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더워


요 며칠은 정말 숨막힐 정도로 덥다는 표현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렇게 덥지? 이 여름을 과연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절망감이 든다.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 아닌데도 이렇게 느끼는데, 나보다 더위를 더 못 견디는 분들은 어떻게 살고 계신 걸까?


물론 에어컨이라는 문명의 이기이자 이 기후위기 시대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물건의 존재가 변수가 될 것이다. 내가 이토록 더위를 못 견디고 힘들어 하는 것은 아직 에어컨이 없기 때문이고, 나보다 더 더위를 못 견디는 편이지만 에어컨이 있는 분들은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것이겠지. 2018년을 기점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에어컨을 구매하지 않았던 많은 지인들 대부분이 에어컨을 새로 장만했다. 현재 가장 친한 사람들 대부분은 최근에 에어컨을 구매했다. 30년 환경운동을 한 선배 활동가도 아마 3~4년 전에 못 견디고 에어컨을 장만했었다. 나 역시도 2018년 이후로 고민을 많이 했다. 매년 여름마다 이번 여름만 버티고 나면 내년 봄에는 꼭 사야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에어컨이 없는 건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일단 20년 넘게 환경운동을 해온 입장에서 특히 에너지 문제를 주로 다루는 활동가로서 에어컨을 구매한다는 것이 스스로 설득이 안 되는 것이 제일 큰 이유다. 아무리 덥다고 활동가가 에어컨을 통해 전기를 더 쓰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안된다는 지극히 답답하고 어리석은 고집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이혼하고 혼자 살기 전에, 그러니까 가족들과 함께 지낼 때는 에어컨이 있었다. 나는 거의 가동하지 않았지만, 다른 식구들은 자주 사용했다. 그러다 혼자 살게되면서 에어컨 없이 살게 되었고, 이것도 환경운동가로서 일종의 숙명 같은 거라고 고지식하게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두번째 이유는 이렇게 가장 심한 폭염이 이어지는 날엔 괴로워하지만, 이 고비 이전과 이후는 또 그럭저럭 견딜만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년, 20년, 21년 여름은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18년과 작년 22년 여름이었다. 그 여름 날들도 대체로는 견딜만 했다. 아주 극심한 폭염이 이어지던 며칠 동안이 힘들었을 뿐이다. 지금도 그런 시기라고 생각하고 요 며칠만 참자고 생각하면 또 견뎌질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지인들의 집을 돌아가면서 지내는 선택도 있다. 작년과 올해 친한 후배 한 명은 내게 힘들면 언제든지 와서 자고 가라고 말했다. 


세번째 이유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구조가 실외기를 놓을 장소가 마땅치 않고, 벽을 뚫을 위치가 애매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집에 처음 들어올 때, 집 주인 본인이 에어컨을 설치하려고 설치 기사를 불렀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설치를 못 했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설치를 문의한 적은 없으니까. 어쩌면 방법은 찾으면 찾아지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몇 년 사이에 집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이제는 이 폭염을 견딜 필수품이라고 불릴만한 에어컨 설치를 막는 집 주인은 없겠지.


이 세 가지 이유로 여름마다 더위에 괴로워하면서도 에어컨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 정말로 절실하게 괴롭고 힘들었다면 다른 어떤 이유에도 관계없이 그냥 에어컨을 설치했을 것이다. 1번의 명분과 2번의 인내가 그래도 버티게 만들어 준 원인일 것이고, 3번은 그냥 덧붙이는 이유 밖에 안 될 것이다.


암튼 지난 며칠 내내 이어지는 열대야 때문에 새벽에 깰 때마다 찬 물로 샤워를 하고 물기를 닦지 않은 채로 선풍기 바람으로 말려 몸을 식혔다. 이대로 얼마나 더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질 지 모르지만, 더 못견디겠다 싶을 때에는 지인 찬스를 쓰던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 도저히 혼자서 그냥 버티고 참기에는 한계에 이르렀다.


과감한 옷차림


얼마 전에 매장에 여성 한 분이 들어왔는데, 옷차림이 무척 독특했다. 등이 아주 깊게 파였고, 가슴 쪽도 좀 아슬아슬하게 보일 정도로 노출이 심한 옷이었다. 양쪽 팔에 이런저런 문신들이 눈에 띄었다. 영화나 매체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눈으로 이렇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반응하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곧 평정심을 되찾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했다. 아니 대하려 했다. 그럼에도 그 분이 여러 제품들에 대해 질문을 해서, 내가 설명을 드리려고 가까이 다가간 순간, 일부러 태운 듯 살짝 까무잡잡한 맨 살이 자꾸만 시야에 들어와서 다시 평정심을 잃을 뻔 했다. 일부러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설명을 해야 했다.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 방법 중 하나로 과감한 옷차림을 선택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한때 몸매에 자신이 있을 무렵에는 몸에 딱 달라붙는 꽤나 과감한 옷을 입고 여름을 지내는 걸 즐겼다. 속이 다 비치는 민소매 셔츠를 입고 다닌 적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 몸을 쳐다보는 시선을 오히려 즐겼다. 왜냐하면 그때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요즘 인스타그램을 포함해 SNS에서 레깅스와 크롭톱 같은 과감한 패션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 나도 한때는 저럴 때가 있었지 하면서 부러움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좀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본인이 가장 잘 느낄텐데 말이다. 그런 시선들이 결코 기분이 좋지만은 않을텐데. 라고 생각하는 건 오히려 편견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면 휴가지 그러니까 관광지였다면 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곳은 일상의 공간이 아닌 일탈의 공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혼자 해외여행을 가서 브라를 착용하지 않고 과감하게 돌아다녔다는 글들을 읽은 기억이 나기도 한다. 나 역시도 여러 해 전에 아이들과 휴가를 갔다가 돌아오자 마자 어떤 모임에 참석했었는데, 그때 입고 있던 옷이 몸에 꽉 붙는 새빨간 민소매 셔츠였다. 몸매가 완전히 드러나는 옷이라 아마 보고 있던 여성들은 민망함을 느꼈나보다. 그때 한 여성 분이 내게 휴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바로 오시느라 옷도 못 갈아입고 오셨겠어요? 라고 물었다. 나는 못 갈아입은 것이 아니라 그냥 안 갈아입은 거였다. 그날 아침에 입은 옷이라 굳이 갈아입을 필요를 못 느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말을 듣고 보니 이 일상의 공간에서 이런 옷을 입는 건 다들 어색하게 느끼는 구나 하고 깨달았던 것이다.


