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모임 1기 종료
지역 의료협동조합의 건강실천단 활동으로 시작했던 달리기 모임 일정을 일단 완료했다. 해당 활동이 100일간의 활동이고 내일 해단식이 있어서 오늘이 공식적으로 마지막 날이다. 우리는 100일 동안 각자의 방식으로 운동을 이어갔고, 매주 1회 이상 달리기 모임을 가지는 것이 목표였는데, 도중에 비가 많이 오는 날도 있었고 중요한 일정이 겹쳐 모임을 못 가진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어제도 사실 이런저런 일정들 때문에 모임 구성원 대부분이 정해진 시간에 모이지 못할 상황이었다. 해단식 전 마지막 모임이이기 때문에 나는 무조건 모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임 시간을 밤 9시로 늦췄다. 요즘처럼 더운 날엔 차라리 밤에 조금 선선할 때 모여서 달리는 것이 훨씬 낫다고 설득했다. 결국 9시로 모임을 정했고, 허리가 아파서 못 오시는 분과 다른 약속이 늦게 끝나서 못 오시는 분을 제외하고 다들 마지막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나는 달리기 모임에 가기 직전에 유혹에 빠졌다. 친한 선배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자리에 꼭 오라는 요청을 받아서 8시에 매장 문을 닫고 갔다. 곧 달리기를 해야 하니 아주 조금만 먹고 잠시 앉아 있다가 일어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선배들이 주문해 준 피자가 제법 맛있었고(아마 배가 많이 고파서 그랬겠지만) 앉아서 수다를 떨다보니 일어나기가 싫어졌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9시에 모이기로 한 것은 다른 분들의 일정이 적어도 8시 40분쯤에는 끝날 거라고 가정했기 때문인데, 만약 그 분들이 더 늦게 마치면 나는 그 분들 핑계를 대면서 안 가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 분들이 다 늦게 오시더라도 나는 시간 맞춰 가서 달리기를 해야지. 피자를 좀 더 먹고 싶은 유혹과 앉아서 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나는 일어섰다.
모임 장소에 도착해 조금 기다리니 그 분들이 오셨다. 그런데 한 분이 더 계셨다. 평소 지역의 이런저런 회의 장소에서 자주 마주쳤던 선배 활동가였다. 본인 말씀으론 납치되어 왔다고. 앞의 회의에 같이 참여햇던 분들이 달리기 같이 하자고 꼬셔서 끌려왔다는 뜻이다. 새로 온 분도 계시고 해서 달리기 기본 자세와 주의할 점들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같이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달리기를 같이 했다.
달리기 마지막에 나는 새로 온 분의 흥미를 끌기 위해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스킬을 일부러 하나 선보였다. 단거리 주법을 보여준 것이다. 달리기 주법은 장거리 달리기와 단거리 달리기가 완전히 다르다. 장거리는 길게 먼 거리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가볍고 부드럽게 앞으로 나가야 하는 반면, 단거리는 시작하면서 빠르게 가속도를 내야 하기 때문에 무릎을 높게 들고 땅을 강하게 박차는 동작을 빠른 속도로 반복해야 한다. 나는 일부러 그 분의 옆에서 천천히 달리다가 갑자기 무릎을 높게 들고 강하게 땅을 박차는 동작을 빠르게 반복해 앞으로 치고 나갔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순식간에 속도를 높이며 달려나가는 모습을 그렇게 가까이서 보는 경험이 평범한 그러니까 달리기를 안 해본 사람에게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역시 내 계산이 통했다. 달리기를 마치고 그 분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달릴 수가 있느냐 물으며 관심을 보였다. 자신이 그렇게 빨리 달리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달리기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내가 매우 열성적으로 이런저런 노하우를 가르쳐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내 강의 때문에 다시 나오기로 마음 먹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기존 참여자들도 같은 생각으로 계속 이 모임에 나오고 있다고 거들었다. 첫 달리기 모임 때 그러니까 100일 전에 평생 한번도 제대로 달리기를 해보지 못했던 중년 여성 선배들을 위해 나름 준비를 많이 해서 알려드렸던 것을 그 분들이 알아채고 인정해주셨던 것이다. 그날 첫 모임을 마치고 나를 '코치님'이라 부르며 지금까지 잘 따라주신 것에 나 역시도 무척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로 건강실천단 활동은 마무리가 되지만, 우리 달리기 모임은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일단은 올해 연말까지. 그리고 내년에도 또 계속 이어가야지. 우선 8월은 너무 더우니 1달의 휴식기를 가지고 9월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 100일 동안 꾸준히 함께 달린 분들의 성장에 대해서도 칭찬을 많이 했다. 다들 처음엔 달리는 자세와 호흡 등이 불안정했고, 한번에 쉬지 않고 달리는 거리가 짧았다. 속도도 잘 내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차례 모임을 이어가면서 점점 나아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렇게 일부러 더 많이 칭찬하면서 나는 속으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칭찬했다. 모임을 하기로 마음 먹은 후에 모임을 이끄는 나 자신이 잘 달리지 못하면 너무 부끄러운 일이 될 것 같아서 미리 달리기를 많이 해두었다. 나도 한 3년 만에 다시 달리기를 하는 것이라 폐활량도 많이 딸렸고, 하체 근력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한 보름 정도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나니 3년 전에 교통사고로 달리기를 멈췄던 시점 정도의 체력을 회복했다. 모임 지기로서 남들 보다 한 번이라도 더 달리고, 한 번 달릴 때에도 남들 보다는 조금 더 먼 거리를 더 빨리 달렸다. 가능하면 자신 없어하는 다른 분들을 잘 챙기려고 많이 노력했고, 사소한 것들을 잘 캐치해서 칭찬을 많이 하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달리기 모임을 만들고 이끄는 활동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약간은 억지로 떠 맡은 것이었지만, 막상 시작한 후에는 나 자신이 가장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그 재미가 지금까지 열심히 달리게 된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친한 후배들 몇 명은 달리기 모임에 정식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내 권유로 몇 차례씩 객원 멤버로 참여했었고, 그 중 한 명은 제대로 달려보고픈 생각이 들었는지 런닝화도 새로 구매했다. 9월에 다시 모임을 이어갈 때는 이 친구들도 모두 포함해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릴 생각이다. 이런 흐름이 잘 이어진다면 내년에는 동네 사람들과 덤벨과 케틀벨을 활용한 운동 모임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이렇게 일을 벌리다보면 나 자신이 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을테니, 귀찮고, 피곤하고, 힘들다는 핑계로 운동을 쉬지 못하게 되겠지.
자, 이제 일 마무리하고 매장 정리하고 달리기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