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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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박완서의 수다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십 년이 넘게 그녀의 글을 읽지 않았다. 대학생 때 도서관에서 박완서의 어느 소설을 읽곤 다시는 이 여자의 책을 읽지 않으리 결심한 게 엊그제 같은데. 제목도 내용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 그 소설의 여주인공이, 그녀의 삶이 참 구질구질하고 구차해서 나는 그 글을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굳은 결심과 의지를 담아 내뱉던, 펄펄 끓던 청춘은 굴곡지고 구차한 삶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던 듯하다.

 

삶이 그러한 것을.

 

내가 다시 박완서의 글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이다.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박완서의 <그리움을 위하여>편을 들었고, 감동했다. 박완서란 이름은 소박하고 정겨운 글의 대표주자가 아니었던가? 내 이미지와는 달리 그녀의 글은 솔직하고 신랄하고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다. 차마 내가 남세우스러워서 입밖으로 내지 못하는 내 안의 음습함을 그녀가 대신해서 까발려주는 느낌이 들었다. 사촌동생을 집안일 도와주는 사람으로 부리면서 느끼는 상전의식이나 자기합리화, 사촌동생이 사랑에 빠져 재혼했을 때 느끼는 질투의 감정 등 아름답고 멋지진 않아도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볼 법한 감정의 질곡이 어찌나 생생하게 묘사돼 있던지.

 

안전한 둥지를 찾아 그 남자를 버리고 맞선 봐 시집가 버린 <그 남자네 집>의 그 여자나, 시어미에 대한 분노를 시아비의 팬티에 한껏 담아 패대기치는<마흔아홉 살>의 그 여자, 고국의 피붙이들에게 미제 선물을 보내는 맛으로 생기를 유지하던 <후남아, 밥 먹어라>의 그 여자, <촛불 밝힌 식탁>의 똑부러지게 집에 없는 척 가장하는 며느리...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람이면서 '나는 적어도 그 정도는 아니야'라고 말하는 거부하고 싶은 내 안의 그림자, 에고들.

 

결혼하기 전엔 늘 '남의 일'이었던 것 같던 일들이 이제는 뼛속 깊이 이해가 되는 건 내가 아줌마가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박완서의 수다가 맛깔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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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없었다면 난 엄마에게 더 자주 전화를 했을 것이다.

 

난생처음 동태찌개를 끓이기로 맘 먹고 시장에서 동태 한 마리를 2천 원 주고 샀다.

어마어마하게 큰 동태가 2천 원밖에 안 하는 것도 모잘라,

미나리는 큰 봉다리에 한 가득인데도 5백 원이다. 헐.

'동태찌개'를 검색창에 입력하니 연관 검색어에 '동태 쓴 맛'이 같이 뜬다.

잘못 끓이면 씁씁한 모양이라, 연관 검색어를 클릭!

아가미의 빨간 부분에서 쓴 맛이 난다고도 하고, 간과 쓸개에서 난다고도 하는데

간과 쓸개가 어떻게 생겼는지 친절하게 설명한 곳은 없었다.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쌀뜨물에 담가놓은 동태조각을 꺼내 이리저리 살피며

의심스러운 부분은 죄다 떼어내기 시작했다.

이정도면 되겠거니.

 

미나리를 봉다리에서 꺼낸다. 난감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먹을 수 있는 것이며, 어떻게 씻어야 좋을지 감이 안 온다.

일단 물에 퐁당 빠뜨려놓고 다시 검색질!

'미나리다듬-'만 쳐도 '미나리다듬기' '미나리다듬는법'이 뜬다.

나같은 사람 백만 명인갑다.

미나리는 잎보다 줄기를 더 많이 먹는 모양이고,

전과 무침으로 자주 먹는 것 같다.

근데 역시나 친절하고도 상세하게 미나리다듬기 과정샷을 보여준 블로그는 없었다.