뭐 어떤 옷을 입던 그건 옷 입는 사람의 자유다. 남이 뭐라 할 영역은 절대 아니다. 그저 그 정도에 조금 당황했던 내가 반성해야 할 일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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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3 01: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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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4 2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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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4 2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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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1 17: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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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모임 1기 종료


지역 의료협동조합의 건강실천단 활동으로 시작했던 달리기 모임 일정을 일단 완료했다. 해당 활동이 100일간의 활동이고 내일 해단식이 있어서 오늘이 공식적으로 마지막 날이다. 우리는 100일 동안 각자의 방식으로 운동을 이어갔고, 매주 1회 이상 달리기 모임을 가지는 것이 목표였는데, 도중에 비가 많이 오는 날도 있었고 중요한 일정이 겹쳐 모임을 못 가진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어제도 사실 이런저런 일정들 때문에 모임 구성원 대부분이 정해진 시간에 모이지 못할 상황이었다. 해단식 전 마지막 모임이이기 때문에 나는 무조건 모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임 시간을 밤 9시로 늦췄다. 요즘처럼 더운 날엔 차라리 밤에 조금 선선할 때 모여서 달리는 것이 훨씬 낫다고 설득했다. 결국 9시로 모임을 정했고, 허리가 아파서 못 오시는 분과 다른 약속이 늦게 끝나서 못 오시는 분을 제외하고 다들 마지막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나는 달리기 모임에 가기 직전에 유혹에 빠졌다. 친한 선배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자리에 꼭 오라는 요청을 받아서 8시에 매장 문을 닫고 갔다. 곧 달리기를 해야 하니 아주 조금만 먹고 잠시 앉아 있다가 일어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선배들이 주문해 준 피자가 제법 맛있었고(아마 배가 많이 고파서 그랬겠지만) 앉아서 수다를 떨다보니 일어나기가 싫어졌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9시에 모이기로 한 것은 다른 분들의 일정이 적어도 8시 40분쯤에는 끝날 거라고 가정했기 때문인데, 만약 그 분들이 더 늦게 마치면 나는 그 분들 핑계를 대면서 안 가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 분들이 다 늦게 오시더라도 나는 시간 맞춰 가서 달리기를 해야지. 피자를 좀 더 먹고 싶은 유혹과 앉아서 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나는 일어섰다.


모임 장소에 도착해 조금 기다리니 그 분들이 오셨다. 그런데 한 분이 더 계셨다. 평소 지역의 이런저런 회의 장소에서 자주 마주쳤던 선배 활동가였다. 본인 말씀으론 납치되어 왔다고. 앞의 회의에 같이 참여햇던 분들이 달리기 같이 하자고 꼬셔서 끌려왔다는 뜻이다. 새로 온 분도 계시고 해서 달리기 기본 자세와 주의할 점들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같이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달리기를 같이 했다.


달리기 마지막에 나는 새로 온 분의 흥미를 끌기 위해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스킬을 일부러 하나 선보였다. 단거리 주법을 보여준 것이다. 달리기 주법은 장거리 달리기와 단거리 달리기가 완전히 다르다. 장거리는 길게 먼 거리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가볍고 부드럽게 앞으로 나가야 하는 반면, 단거리는 시작하면서 빠르게 가속도를 내야 하기 때문에 무릎을 높게 들고 땅을 강하게 박차는 동작을 빠른 속도로 반복해야 한다. 나는 일부러 그 분의 옆에서 천천히 달리다가 갑자기 무릎을 높게 들고 강하게 땅을 박차는 동작을 빠르게 반복해 앞으로 치고 나갔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순식간에 속도를 높이며 달려나가는 모습을 그렇게 가까이서 보는 경험이 평범한 그러니까 달리기를 안 해본 사람에게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역시 내 계산이 통했다. 달리기를 마치고 그 분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달릴 수가 있느냐 물으며 관심을 보였다. 자신이 그렇게 빨리 달리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달리기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내가 매우 열성적으로 이런저런 노하우를 가르쳐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내 강의 때문에 다시 나오기로 마음 먹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기존 참여자들도 같은 생각으로 계속 이 모임에 나오고 있다고 거들었다. 첫 달리기 모임 때 그러니까 100일 전에 평생 한번도 제대로 달리기를 해보지 못했던 중년 여성 선배들을 위해 나름 준비를 많이 해서 알려드렸던 것을 그 분들이 알아채고 인정해주셨던 것이다. 그날 첫 모임을 마치고 나를 '코치님'이라 부르며 지금까지 잘 따라주신 것에 나 역시도 무척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로 건강실천단 활동은 마무리가 되지만, 우리 달리기 모임은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일단은 올해 연말까지. 그리고 내년에도 또 계속 이어가야지. 우선 8월은 너무 더우니 1달의 휴식기를 가지고 9월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 100일 동안 꾸준히 함께 달린 분들의 성장에 대해서도 칭찬을 많이 했다. 다들 처음엔 달리는 자세와 호흡 등이 불안정했고, 한번에 쉬지 않고 달리는 거리가 짧았다. 속도도 잘 내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차례 모임을 이어가면서 점점 나아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렇게 일부러 더 많이 칭찬하면서 나는 속으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칭찬했다. 모임을 하기로 마음 먹은 후에 모임을 이끄는 나 자신이 잘 달리지 못하면 너무 부끄러운 일이 될 것 같아서 미리 달리기를 많이 해두었다. 나도 한 3년 만에 다시 달리기를 하는 것이라 폐활량도 많이 딸렸고, 하체 근력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한 보름 정도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나니 3년 전에 교통사고로 달리기를 멈췄던 시점 정도의 체력을 회복했다. 모임 지기로서 남들 보다 한 번이라도 더 달리고, 한 번 달릴 때에도 남들 보다는 조금 더 먼 거리를 더 빨리 달렸다. 가능하면 자신 없어하는 다른 분들을 잘 챙기려고 많이 노력했고, 사소한 것들을 잘 캐치해서 칭찬을 많이 하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달리기 모임을 만들고 이끄는 활동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약간은 억지로 떠 맡은 것이었지만, 막상 시작한 후에는 나 자신이 가장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그 재미가 지금까지 열심히 달리게 된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친한 후배들 몇 명은 달리기 모임에 정식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내 권유로 몇 차례씩 객원 멤버로 참여했었고, 그 중 한 명은 제대로 달려보고픈 생각이 들었는지 런닝화도 새로 구매했다. 9월에 다시 모임을 이어갈 때는 이 친구들도 모두 포함해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릴 생각이다. 이런 흐름이 잘 이어진다면 내년에는 동네 사람들과 덤벨과 케틀벨을 활용한 운동 모임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이렇게 일을 벌리다보면 나 자신이 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을테니, 귀찮고, 피곤하고, 힘들다는 핑계로 운동을 쉬지 못하게 되겠지.


