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노 요코 라는 작가를 이제 알았다. 내가 잘 아는 아이 책은 잘 알지만, 자기 책은 잘 읽지 않는 언니도 사노 요코라는 작가를 알던데. 아이들 그림책 작가로. 바빠 죽겠다 어쩌다 하지만, 바쁜 만큼 일들의 압박이 거센 만큼, 이런 수필집이 틈틈이 짬짬이 읽기에는 무척이나 좋다.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제목 만큼이나 인간 성정의 뾰족하고 까탈스러움을 드러내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솔직해서 좋다. 나 또한 한없이 게으르고 변덕스럽고, ....)) 세 권 뿐이긴 하지만 맛나게 한 챕터씩 뜯어 잘 먹을 듯 하다.

 

290~292

여자가 한번 어머니가 되어 버리면 어머니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어머니도 인간이며 여자라고 여자라고 꼬드기지만, 아무리 꼬드김을 당해도 어머니는 어머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어머니이기를 계속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책을 읽으면 객관적 입장이라는 것은 사라진다.

탈옥수의 수기를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읽으면 손에 땀을 쥘 수 있다. 손에 땀을 쥐기 위해서 읽는 거다. 그러나 도중에 문득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탈옥수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혼란스럽다. 중간에 성장 과정이 나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한 살 때의 사랑스러운 사진이라도 한 장 삽입되면 손에 땀 같은 건 안 나온다.

우리 아이는 내가 제대로 교육하고 있는 건지 점검하게 되어 피곤하다. 유부녀의 연애 얘기를 읽으며 가슴 두근거리고 싶다면 <파도의 탑>을 읽어 보라. ..하지만 시골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아들 자랑을 하고 있을 젊은 변호사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 어머니가 안됐어서, 유부녀에게 바람 피우지 마하게 되고, ...간단히 말해 어머니는 자신의 생각 같은 게 없다. 그냥 어머니의 생각이 있을 뿐이다.

스무 살 때에는 보부아르를 존경했다.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라니, 스무살의 나에게 그녀는 진정 예언자였다. 근데 아이를 낳으니, ‘보브아르, 그런 사람이 있었나?’하게 된다. 아이가 없는 사람은 참 좋겠다. 홀가분해서. 이것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안의 어머니가 하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는 어머니가 등장하는 책을 읽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은데, 인류의 반은 어머니라 온갖 어머니가 다 있다 보니 이 또한 읽기가 쉽지만은 않다. ... 파블로 카잘스의 전기를 읽은 적이 있다. 스페인에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서자, 카잘스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도망치라고 한다. “나는 사람을 죽이라고 너를 낳은 것이 아니다. 도망쳐라.” 아들은 그렇게 살아남았다. 그 어머니는 특별히 교양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막상 일이 닥쳤을 때 교양이 도움이 된 적이 있나.) 멍청하고 게으른 어머니인 나는 때때로 카잘스를 떠올렸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간의 존엄이란 것을 생각했다.

어머니의 사랑에는 자식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지배욕이 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사랑은 애지중지 키우고 무한히 보살피는 사랑이다. 아마 아이에게 준 만큼의 사랑을 아이에게 돌려받는 어머니는 없을 것이다. 성장해버리면 부모는 멀리하고 싶은 법이며, 그것이 정상이다.

아무리 하루 세끼 식사에 낮잠 제공이라는 조건이어도 수지는 안 맞지만, 그래도 어머니로 있는다는 건 재미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