 

내 나름대로 빠신 부분은 잘라내고, 누렇게 뜬 잎은 뜯어내면서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금세 알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결혼하고 처음엔 시어머니나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는 어떻게 해요?라고 묻곤 했는데,

늘 돌아오는 대답은 고춧가루 조금, 소금 약간, 마늘 좀 넣고 조물조물.. 뭐 이런 식이었다.

당최 양념을 얼마큼 넣어야 하는지 감도 안 오는데,

엄마들은 모든 양념들을 다 언급하면서 조금 넣으라거나, 먹을 만큼 넣으라거나, 눈대중으로 넣으라는 식이었고, 외국어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나는 결국 노트북을 펼쳐들고, 친절히 계량된 레시피를 보면 감을 잡곤 했다.

지금이야 대략 뭐뭐뭐 들어간다고 하면, 몇 스푼 정도 넣으면 좋을지 감이 오지만 말이다.

 

근데도 늘 곤란한 건, 난생처음 사본 재료들을 손질하는 것이다.

아마 예전처럼 대가족 속에서 살며 살림을 도우며 배우는 위치에 있다면 옆에서 많이 본 것만으로도 '누워서 식은 죽 먹기'일 일들이.. 하나하나 설명을 들으며 배우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것들이 돼 버렸다.

 

엄마는 옆에 없고, 이런 류의 일들은 말로만 설명해선 알아듣기 '대략 난감'이다.

마트에서 파는 미나리는 깨끗하게 손질이 돼 있지만, 시장에서 사온 미나리의 1/5밖에 안되면서 가격은 그 세 배이다.

 

개인, 나, 혹은 나와 신랑의 사적인 생활을 보호받으며 살고 싶지만, 가끔은 옆에서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라고 가르쳐줄 수 있는 어른이 있었으면 한다.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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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6-13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리를 잘해보고 싶어요. 제게 요리를 잘하는 것은 레시피없이도 척척 음식들을 해내는 것인데 제겐 그것이 불가능하거든요. 심지어 떡볶이 하나를 만들때도 일일히 레시피 찾아보고, 똑같이 따라하곤 해요. 그래도 이상한 맛이나고. 쩝.

오늘은 엄마한테 문자를 했네요. <아리랑> 세트 왔다고. 엄마도 읽고 싶지~ 하면서요 ㅋㅋ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6-14 12:02   좋아요 0 | URL
레시피대로 해서 맛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이진님의 혀를 믿고, 맛보면서 필요한 걸 투척해보세요. 흐흐흐.

ㅋㅋ 엄마가 뭐라고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잉크냄새 2012-06-14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의 음식 전수에 도량형의 통일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6-15 15:53   좋아요 0 | URL
전수는 옆에서 보고 듣고 배우며 해야 하는 건데 쩝 :)
 

 

한 카페의 매니저로 스카웃된 친구와 에스프레소 기계 영업을 하는 친구를 소개시켜줬다. 친구의 한가로운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둘의 대화를 듣는다. 커피에 관한 얘기는 대부분 아는 얘기지만, 기계에 관한 얘기는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예전부터 카페를 하나 차리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건 나였고, 기계 영업을 하는 그 친구였는데, 정작 커피에 그닥 관심도 없던 친구가 별다방에서 일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한 가게를 책임지는 매니저까지 돼 있었다, 후훗. 인생은 알 수 없는 거다.

 

대한민국에 커피열풍이 불면서 주변사람들이 하나둘 커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니, 미술을 가르치던 시누이가 카페를 열었다. 옆에서 지켜보자니 카페란 돈을 벌기 위해 하기엔 좀 버거운 업종이었고, 인건비를 아끼려면 내 하루를 전부 저당잡혀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내 시간을 목숨만큼 소중히 여기는 나는, 온종일 가게 안에 처박혀 있으며 떼돈도 못 버는 '카페사장'에 흥미를 잃어갔다. 허풍처럼 부풀었던 내 소망은 천천히 사그라져갔다.

 

친구들의 대화를 들으며 아주 작게나마 남아 있던 내 꿈의 불씨가 완전히 꺼져버렸음을 확인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아타미의 고목을 떠올렸다.