자, 이제 일 마무리하고 매장 정리하고 달리기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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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7-2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리기 모임을 가지신 건 참 잘한 일이십니다.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감은빛 님이 운동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 위치에 있게 되어 열심히 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하게끔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가령 저의 경우 마트에서 장 보다가 하나 정도 빠뜨리고 올 때가 있어요. 무거워서인 것도 있지만 빠뜨려야 그다음날 또 나오게 되고 그래야 걷기 운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뭔가 열심히 하려면 하지 않을 수 없는 생활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면에서 볼 때 달리기 모임을 잘 만드신 거죠.

그런데 이 더운 날에 달리기를 하면 땀이 주르륵 잘 나오겠어요. 저는 걷기 운동만으로도 땀이 나는데... 땀 빼고 샤워하는 맛이 있긴 하지요.ㅋㅋ

감은빛 2023-08-11 17:36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페크님.
답이 많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뭔가 하기 싫은 일을 만나야 할 수 밖에 없다면
그에 대처하는 방법은 그 일을 억지로 떠맡거나,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이도록 마을을 고쳐 먹거나 해야죠.
운동하는 것 자체는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모아서 모임을 이끄는 역할은
평소 일 때문에 늘 해야 하는 역할이라서
일이 아닌 다른 상황에서는 가급적 떠맡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음을 고쳐 먹고 즐겁게 달리기 모임을 이끌었던 건,
정말 잘 한 일인 것 같아요.
덕분에 이미 친했던 사람들 외에 새롭게
50대, 60대 언니들하고 친해지게 되어 좋았고,
저도 몇 년만에 다시 달리기에 빠지게 되어서 더 좋았어요.

달리고 나서 땀 범벅인 상태에서 바람이 불어주면 정말 기분이 좋아져요.
당연히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면 최고죠! ㅎㅎ
 

3년


오늘은 제헌절이다. 7월 17일. 내 인생은 3년 전 오늘부터 크게 바뀌었다. 2020년 7월 17일 자정을 조금 지난 시점에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로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몸에 남은 변화 몇 가지를 살펴보자. 가장 뚜렷한 흔적은 흉터들이다. 가장 상처가 크게 났던 얼굴에는 코 주위로 큰 흉터가 몇 개 남았다. 시간이 지나서 이젠 코 주위 옆에 남은 흉터는 많이 옅어져서 그냥 쓱 스쳐지나면 잘 보이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물론 나는 그 자리에 흉터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거울을 볼 때마다 그 흉터들이 너무나도 잘 보이긴 한다. 코 아래와 안쪽에도 흉터들이 있다. 안쪽 흉터들은 당연히 밖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코 바로 아래 흉터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긴 하지만, 가족이나 친한 사이가 아니면 그렇게 들여다 볼 일은 없기 때문에 남들이 알아볼 일은 거의 없긴 하다. 얼굴에 남은 흉터는 이 정도다. 몸에 남은 흉터들도 제법 많다. 옆구리에 남은 수술 자국이 제일 큰 흉터다. 올해 초 까지도 볼록 튀어나온 길다란 흉터가 만져질 때마다 무척 거슬리곤 했는데, 최근에는 많이 작아졌다고 할까 높이가 조금 낮아졌다고 할까 그렇다. 시간이 지날 수록 만져지는 느낌이 점점 익숙해지기도 했다. 물론 평생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몸 속 갈비뼈에는 뼈들을 고정하는 클립이 여전히 박혀있다. 그래서 우스개 소리로 만약 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서 언젠가 백골 사체로 발견되면 내 갈비뼈에 박혀 있는 클립들이 나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될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예전에 함께 목욕탕에 갔던 후배가 그 흉터를 보더니 조폭이 칼 맞은 흉터처럼 보인다고 했다. 수술용 매스도 칼이니 당연히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 몸에 남은 또 다른 흉터들은 주로 몸의 뒷면에 있다. 어깨 뒤쪽과 허리 뒤쪽 그리고 허벅지 안쪽 등이다.


다음은 아직도 가끔 나를 괴롭히는 후유증이다. 코 밑에서부터 크게 찢어진 상처를 꿰맸기 때문에 코 일부와 뺨 일부는 신경이 죽어버렸다. 그래서 눈 밑에 뼈가 산산조각나서 인공 뼈를 집어넣은 곳까지 손가락으로 만지면 느낌이 없다. 남의 살을 만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피부 표면은 그렇게 신경이 죽었는데, 안쪽에서는 가끔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들이 나타난다. 자세히 살펴보면 해당 부위는 반대쪽에 비해 여전히 좀 부어있고, 그 안쪽 어딘가는 여전히 완전히 다 나은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암튼 통증은 한 번 나타나면 몇 시간 이상 지속되는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할 때도 있고, 그냥 참을 수 있을 정도일 때도 있다.


