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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식물 키우기에 실패를 거듭하다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바질을 키워서 바질 페스토를 만들어먹는 것'에 성공한 이래, 따뜻한 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는 이맘때쯤이면 무언가를 키워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댄다. 나는 관상용보다는 키워서 먹을 수 있는 식물에 집착하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직접 키운 식물의 결과물을 섭취함으로써 얻는 '실감' 때문이리라.
때마침 자주 가는 다이소에서 각종 식물 씨앗을 구경하다가 '강낭콩'을 발견하게 되었다. 겉포장에는 검붉은 콩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걸 본 순간 저걸 키워서 콩을 따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어릴 적 강낭콩을 키우며 관찰일기를 작성하거나 하는 숙제를 해봤을 터인데, 그런 건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씨앗 세 개를 심고 발아를 기다린다... 일주일이면 싹이 튼다고 했는데 사실 난 그리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싹이 트다니! 무슨 뚝딱하고 찍어나오는 공산품도 아니고, 하나의 생명이 그리 빨리 세상으로 나올까, 싶은 우려가 컸다.
그런데 이건 뭐...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콩나물처럼 생긴 한 아이가 흙을 밀어내며 나오더니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큰다. 떡잎은 어느새 여물고 본잎은 저러다가 호박잎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날이 갈수록 면적을 넓혀간다. 신기한 것이 본잎 두 장은 햇빛이 비치는 곳을 향해 선탠이라도 하듯 양잎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씨앗은 불량이었는지 환경이 맞질 않았는지 싹을 틔울 생각을 안 한다. 아마 세상 빛을 보긴 글러먹은 듯하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강낭콩을 보며, 저 아인 태생이 원래 그런가 보다 싶다. 아마 쟤는 도대체 크긴 크는 걸까 싶게 느리게 느리게 성장하는 아이도 있을 터인데... 자기가 갖고 태어난 성질을 거스르려 하면 얼마나 힘이 들까. 자기의 성질 안에서 자기 속도로,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이 평등하다는 환상을 가진 적이 있다. 어느 쪽이냐면 없는 쪽, 약한 쪽, 가난한 쪽인 내가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면 그건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 '신이 있다면 그분의 시선에서 실은 모든 사람은 공평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그 안에서 안주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온갖 불합리한 일들이 판치는 인도에서 더 이상 눈 가리고 아웅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눈앞에 뻔히 보이는 현실이 우리 삶은 불공평하다고 외치고 있었으니까. 뭄바이로 들어가는 길 한 시간여에 걸쳐 지나가는 길은 온통 노숙자들로 이어져 있는데, 막상 도심으로 들어섰을 때 보이는 화려하고 세련된 건물들.. 그 말도 안되는 조합에 입이 떡 벌어졌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인정하는 순간, 보이기 시작했다. 없는 쪽 약한 쪽이라고 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가진 쪽 강한 쪽이라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 걸. 내가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가지고 태어난 것이 다를지언정 내가 남기고 가는 것이 그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강낭콩은 성장이 빠른 아이다. 그래서 눈이 즐겁다. 하지만 그렇다고 강낭콩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