 

예전에 일하던 출판사에서 동료들의 동의만 얻어 내 맘대로 가져온 책이 있었다. <세계의 나무>라는 화보집에 가까운 책이었다. 그 속에 실린 바오밥나무가 너무 황홀해서, 언젠가 마다가스카르에 가서 바오밥나무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라곤 했었다.

 

친정집에 갔다가 그 책을 가져왔다. 역시 책에 실린 나무들은 너무도 아름답고, 오래되고, 경이로웠다. 그런데 낯익은 나무 하나를 발견했다. 지명을 살펴보니 일본의 '아타미'였다.

 

아타미는 2년 전 결혼기념일을 맞아 갔다온 일본의 온천관광지였다. 과거에는 엄청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점점 쇠퇴해가는,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잔뜩 기대를 안고 도착한 호텔은 흡연이 가능한 방을 택한 탓에 담배냄새에 쩔어 있었고, 창을 열자 베란다에는 비둘기똥이 덕지덕지 뭍어 있었다. 당장 다시 짐을 싸서 돌아가고 싶을 만큼, 그곳은 후졌더랬다.

 

추락하는 마음을 붙들고 서서히 주변을 즐길 줄 알게 되었을 즈음,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이 오래된 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거대한 고목의 위엄이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분명 이 책을 보면서 <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섬 '야쿠시마'에 가서 2천 년이 넘은 나무들의 향연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이 고목은 '야쿠시마'의 나무들 중 하나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마 그 사이 기억은 왜곡되어졌을 것이다. 아타미란 이름은 생소하고, 그 나무는 인상적이고... 인상적인 나무 사진과 <원령공주>의 배경이 되는 섬이 서로 화살표를 그리며 나의 기억속에 저장되었겠지.

 

그냥 농담처럼, 하지만 진지하게 꾸었던 꿈. 이렇게 모르는 사이에 이뤄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구나 싶어 가벼운 희망 하나가 피어올랐다. 마다가스카르에 가서 바오밥나무를 보겠다고 떠들고 다니다가 어느 순간 내가 소원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을 때쯤, 아주 적당한 때에 그곳에 가볼 수도 있겠구나. 꿈꾸는 건 좋은 거구나.

 

어느 순간 꿈조차 꾸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다. 아무 제약없이, 아주 즉흥적으로, 두근거리는 설레임을 안고 ".........할 거야"라고 당차게 내뱉던 생기있는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 심지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다시 꿈을 꿔야겠다. 이루기 위해서 꾸는 것이 아니다. 꿈을 이야기하며, 그것을 상상하며 갖게 되는 설레임을 불러일으키고자 함이다. 그것에서 오는 에너지를 내 것으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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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2-06-14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오밥나무는 아마 어린왕자의 별에도 있죠?
이천년의 세월을 살아온 저 나무는 얼마나 많은 사연을 품고 있을까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6-15 15:54   좋아요 0 | URL
그게 오래된 나무의 매력이죠 호호호
밤이 되면 정령으로 변할 것 같은 신비감에 호기심을 놓을 수가 없어요^_^

차트랑 2012-06-19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어마어마한 나무로군요..

저 정도의 나무라면 분명 신명이 깃들어 있을 것입니다.
경외감을 느끼게 해주는 나무입니다.

저 나무도 2000년이 넘은 나무인가 보군요.
말이 이천년이지...으....
이건 정말...대단 그 자체로군요.
나무 관세음보살...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6-20 20:34   좋아요 0 | URL
실제로 보면 정말 억-소리가 나요.
살면서 저렇게 큰나무를 볼 기회도 흔치 않은데
전 행운녀입니다. 음화화화.
 

 

인도여행 후 알게 된 지인에게서 "마약은 해봤냐?"는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안 해봤다는 내 대답에 늘 개방적인 그녀는 "에이, 그럼 인도에서 마약도 안해보고 뭐했냐?"라고 핀잔을 줬다. 그러게, 난 인도에서 마약도 안해보고 뭘 했을까.