그 다음은 트라우마 라고 할까 약간 정신적은 면에 가까울 것 같다. 일단 사고 이후로 교통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택시나 남의 차를 타면 무조건 안전벨트를 찾아서 맨다.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등도 마찬가지.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나서 운전을 못 할 정도는 아닌데, 한동안은 운전을 하는 것이 겁이 나기도 했다. 어딘가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경우에는 자주 도중에 교통사고가 나는 장면이 자꾸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딴 생각을 하다보면 괜찮아지기도 하는데, 가끔은 그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사고 이후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일과 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그 전까지는 일과 가족과 친한 소수의 사람들 외에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일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그런데 사고 이후로 오래 쉬다가 일터에 복귀한 후로는 일 말고 다른 것들을 더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다. 일부러 직소 퍼즐 맞추기에 시간을 투자하거나, 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더 많은 운동기구를 사 모은다거나 하는 등. 아, 물론 사고 이전에도 운동을 좋아했고, 운동 기구를 사기도 했지만, 규모와 비중이 달랐다고 할까. 이젠 좀 비싸더라도 이 정도 투자는 해야지 생각하게 되었고, 이전에는 이렇게나 많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라면서 내 스스로 제동을 걸었던 것을 이젠 이 정도는 필요하지 하고 반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집에서 쉬고 있을 때에도 다음날 일정이라던가, 큰 틀에서 일의 흐름이라거나, 어떤 잘 안 풀리는 상황의 해법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퇴근하는 순간 일에 대한 생각은 아예 머리에서 지워버린다. 그 전에는 좀 무리한 일정이거나 너무 많은 양의 일이 내게 배정되어도 그냥 어떻게든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면, 이젠 그렇지 않다. 일이 좀 많다 싶으면 못 하겠다고 말하고, 일정이 무리라고 느끼면 가감 없이 그대로 말한다. 


전반적으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혼자 뭔가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예전에는 누군가 연락이 오면 거의 무조건 만나러 나갔고,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일들도 많았다. 요즘은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이 많이 줄었고, 누군가 만나자고 연락이 와도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 


아, 가장 큰 변화를 잊어버릴 뻔했네. 근육량이 확 줄어서 더는 예전처럼 고강도의 운동을 감당하거나 고중량의 무게를 들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3년 동안 꾸준히 운동을 해서 운동량을 늘리고 있음에도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다. 물론 중간 중간에 지쳐서 운동을 쉬는 날들도 제법 있었다. 예전과 비교해서 흥이 안 난다고 해야 할까? 이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서 기분이 안 나기도 한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서 얼른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고 느낄 때도 있고, 점점 늙어가는 내 몸은 이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번은 약간의 객기로 옛날에 주로 들던 정도로 원판을 끼워 놓고 바벨을 들다가 부상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 예전이었으면 지금 이 여름에 몸에 붙는 옷을 입고 몸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헐렁한 옷을 주로 입는다. 더이상 나는 근육을 자랑할 수 있는 몸매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거울을 볼 때마다 깨닫는다.


이외에도 더 변화들이 있을텐데. 지금 생각나는 것은 이 정도다. 사람은 늘 변한다. 몸도 마음도 변하기 마련이다. 아마 그 사고가 없었더라도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제법 많이 달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고라는 하나의 변곡점이 많은 것을 확 바꿔버렸다. 서서히 바뀐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순간 어떤 힘에 의해 내 삶이 꺾여버린 느낌이다.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고 당시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래. 죽었을 지도 모를 이 삶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살아났으니 계속 살아야지. 이왕이면 좀 더 잘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잘~'이란 기준이 또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일반적인 기준으로 생각하지는 않겠다. 


내일은 강의가 한 건 있고, 중요한 회의도 있다. 이래저래 준비할 것이 많아서 늦게까지 사무실에 앉아 있었는데, 날짜가 바뀌기 전에 집에 가야겠다.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방류 문제 때문에 찾아봐야 할 문건과 영상이 너무 많다. 과학적인 태도와 가짜 과학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계속되는 집중호우 때문에 피해를 입은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기후위기의 피해를 덜 보고 있다고 강의 때마다 말하곤 했는데, 이젠 그렇게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이번 비 피해 규모를 숫자로 따지면 2020년 중국 홍수 때보다 훨씬 적겠지만, 피해를 입은 사람 개인의 삶의 문제로 접근하면 그런 숫자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그냥 피해는 피해일 뿐이다. 막을 수 있는 피해인가, 없는 피해인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 그런데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는 막기 어렵다. 이 쏟아붓는 비를 어찌 막을 것인가? 조금 더 미리 대피하고, 조금 더 대비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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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1 2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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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1 2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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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자자의 노래 [버스 안에서] 라는 곡을 좋아한다. 신나는 음악이기도 하고, 가사를 보면 내 학창시절 경험이 떠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경험은 특히 그것이 이성과 관련된 경험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잘 잊혀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이었다. 외부 회의에 참여해야 해서 한 낮에 버스를 탔다. 최근에는 외부 일정도 멀리서 잡히는 경우가 많지 않고 대부분 동네 안에서 이동하다보니 낮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은 드물다. 어지간한 거리는 그냥 걸어다닌다. 이번엔 걸어갈만한 거리를 조금 넘어섰고 회의 시간에 맞추려다보니 버스를 탔다. 버스는 대낮이었지만, 좌석이 꽉 차 있었고, 나는 양쪽으로 하나씩 좌석이 있는 앞쪽 구역과 양쪽으로 두 개씩 좌석이 있는 경계 지역, 그러니까 뒷문 근처에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버스가 운행하는 중에 오르막과 내리막 길이 번갈아 나왔고, 그 와중에 내 바로 옆에 서 있던 여성 한 분이 몸이 기울어지며 내가 손잡이를 잡고 선 팔에 기댔다. 버스가 흔들리니까 당연히 기댈수 있는 일이니 그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 분이 다음 순간 몸을 일으켜 바로 설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 분은 바로 일어서지 않고 계속 내 팔에 기대어 계셨다. 그런데 그 기댄 부위가 그 사람의 겨드랑이 부분이었다. 내 팔에 그것도 여름이라 당연히 반 팔을 입었으니 내 맨 살에 여성이 겨드랑이를 끼고 기댄 모양새였다. 그 와중에도 가끔 버스는 흔들렸고, 그 때마다 여성의 가슴 부위 살이 내 팔에 닿았다. 분명 이 상황을 본인이 모르지 않을텐데. 만약 그 분이 가만히 있었는데, 내가 그 쪽으로 손을 뻗어서 이렇게 된 상황이었다면 분명 성추행이 될 상황인데, 그 분은 계속 내게 몸을 기댄 채로 가고 있었다.


