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오늘은 제헌절이다. 7월 17일. 내 인생은 3년 전 오늘부터 크게 바뀌었다. 2020년 7월 17일 자정을 조금 지난 시점에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로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몸에 남은 변화 몇 가지를 살펴보자. 가장 뚜렷한 흔적은 흉터들이다. 가장 상처가 크게 났던 얼굴에는 코 주위로 큰 흉터가 몇 개 남았다. 시간이 지나서 이젠 코 주위 옆에 남은 흉터는 많이 옅어져서 그냥 쓱 스쳐지나면 잘 보이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물론 나는 그 자리에 흉터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거울을 볼 때마다 그 흉터들이 너무나도 잘 보이긴 한다. 코 아래와 안쪽에도 흉터들이 있다. 안쪽 흉터들은 당연히 밖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코 바로 아래 흉터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긴 하지만, 가족이나 친한 사이가 아니면 그렇게 들여다 볼 일은 없기 때문에 남들이 알아볼 일은 거의 없긴 하다. 얼굴에 남은 흉터는 이 정도다. 몸에 남은 흉터들도 제법 많다. 옆구리에 남은 수술 자국이 제일 큰 흉터다. 올해 초 까지도 볼록 튀어나온 길다란 흉터가 만져질 때마다 무척 거슬리곤 했는데, 최근에는 많이 작아졌다고 할까 높이가 조금 낮아졌다고 할까 그렇다. 시간이 지날 수록 만져지는 느낌이 점점 익숙해지기도 했다. 물론 평생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몸 속 갈비뼈에는 뼈들을 고정하는 클립이 여전히 박혀있다. 그래서 우스개 소리로 만약 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서 언젠가 백골 사체로 발견되면 내 갈비뼈에 박혀 있는 클립들이 나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될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예전에 함께 목욕탕에 갔던 후배가 그 흉터를 보더니 조폭이 칼 맞은 흉터처럼 보인다고 했다. 수술용 매스도 칼이니 당연히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 몸에 남은 또 다른 흉터들은 주로 몸의 뒷면에 있다. 어깨 뒤쪽과 허리 뒤쪽 그리고 허벅지 안쪽 등이다.


다음은 아직도 가끔 나를 괴롭히는 후유증이다. 코 밑에서부터 크게 찢어진 상처를 꿰맸기 때문에 코 일부와 뺨 일부는 신경이 죽어버렸다. 그래서 눈 밑에 뼈가 산산조각나서 인공 뼈를 집어넣은 곳까지 손가락으로 만지면 느낌이 없다. 남의 살을 만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피부 표면은 그렇게 신경이 죽었는데, 안쪽에서는 가끔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들이 나타난다. 자세히 살펴보면 해당 부위는 반대쪽에 비해 여전히 좀 부어있고, 그 안쪽 어딘가는 여전히 완전히 다 나은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암튼 통증은 한 번 나타나면 몇 시간 이상 지속되는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할 때도 있고, 그냥 참을 수 있을 정도일 때도 있다.


그 다음은 트라우마 라고 할까 약간 정신적은 면에 가까울 것 같다. 일단 사고 이후로 교통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택시나 남의 차를 타면 무조건 안전벨트를 찾아서 맨다.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등도 마찬가지.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나서 운전을 못 할 정도는 아닌데, 한동안은 운전을 하는 것이 겁이 나기도 했다. 어딘가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경우에는 자주 도중에 교통사고가 나는 장면이 자꾸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딴 생각을 하다보면 괜찮아지기도 하는데, 가끔은 그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사고 이후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일과 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그 전까지는 일과 가족과 친한 소수의 사람들 외에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일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그런데 사고 이후로 오래 쉬다가 일터에 복귀한 후로는 일 말고 다른 것들을 더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다. 일부러 직소 퍼즐 맞추기에 시간을 투자하거나, 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더 많은 운동기구를 사 모은다거나 하는 등. 아, 물론 사고 이전에도 운동을 좋아했고, 운동 기구를 사기도 했지만, 규모와 비중이 달랐다고 할까. 이젠 좀 비싸더라도 이 정도 투자는 해야지 생각하게 되었고, 이전에는 이렇게나 많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라면서 내 스스로 제동을 걸었던 것을 이젠 이 정도는 필요하지 하고 반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집에서 쉬고 있을 때에도 다음날 일정이라던가, 큰 틀에서 일의 흐름이라거나, 어떤 잘 안 풀리는 상황의 해법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퇴근하는 순간 일에 대한 생각은 아예 머리에서 지워버린다. 그 전에는 좀 무리한 일정이거나 너무 많은 양의 일이 내게 배정되어도 그냥 어떻게든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면, 이젠 그렇지 않다. 일이 좀 많다 싶으면 못 하겠다고 말하고, 일정이 무리라고 느끼면 가감 없이 그대로 말한다. 


전반적으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혼자 뭔가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예전에는 누군가 연락이 오면 거의 무조건 만나러 나갔고,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일들도 많았다. 요즘은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이 많이 줄었고, 누군가 만나자고 연락이 와도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 


아, 가장 큰 변화를 잊어버릴 뻔했네. 근육량이 확 줄어서 더는 예전처럼 고강도의 운동을 감당하거나 고중량의 무게를 들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3년 동안 꾸준히 운동을 해서 운동량을 늘리고 있음에도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다. 물론 중간 중간에 지쳐서 운동을 쉬는 날들도 제법 있었다. 예전과 비교해서 흥이 안 난다고 해야 할까? 이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서 기분이 안 나기도 한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서 얼른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고 느낄 때도 있고, 점점 늙어가는 내 몸은 이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번은 약간의 객기로 옛날에 주로 들던 정도로 원판을 끼워 놓고 바벨을 들다가 부상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 예전이었으면 지금 이 여름에 몸에 붙는 옷을 입고 몸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헐렁한 옷을 주로 입는다. 더이상 나는 근육을 자랑할 수 있는 몸매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거울을 볼 때마다 깨닫는다.


이외에도 더 변화들이 있을텐데. 지금 생각나는 것은 이 정도다. 사람은 늘 변한다. 몸도 마음도 변하기 마련이다. 아마 그 사고가 없었더라도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제법 많이 달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고라는 하나의 변곡점이 많은 것을 확 바꿔버렸다. 서서히 바뀐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순간 어떤 힘에 의해 내 삶이 꺾여버린 느낌이다.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고 당시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래. 죽었을 지도 모를 이 삶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살아났으니 계속 살아야지. 이왕이면 좀 더 잘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잘~'이란 기준이 또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일반적인 기준으로 생각하지는 않겠다. 


내일은 강의가 한 건 있고, 중요한 회의도 있다. 이래저래 준비할 것이 많아서 늦게까지 사무실에 앉아 있었는데, 날짜가 바뀌기 전에 집에 가야겠다.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방류 문제 때문에 찾아봐야 할 문건과 영상이 너무 많다. 과학적인 태도와 가짜 과학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계속되는 집중호우 때문에 피해를 입은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기후위기의 피해를 덜 보고 있다고 강의 때마다 말하곤 했는데, 이젠 그렇게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이번 비 피해 규모를 숫자로 따지면 2020년 중국 홍수 때보다 훨씬 적겠지만, 피해를 입은 사람 개인의 삶의 문제로 접근하면 그런 숫자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그냥 피해는 피해일 뿐이다. 막을 수 있는 피해인가, 없는 피해인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 그런데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는 막기 어렵다. 이 쏟아붓는 비를 어찌 막을 것인가? 조금 더 미리 대피하고, 조금 더 대비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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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1 2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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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1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