 

음, 그때 나는 한번 해보면 거침없이 빠져들까봐 무서워서 아예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정녕 그랬을까? 아마 난 빠져드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내가 마약을 입에 대는 순간 내가 타락해버린다고 믿었던 것 같다. 같은 이유로 담배를 입에 대본 적도 없다.

 

타락이라니! 내가 무슨 천사도 아니고 성모 마리아도 아닌데, 일개 잉여인간일 뿐인데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타락을 운운할까! 어린아이들이 가진 도덕성, 흥부는 착하고 놀부는 나쁘다는 이분법적 잣대, 아마 그때 나는 아직도 그런 유아적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리라. 초딩 때 손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횡단보도를 건널 때, 그럴 때 듣던 '착한아이'라는 소리를 못 듣게 될까봐 겁이 났던 것 같다. 백옥 같은 나의 도덕성에 오점을 남기는 마약이라니!

 

지금이라면 호기심에 한번 해보고, 쿨하게 그만둘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때의 나는 타락하고 싶기도 한데, 타락하는 건 더 두려우니까 나를 꽁꽁 싸매고 '건전하고 아름다운 일'만 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안타깝다. 낭비할 젊음과 패기가 넘치고도 넘쳤는데. 잘못된 길로 가도 돌아올 만한 에너지가 충분했는데. 나는 나의 호기심과 의지보다는 길들여져온 습성에 나를 맡겼었다.

 

<뭐라도 되겠지>를 읽다 보니, 더 낭비하지 못한, 더 나쁜 길로 가지 못한 나의 젊음이 조금은 후회스럽다. 그리고 밤낮을 뒹굴거리며 보내는 시간에 대한 죄의식이 점점 가벼워지면서, 이젠 마치 하나의 당당한 권리처럼 느껴진다. 우린 너무 바쁘게 사니까, 효율적인 것만 하고, 도움이 되는 일만 하면서 사는 게 진리인 것처럼 말하니까, 잠시 그게 진리인 것 같기도 했는데, 김중혁의 글을 읽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소리가 아닌, 내 소리에 내 리듬에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내가 삐딱선을 타거나, 아무것도 소용되지 않는 일에 지나치게 열성적이 된다면 그건 다 김중혁 씨 탓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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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2-05-31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 바라나시에 가니까 그런 친구들이 많더군요. 저도 한번 맛들이면 벗어나지 못할까 싶은 걱정에 입에 대보지는 않았어요.
계획된 삶이 나쁘다 좋다의 잣대를 들어댈만한 건 아니지만, 스스로가 정한 규율에 너무 얽매여 그 너머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죠.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31 21:10   좋아요 0 | URL
모든 걸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죠.
그까이꺼!!

차트랑 2012-05-3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것은 몰라도 '마약'은 쩜...^^
이건 한 번 해보고 그만둬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닌거 같아요 ㅠ.ㅠ

백옥같은 도덕성은 자부심이 될 수 있습니다.
지켜주세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31 21:12   좋아요 0 | URL
댓글을 보면서 재밌어서 킥킥 웃었어요.
인도사람들은 마약은 밥먹듯 하면서 술은 굉장히 금기시하거든요.
술은 물 마시듯 하면서 마약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우리랑 매우 다르죠?
제가 말한 건 '중독성이 없는 마약'에 한해서 말한 거니,
넘 염려마셔요.^ㅡ^

차트랑 2012-05-31 23:49   좋아요 0 | URL
인도분들 참 우리랑 아주 다르네요^^

그너저나...
그런 마약이있다구요?
세상에나....
마약 안해봤다고 핀잔먹는 그런 마약인거 였다는??