한 낮이라 엄청 더웠고, 버스 에어컨은 그 더위를 식힐 정도가 되지 못해서 나는 버스 안에서 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그 여성 분이 내게 몸을 기대고 있었기 때문에 더 더웠고, 나는 내 팔로 그 분의 몸무게 일부를 지탱하고 있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냥 팔을 확 빼버릴까? 그럼 이 분이 기우뚱 넘어질 뻔하다가 중심을 잡겠지? 그러고 나를 보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면 어떻게 눈치를 줘야하나? 정중히 이야기를 하기엔 이 분이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얼마나 더 그렇게 갔을까? 몇 정거장을 지날동안 계속 그 분은 내게 기대어 있었고, 나는 무거웠고, 땀이 차서 불쾌지수가 더욱 올라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혹시 주위에서 누가 유심히 보면 오히려 내가 파렴치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이젠 팔을 빼야지 하고 생각할 때쯤에 갑자기 여성이 몸을 세우더니 하차 벨을 눌렀다. 그리고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뒷문으로 향했다.


90년대 초반이었고,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아침 일찍 버스정류장에 가면 여러 학교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서 있었다. 그 버스는 인문계 고등학교와 상업고등학교를 다 합쳐서 5개쯤의 여고와 그 이상의 남고를 지나는 노선이었다. 아침에 내가 기다리는 정류장 정도 오면 버스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는 만원 버스였다. 그럼에도 그 버스를 놓치면 지각이 될 확률이 높으니 학생들은 어떻게든 몸을 밀어 넣어야 했다. 매 정거장 마다 여학생들의 비명소리와 남학생들의 신음소리와 함께 밀고 밀리는 힘싸움이 벌어졌다. 그렇게 20여 분을 달려서 학교들이 모여있는 구역의 첫 번째 정류장에 도착한 후에, 학생들이 대거 내리면 그제서야 조금 숨통이 트인곤 했다.


내가 저 자자의 [버스 안에서]라는 노래를 듣거나 떠올리면 늘 생각나는 기억은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위해 학교에 갈 때 일어났다. 보충수업이라서 지각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때는 학기 중에 비해 조금 늦게 집에서 나왔다. 당연히 버스 정류장에도 평소 보다는 학생들 수가 적었다. 그때 매일 마주치는 여학생이 하나 있었다. 매일 마주쳤기 때문에 당연히 내리는 곳도 알고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 직선거리로는 그리 멀지 않은 여고였다. 학기 중에 비해서는 완전 여유가 있는 버스였지만, 그렇다고 앉아 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어서 조금 널널하게 서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버스의 운행 경로엔 급경사가 많았다. 급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번갈아 나타나고 급 커브도 많았다. 하루는 버스를 타서 서 있는데, 그 여학생이 내 바로 옆에 섰고, 한참 가다가 그 급경사가 반복되는 구역으로 접어들었다. 여학생은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나를 향해 몸이 기울었고 당연히 내게 기대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몸을 세워 서 있다가 또 내게 몸을 기대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급경사 내리막길에서 버스가 급커브를 돌았다. 서 있던 모든 승객들이 비명을 질렀고, 나도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팔에 힘을 주면서 '아!' 하고 소리를 냈다. 내 바로 옆에 있던 여학생은 '어머!'하고 소리를 내며 몸의 균형을 잃고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넘어졌다. 나는 몸을 살짝 틀어서 몸으로 그를 받아줬다. 그는 내 품에 푹 안긴 자세로 한동안 머물렀다. 마침내 버스가 급경사, 급커브를 벗어났고, 그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나를 보지도 않고 나를 향해 고개만 숙였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참을 가다가 또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고 그는 또 내게 안겼다. 이번에는 그가 몸을 일으키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이번에 몸을 일으킨 그는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봤다. 나는 아마도 멍한 표정으로 그를 봤던 것 같다. 짧은 순간 눈이 마주쳤고, 그는 다시 한 번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처음은 우연이었지만, 그 다음은 우연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그 후로 그 여학생은 자주 내 바로 옆에 섰고, 그날처럼 극적으로 넘어지면서 내게 안기지는 않았지만, 내 팔이나 몸에 기대었다가 다시 일어나는 일이 잦았다. 얼마 후 나는 용기를 내어 버스정류장에서 그에게 말을 걸었고, 그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조금 더 시간이 지나 그에게 만나자고 제안을 했고 짧은 기간 데이트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여름방학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린 다시 아무 사이도 아닌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서로가 불편해서 등교 시간, 그러니까 버스 정류장에 나가는 시간대를 바꿨다.


앞서 얘기한 며칠 전 버스에서 내게 몸을 기대고 있었던 그 여성 덕분에 잊고 있던 오래전 학창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그 시절 그 날들도 참 더운 날들이었다. 그 더위에 에어컨도 제대로 나오지 않던 버스를 타고 그렇게 인파에 시달리며 학교를 다녔었지. 하고 잠시 추억에 잠겼다.


