아이를 만나고 나면 기분이 상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사람들이 다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번 해보라고 한 일에 그 친구는 딱 잘라서 말했다.
"아냐! 넌 아직 멀었어!"
(니가 뭔데??)
정말 하이라트는 결혼식에서였다. 안 그래도 생각보다 진한 화장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신부대기실에 들어온 그 친구가 내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바짝 갔다대더니 하는 말.
"야, 너 왜 이렇게 화장 진하게 했어?"
그날의 주인공인 신부에게 빈말이라도 이쁘다는 말은 못해줄망정, 내심 신경이 쓰였던 부분을 건드린 거다.
그날이야 여차여차 넘어갔지만, 그 말은 한동안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느꼈던 서운한 감정들이 착각이 아니었음을 그때 그 한마디가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일본에서 귀국한 후 난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동아리 사람들과도 연락이 끊겼다. 나 나름대로 무언의 절교를 한 셈이다.
요새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여기 보면 당신을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십중팔구 '순위 매기기'에 입각한 관계일 경우라는 말이 나온다. 친밀한 관계 맺기가 되어야 할 친구 사이가 니가 낫냐, 내가 낫냐는 경쟁구도나 순위 매기기에 의존될 때 기분 나쁜 관계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너무도 뻔하다.
남편은 연봉이 얼마니?
애는 왜 없니? 못 갖는 거니? 안 갖는 거니?
집은 전세니, 자가니?
아마 직간접적으로 이런 걸 알고 싶어할 테고, 내 안의 '못난 나'는 아마 상처받게 되겠지.
나는 나를 보호할 권리가 있고, 때론 그 방법이 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나긴 인생에서 굳이 나를 누르고 짓밟으려 하는 사람까지 만날 필요가 있을까. 적더라도 나를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들과 공감하며 살고 싶다.
사람이니까 때로는 내가 더 낫다고 은근슬쩍 흐믓해할 때도 있고, 누군가가 너무 뛰어나면 기가 죽기도 하고, 그러면서 사는 거다. 하지만 그 관계가 지속적인 상처가 된다면 과감히 그 끈을 놓는 것도 방법이다. 내안의 못난 내가 힘을 잃는다면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겠지만, 뭐, 난 아직은 미숙한 인간에 불과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