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후 알게 된 지인에게서 "마약은 해봤냐?"는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안 해봤다는 내 대답에 늘 개방적인 그녀는 "에이, 그럼 인도에서 마약도 안해보고 뭐했냐?"라고 핀잔을 줬다. 그러게, 난 인도에서 마약도 안해보고 뭘 했을까.

 

음, 그때 나는 한번 해보면 거침없이 빠져들까봐 무서워서 아예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정녕 그랬을까? 아마 난 빠져드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내가 마약을 입에 대는 순간 내가 타락해버린다고 믿었던 것 같다. 같은 이유로 담배를 입에 대본 적도 없다.

 

타락이라니! 내가 무슨 천사도 아니고 성모 마리아도 아닌데, 일개 잉여인간일 뿐인데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타락을 운운할까! 어린아이들이 가진 도덕성, 흥부는 착하고 놀부는 나쁘다는 이분법적 잣대, 아마 그때 나는 아직도 그런 유아적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리라. 초딩 때 손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횡단보도를 건널 때, 그럴 때 듣던 '착한아이'라는 소리를 못 듣게 될까봐 겁이 났던 것 같다. 백옥 같은 나의 도덕성에 오점을 남기는 마약이라니!

 

지금이라면 호기심에 한번 해보고, 쿨하게 그만둘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때의 나는 타락하고 싶기도 한데, 타락하는 건 더 두려우니까 나를 꽁꽁 싸매고 '건전하고 아름다운 일'만 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안타깝다. 낭비할 젊음과 패기가 넘치고도 넘쳤는데. 잘못된 길로 가도 돌아올 만한 에너지가 충분했는데. 나는 나의 호기심과 의지보다는 길들여져온 습성에 나를 맡겼었다.

 

<뭐라도 되겠지>를 읽다 보니, 더 낭비하지 못한, 더 나쁜 길로 가지 못한 나의 젊음이 조금은 후회스럽다. 그리고 밤낮을 뒹굴거리며 보내는 시간에 대한 죄의식이 점점 가벼워지면서, 이젠 마치 하나의 당당한 권리처럼 느껴진다. 우린 너무 바쁘게 사니까, 효율적인 것만 하고, 도움이 되는 일만 하면서 사는 게 진리인 것처럼 말하니까, 잠시 그게 진리인 것 같기도 했는데, 김중혁의 글을 읽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소리가 아닌, 내 소리에 내 리듬에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내가 삐딱선을 타거나, 아무것도 소용되지 않는 일에 지나치게 열성적이 된다면 그건 다 김중혁 씨 탓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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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2-05-31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 바라나시에 가니까 그런 친구들이 많더군요. 저도 한번 맛들이면 벗어나지 못할까 싶은 걱정에 입에 대보지는 않았어요.
계획된 삶이 나쁘다 좋다의 잣대를 들어댈만한 건 아니지만, 스스로가 정한 규율에 너무 얽매여 그 너머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죠.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31 21:10   좋아요 0 | URL
모든 걸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죠.
그까이꺼!!

차트랑 2012-05-3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것은 몰라도 '마약'은 쩜...^^
이건 한 번 해보고 그만둬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닌거 같아요 ㅠ.ㅠ

백옥같은 도덕성은 자부심이 될 수 있습니다.
지켜주세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31 21:12   좋아요 0 | URL
댓글을 보면서 재밌어서 킥킥 웃었어요.
인도사람들은 마약은 밥먹듯 하면서 술은 굉장히 금기시하거든요.
술은 물 마시듯 하면서 마약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우리랑 매우 다르죠?
제가 말한 건 '중독성이 없는 마약'에 한해서 말한 거니,
넘 염려마셔요.^ㅡ^

차트랑 2012-05-31 23:49   좋아요 0 | URL
인도분들 참 우리랑 아주 다르네요^^

그너저나...
그런 마약이있다구요?
세상에나....
마약 안해봤다고 핀잔먹는 그런 마약인거 였다는??

그럼 쩜 제게 소개좀 어떻게 안되겠심니꺼??
쿠더덩~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6-01 20:45   좋아요 0 | URL
마리화나는 중독성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ㅎㅎㅎ

이진 2012-05-31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님 오랜만이에요!
다음 글이 기다려지는 분을 만나게 된 건 오로지 저만의 행운인가요 ㅎㅎ
타락이라, 저는 그런 것들을 하면 정신적 타락이 아닌 물리적 고통이 따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것들은 제 머릿속에 존재하지도 않죠. 공지영 작가가 고통보다 두려운것은 미지라고 하더군요. 이 문장이 왜 갑자기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래도 건전하고 아름다운 것만 하면서 살래요. 제 스스로 용서하지 못할 짓은 안할래요. (하... )

김중혁 작가님 저 너무 좋아요. 팟캐스트 들으셔요? '빨간 책방'이라는 팟캐스트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시는데 은근히 유머감각도 있으시고, 훈남이시고. 책을 어서 읽어봐야 할텐데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31 21:18   좋아요 0 | URL
오, 감사해요! 말씀해주셨으니 전 다음번엔 소이진 님을 염두에 두고 끄적일지도 몰라요. 하하하 ;ㅂ;
전 늘 '타락과 자유와 방종과 방탕'을 꿈꾸는 여자랍니다. 지나치게 성실하고 지나치게 진지한 제가 싫을 때가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물리적 고통이 두려워서인지 쉬이 시도하게 되진 않더군요. 이진 님 건전하고 아름다운 삶에 가끔은 용서할 수 있는 작은 오점 하나 정도는 찍으면서 가요, 우리. ^ㅡ^

전 안드로이드라서 팟캐스트 듣는 방법 모색중입니다. 나중에 한번 들어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