아침 달리기


내가 일하는 협동조합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1박2일 프로그램으로 탐방을 갔다. 나는 조합원들을 이끌고 행사를 진행하는 입장이라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사람들을 살피고, 인원 수를 체크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라 바쁘고 힘든 날이었다. 저녁 때가 되어서 내가 맡은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팀 대항 놀이를 진행했다. 준비하면서 과연 참가자들이 재미있어 할까? 걱정을 많이 했고, 그래서 더더욱 재미있게 해보려고 고민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참가자들이 정말 즐겁게 참여했고, 올해 가장 많이 웃은 날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다른 참가자들도 모두 만족스러워했고, 참가자 중 한 분은 내가 만든 놀이를 본인이 다른 교육 프로그램에 접목해서 이용하겠다고 했다. 뭐 나 역시도 흔히 하는 놀이를 조금 바꿨을 뿐이니 딱히 권리를 주장할 처지는 아니라 당연히 좋다고 했다. 암튼 그렇게 공식 프로그램을 마치고 이후로는 열심히 먹고 마시는 시간이었다. 나는 오랜 활동가의 경험 상 늦게까지 이어지는 뒤풀이에서도 무슨 사고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어지간하면 모든 참가자들이 다 주무실 때까지 남아서 뒷정리를 하는 편이다. 그날도 당연히 마지막까지 남아서 다들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도 구석 자리를 찾아 잠을 청했다.


누군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의 잠꼬대 소리도 작게 들렸다. 무엇보다 근처 계곡의 개구리 소리가 크게 들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늘 그랬다. 잠자리에 조금 예민한 편이라 쉽게 잠들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뒷정리를 마친 후에야 억지로 잠을 청하곤 했다. 그래도 엄청 피곤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 기절하듯 잠이 들긴 했다.


아침에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소리 때문에 깼다. 늦게 잠들었다는 핑계로 조금 더 눈을 붙이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 몸이 너무 피곤했다. 그런데 다시 잠들려고 할 수록 더 정신이 또렸해졌다. 누군가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씻고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일어나서 움직였다. 화장실을 막 다녀와서 아침을 준비하는 걸 도우려고 하는데, 친한 형이 아침 달리기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았다. 그 형이 나를 보더니 마침 잘 됐다며 따라 나서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 형은 간밤에 술을 많이 드시고 쓰러져 잠든 분이시라 아침에 이래저래 많이 불편하시리라고 예상했건만,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으로 달리기를 하겠다고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음에도 아침 달리기를 하기엔 너무나도 몸이 피곤했다. 그때부터 잠시 실강이가 있었다. 그 형은 내가 달리기 모임을 이끌 정도로 잘 달리는 지 봐야겠다며 따라 나서라고 했고, 나는 우리 달리기 모임은 알아서 잘 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나는 다음에 컨디션이 좋을 때 형이랑 같이 달리겠다고 했다.


사실 그 형은 거의 준 프로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마라톤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100일 동안 매일 6킬로미터 달리기를 하고 있다. 첫날 그러니까 탐방을 위해 아침 7시 반에 모였을 때에도 그 전에 6킬로미터 달리기를 마치고 시간 맞춰 집결지로 왔었다는 얘길 들었었다. 그리고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고 뻗어서 주무신 다음 날에도 깨자마자 6킬로미터 달리기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전날 징검다리를 건너다 미끄러져서 물에 빠진 여성 선배를 구하려고 물에 뛰어든 바람에 휴대전화가 젖어서 작동이 되지 않으니 내 폰의 달리기 앱을 통해 달린 거리와 시간을 인증하겠다는 이유를 댔다. 거기까지 듣고 나니 더는 거절할 수가 없어서 따라 나섰다. 한 편으로는 그 형과 같이 한번 달려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나는 장거리 달리기가 내 목표가 절대 아니기 때문에 그 형처럼 마라톤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기 때문에 한 번에 쉬지 않고 그렇게 긴 거리를 달리지 않아서, 과연 그 형을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둘이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 형은 일부러 내 속도에 맞추겠다는 생각인 것인지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무릎이 조금 아프기도 했고, 어깨와 뒷목 쪽이 뭉친 느낌이 들기도 해서 무거운 몸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묵었던 펜션을 나와서 한적한 시골 도로에 접어들어 그 형이 길을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위쪽 길을 택해 달렸는데, 가다보니 끝없이 굽이 굽이 오르막길이 나왔다. 와! 이건 군대에서 주로 했던 산악구보 수준이라 도저히 이 늙은 몸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형은 아주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인생이나 달리기나 다 똑같다며, 오르막이 있으면 언젠가는 내리막이 나타난다는 가르침을 베풀었다. 나는 오르막길을 뛰느라 얼마 뛰지도 않았음에도 이미 숨이 차서 더는 이 길로는 못 가겠다고 다시 내려가겠다고 했다. 


내려가다가 옆으로 빠지는 평탄한 길이 나와서 그 쪽으로 길을 정해 달렸다. 오르막이 아닌 평지는 확실히 달릴 만했다. 몸에 열이 나니 조금씩 컨디션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도 달리기를 시작하면 조금씩 여기저기 아프거나 피로를 느끼지만, 조금 달려서 몸에 열이 나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릴 준비가 되곤 했다. 그래서 워밍업이란 것이 필요한 법이다. 암튼 평지를 뛰면서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달렸다. 물론 이 형의 평소 속도에는 한참 미치지 못 했겠지. 어느 순간부터 이 형이 나를 제치고 앞으로 나서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어쨌거나 지기 싫은 마음에 따라 잡으려고 애를 썼다. 뭐, 그렇다고 아주 많이 빨리 달린 것도 아니어서 조금 숨이 차긴 했지만 따라갈 만하다 싶었다. 한참 달리다가 그 평탄한 길 끝에 다시 산 길이 나타났다. 길이 그 길 밖에 없었다. 아, 다시 산악구보가 되는 구나. 이번엔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산길을 따라 뛰었다.


알고보니 이 형은 매일 6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30분을 달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본인이 30분을 가볍게 달리면 딱 6킬로미터가 되니 딱 그 만큼만 달리는 거라고. 달린지 15분이 되자 이 형이 방향을 돌려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 6킬로미터를 다 뛰지 않아도 30분이 되면 끝나는구나 하고 조금은 안도했지만, 한 편으로는 이제 겨우 15분 지났을 뿐인데 나는 상당히 지쳐 있어서 남은 절반을 어떻게 달리나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우리 두 사람은 잠시도, 한 발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긴 시간을 안 쉬고 달린 적은 없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중장거리 달리기가 목표가 아니라 단거리 달리기가 목표이기 때문에 내가 낼 수 있는 최도 속도로 짧은 거리를 달리고 좀 쉬다가 다시 달리기를 반복하길 좋아한다. 그래도 달리기 모임을 할 때에는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 속도가 아닌 다른 참가자들과 적당히 보조를 맞춰 달리고 다들 힘들어하면 조금 쉬었다가 다시 달리길 반복했다. 주로는 1킬로미터씩 서너번을 뛰거나 2킬로미터씩 두세번을 뛰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중간에 휴식을 충분히 취해가며 5~6킬로미터를 달리기는 했지만, 전혀 발을 멈추지 않고 그 정도 거리를 달려본 적은 없었다.