그럼 쩜 제게 소개좀 어떻게 안되겠심니꺼??
쿠더덩~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6-01 20:45   좋아요 0 | URL
마리화나는 중독성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ㅎㅎㅎ

이진 2012-05-31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님 오랜만이에요!
다음 글이 기다려지는 분을 만나게 된 건 오로지 저만의 행운인가요 ㅎㅎ
타락이라, 저는 그런 것들을 하면 정신적 타락이 아닌 물리적 고통이 따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것들은 제 머릿속에 존재하지도 않죠. 공지영 작가가 고통보다 두려운것은 미지라고 하더군요. 이 문장이 왜 갑자기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래도 건전하고 아름다운 것만 하면서 살래요. 제 스스로 용서하지 못할 짓은 안할래요. (하... )

김중혁 작가님 저 너무 좋아요. 팟캐스트 들으셔요? '빨간 책방'이라는 팟캐스트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시는데 은근히 유머감각도 있으시고, 훈남이시고. 책을 어서 읽어봐야 할텐데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31 21:18   좋아요 0 | URL
오, 감사해요! 말씀해주셨으니 전 다음번엔 소이진 님을 염두에 두고 끄적일지도 몰라요. 하하하 ;ㅂ;
전 늘 '타락과 자유와 방종과 방탕'을 꿈꾸는 여자랍니다. 지나치게 성실하고 지나치게 진지한 제가 싫을 때가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물리적 고통이 두려워서인지 쉬이 시도하게 되진 않더군요. 이진 님 건전하고 아름다운 삶에 가끔은 용서할 수 있는 작은 오점 하나 정도는 찍으면서 가요, 우리. ^ㅡ^

전 안드로이드라서 팟캐스트 듣는 방법 모색중입니다. 나중에 한번 들어볼게요. :)
 

 

*

어제 아침에 청소를 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청소기를 왱-한번 돌린 후,

물걸레로 바닥을 박박 닦아냈다.

흐미, 맨날 닦아도 시커먼 때가 묻어나오는 걸 보면 이상하다 못해 신기하다.

한 차례 빨래를 넌 후,

아직도 덮고 있는 겨울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우렁차다.

 

잠깐 차 마시고 인터넷하는 사이,

띠디디 띠디디~

빨래완료를 알리는 신호음이 경쾌하게 울린다.

후다닥 베란다로 뛰어가서는 이불을 껴안고 빨래집게를 입에 문 채 옥상에 오른다.

볕이 따갑다. 강풍이 분다.

있는 힘껏 이불을 펼쳐 올린 후 한쪽을 빨래집게로 고정한다.

탁탁탁 소리를 내며 균형을 맞춘다.

바짝바짝 잘 마를 것 같은 날씨다.

 

청소에 묵은 이불까지 걷어내고 나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

이렇게 되기까지,

즐겁게 청소하고 빨래하기까지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왠지 하찮고 별 볼 일 없는 일로 치부되는 가사일에 시간을 쓰는 게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사일에도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다.

사람들은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한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명상을 하는데,

나는 그것보다 단순노동으로 이뤄진 가사일을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내가 왜 이런 하찮을 일을 해야 돼?

금방 더러워질 거, 뭣 하러 청소하는 데 시간을 써?

등등 처음엔 온갖 잡념이 올라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걸레질을 반복하거나, 더러운 그릇을 닦아내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머릿속이 개운해지곤 한다.

 

단순노동이 주는 선물이다.

 

 

***

아이가 생기면 집안일은 즐거운 것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어차피 평생 해야 될 일이라면

하찮은 일/중요한 일 편가르기 하지 말고

그 자체로서 즐길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다.

 

먹는 것만 즐거운 것이 아니고,

더러워진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내는 것도 즐거움이고,

깨끗하게 잘 말려진 옷을 입는 것만이 즐거움이 아니고,

군데군데 얼룩진 셔츠를 손으로 비벼 빨아 깨끗하게 만드는 것도 즐거움이라는 걸 안다면,

삶을 사는 게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나는 가끔 지혜로운 아줌마들을 보면,

저 분들의 저 내공은 집안일이 만들어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일에 열중하고 몰두하면서,

또 금세 더러워지고 흐트러지는 일을 매만지면서,

그분들 나름대로 자신을 닦아나가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하지만 난 뭐 아직 멀었다.

난 만져보고 찔러보고도 모르는데

엄마는 멀리서 한번 보고도

저게 좋은 오이인지 아닌지 척척 알아본다.

