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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1 - 이주헌의 행복한 그림 읽기 ㅣ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그림에 조예가 있지도 않고, 유럽 미술관 순례를 떠날 계획도 없으며, 기타 등등 했지만 이 책을 보았고 재밌었다. 역으로 서양화 보는 것을 좋아하고, 아울러 유럽 미술관 순례를 다녀왔거나, 혹 갈 계획이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면 참고 도서로 아주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이 책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데, 그림을 보는 것은 뭔가 알려고 하는 것보다 느끼려고 하는 게 우선인 것 같다. 왜 학교에서 미술 배우거나할 때 보면 자꾸 지식을 통해 알려고 하는데... 그게 오히려 그림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 같다는 말씀. 물론 지식도 중요하지만 자꾸 보고 자꾸 느끼고 그냥 그렇게 반복해 가는 게 미술을 이해하는 제일 빠른 길...
이주헌은 그림을 보는 것을 하나의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지식은 보조적인 것이다. 지식을 늘리는 것 또한 미술 이해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자기의 기준과 주견을 가지고 미술 작품을 볼 수 있으려면 스스로 많은 그림을 겪어야만 한다고.
99쪽
그러나 예전 내 마음 속에 있던 만종의 크기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 내 마음 속의 만종은 너무나 큰 그림인 까닭이다. <이삭 줍기>도 그다지 크다고 할 수 없는데, 이들 그림이 사람들의 마음을 압도하는 것은 농촌을 배경으로 한 영원한 휴머니즘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이삭 줍기>가 “공산주의자들이 폭탄을 던지는 모습”이라는, 웃지 못할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사실 따위는 이제 그 큰 울림 속에 폭 파묻혀 흔적조차 찾을 길 없다. 역시 밀레의 탁월한 능력은 그 그침 없는 울림의 창조에 있다. 그의 작품에는 인간의 노동과 땀, 그리고 그것들을 향한 영혼과 정신의 경배가 오직 단 안 번뿐일 완벽한 스탭으로 잡혀 있다.
154쪽
"예술이 뭐냐고? 그건 돈일세."
피카소가 한 지인으로부터 예술의 정의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는 듯 이렇게 간단히 대답했다. “예술=돈”이란 등식 안에는 물론 다양한 의미가 함축돼 있겠으나 크게 보아 그는 두 가지 시각에서 그와 같은 답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제 예술은 돈에 의해 소통되고 돈에 의해 평가된다는 것이다. ‘예술 가치의 금본위제’가 확고히 정착돼 어떤 경우도 이에서 벗어날 수 없게 돼버렸다는 다소 냉소적인 시각이다.
둘째는 그렇게 돈에 의해 예술 가치가 평가되는 세상에서 예술가도 너무 신경질적으로 예술의 순수성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그 가치 척도를 수용하고 예술적 성취와 세속적 성공을 동시에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다. 어차피 인간 세상에서 신화든 명성이든 사회의 필요와 역학 관계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 그 강력한 매개물인 돈을 도외시하고서는 본질적으로 예술적 성취에도 상당한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일화를 힌트로 하고, 그렇다면 이 20세기 최대 인기 화가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은 바로 피카소 자신이었다. 그는 자기 예술의 재화로서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를 함부로 팔지 않고 상당량 애장해 두었다.
194쪽
파리 시절 그는 또 신인상파 못지 않게 그에게 자극적이었던 한 흐름을 만난다. 바로 ‘일본주의’다. 반 고흐는 일본 우키요에의 화려한 색상과 평면성, 장식적 구성에 상당히 감화를 받았다. 동생 테오와 함께 일본 목판화를 수백 점 사 오기까지 했다.
반 고흐가 한국의 분청사기나 단원의 그림을 대했으면 그는 진짜 무릎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았다. 문화는 흘러야 하고 흐를 때 비로소 힘이 생긴다는 자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찍이 그런 기회의 확보에 동작이 떴다.