한 25분 정도 달렸을 때 우리가 출발했던 펜션을 지나쳤다. 처음에 선택하지 않았던 아래쪽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내 왼쪽 신발 끈이 풀렸다. 형에게 말하고 처음으로 발을 멈춰 신발 끈을 묶었다. 이 형은 그 사이에도 발을 멈추지 않고 내 주위를 계속 왔다갔다 하며 달렸다. 그리고 다시 남은 5분 정도를 채우기 위해 달렸다. 이 형이 또 갑자기 속력을 높였다. 나는 이제 완전히 지쳤고,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지만 억지로 쫓아갔다. 체감 상으로는 3분 이상 지난 것 같은데, 왜 펜션으로 돌아가지 않는 건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형에게 물었다. 이 형은 뛰느라 펜션을 지나쳤다는 걸 깨닫지 못했던 거였다. 나는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원망 섞인 말투로 말했고, 이 형은 너무나도 천진난만한 표정과 말투로 아, 몰랐네. 그럼 돌아가자 이러고 다시 달렸다. 이 와중에도 당연히 발을 멈추지는 않았다. 아직 펜션이 보이기도 전에 30분은 지났고, 우리는 여전히 펜션을 향해 달렸다. 나는 이제 30분이 지났으니 그만 달리고 걷고 싶었으나 이 양반이 멈추지 않으니 계속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5킬로미터 가량을 달렸다. 역시 초반 오르막길에서 내 속도에 맞추느라 그 형의 평소 기록보다 1킬로미터나 적게 달린 결과가 나왔다. 아니 초반 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나를 배려하느라 평소 보다는 천천히 달렸겠지. 이 형은 펜션에 도착한 후에도 쌩쌩한 모습으로 신나게 계단을 뛰어 올라갔고, 나는 거의 패잔병 모양으로 비틀거리며 간신히 계단을 한발씩 올랐다. 달리기를 멈추고 보니 내 옷은 이미 땀에 완전히 젖어 있었다. 속옷까지 모두. 그리고 쉼없이 땀이 흘러내렸다. 완전히 땀으로 목욕을 한 모양이었다. 


런닝앱의 기록을 살펴보니 몇 가지 신기록을 한꺼번에 달성했다는 알림이 떴다. 가장 긴 시간 달리기 기록, 가장 먼 거리를 달린 기록 등 지금까지 이 앱을 3년 정도 쓰면서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기록들을 오늘 달리기 한 번으로 모두 달성했다. 약간 억지로 끌려가는 모양새이긴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한번은 같이 달리고 싶었던 사람과 달릴 수 있으니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있었다. 내 몸이 과연 버텨줄까?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던 건, 이 형이 일부러 맞춰준 덕분에 괜찮았고, 그럼에도 완전히 내 페이스로 맞추지 않고 중간부터 본인이 먼저 치고 나갔기 때문에

내게는 지금까지 못해봤던 한계에 도전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여러 모로 내 달리기 경험 중에 다시 없을 좋은 경험이었지만, 아침 달리기는 정말 너무 힘들기는 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도 계속 땀이 났다. 땀에 젖은 옷은 한참이 지나도 마르지 않았다. 전날 밤에 샤워하고 하나 가져온 여벌 티셔츠를 갈아 입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입고 온 옷을 그대로 입었던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티셔츠는 갈아입었지만, 반 바지는 여벌로 더 챙기지 않아서 방법이 없었다. 젖은 옷을 그냥 입고 있을 수 밖에.


이 한 번의 힘든 달리기가 내게는 다시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덥다고, 피곤하다고, 힘들다고 조금 덜 열심히 운동했던 최근의 상황들을 반성하며 다시 열심히 땀 흘려 운동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아울러 또 기회가 되어 이 형이랑 다시 달리면 그때는 지금보다 더 잘 달려서 일부러 배려해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는 체력을 올려놓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렇게 되더라도 이 형이 작정하고 제대로 달리면 역시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아, 그래서 프로와 아마추어는 완전 다른 차원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 양반이 완전 프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준 프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프로는 또 얼마나 다른 차원에 있는 걸까 하고 깨닫게 된다.


저녁에 시작한 회의가 밤에 끝나고, 일을 조금 더 하려고 남았다가 이 글을 두드렸는데, 이제 자정이 가까워온다. 얼른 집에 가서 씻고 피곤한 몸을 침대에 던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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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7-10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에피소드가, 실화가 아니었다면 하는 마음으로 일었네요. 감은빛님 넘 곤란하셨겠어요....

감은빛 2023-07-17 23:41   좋아요 1 | URL
네, 더워서 땀이 줄줄 흘러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더 답답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고 그랬어요. 뭐라 말하고 싶었는데, 상대가 여성이고 내가 남성이라 말을 못 하겠더라구요.

루피닷 2023-07-11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스안에서 추억으로 읽었다가 달리기 운동의 중요성 프로와 아마추어 배울게 많았던 글 잘보고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은빛 2023-07-17 23:43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루피닷님.
배울 건 별로 없었을텐데,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씀 남겨주신 것도 고마워요!

다락방 2023-07-1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딩때 버스의 그 사건으로 그 여성과 실제 데이트하는 사이가 되었었다니. 완전 재미있는 로맨스 드라마 보는 것 같았어요. 이런 거 또 없습니까? ㅋㅋ

감은빛 2023-07-17 23:46   좋아요 0 | URL
글쎄요. 이런 거 또 있었으려나? ㅎㅎ
사실 어떤 이야기라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죠.
좀 더 극적인 이야기가 두어개 떠오르긴 합니다.
그걸 어떻게 극적으로 잘 풀어낼지는 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네요.
좀 생각해볼게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락방님.
 