어쩔 땐 도사님 같다.

그리고 나라면 하루죙일 흐느적거리면서 해야 될 일을

엄마는 한두 시간 안에 뚝딱뚝딱 해내는 걸 보면,

우리의 엄마들, 주부들을 모두

생활의 달인에 출연시키고 싶어진다.

 

엄마의 사랑이란,

엄마가 해준 음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먹은 것을 치우고, 쓸고, 닦아냈던 기나긴 가사노동에도 녹아 있다는 걸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내가 네 똥기저귀까지 빨아줬는데, 란 말은

그만큼 날 사랑했다는 얘기겠지? 후훗.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랑을,

멋진 선물이나 잘 차려진 식탁만이 아닌,

안 보이는 곳에서도 녹여낼 수 있는 멋진 아줌마, 아내,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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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2-05-11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전 여자는 아니지만 가장 좋아하는 풍경중의 하나가 빨래가 바람에 펄럭이며 만드는 그림자의 일렁임이랍니다.

그 빨래 풍경속에 녹아든 저런 마음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글을 읽다 보니 드네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12 14:32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빨래가 바람에 펄럭이는 광경은 아름답죠.
오래 입은 런닝구가 널려 있어도 말이지요!
웬만한 건 베란다에 널어버리니 그런 광경을 음미할 여유가 점점 없어지는 게 아쉬워요.

이진 2012-05-11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엄마들은 다 달인이에요.
삶의 달인이요 ㅎㅎㅎ 이 나이도 어린게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단말이니까요 ㅎㅎㅎㅎ

그래도 저는 아직 가사노동에 시간을 쏟는 게 정말 싫어요. 빨래를 한 번 널라치자면 거기에 투자되는 30분가량이 아까워서 몸서리쳐진달까요... 하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12 14: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삶의 달인!
모든 엄마들에게 상을 준다면 '삶의 달인'상을 주고 싶어요.

저도 저의 그런 마음에 문득문득 놀라곤 했어요.
텔레비전을 보거나 멍때리거나
허비하는 시간은 너무도 많은데
유독 집안일에 쓰는 시간을 아까워했던 것 같아요.
사실 집중해서 해버리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안 걸린다는 것에도 놀랐죠. :)

비로그인 2012-05-11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사진도 정말 아름답네요. 조용히 추천 누르고 갑니다~ :)
저도 방청소 하기 귀찮다 생각하지 말고 룰루랄라 해봐야겠어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12 14:37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 반가워요. :)
사진은 몰래 주워온 건데, 볼수록 이쁘네요.
요새는 빨래가 펄럭이는 광경을 자주 못 봐서 더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요.

차트랑 2012-05-12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페이퍼를 읽어주셨으니 아시겠지만
말씀해주신대로
'더러워진 그릇을 닦아내는 것'이 바로 수도와 같은 것이어서
본래의 정갈함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닦는다'는 의미의 수(修)는 결국 빨래를 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라고 하니
그 얼마나 기분이 좋은 일이겠어요^^

어제 아침의 청소를 통해 수도하는 이의 마음을
느끼신 것 같습니다 마음을 데려가는 人님~^^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12 14:40   좋아요 0 | URL
왜 도를 닦으려는 제자에게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허드렛일을 시키는 건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의외로 깨달음이란 가까운 곳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집안 구석구석 닦으며 제 맘도 닦아볼랍니다. :)

차트랑 2012-05-12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런...
제가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입문자의 빨래와 허드렛일을 까맣게 잊고있었답니다.

정말 가까운 곳에 있다는 ㅠ.ㅠ
집안을 잘 닦아 놓으면
온 집안 식구들의 기분도 매우 좋아질겁니다.
물론 청소를 열심히 한 사람이 단연코 가장 뿌듯하지요.
저도 이참에 집안 처소를 좀 해야 할듯^^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14 00:4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가족들이 좋아하겠어요.
맘 먹으면 여자보다 청솔 잘하는 게 남자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