어쩌다 보니 매월 마지막 날에는 여기 알라딘에 글을 하나씩 쓰려고 노력하는 듯하다. 오늘도 6월의 마지막 날이니 하나 남겨야지. 시간 관계상 평소처럼 길게 쓰긴 어려울 것 같고, 조금 짧더라도 일단 쓰고 보자.


강의


최근에 강의를 두 번 했다. 하나는 초등학생들과 했고, 또 한 번은 어르신들과 했다. 초등학생들 강의는 내가 실수로 일정을 잘 못 기록해두어서 준비를 거의 하지 못하고 갑자기 불려갔다. 하지만 초등학생 강의도 이미 여러 번 해봤었고, 강의 주제는 뭐 눈 감고도 외울 정도로 많이 했던 내용이라 평소 실력대로 했다. 특히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괜히 욕심 내서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주입 시키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좀 마음을 편하게 먹고,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쉽게 설명하고 이야기 중심으로 진행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강의를 했는데, 처음에 조금 경계하던 센터 선생님들이 강의 도중에 점점 표정이 바뀌어 내 강의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강의를 다 마치고 나서도 인사를 나누며 쉽고 재밌게 해주셔 고맙다는 얘기를 들었다. 몇 학년인지 물어보지는 못했으나 그 중 제일 나이가 많을 것처럼 보이는 남자 아이가 하나 있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교육이었기에 그리 어려운 내용이 없었지만, 가끔 어려운 용어가 나와도 대답을 척척 잘 해서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날 내가 알려준 내용 중에 거의 6~70 프로 정도를 그 친구는 이미 다 알고 있더라. 주위에 있던 센터 선생님들 반응을 보니 다른 과목이나 분야에서도 늘 그렇게 잘 알고 있는 모양이더라. 그래. 가끔 그런 사람도 있는 법이지.


어르신들 강의는 좀 힘이 빠지는 시간이었다. 어르신들 대상 강의도 워낙 많이 해봤기 때문에 그들 특유의 몇몇 태도들에 익숙했지만, 그날은 좀 강적인 분들이 계셨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그 분들은 그냥 젊은 친구가 자신에게 가르치려고 든다고 느끼고 그것이 기분 나쁘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평소처럼 내가 차분하면서도 친근한 태도로 분위기를 잘 추스려보려고 애 썼는데, 쉽지는 않았다. 나중에 강의를 섭외했던 주최측 담당자가 와서 그 분들 대신 사과한다고 했다. 나는 그러실 필요 없다고, 이런 일 많이 겪는 편이고 익숙하다고 답했다. 답은 그렇게 했지만 기분은 썩 좋지는 않았다. 내 내공이 아직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음에 또 기회가 생기면 그때는 좀 더 잘 수습할 수 있기를.


잠이 모자라


지난 주부터 이틀 전까지 좀 중요한 일정이 연달아 있었고, 문서 작업들이 좀 밀려있었다. 낮엔 회의를 비롯해 외부 일정이 많고, 저녁에는 매장을 보는 시간이 많아서 근무 시간에 문서작업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잘 나지 않았다. 가끔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이런저런 이유로 집중이 잘 안 되어서 낮에는 제대로 진도를 나가기기 어려웠다. 그래서 야근을 하는 날이 많았고, 야근이 야근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밤샘 작업으로 이어지는 날도 많았다. 한 7~8년 전에는 하루나 이틀 정도는 밤샘을 해도 일과시간을 소화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어느 해부터인지 몰라도 이젠 밤샘 후에 낮 일정을 소화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더니 약간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평일을 보내고 주말에는 정말 죽은 듯이 잠만 자고 다시 월요일부터 야근과 밤샘이 이어졌다.


결국 중요한 일정들을 다 마쳤고, 문서 작업들도 완전히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으로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은 조금 여유를 즐기려고 했지만, 또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마음만은 여유 있게 지낸 편이다.


덥다 더워


온도는 높고 습도도 높으니 불쾌지수가 그냥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진다. 아, 한여름 낮에는 가능하면 외부 일정을 안 잡았으면 좋겠다. 어디 나다니기가 너무 힘들다. 그런데 내 이런 생각과는 관계없이 자꾸 외부 일정이 생긴다. 


남부 지방엔 폭우가 와서 또 여기저기 피해가 심각하다고 한다. 뭐 인도는 6월 비정상적인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1백명을 넘겼다고 했고, 캐나다는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절반 가량이 산불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폭염과 산불로 고통을 받고 있다.


기상학자들에 따르면 올해 여름이 역대 가장 더운 여름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미 티핑 포인트(더는 바로잡기 어려울 정도로 한계를 넘어간 지점)를 넘겼다는 의견들이 벌써 2018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전세계가 2030년까지 1.5도씨를 넘기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약속도 이미 부질없어진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뭐,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다 포기하고 그냥 살 수도 없는 일이니.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살 수 밖에.


최근에 인구 절벽이나 합계 출산율 급감이니 하는 뉴스도 종종 나오던데, 어차피 기후위기 때문에 살기 어려워진 지구에 인구가 줄어들면 그건 오히려 다행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고령화 문제와 노동자 감소 문제 등은 또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늘 청소년과 어린이들이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미래를 훔쳐 쓰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아, 그리고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방류 문제로 주위에서 말들이 많다. 나도 할 말이 많은데, 자꾸만 사람들이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하는 것이 안타깝다. 과학적인 견해과 그렇지 않은 시선이 있다는 이야기들. 누군가는 괴담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과학이라고 부르는 의견들. 옮고 그름의 문제도 물론 있겠지만, 당파적 사고방식에 매몰된 태도가 가장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 벌써 매장 문 닫을 시간이 지났네. 오늘은 여기까지. 7월의 첫날인 내일은 토요일인데도 일정이 몇 개 있다. 그걸 다 소화할 수는 없을 것이고, 꼭 필요한 두어 군데만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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